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거룩한 분노 필요…이분법적 사고서 벗어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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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한국교회 거룩한 분노 필요…이분법적 사고서 벗어나야"

'세상에 희망이 있느냐고 묻는 이들에게' 펴낸 김기석 목사

(서울=연합뉴스) 김기훈 기자 = 서울 용산구 청파동에 자리한 청파교회 김기석 목사의 집무실에 들어서자 묵은 책 냄새가 은은하게 풍겼다. 5천여 권의 책으로 둘러싸인 집무실은 목회자의 방이라기보다 흡사 연구실 같았다.


11일 청파교회에서 만난 김 목사는 교회처럼 소탈하면서도 기품 있는 모습이었다. 형형한 눈빛에서는 차가운 이성의 힘이, 따뜻한 음성에서는 온화한 감성이 스며 있었다.


1981년 전도사로 청파교회와 인연을 맺고 1997년 담임이 된 김 목사는 '기자와 목사, 두 바보 이야기', '오래된 새 길', '내 영혼의 작은 흔들림' 등의 저서를 출간한 문장가이기도 하다.


최근 산문집 '세상에 희망이 있느냐고 묻는 이들에게'(꽃자리)를 펴낸 김 목사는 "원래 제목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게 '영혼의 성좌들'이었다"고 털어놓았다.


김 목사가 '영혼의 성좌'에 대한 영감을 얻은 것은 유장춘 한동대 교수의 집과 연구실을 방문했을 때였다.


"유 교수의 집과 연구실에 위대한 사상가들의 사진이 조그만 액자에 담겨서 쫙 전시돼 있어요. 그분이 지향하는 삶이 뭔지를 보여주는 거죠. 그 얼굴들만 봐도 정화되는 느낌이 들었어요."


김 목사는 "그렇게 위대한 사람들은 아니더라도 제가 일상 속에서 눈물겹게 혹은 유쾌하게 만난 사람들이 있고 그들 한 명 한 명이 제 영혼을 빚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라고 덧붙였다.


새 산문집에는 마음의 별자리가 되어 준 이들에게 보내는 52통의 편지가 담겼다.


그의 편지글에는 작고 보잘것없이 보이는 것들에 생명을 불어넣는 따스한 온기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또 웅숭깊은 사유와 진지한 성찰 그리고 신앙인으로서 의로움을 저버리지 않는 결연함이 느껴진다.


김 목사는 책에서 "저는 얼마 전부터 예수의 사역을 '빗금 철폐'라는 말로 요약한다"며 "문제는 빗금을 철폐해야 할 종교가 빗금을 생산하는 공장 구실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오늘의 개신교회가 보이는 배타성은 확고한 믿음을 표방하고 있지만 실은 내적 부실함을 가리려는 가련한 몸부림이 아닌가"라며 철저한 자기반성을 요구했다.


"강남과 강북, 임대아파트와 고급 아파트를 나누고 학벌과 지연 등 온갖 빗금을 만드는 세상은 항상 누군가를 패배자로 만들고 혐오의 대상으로 삼죠. 승자와 패자로 나뉘는 세상에는 평화가 없어요."

김 목사는 "인위적으로 그어진 빗금을 철폐한 세상이 하나님이 기뻐하는 세상"이라며 "예수님이 제안하시는 것은 특권 내려놓기"라고 강조했다.


이성애자와 동성애자를 가르는 가파른 빗금에 대해서도 우려했다. "신학적으로 옳으냐 그르냐의 문제를 떠나 그들이 연약한 사람이고 사회적 약자라면 교회가 그들을 품고 갈 수 있는 넉넉함이 있어야 한다"고 한국 교회의 포용을 당부했다.


그러면서 김 목사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순교자 카즈 뭉크의 '거룩한 분노'를 인용했다.


"기독교인들은 선하게 살아야만 하지만 불의에 대해 분노하지 못하면 진리를 포기하는 거예요. 거룩한 분노는 신적 분노에요. 하나님은 세상의 불의를 보면 분노하시는데, 나는 분노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안 믿는 것이죠." 그러면서 "사회적 약자에 대해 분노하지 말고 사회적 약자를 양산하는 시스템에 대해 분노해야 거룩한 분노고 진정한 신앙"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김 목사는 한국 교회가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역설했다.


김 목사는 "생명이란 모호함 속에 있고, 모호하기 때문에 실존적으로 선택하고 시행착오도 겪는 것"이라고 했다. 또 "어둠을 알지 못하는 빛은 불완전한 빛"이라며 "성숙한 믿음은 빛을 지향하지만, 어둠까지 품을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세상의 어둠을 살피지 못하는 신앙, 회의가 없는 신앙은 언제든 폭력으로 돌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목사는 책에서 자신이 추구하는 신앙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저는 어둠을 모르는 빛, 절망의 심연을 거치지 않은 희망, 대가를 치르지 않고 주어지는 은혜, 추함을 외면하는 아름다움, 불화의 쓰림을 알지 못하는 조화, 흔들림조차 없는 확신, 일상을 떠난 영성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흔들림 속에서 든든함을 지향하고, 추한 현실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가장 속된 것 속에서 거룩한 것을 보려고 노력할 뿐입니다."


김 목사의 고백에서 흔들림 속에 비로소 튼튼한 줄기와 뿌리를 얻은 단단한 사유가 엿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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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 청파감리교회 김기석 목사가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청파동 청파교회에서 연합뉴스 취재진과 인터뷰에서 미소짓고 있다. 2016.6.11ryousant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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