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우리 공원, 수많은 기독교인들 이곳에 잠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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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망우리 공원, 수많은 기독교인들 이곳에 잠들다

작은 거인 유관순, 한국 기독교 순교자로 나라에 목숨을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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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우리 공원.


(서울=국민문화신문) 정예원 기자= 서울 중랑구 망우리공원에는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잠들어 있다. 최근, 서울의 대표적 공동묘지인 망우리공원을 테마로 망우리공원 속 기독교계 인물을 정리한 책이 출간됐다.

 

망우리공원에는 기독교인들의 무덤이 많은 편이다. 이들 가운데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유명인사들 이야기를 중심으로 김영식 작가는 3월 초 ‘망우리 언덕의 십자가’를 출간됐다.

 

최근 역사공원으로 새롭게 단장되고 있는 망우리 공원은 1933년부터 1973년까지 공동묘지로 사용됐다. 이곳에는 한용운, 오세창, 문일평, 방정환, 조봉암 등의 독립지사와 시인 박인환, 화가 이중섭, 조각가 권진규, 극작가 함세덕 등의 문화예술인이 한데 모여 있어 ‘거대한 근대사박물관’으로도 불리고 있다.

 

또한, 망우리공원은 기독교계 인물로서 애국지사뿐 아니라 안타까운 변절이나 오랫동안 소외된 죽음, 일본인 두 명도 망우리공원에 모두 안치되어 있다. 이는, 기독교 정신을 보다 분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그렇기에 망우리공원은 현충원보다 더욱 다양한 종교적·인문학적 스토리를 간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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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우리공원에 잠든 사람들의 간단한 약력을 표시한 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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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우리공원의 사잇길.

 

망우리공원은 1997년부터 시민들이 즐겨 찾을 수 있도록 공원화 사업을 추진해 다음 해에 4.7 킬로미터의 산책로 ‘사색의 길’을 조성했다. 몇 해 전에는 ‘인문학길 사잇길 코스’도 만들어졌다. 이곳에서 기억하게 되는 이들의 삶과 문학, 음악, 회화는 지금까지도 남아 자양분이 되고 있다.

 

망우리공원의 ‘사잇길’은 망우리공원의 자연경관 조망 및 묘지 속의 사색과 함께, 그 어느 때보다도 격동적인 근현대사를 살다간 유명인사 50여 명과 서민의 이야기를 비명을 통해 체험할 수 있는 코스로 조성됐다. 삶과 죽음 사이를 걸어가다 보면 근심은 저절로 잊혀지게 된다.

 

역사문화코스, 인문학길 사잇길 코스, 서울둘레길 2코스 등이 조성된 공원은 2013년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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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심 먹는 우체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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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심 먹는 우체통의 망우 엽서.

 

망우리공원 삼거리에는 ‘근심 먹는 우체통’이 있다. 빨간 우체통이 눈에 확 들어오면서 힘들었던 몸과 마음에 생기를 불어 넣어준다. 망우역사공원을 찾을 때마다 근심과 걱정을 하나씩 엽서에 적어 넣으라는 안내 문구는 마음의 위안을 준다.

 

근심 먹는 우체통의 망우 엽서는 망우본동 주민자치회에서 제작해 배부하고 있다. 근심거리와 걱정거리를 써서 넣어두면, 주민자치회에서 정기적으로 수거를 해 근심을 나누겠다고 한다. 근심을 서로 나누고 해결하려고 함께 노력을 한다면, 그 근심의 정도가 적어진다는 근대문화 공간다운 발상이 참으로 독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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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관순 열사의 분묘 합장 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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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관순 열사의 연보.

 

망우리 공원에는 작은 거인이라고도 불리는 유관순 열사의 분묘 합장 묘역이 있다.

 

지난 해 9월 26일, 순국 100주년을 맞아 중랑구는 이곳에서 추모식을 가지기도 했다. 이미 이곳에는 유관순 열사를 기억하고자 다녀간 많은 이들의 흔적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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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관순 열사.

 

유관순 열사는 할아버지와 작은 아버지의 영향으로 한국 기독교 순교자로 활동했다. 교육과 교회를 대하는 아버지의 태도는 어린 유관순에게도 깊은 영향을 미쳤다.

 

정동교회 손정도 목사와 이화학당의 박인덕 선생은 어린 유관순에게 민족과 신앙을 가르쳐준 사람이다. 손정도 목사는 만주 하얼빈에서 활동했던 신앙과 민족정신이 투철한 사람이기도 했다.

 

그녀는 조선총독부가 휴교령을 내리자 그녀는 3월 13일 고향으로 내려와 자신의 일생 신앙생활을 했던 매봉 교회 교인들과 함께 만세시위를 준비했다.

