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문화 뉴스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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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예수병원 설립자 마티 잉골드 여사를 아시나요"말타고 왕진가는 마티 잉골드(1898년) [연합뉴스 자료사진] 예수병원, 만화 '불꽃 같은 삶' 제작·무료 배포 "나에게 무엇이 닥칠 것인가에 대해 나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나는 하나님의 보호 하심 아래에 있다. 내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줄 수 있게 하소서."(1897년 7월 18일 마티 잉골드의 일기 중) 호남 의료선교의 중심에는 늘 전주 예수병원이 있었다. 만화 '불꽃 같은 삶 마티 잉골드' [예수병원 제공=연합뉴스] 예수병원은 119년 전인 1898년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로 한국을 찾은 마티 잉골드(1867∼1962) 여사가 설립했다. 노스캐롤라이나 볼티모어 여자의과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한 마티 잉골드는 항상 '낮은 곳'에 임했다. 1892년 선교사로 임명된 그는 1897년 전주성 서문 밖에 도착해 1898년 11월 예수병원을 설립한 뒤 여성과 어린이를 상대로 진료를 시작했다. 마티 잉골드가 전주 성문 밖에 초가 한 채를 사들여 진료한 게 예수병원의 뿌리다. 예수병원은 국내 근대식 병원으로는 세브란스의 전신인 광혜원(1885)에 이어 두 번째로 역사에 기록됐다. 그는 말을 타고 왕진을 다니며 28년간 불우이웃과 환자를 사랑으로 섬기며 불꽃 같은 삶을 살았다. 마티 잉골드는 1962년에 미국 플로리다주 묘지에 전주 서문교회를 세운 남편 테이트 목사 옆에 묻혔다. 묘비에는 "28년 동안 한국에서 선교사로 봉사했다"고 기록됐다. 나눔과 사랑을 실천한 예수병원의 설립자 마티 잉골드의 일생이 만화로 제작됐다. 예수병원은 그의 생을 다룬 만화책 '불꽃 같은 삶 마티 잉골드'를 제작·출판했다고 19일 밝혔다. 병원 측은 86쪽 분량의 만화책 5천200부를 제작해 환자와 교회, 유관기관들에 무료 배포할 계획이다. 병원 관계자는 "마티 잉골드 여사를 시작으로 현대 의학을 한국에 전파하는 데 일생을 바친 구바울 전 원장, '한국의 슈바이처'로 불렸던 설대위 전 원장 등 병원의 대표적인 인물들을 주제로 만화로 제작해 시민과 공유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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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라, 그날의 포성을'…6·25 산동교 전투 재현북한군 탱크에 맞서 총알 바닥날 때까지 공방…광주 유일 6·25 전적지 6·25 한국전쟁이 터지고 약 한 달이 흐른 1950년 7월 23일 새벽.빠른 속도로 남하하던 북한군 제6사단 병력 일부가 '남도의 젖줄' 영산강을 가로지르는 산동교에 이르렀다. 6·25 당시 광주의 관문 산동교에서 벌어진 전투 재현.1934년 건설한 산동교는 광주와 장성을 잇는 신작로(현 국도 1호선) 한 구간이자 광주 관문이다. 호남지역에서 낙동강 전선으로 진출하는 길목이기도 했다.구릉에 포진한 우리 군경 1개 대대 500여명은 탱크 3대를 앞세우고 야포부대를 이끌며 트럭 27대에 나눠탄 북한군을 기다렸다.병사 3명 가운데 1명만 무기를 소지한 군경은 전력 열세 속에서 인민군 진격을 최대한 늦추고자 오전 4시께 다리를 폭파했다.교전은 그로부터 2시간 뒤 시작했다. 열악한 무장으로 압도적 화력을 지닌 북한군에 저항했다.북한군 집중포화에도 총알이 바닥나 순천으로 퇴각할 때까지 공방을 주고받았다.정오까지 이어진 전투에서 30여명이 전사하고 약 50명이 다쳤다. 북한군 공세에 맞섰던 광주 산동교 전투 군경은 북한군 전진을 끝내 막아내지는 못했지만, 5시간가량 벌인 전투로 시민이 몸을 피하고 물자를 옮기는 시간을 벌었다. 전투에서 살아남은 조귀보(87)씨는 오랜 기억을 떠올리며 "우리는 광주시민에게 피난 기회를 주기 위해 산동교를 거점 삼아 방어했다"고 증언했다.67년 전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이곳은 지금 시민 건강·문화 공간으로 탈바꿈했다.