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현장> 마음의 허기까지 달래는 문학 속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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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현장> 마음의 허기까지 달래는 문학 속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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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음식을 주제로 하는 '문학을 요리하다, 맛있는 문학키친'에서는 참가자들이 문학작품 속 요리를 직접 만들어본다. 사진/임귀주 기자

 

(서울=연합뉴스) 임동근 기자 = 시와 소설은 영혼을, 음식은 육신을 배부르게 한다. 문학작품과 음식의 공통점은 바로 포만감을 주며 자양분이 된다는 점에 있는 것 같다. 음식이 등장하는 문학작품은 영혼과 육신을 모두 부풀게 한다. 문학 속 음식을 만드는 사람들과 지친영혼을 위로하고 허기진 삶을 맛깔스럽게 채우는 문학작품을 찾아 여행을 떠나본다.


마케팅·광고·전시 관련 종사자, 연구원, 대학원생, 대학생 등 하는 일도 사는 곳도 각기 다른 20~30대 여성 8명이 서울 강남에 한데모였다. 'ㄷ'자 모양 테이블에는 빵과 고기, 밀가루, 각종 채소 등 음식 재료와 조리 도구가 놓였다. 단편소설에 등장하는 음식 하나씩을 자기만의 재료와 레시피(조리법)로 만드는 자리다.


음식 만들기가 시작되고 어느덧 공간은 입에 침이 고이게 하는 고소한 냄새로 가득 찼다. 햄버거용 패티와 돈가스가 기름진 냄새를 풍기고, 된장찌개에서는 고소한 냄새가 피어오른다. 새빨간 떡볶이와 불그스레한 김치전은 맛깔스럽게 익어간다. 40분간의 분주한 손놀림 끝에 햄버거, 돈가스, 떡볶이, 김치전, 양배추 샐러드, 된장찌개, 어묵 볶음이 완성됐다.


이곳은 문학과 요리를 주제로 문학을 요리하는 것처럼 재구성하고 창작하는 프로그램인 '문학을 요리하다, 맛있는 문학키친'의 현장이다. 신청자 700명 중 선택된 참가자 8명은 한 주 전에 함께 모여 문학작품 속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윤고은의 '해마, 날다', 임솔아의 '줄 게 있어', 박성원의 '불안, 우울 그리고', 김숨의 '막차' 중 하나를 선택해 작품을 읽고 저마다의 레시피를 구성해 이날 그 속에 등장하는 음식을 만들었다.


음식을 만든 후에는 각자 만든 음식이 예쁜 접시에 담겨 놓인 식탁에 둘러앉았다. 한동안 직접 만든 음식들을 나눠 먹고, 문학작품 속음식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참가자들은 문학작품 속 음식을 시대상, 등장인물의 상황이나 기분, 개인의 삶과 연결해 이야기했다.


이 프로그램을 진행한 강선주 크리에이티브 람문 대표는 "음식은 현실 세계와 소설 속 허구의 접점"이라며 "문학작품 속 음식은 독자들이 기존의 경험을 불러와 좀 더 현실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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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가스를 만들고 있는 참가자. 사진/임귀주 기자

 

◇ 소설 속 음식을 만들다

마케팅 회사에 다니는 채아름(25)씨와 대학원생 예주연(29)씨는 '줄 게 있어'에 나오는 돈가스를 만들었다.

14년 만에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딸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일부러 천천히 걸었다. 그러다 그녀가 졸업했던 중학교를 지나게 된다. 그리고 아버지가 찾아왔던 기억을 떠올린다. 아버지는 학교 옆 식당에서 돈가스를 사줬다. 행복한 기억이었다. 약속 장소인 커피숍 앞에 서 있는 아버지는 머리카락이 빠져 있고 앞니는 없고 옷은 너무 헐렁했다. 암에 걸린 아버지는 그녀가 어릴 때 갖고 싶어 했던 양배추인형을 건네주고 갔다.


채씨는 "소설에서 유일하게 즐거운 대목은 딱 네 줄이었어요. 중학교 인근 식당에서 아버지가 돈가스를 사줄 때였죠. 주인공에게 돈가스는 행복지수가 클 것 같아 '행복 돈가스'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예씨는 "주인공의 기억을 아름답게 해주고 싶어서 수제 돈가스를 만들게 됐다"고 했다.


교육 연구원인 김미영(31)씨와 대학생 송윤지(22)씨는 '불안, 우울 그리고'에 나오는 떡볶이를 만들었다.

친한 친구가 약속 장소에 오다 죽은 후 영후는 상담 선생과 대화를 시작하게 되고, 아버지는 이날부터 교문 앞에서 영후를 기다린다. 손에 들린 검은색 비닐봉지에는 떡볶이가 들려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위로나 떡볶이는 도움이 되지 못했고, 결국 그는 병원에서 하염없이 하품하는 사람을 보며 위로를 받는다.