 

1919년 3월 31일 유관순이 매봉산에 올라 기도를 드렸던 기도문은 다음과 같다.

 

“오오, 하나님이시여 이제 시간이 임박하였습니다. 원수 왜를 물리쳐 주시고 이 땅에 자유와 독립을 주소서. 내일 거사할 각 대표에게 더욱 용기와 힘을 주시고, 이 민족의 행복한 땅이 되게 하소서. 주여 같이 하시고, 이 소녀에게 용기와 힘을 주옵소서. 대한독립만세, 대한독립만세!”

 

10대 소녀의 기도문이라고는 힘들 정도로 놀랍다. 당시의 상황이 얼마나 처참했고 두려웠을지 기도문에서 느껴진다.

 

만세운동이 예정되었던 4월 1일 당일에는 3천 명이 모여들어 병천 만세운동을 전개했다. 조병옥 박사의 아버지 조인원의 독립선언서 낭독에 이어 유관순이 독립연설을 일장 하고서 시위를 시작했다. 유관순은 이날 현장에서 체포되어 천안 헌병대에 송치되었다.

 

3.1만세운동의 상징과도 같은 유관순 열사는 아우내장터 만세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투옥되어 18살의 꽃다운 나이에 1920년 9월 28일 서대문 형무소에서 세상을 떠났다. 일제는 보름이 지난 후에야 시신을 인도했고, 10월 14일 일본 경찰의 감시 속에 비석도 없이 이태원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가 이곳 망우리 공원에 안치되어 위령비를 세웠다.

 

한편, 2009년 <그와 나 사이를 걷다-망우리 사잇길에서 읽는 인문학>(호메로스)을 펴낸 김영식 작가는 ‘망우리 언덕의 십자가’라는 제목으로 서울 중랑구 망우리를 중심으로 한국 기독교의 역사를 깊숙이 탐구했다.

 

3.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16인이 기독교계 인물이었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듯이, 기독교는 우리나라의 근대화와 독립운동뿐 아니라 해방 후의 산업화와 민주화에도 크게 기여했다.

 

한국 기독교 역사의 발자취를 담은 김영식 작가의 역작 ‘망우리 언덕의 십자가’에는 총 24인의 기독교인이 수록돼 있다.

 

우리나라 기독교 최초의 유아 세례자 서병호, 최초의 여성 기독교 장로 김말봉, 초기 기독교인으로 독립운동에 앞장선 안창호, 유관순, 유상규, 이영학, 서광조, 강학린 등의 애국지사, 해방 후 신앙의 자유를 찾아 월남한 아동문학가 강소천 등이 기독교와 함께한 자신의 삶은 물론, 그들 삶의 배경이 되는 한국 기독교의 역사를 전해주고 있다.

 

지은이는 1부에서는 안창호, 유관순 등 한 알의 밀알이 되어 나라에 목숨을 바친 12인의 애국지사를, 2부는 교육과 문화를 통해 이 땅에 씨앗을 뿌린 12인의 인물을 중심으로 소개한다.

 

이들 중 안창호, 서병호, 문명훤, 김봉성, 강학린 등 5인은 현충원 등으로 이장되었으나 망우리 공원에 남겨진 비석은 그들의 자취를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비석(금석문)은 역사의 증거가 되는 소중한 문화재로 남았다.

 

끝으로 김영식 작가는 “망우리 공원을 걸으며 실제 삶에서 기독교 정신을 실천하고 소천한 분들을 찾아, 그들을 기리는 동시에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계기를 얻었으면 한다. 나아가 망우리공원이 새로운 성지순례의 장소로서도 부각 되기를 바라 마지않는다.”고 전했다.

 

우리나라 기독교의 역사를 알아야 우리 근현대사의 전모를 볼 수 있기에, 이 책은 기독교인에 한정하지 않고 인문학을 즐기는 교양인의 필독서가 될 것이다. 또한, 망우리공원은 우리 나라의 다양한 종교적·인문학적 스토리를 간직하고 있으며, 꼭 기억해야 될 문화유산이기도 하다.

 

많은 종교인과 인문학을 즐기는 교양인들이 이곳, 망우리공원을 찾아 실제 삶에서 기독교 정신을 실천하고 소천한 분들의 정신을 느끼는 시간을 가지길 바란다.

 

따라서, 현재 우리는 기독교계 역사 속 인물들을 통해 기독교가 우리나라의 근대화와 독립운동뿐 아니라 해방 후의 산업화와 민주화에도 크게 기여한 역사적 사실을 기억하고, 3.1운동 정신과 가치를 되살리는 지원체계 마련을 위해 노력해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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