광주의 유일한 6·25 전쟁 전적지로서 역사 아픔을 간직한 나라사랑 교육 장소로도 활용하고 있다.광주지방보훈청은 16일 광주 북구 동림동 옛 산동교 앞 친수공원에서 '리멤버 산동교, 그날의 포성!'이라는 주제로 당시 상황을 재현하는 행사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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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이른 더위에 이른 피서…' 여름 휴양지 빨라진 손님맞이해운대 등 6월 조기 개장…남해안 리조트 이른 영업 분주 5월에도 낮 기온이 30도를 넘어서는 초여름날씨가 잦다. 해운대해수욕장[연합뉴스 자료사진]때 이른 더위에 해변과 강가에서 '때 이른 피서객'이 더위를 식히는 모습이 더는 어색하지 않다. '때 이른 피서객'이 늘어나자 조기 개장으로 손님맞이에 나선 해수욕장도 늘어나고 있다. 부산에서는 6월 1일 해운대, 송정, 송도해수욕장이 조기 개장한다.광안리, 다대포, 일광, 임랑 해수욕장은 7월 1일부터 운영에 들어간다.이곳에서는 119 수상구조요원과 해경 해상순찰대원들이 배치돼 피서객들을 보호하는 활동에 나선다.해운대구는 7월 1일 해운대해수욕장 공식 개장에 앞서 관광안내소 외관을 바다와 어울리는 배 모양으로 바꿔 새로운 포토존으로 만들고 안내소 내부에도 피서객이 쉬어갈 수 있는 개방형 휴게공간을 조성한다. 관광안내소 앞 낡은 샤워장과 탈의장을 현대식 시설로 교체하고, 녹지대나 화장실 등에서 옷을 갈아입는 일이 없도록 무료 탈의장도 해운대 4곳, 송정에 2곳을 설치한다.올해 해운대해수욕장을 찾는 피서객은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끝자락인 미포에서 팔레드시즈까지 300m 구간에서는 올해 처음으로 제트스키, 바나나보트 등 해양레포츠를 유료로 즐긴다. 도심 속 휴양지 광안리 북적(부산=연합뉴스) 조정호 기자 = 징검다리 연휴이자 부처님 오신날인 3일 오후 부산 광안리해수욕장에서 나들이객들이 갈대 파라솔 아래에서 더위를 식히며 휴일을 만끽하고 있다. 2017.5.3. ccho@yna.co.kr 7월 25일부터 8월 8일까지 매일 오후 9시까지 해운대에서 '달빛 해수욕'도 즐길 수 있다. 부산시 관계자는 "더위가 일찍 찾아오고, 언제부턴가 조기 피서에 나서는 이들이 늘어나는 추세"라며 "안전, 교통, 치안 대책을 미리 살펴보고 화장실, 세족장·샤워장 등 각종 시설도 미리 확인하고 있다"고 밝혔다.그는 "숙박, 음식, 바가지요금 근절 대책 등도 점검하고 해수욕장 조기 개장과 운영에 차질이 없도록 준비 중"이라고 덧붙였다.경남지역 해수욕장은 대부분 7월 개장하지만, 남해안 대형 리조트는 벌써 손님 맞을 채비를 마쳤다.대명리조트 거제마리나 실내외 수영장은 지난 4월 말부터 문을 열었다.13명의 피서객을 태우고 빠른 속도로 바다를 달리는 '제트크루저 해양레포츠'와 요트를 타고 주변을 둘러보는 '요트 스노클링투어' 등도 영업을 시작했다. 해양스포츠 체험[연합뉴스 자료사진]거제마리나는 오는 7월 26일부터 8월 26일까지 비회원들에게 제트크루저 해양레포츠 등을 40% 할인 혜택을 내세우며 피서객 유치에 나섰다.남해 힐튼 리조트도 이달 중순 야외수영장 영업을 시작했다.스파 할인권과 조·석식을 제공하는 초여름 패키지 상품으로 피서객을 유혹하고 있다.서해안 최대 해수욕장인 대천해수욕장은 작년보다 하루 이른 6월 17일 문을 연다.보령시는 안전관리를 위해 시 공무원과 유급안전관리요원, 해양경비안전서, 소방서, 적십자 인명구조대, 해양구조협회, 119 시민수상 구조대 등 1일 98명을 투입한다.제주에서는 지정해수욕장 11곳(제주시 7곳, 서귀포시 4곳)의 개장 시기를 7월 1일로 잡고 있지만, 빨라진 피서 문화에 따라 이호, 함덕, 금능, 협재해수욕장은 1주일가량 빠른 24일부터 조기 개장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제주시와 서귀포시는 성급한(?) 피서객의 안전을 위해 해수욕장 민간안전요원과 보건 요원을 모집하는 한편 해수욕장 주변 시설 정비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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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첫마중길' 탄생…이미지 개선·역세권 부활 견인 '주목'24일 공식 개통 예정, '교통난·소음' 해소가 최대 난제 (전주=연합뉴스) 전주역 앞 도로를 서울 광화문 광장과 같은 보행도로로 개선한 '전주 첫 마중길'이 전주시의 이미지 개선과 역세권 경제 회복에 기여할지 주목된다. 