 

김씨는 "소설 속 음식은 새빨간 떡볶이와 뜨거운 어묵이었어요. 소설과 흡사한 떡볶이를 만들기 위해 고춧가루를 많이 넣어 맵고 뜨겁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반면 송씨는 "아버지가 주는 떡볶이는 자식에 대한 사랑과 위로였는데 위로가 되지 않았어요. 영후가 떡볶이를 직접 만든다면 어떨까란 생각에서 만들었다"고 했다. 참가자들은 이렇게 소설 속 상황을 자기 나름대로 해석하고 레시피를 준비해 각기 다른 음식을 만들었다.


강선주 대표는 "같은 텍스트를 읽었지만 이렇게 다른 떡볶이가 나온다"며 "이렇게 레시피가 다른 떡볶이를 만든다는 것은 우리의 감상이 다르다는 것을 시각적인 이미지로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식도락이 대세다. '삼시세끼', '냉장고를 부탁해', '집밥 백선생' 등 음식 관련 TV 프로그램이 인기를 끈다. 한 끼 식사를 위해 맛집을 검색해 찾아다니고 맛있는 음식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려 타인과 공유한다. 사람들 대화의 공통 관심사도 음식과 맛집이 많을 정도로 '먹방' 전성시대다.


강선주 대표는 "문학키친은 요즘 관심이 높은 음식을 통해 사람들이 문학과 좀 더 가까워지도록 하는 프로그램"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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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만든 음식을 식탁에 올린 후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참가자들. 사진/임귀주 기자

 

◇ 울리고 웃기는 소설 속 음식들

음식을 먹는 것은 생존을 위해 피할 수 없는 행위이자 인간의 일상이다. 사람을 이야기하는 문학작품에 음식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이다. 작품 속 음식은 시대상을 반영하고 인물의 성격이나 감정을 부각하기도 하고 독자를 울리고 웃기는 소재가 되기도 한다.


숀 브랜드는 '앨리스의 식탁'에서 "음식은 결정적으로 중요한 순간에 인물들을 한데 모은다. 포스터의 '전망 좋은 방'과 제인 오스틴의 '에마'에서는 소풍이 이야기의 큰 전환점이 된다. 식도락을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음식이 어떤 말보다 더 많은 감정을 불러일으킨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음식이 가장 슬프게 등장하는 작품은 현진건의 단편소설 '운수 좋은 날'이다. 가난한 인력거꾼인 김첨지의 아픈 아내는 설렁탕이 먹고싶다고 한다. 하지만 김첨지는 돈이 어디 있냐며 매몰차게 돌아선다. 왠지 장사가 잘되고 운이 좋던 날 기분 좋게 설렁탕을 사서 집으로 돌아온 김첨지는 설렁탕을 먹고 싶어 하던 아내가 싸늘한 주검이 되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김첨지는 아내 앞에서 울며 "설렁탕을 사다 놓았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왜 먹지를 못하니… 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더니만…."이라며 슬퍼한다. 소설 속 설렁탕은 아내에 대한 사랑의 표시이자 죽음이라는 비극적 상황을 극대화한다.


윤고은의 단편 '1인용 식탁'은 시대상을 엿보게 한다. 여자는 직장 동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 점심을 먹는 사람이다. 어느 날 혼자 식당을 찾아다니다 혼자 밥 먹는 법을 알려주는 학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학원에 등록한 그녀는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이많다는 데서 위안을 얻는다. 학원에 다니던 그녀는 마침내 혼자 고기를 구워 먹는 일에 도전한다. 이 소설은 소외되고 혼자 외롭게 살아가는 사람이 많은 세태를 보여주고 있다.


"비 내리는 포장마차, 사랑에 빠진 남녀. 병어회. 이보다 더 완벽한 조합은 없었다. 친구는 세상을 통째로 얻은 듯했고 아가씨는 흐뭇한 얼굴이었다.(중략) 커피 한 잔을 다 마시고 담배도 두 대나 피우고 난 다음에야, 여자가 느닷없이 이별을 통고하고 가버렸다고 대답했다. (중략) 아주머니 말대로 병어 몇 마리가 반짝거리며 누워 있었다. 나와 친구는 잠시 눈빛을 교환했다. 다시 병어회. 비 내리는 포장마차. 실연당한 친구. 완벽한 조합이었다."(한창훈의 '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에서) 비 내리는 포장마차에서 먹은 병어회는 어떤 맛이었을까. 사랑에 빠진 남녀에게는 달콤하게, 실연당한 친구에게는 쓰게 느껴졌을까. 작가는 왜 완벽한 조합이라고 했을까. 소설 속 음식은 이렇게 질문을 던지게도 한다.


문학 속 음식은 마음을 따스하게 해주고 영혼을 정화하기도 한다. "시장 사람들에게 삼오식당은 고단한 일상을 달래주는 안식처요 쉼터이자 따뜻한 한 끼 밥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중략) 가난 앞에 주먹질 한번 할 수 없었던 세월의 막막함을 견뎌온 엄마는 "여자가 돈 버는 거, 이것처럼 슬픈 인생이 어딨어?"라고 말했지만 삼시 세끼 밥 굶지 않고, 세 딸 번듯하게 시집보내고, 허기진 사람들에게 고봉밥 한 그릇 내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 더 이상 욕심이 없었던 엄마의 삶은 멋진 인생이었다."(이명랑의 '삼오식당'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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