구름과 마음의 쉼터, 안반데기 운유길을 걷다
  • 해당된 기사를 공유합니다

여행문화

구름과 마음의 쉼터, 안반데기 운유길을 걷다

캡쳐1.GIF

안반데기 운유길

(강릉=국민문화신문) 지문일 기자 = 강원도 강릉시 안반데기는 백두대간의 우묵한 고지대에 터를 잡은 ‘하늘 아래 첫 동네’인 동시에 국내 최대 고랭지 채소 재배지역이다.

 

안반데기는 고루포기산(1,238m)과 옥녀봉(1,146m)을 잇는 해발 1천100m 능선 쯤에 있다. 산이 배추밭이고, 배추밭이 곧 산이다. ‘안반’은 떡메로 반죽을 내리칠 때 쓰는 오목하고 넓은 통나무 받침판을, 데기’는 평평한 땅을 말한다.

 

안반데기는 1965년부터 산을 깎아 개간하고 화전민들이 정착하며 형성됐다. 화전민은 수십m 아래로 굴러 떨어질 수도 있는 가파른 비탈에서 곡괭이와 삽만으로 밭을 일구어 냈다. 1995년에는 대를 이어 밭을 갈아 낸 20가구 남짓의 안반데기 주민들이 정식으로 매입하면서 실질적인 소유주가 됐다. 척박한 땅은 약 200만㎡에 이르는 풍요로운 밭으로 변모했다. 한낱 드넓은 배추밭으로만 여겨졌던 안반데기의 풍경이 노동의 신성함으로 다가온다.

   

캡처11.GIF

안반데기 운유길

강릉바우길 17구간에 속한 ‘안반데기 운유(雲遊)길’은 강릉에 조성된 길 가운데 가장 높은 곳에 만들어졌다. 총 연장이 350㎞에 달하는 강릉바우길은 백두대간을 따라 경포와 정동진까지 산과 바다를 지난다. 화전(火田)의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쉬는 안반데기 운유길은 안반데기 구간 6㎞, 고루포기산 구간 14㎞를 합쳐 20㎞에 달한다.

 

평창과 강릉의 경계에 있는 안반데기에 가려면 평창에서는 피득령을, 강릉 쪽에서는 닭목령을 넘어야 한다. 수도권에서 출발하면 영동고속도로 횡계IC로 나와 수하계곡길을 이용하는 것이 훨씬 더 가깝다.

 

안데반기 운유길은 운유촌에서 멍에전망대를 거쳐 피득령, 일출전망대, 성황당을 찍고 되돌아오는 6㎞ 거리로 쉬엄쉬엄 느린 걸음으로 3시간 걸린다. 식당과 숙박, 주차장 시설을 갖춘 운유촌에서부터 시작해 이정표가 알려주는 곳으로 따라 걷기만 하면 된다. 운유촌을 나오자마자 오른쪽 편으로 가파른 고갯길이 나타난다.

 

멍에전망대를 등지고 피득령으로 향한다. 피득령 정상에는 마을에서 운영하는 운유 쉼터와 화전민 사료관이 있다. 마음을 가다듬고 옥녀봉 쪽으로 이어진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가면 풍력발전기와 마주친다. 햇살이 내리비치는 길이어서 땀 줄기가 등을 타고 흘러내렸다. 풍력발전기 날갯소리만 이따금 바람 끝에 실려온다. 고요하고 평온하다.

 

다리에 힘이 풀릴 때쯤 일출전망대가 모습을 드러낸다. 일출전망대 역시 사방 거칠 것 없는 풍경이 압권이다. 겹겹이 펼쳐진 산자락, 파란 하늘과 뭉게구름, 진초록의 배추밭과 황톳빛 개간지 등이 한데 어우러져 마치 한 폭의 수묵화 같은 풍경을 보여준다. 안반데기에는 수시로 구름이 걸리는데 구름이 능선에 걸리면 그야말로 ‘구름 위의 산책’이다.

 

일출전망대에서 옥녀봉 헬기장까지는 완만한 능선길이다. 거대한 분화구처럼 움푹 팬 안반데기의 이국적인 풍경 덕에 길을 걷는 내내 눈이 즐겁다. 안반데기를 유유자적 걷다 보면 성황당이 때맞춰 마중을 나온다.

 

성황당의 숲과 벤치는 여행자들에게 넉넉한 쉼터를 내준다. 벤치에 앉아 걸어왔던 길과 안반데기 마을을 바라봤다. 남북으로 광활하게 펼쳐진 고랭지 채소밭의 아름다운 풍경 속에 화전민의 굳은살 박인 손이 포개진다. 자연이 연출하는 풍경도 아름답지만 척박한 땅을 일궈낸 화전민의 땀과 노력을 생각하면 저절로 경건해진다.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