전주시는 '첫 마중길' 공식개통(24일)을 앞둔 17일 현장에서 김승수 시장이 직접 언론인을 상대로 첫마중길 조성 의의 등을 소개하는 현장 설명회를 했다. 전주역 앞 '첫마중길'[전주시청 제공]첫 마중길은 전주역 앞∼명주골 사거리(850m) 구간 10차로 중 중앙 차선(폭 15∼20m)을 보행도로와 명품숲길로 만드는 사업이다. 전주역을 통해 전주를 찾는 관광객들을 맞이한다는 뜻을 담아 마중길로 명명됐다. 김 시장은 "첫 마중길은 전주의 인상을 바꾸는 일로 도시의 첫인상은 도시 전체에 해당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면서 "마중길은 자동차보다는 사람, 콘크리트보다는 녹색 생태도시, 직선보다는 곡선을 강조하는 도시를 지향한다"고 말했다. 김 시장은 "전주의 첫인상인 전주역 앞 대로를 사람과 생태, 문화 가치가 살아 숨 쉬는 대표 관광지로 키워나가는 것은 역세권 상권 부활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보행도로에는 느티나무와 이팝나무 등 수목 400여그루가 식재됐고 분수대와 벤치, 파고라 등 다양한 편의시설이 설치됐다. 나무는 기업과 단체, 일반시민이 낸 1억5천여만원의 성금으로 구입했다.전주시는 오는 24일 헌수 기념식과 문화행사를 시작으로 첫 마중길을 문화와 예술의 공간으로 키워나갈 계획이다. 4계절 동안 문화장터와 버스킹, 벼룩시장, 예술경연대회 등을 수시로 열어 시민은 물론 국내외 관광객의 발길을 붙잡기로 했다.하지만 첫 마중길 개통을 앞두고 교통난과 소음·매연 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와 시가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전주 첫마중길[전주시청 제공]10차선 도로를 4∼5차선으로 줄임으로써 발생하는 '병목현상'과 지연운행 차량에서 나오는 각종 소음과 매연 문제는 풀어야 할 숙제다.전주시 관계자는 "다양하고 색깔 있는 문화 콘텐츠를 넣고 교통난을 다소 완화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시행하면 일부의 우려는 있지만 (첫 마중길이) 빠른 시일 내에 정착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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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즈넉한 숲의 향기 일품인 증평 등잔길애틋한 사랑 등잔길, 소망 비는 비나리길, 바람 솔솔 바람소리길 조성 삼기리 서남쪽의 작은 골짜기를 지나던 선비는 그곳에 사는 처녀에게 첫눈에 반했다. 과거를 본 뒤 꼭 데리러 오겠다는 언약을 했다. 삼기저수지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비나리길[연합뉴스 자료사진]처녀는 캄캄한 밤이면 선비가 돌아오는 길에 돌부리에 채여 넘어질까 등잔을 들고 골짜기 입구에서 기다렸다. 그 등잔불 덕에 일대는 밤에도 낮처럼 환했다고 한다.헤어진 지 만 3년이 지난 어느 해 4월 그믐날 밤 등잔을 들고 하염없이 서 있던 처녀는 죽어 망부석이 됐다.이때부터 사람들은 이름도 없던 이 골짜기를 등잔걸이골이라고 불렀고, 이 골짜기로 들어서는 길은 등잔걸이길로 불렸다.충북 증평군은 삼기(三岐)리라는 지명에서 착안해 이런 스토리텔링을 만들었다. '삼기'는 청주 미원, 괴산 청천, 충북 증평으로 갈리는 길목이라는 의미다.그러나 이 마을은 지금의 행정구역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삼기저수지 상류에 자리 잡고 있던 이 마을은 2012년 말 저수지 둑 높이기 사업으로 인해 아쉽게도 물속에 잠겼다.마을은 사라졌지만 일부 수몰되지 않은 곳에는 생태공원이 만들어졌고 저수지 주변에는 '등잔길'이 조성됐다. 조금만 더 가면 '비나리길'과 '바람소리길'도 있어 한가로이 발걸음을 내딛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애틋한 사랑이 담긴 등잔길 증평의 명산인 좌구산 계곡수로 채워진 삼기저수지는 산중 호수의 수려한 풍치를 자랑한다. 좌구산과 구녀산, 구석산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어 고즈넉한 맛도 느낄 수 있다. 삼기저수지 등잔길[증평군 제공=연합뉴스]저수지 옆으로는 540번 지방도가 지나가 접근성이 뛰어나다. 