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치미술가 최재은 "시간성 깊이 다루면 치유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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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치미술가 최재은 "시간성 깊이 다루면 치유돼"

체코 국립프라하미술관서 9월 21일까지 개인전 리얼 DMZ 프로젝트 참여..'경계' 테마 작업 선보여

(서울=연합뉴스) 장하나 기자 = 이제 막 피어나려는 꽃과 이미 활짝 핀 꽃, 그리고 말라 비틀어진 꽃들이 한 화병에 담겨 있다.

세계적인 설치미술 작가 최재은(61)은 이를 두고 "시간만이 해결할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재은, Somebody is there, nobody is there, 2014 c-print 150x100cm. 국제갤러리 제공.

체코 국립프라하미술관 내 성 아그네스 수도원에서 다음 달 21일까지 개인전 '순환이 지속되는 집'을 여는 작가 최재은을 최근 삼청동에서 만났다.

국내 전시 준비차 잠시 귀국한 그는 1970년대 중반 일본으로 건너가 활동하다 지난 2010년부터 근거지를 독일로 옮겨 작업하고 있다.

체코의 성녀 '성 아그네스'가 활동한 성 아그네스 수도원에서 현대미술 작가의 개인전이 열리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최재은은 이번 전시에서 '시간'을 주제로 다룬다.

꽃이 말라 죽으면 새 꽃을 꽂고 그 꽃이 시들면 다시 새 꽃을 꽂기를 반복한 사진 연작은 '북유럽 특유의 겨울빛'으로만 작업한 작품이다.

작가는 "이 안에서 삶과 죽음이 동시에 존재한다"며 "빛과 시간만이 해결하는 문제를 다룬 개념적 사진"이라고 설명했다.

최재은은 20년 전부터 아프리카 케냐, 한국의 경주 등지에서 여러 겹의 종이를 땅속에 묻는 지중(地中) 설치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종이를 다시 꺼내 그 위에 생성된 얼룩과 이미지를 끊임없이 순환하는 시간의 기록으로 보여주는 작업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6년 전 수도원 뒤뜰에 묻어 놨던 한 묶음의 종이를 다시 꺼내 기록한 영상 작업, 오래된 책에서 뜯어낸 종이를 모아 시간의 흐름을 가시화한 대규모 설치 작업도 선보인다. "시간 덩어리를 가져다" 놓은 작업들이다.

최재은, Two Ane?skys, 2014 Antique chair, beads, Text on age paper, 310 x 540 x 350 mm (each chair). 국제갤러리 제공.

작가는 "시간성을 깊이 다루면 치유가 된다"고 했다.

"삶과 죽음을 분리하는 서양과 달리 동양의 문화는 삶과 죽음을 분리하지 않고 함께 하는 것이죠. 베를린에 살며 그런 부분을 오히려 많이 느껴요."

작가는 "한국 사회는 역동적이고 변화가 빠르다 보니 구조적으로 번뇌와 마찰 등을 순탄하게 풀 수가 없다"면서 "그런 부분을 인식하고 현실을 자각해야 사회가 안정될 수 있다"고 말했다.

"더 개념적이고 싶어서" 베를린으로 근거지를 옮겼다는 작가는 오는 31일부터 강원도 철원 비무장지대(DMZ)에서 열리는 '리얼 디엠지 프로젝트'(Real DMZ Project)에도 참여한다.

지난 2012년부터 철원 DMZ 접경 지역의 안보 관광 코스를 중심으로 시작한 프로젝트로, 철원평화전망대·월정리역·DMZ평화문화광장 등 민간인통제선 내 장소를 포함해 DMZ 접경 지역에서 지역민의 삶과 동시대 예술이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 살펴보는 전시다.

최재은은 이번 프로젝트에 '경계'를 테마로 한 설치 작업을 선보인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열린 경계'와 인간사의 '닫힌 경계'를 사운드와 텍스트를 통해 비교하는 작업이다. 월정리역 내 3개 방에 작품이 설치됐다.

"독일이 통일되기 전부터 베를린에 자주 왔다갔다하면서 봤지만 베를린은 통일 전부터 다양한 분야에서 교류가 많았어요. 그런 점에서 이번 프로젝트 자체의 의미가 큽니다."

작가는 "우리 문제를 그동안 왜 이렇게 멀리해 왔나 후회스럽다"면서 "DMZ 프로젝트도 진작 시작됐어야 했고, 사실 더 확대돼야 한다"고 했다.

작가는 내년 베를린에서의 개인전도 준비 중이다.

"전시를 해야 제 단점이 보여요. 작가라는 것은 지속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작업이 좋고 나쁘고는 그냥 결과일 뿐이죠. 삶의 모든 것을 걸고 작업을 계속할 수 있어야 진정한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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