저수지를 둘러싸고 데크길인 등잔길이 조성돼 있다. 2009∼2010년 만들어진 3㎞의 등잔길은 운전 중 피로를 풀 겸 차를 세워두고 산책을 즐기기에는 안성맞춤이다.산자락을 따라 구불구불 조성돼 있어 지루함을 느낄 겨를도 없다. 등잔길을 따라 걷다 보면 '조선시대 독서광'으로 알려진 백곡(栢谷) 김득신(金得臣·1604∼1684)의 상을 만나게 된다. 그는 임진왜란 때 진주성 대첩을 이끈 김시민 장군의 손자다. 배운 것도 돌아서면 금방 잊는 '둔재'였다는 그는 책 한 권을 무려 11만 번이나 읽었다고 한다.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애쓴 그의 노력이 어땠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데크길이 잠시 끝나는 곳에는 율리 석조관음보살입상이 세워져 있다. 군 문화재 자료 제36호이다.석조관음보살입상을 뒤로하고 걷다 보면 수십 그루의 나무가 물속에 잠긴 채 잎을 피우고 있다. 그 잎 사이로 찰랑찰랑 부서지는 저수지의 전경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눈부시다.데크길 안쪽에는 생태 습지가 조성돼 있다. 그늘막에서 땀을 식힌 뒤 다양한 수생식물을 살펴 볼 수 있고 아이들을 그네에 태울 수도 있다.저수지 아래에는 장내마을이 있다. 저수지가 만들어지기 전 홍수 피해를 많이 입었던 이 마을은 아직도 수막살이제를 지내고 있다.◇ 소망을 비는 비나리길 좌구산 부근에는 솟점말, 밤티, 삼기 마을이 있었다. 이 세 곳을 통틀어 부르는 지명이 율리이다. 비나리길[증평군 제공=연합뉴스 자료사진]율리 사람들은 분티고개 너머로 방아를 찧으러 다녔다고 한다. 거리는 짧지만, 소달구지가 오르지 못해 지게 짐을 지고 다녀야 할 정도로 고단한 길이었다.분티고개 옛길을 따라 조성된 숲길이 비나리길이다. 1천8개의 계단으로 이뤄져 있다. 한 계단, 한 계단 내려가면서 시름을 내려놓고 한 계단 한 계단 오르면서 소망을 품기를 바라는 아름다운 의미가 담겨 있다.비나리길 입구에는 주차장이 마련돼 있다. 이곳에 차를 세워두고 비나리길의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1천8개 계단이 시작된다.길섶에는 불교, 천주교, 기독교를 상징하는 3개의 쉼터가 조성돼 있다. 숲이 울창하게 우겨져 있어 잠시 숨을 고르며 쉬는 것 자체가 삼림욕이다.고갯마루 좌구정에 이르면 증평 방향으로 훤히 트인 풍광을 마주하게 된다. 아름다운 풍치의 삼기저수지 너머로 올망졸망 어우러진 증평 시가지 전망은 '증평 제1경'이라 꼽을 만큼 수려하다.숲의 향기를 깊게 들이쉬다 보면 계단을 몇 개나 세었는지 금세 잊어버린 채 도심의 찌든 마음을 내려놓게 된다. 나들이 하기에 안성맞춤인 요즈음 좌구정에는 돗자리를 펴고 앉아 도시락을 먹는 단란한 가족의 모습도 종종 눈에 띈다. ◇ 바람이 솔솔 부는 바람소리길 좌구산 휴양림 관리사무소에서 천문대로 향하는 도중에 '바람소리길' 초입이 눈에 띈다. 바람소리길[증평군 제공=연합뉴스]묵을 쑤어 임금님 수라상에 올렸다는 상수리나무, 잎을 따 떡을 쌌다는 떡갈나무, 먼 길을 갈 때 잎을 짚신 밑에 깔았다는 신갈나무 등 다양한 참나무가 방문객을 반긴다.숲의 경사면에 필요한 만큼의 길만 나 있다. 가파른 경사면에는 나무 데크 길이 조성돼 있다.맑은 공기를 들이쉬며 울창한 숲 가장자리를 따라 걷다 보면 이파리를 살랑살랑 흔드는 바람소리가 들려 온다. 이마를 촉촉하게 적신 땀도 어느새 말라 있다. "이래서 바람소리길이구나" 하고 생각할 때쯤 전망 데크가 방문객에게 쉬어가라고 손짓한다. 잠시 숨을 고르다 보면 어느새 숲과 동화돼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2.3㎞의 숲길을 걷고 나면 좌구산 교육체험지구가 나온다. 이곳이 바람소리길의 끝자락이다.몸과 마음이 헛헛해질 때 등잔길과 비나리길, 바람소리길을 걷다 보면 숲의 향기로 가득 채워지고 머리가 맑아졌음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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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최후의 황녀' 덕혜옹주 무덤 개방된다의친왕묘와 함께 16일부터 일반 관람 허용1925년 덕혜옹주의 모습. [문화재청 제공=연합뉴스]남양주 덕혜옹주묘. [문화재청 제공] (서울=연합뉴스)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이자 고종과 복녕당 양씨 사이에서 태어난 덕혜옹주(1912∼1989)와 고종의 다섯째 아들인 의친왕(1877∼1955) 무덤이 개방된다.문화재청은 남양주 '홍릉과 유릉'(사적 제207호)에 있는 덕혜옹주묘와 의친왕묘를 16일부터 일반에 공개한다고 11일 밝혔다.덕혜옹주묘와 의친왕묘는 지난해 9∼11월 임시 개방된 바 있으며, 대한제국 선포 120주년을 맞아 이번에 전면 개방됐다. 다만 문화재청은 안전 문제를 고려해 겨울철인 11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는 관람을 통제하기로 했다.덕혜옹주묘로 향하는 길에는 덕혜옹주와 의친왕의 삶을 보여주는 사진 36점과 대한제국 황실 가계도 등이 전시된다. 의친왕묘. [문화재청 제공]홍릉과 유릉은 대한제국 황실 가족의 무덤이 모여 있는 곳이다. 고종, 명성황후가 잠든 홍릉(洪陵)과 순종, 순명효황후, 순정효황후를 모신 유릉(裕陵)은 조선왕릉 중 유일하게 황제릉의 격식에 따라 조성됐다.왕릉 외에도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인 영친왕과 영친왕비가 묻힌 '영원'(英園), 영친왕의 둘째 아들인 이구가 잠든 '회인원'(懷仁園)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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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따라 멋따라] 어머니 품처럼 넉넉한 '무등산'격동의 역사 바라본 산증인…광주 대표 이미지 (광주=연합뉴스) 1980년대 광주 시민들은 새해 첫날을 무등산에서 맞았다.금남로나 충장로의 선술집에서 대취한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증심사가 종점인 시내버스를 타거나 걸어서 무등산에 올랐다.힘든 새벽 산행도 술기운으로 이겨내고 중봉에 올라 밝아오는 태양을 보며 민주와 자유를 외쳤다.세계적으로 보기 드물게 도심 속에 자리 잡은 무등산은 오랜 세월 넉넉하게 모두를 품어준 어머니와 같은 존재이자 광주의 역사를 지켜본 산 증인이었다.광주 도심에서 바라본 무등산 ◇ 언제나 그 자리에…넉넉한 품으로 받아주는 무등산 화창한 4월, 따스한 봄 햇살을 맞으며 다시 무등산을 찾았다.증심사로 올라가는 길, 시냇물이 조잘대며 먼저 반긴다. 지난 2012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등산로가 정비되면서 훨씬 쾌적해졌다.눈부시게 반짝이던 벚꽃은 바람에 날아가고 그 자리에 연초록빛 새순이 돋아났다.붉은 동백꽃이 스쳐 갔다 싶더니 어느새 진달래가 반갑게 고개를 내민다. 흐르는 땀을 연신 닦으며 쉬었다가 오르길 반복하니 어느새 중봉이다.가을이면 은빛 억새가 장관인 이곳은 어머니의 따뜻한 배처럼 평평하고 넓어 포근하다.고개를 들어 정상을 보니 깎아지른 듯 기암괴석이 눈에 들어온다. 서석대와 입석대다.무등산의 운해◇ 해발 1천m에 형성된 주상절리대…세계적으로 '희귀'무등산 정상에는 돌기둥 수십 개가 하늘을 찌르듯 솟아있다.해발 1천100m에 자리 잡은 서석대와 1천17m에 있는 입석대는 오랜 세월 바람과 비를 맞고 굳어져 병풍 모양으로 만들어졌다.2005년 천연기념물 제465호로 지정됐으며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추진 중이다.무등산 입석대 무엇보다 입석대와 서석대의 주상절리는 돌기둥 하나의 크기가 지금까지 남한에서 보고된 것 중 최대로 평가받고 있다.특히 해안가가 아닌 해발 1천m 이상의 고지에 발달한 주상절리대는 세계적으로 매우 희귀한 사례여서 학술 가치가 크다. ◇ 역사가 녹아있는 옛길로 걸어보자 무등산은 증심사를 거쳐 오를 수 있지만, 광주 도심에서 시작해 원효사를 거쳐 가는 '무등산 옛길'로도 갈 수 있다.광주 동구 산수동을 출발해 서석대까지 가는 11.87km 구간으로 한적하게 걸으며 무등산의 아름다운 풍광을 감상할 수 있다.1구간은 광주 도심에서 원효사까지, 2구간은 원효사에서 서석대로 오르는 등산로로 구성됐으며 3구간은 광주 도시에서 충장사를 거쳐 담양 가사문학권까지 갈 수 있다.소에게 길을 물으며 황소걸음으로 걷는다는 '황소걸음길', 나무꾼들이 주로 이용했다는 '나무꾼길',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며 걸었던 '연인길' 등 재미있는 사연과 함께 걸을 수 있다.증심사 템플스테이◇ 증심사에서 출·퇴근하며 템플스테이 무등산 초입에 자리 잡은 증심사에서는 올해 처음으로 직장인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출·퇴근 템플스테이'를 운영하고 있다.고즈넉한 사찰에서 5박 6일간 머물며 스님과 차담(茶談)이나 촛불 명상을 하며 힐링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광주 도심에서 20∼30분 거리에 있어 출·퇴근하기도 편하다.일요일 저녁에 입소해 금요일 오전까지 이어지며, 참가자는 매일 새벽 예불과 아침 공양, 산책 등에 참여한 뒤 출근하면 된다. (☎ 062-226-0107) ◇ 등산 후 출출하시다고요? 막걸리에 김치, 보리밥은 '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지만, 무등산은 등산 후에 즐길 수 있는 먹거리가 풍부하다.증심사 쪽으로 하산했다면 무등산 입구에 즐비한 식당에서 생막걸리에 맛깔나는 광주 김치를 맛볼 수 있다.따뜻하게 데워진 고기 수육 위에 살짝 익은 김치를 얹어 막걸리로 목을 축인 뒤 먹으면 피로가 싹 가신다.무등산 산장 쪽으로 가면 보리밥을 맛볼 수 있다. 한 상 가득 제철 나물에 차려 나오는 보리밥을 열무 잎에 싸 먹으면 알싸한 맛이 입안에 퍼진다.식사 후에는 창이 넓은 카페에서 여유롭게 커피도 마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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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사진 250장 남긴 듀이 맥린 박사 작년 타계문화재뿐 아니라 일상·자연풍경 사진 많이 남겨 한국전쟁 참전 당시 듀이 맥린 박사"다시 한국에 갈 수 있다면 남산에 올라 서울의 변한 모습을 머릿속 옛 모습과 비교해보고 싶습니다."한국전쟁에 참전해 250장의 컬러사진을 남기고, 이후 미국 버지니아텍에서 세계적 지질학자로 이름을 남긴 듀이 맥린(Dewey McLean) 박사가 세상을 떠난 사실이 뒤늦게 국내에 전해졌다. 18일 학계에 따르면 맥린 박사는 지난해 8월12일 지병이 악화해 85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맥린 박사의 사진이 국내에 알려진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그는 한국전쟁 기간인 1952년부터 1953년까지 미8군 제3철도수송단에서 상병으로 근무하면서 캐논의 1949년형 IIB(Version 1) 카메라로 그 많은 사진을 남겼지만, 자신의 블로그에만 간직했다.그러다 2013년 재미 민간사학자 유광언씨가 이들 사진을 연합뉴스에 소개하면서 빛을 보게 됐다. 당시 많은 독자가 댓글을 달거나 자신의 SNS에 사진을 소개하며 관심을 보였고, 연합뉴스TV의 관련 리포트도 4만 6천여 뷰를 넘었다.한국전쟁 당시 한강한국전쟁 당시 미군 PX(현재 신세계백화점)맥린 박사의 사진에는 폐허가 된 시내 배경으로 남산자락을 걷는 봇짐장수부터 푸른 한강, 지금은 사라진 조선신궁 등 다양한 서울의 모습이 담겨있다. 그는 특히 전쟁 폐허 속에서도 이어진 서민의 일상과 자연풍경을 많이 찍었다.맥린 박사는 생전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한국에 대해 "지적이고, 상상력이 풍부하고, 부지런한 국민이 자유를 성취한 훌륭한 모델"이라며 "앞으로도 역동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국가"라고 평가했다.남북으로 분단된 현실에 대해서도 "북한에 건설적이고, 국제사회와 협력할 수 있는 지도자가 나타나는 게 (통일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진단하는 등 한국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았다.한국전쟁 당시 남아있던 조선신궁 그는 세 차례 뇌 수술로 신경병을 앓았지만 지질학뿐만 아니라 한국전쟁 사진들을 소개하는 책을 내고 싶다는 의지를 꺾지 않았다. 특히 한국에 꼭 다시 한 번 방문하고 싶어 회복될 때까지 구글로 한국 지도를 찾아본다고 전했다.재활치료로 회복 중이던 그는 안타깝게도 갑자기 병이 재발하면서 그 꿈을 이루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맥린 박사가 자신이 찍은 250장의 한국전쟁 사진 중 가장 아끼는 작품으로 꼽은 건 사라져버린 조선신궁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신청 시 제출된 한양도성 사진도 아니었다.한국전쟁 중 동생을 업고 폐허가 된 시내를 걷는 한 소녀 그가 반세기 후에도 생생하게 기억한 사진은 '동생을 업고 폐허가 된 서울 시내를 걷는 한 소녀'였다. 그만큼 전쟁 중에도 '사람'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잃지 않았던 그였다. "더운 여름날 군용 트럭들이 다니는 길 사이로 동생을 업고 지나가던 작은 소녀가 잊히질 않는군요. 너무 지쳐 보여 말을 걸고 싶었지만 사라진 후였죠. 지금도 그 사진을 보면 그 소녀는 어떻게 됐을까 자꾸 생각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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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슨 항모강습단장 "북한의 위협 억제하러 한국에 입항"15일 오전 부산에 입항한 미 해군 칼빈슨 항모강습단을 이끄는 제임스 킬비 해군 소장은 북한 도발의 억제 의지를 분명히 했다. 인사말 하는 칼빈슨 항모강습단장(부산=연합뉴스) 김재홍 기자 = 15일 칼빈슨 항모강습단을 이끄는 제임스 킬비(왼쪽) 해군 소장이 부산 해군작전사령부에 입항한 미 해군의 핵추진 항공모함 앞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1982년 취역한 칼빈슨호는 배수량 10만t에 크기가 길이 333m, 폭 77m에 달해 '떠다니는 군사기지'로 통한다. F/A-18 슈퍼호넷 전투기, E-2C 호크아이 조기경보기, EA-18G 그라울러 전자전기, MH-60S 시호크 해상작전헬기 등 약 80대의 항공기를 탑재해 웬만한 중소 국가의 공군력 전체와 맞먹는 전력을 갖췄다. 2017.3.15 pitbull@yna.co.kr제임스 킬비 소장은 이날 해군작전사령부 내 부두에 정박한 핵추진 항공모함 킬빈슨호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칼빈슨호는 북한이 한국에 가하는 위협을 억제하기 위해 한국에 왔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입항은 대한민국의 안보에 대한 미국 해군의 의지를 표현하는 것"이라며 "한국 해군과 함께 작전을 펼칠 수 있어 영광"이라고 덧붙였다. 해군작전사령부 최성목 해양작전본부장도 비슷한 맥락에서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최 본부장은 "지금도 북한은 핵과 미사일을 포함한 군사적 위협을 가중시켜 전세계의 평화와 안녕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며 "그 어느 때보다 한미동맹이 중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한편 주한미해군사령부 브래들리 쿠퍼 제독은 주한미군의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사드)는 독수리 훈련과는 관련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사드 배치는 이번 훈련과 관련이 없으며 한국과 미국 정부의 합의하에 한국에 배치될 것"이라며 "사드는 방어적 목표로 사용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 핵항모 칼빈슨호 부산 입항(부산=연합뉴스) 조정호 기자 = 15일 오전 부산항에 도착한 미국 해군의 핵추진 항공모함 칼빈슨호(CVN 70) 갑판 위에 항공기와 승조원들이 도열하고 있다. 1982년 취역한 칼빈슨호는 배수량 10만t에 크기가 길이 333m, 폭 77m에 달해 '떠다니는 군사기지'로 통한다. F/A-18 슈퍼호넷 전투기, E-2C 호크아이 조기경보기, EA-18G 그라울러 전자전기, MH-60S 시호크 해상작전헬기 등 약 80대의 항공기를 탑재해 웬만한 중소 국가의 공군력 전체와 맞먹는 전력을 갖췄다. 2017.3.15 ccho@yna.co.kr미국의 전략무기인 핵추진 항공모함 칼빈슨호(CVN 70)는 이날 오전 한미 연합 독수리훈련 참가를 위해 부산에 입항했다.1982년 취역한 칼빈슨호는 배수량 10만t에 크기가 길이 333m, 폭 77m에 달해 '떠다니는 군사기지'로 통한다. F/A-18 슈퍼호넷 전투기, E-2C 호크아이 조기경보기, EA-18G 그라울러 전자전기, MH-60S 시호크 해상작전헬기 등 약 80대의 항공기를 탑재해 웬만한 중소 국가의 공군력 전체와 맞먹는 전력을 갖췄다.칼빈슨 항모강습단은 이달 20일 부산항을 출항해 동해와 남해에서 예정된 훈련에 참가할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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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전쟁사가 중국사?…中, 동북공정 후에도 역사왜곡 계속"박준형·이상훈 박사, 2001∼2015년 고구려 전쟁사 책 5권 분석 북한의 평남 강서대묘에 있는 고구려 고분벽화의 백미 '현무'. 사진은 한성백제박물관이 지난해 12월 전시한 고구려 고분벽화 특별전에 나온 모형도. 고구려고분벽화는 200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2016.12.27 [서울시 제공=연합뉴스]중국이 국경 내에서 벌어진 일을 자국 역사로 편입하려 했던 '동북공정'(東北工程)이 2007년 끝난 뒤에도 지방정부 차원에서 역사 왜곡 작업이 꾸준히 이뤄지고 있는 사실이 확인됐다.박준형 연세대 동은의학박물관 박사는 이상훈 경북대 박사와 함께 2001년부터 2015년까지 중국에서 간행된 고구려 전쟁사 관련 서적을 분석한 결과, 동북공정 이후 고구려를 중국사로 인식하는 경향이 뚜렷해졌다고 12일 밝혔다.이들이 분석한 서적은 '당려전쟁사'(唐麗戰爭史, 2001), '당동정장사사적고'(唐東征將士事跡考, 2003), '당정고구려사'(唐征高句麗史, 2006), '고구려군대여전쟁연구'(高句麗軍隊與戰爭硏究, 2010), '고구려전쟁사'(高句麗戰爭史, 2015) 등 5권으로, 모두 중국 지린(吉林)성에 있는 출판사들이 펴냈다. 고구려 박작성 자리에 중국 정부가 세운 '호산장성' 북문. 중국은 이곳이 만리장성의 동쪽 끝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고구려를 중국의 지방 정권으로 인식하고, 고구려사를 중국사에 편입하려는 작업이 동북공정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동북공정은 중국 중앙정부 최고 학술기관인 중국사회과학원과 한반도 접경 지역인 헤이룽장(黑龍江)성, 랴오닝(遼寧)성, 지린(吉林)성 등 동북 3성(省)이 2002년 2월부터 공식 추진했다.현재의 중국 국경 내에 있는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를 중국 역사로 편입하려는 5년 기한의 역사 연구 프로젝트로 2007년에 일단락된 것으로 여겨진다.박 박사는 "중국은 동북공정 이전까지는 당과 고구려가 대등하거나 당이 고구려를 정벌했다는 기조를 유지했으나, 이후에는 고구려를 당의 지방 정권 중 하나로 치부하는 경향이 강해졌다"며 "책의 제목만 봐도 2010년부터는 고구려가 중국 역사라는 것을 당연시해 '당'(唐)이라는 주어를 뺐다"고 지적했다.책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변화를 더욱 확실하게 알 수 있다고 박 박사는 설명했다. 2010년에 출간된 '고구려군대여전쟁연구'의 제1장 제목은 '양한(兩漢, 전한과 후한) 시기 고구려 정권의 건립'으로 고구려를 중국 내의 일개 정권으로 깎아내렸다.2015년의 '고구려전쟁사'는 17권짜리 '지린의 역사와 문화 연구총서' 중 한 권으로, 이 책의 저자들은 고구려에 대해 "(중국) 동북 대부분의 각 민족을 전쟁을 통해 통일시켜 놓았기 때문에, 중화민족과 동북 각 민족이 대융합할 수 있는 유리한 조건을 제공했다"고 평가했다.또 이들은 668년 고구려가 멸망한 뒤 유민들이 중원(中原, 중국 화북지방), 신라, 돌궐, 말갈 등으로 흩어졌는데, 대부분 중원으로 빠져나간 것처럼 기술해 고구려를 중국의 일부처럼 인식하도록 했다. 2001년 이후 중국에서 간행된 고구려 전쟁사 책들. [박준형 박사 제공]박 박사는 "중국에서 동북공정이 공식적으로 마무리된 뒤에도 지방정부가 역사 왜곡 작업을 지원해 고구려사 편입을 시도하고 있다"며 "동북공정 전후를 비교하면 중국인들의 사관(史觀)이 바뀌었음이 명확한데도, 국내에서는 이에 대한 관심이 부족해 안타깝다"고 말했다.그는 "중국의 고구려 전쟁사 연구 흐름은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 반대와도 관련이 있다"며 "북한이 경제적으로 중국에 종속된 상황에서 김정은 정권이 붕괴하면 중국이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이와 관련해 이상훈 박사는 "교육부, 외교부, 동북아역사재단 등 관계기관의 관심과 지원이 시급하다"며 "전문 연구인력을 양성해 중국의 역사 왜곡에 대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광개토대왕릉비 재현 비석중국 지린성(吉林省) 지안시(集安市)에 있는 광개토대왕릉비(왼쪽)를 독립기념관이 재현한 비석(오른쪽). 2004.10 .20 [연합뉴스 자료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