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亞의, 亞에 의한, 亞를 위한 아시아문화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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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亞의, 亞에 의한, 亞를 위한 아시아문화전당

통념 깬 다양한 시도…"만들어서 보여주는 문화공장"

(광주=연합뉴스) 홍국기 기자 = 2006년부터 10년간 정부 예산 약 8천억원이 투입된 국립 아시아문화전당은 아시아의 광활한 땅을 상징하듯 그 규모부터 엄청났다.


전체면적 약 16만1천㎡에 민주평화교류원, 문화정보원, 어린이문화원, 문화창조원, 예술극장 등 5개 원이 들어섰다. 서울 예술의전당(12만8천㎡), 국립중앙박물관(13만7천㎡)보다도 큰 국내 최대의 복합문화시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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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문화전당은 지난 4일 전당을 둘러싼 울타리를 제거하고, 보수 중인 민주평화교류원을 제외한 4개 원의 내·외부 공간을 일반인에게 공개했다.

기자는 전당의 부분 개관 첫날부터 이틀에 걸쳐 아시아문화전당을 둘러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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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당은 서구 예술에 대한 단순한 모방을 탈피해 아시아의 독특한 문화적 발명과 가치관을 주체적으로 재해석할 수 있는 전시·공연·정보집적·창작준비로 분주했다.


'민주의 성지'인 옛 전남도청을 개·보수 중인 민주평화교류원은 아시아문화전당의 대문이자 유일하게 지상에 나와있는 건물이었다.  


독재정권에 맞서 싸우다 수많은 시민이 목숨을 잃은 역사의 현장을 보존하고, 민주·인권·평화의 정신에 바탕을 둔 문화공간으로 계승하겠다는 취지다.


올해 11월 중순 공사가 끝날 예정인 민주평화교류원은 주말인 토요일에도 오전부터 내부 골조 공사가 한창이었다. 옛 전남도청의 외관은 그대로 보존한다.


생각보다는 아담한 크기의 옛 전남도청은 외관만 둘러봐도 35년 전 민주화에 대한 열망과 시민정신의 기개가 오롯이 느껴졌다.    


이런 의미는 식민지 지배로 많은 부분 사장된 아시아 문화의 가치관과 잠재력을 주체적인 아시아의 시각으로 재창조하겠다는 아시아문화전당의 설립 취지와도 맞춤하게 어울렸다. 


방선규 국립아시아문화전당장 직무대리는 "5·18 민주화운동의 가치를 다양하게 풀어낸 콘텐츠 제작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며 "내년 상반기 안에 전시콘텐츠 준비를 끝내고 정식으로 개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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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찾은 곳은 어린이문화원. 내부에 들어서자 넓고 깔끔하게 정돈된 공간이 보이며 종이 냄새가 후각을 사로잡았다.  


어린이들의 공간감각을 기르고, 건축의 요소와 구조를 체험하는 놀이에 친환경적이고 상상력을 자극하기 좋은 종이 상자를 활용하고 있다.


어린이의 창의성과 문화다양성에 대한 이해를 넓히겠다는 미래세대 양성 의지는 아시아 문화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놀이로 만나는 아시아', 국기로 상상하는 아시아', '이야기로 펼치는 아시아' 등 아시아 문화를 고루 체험할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이 인상적이었다.


김혁진 어린이문화원 예술감독은 "어린이들의 창작 중심 공간으로 가려고 한다"면서 "어린이콘텐츠연구개발실을 통해 아시아를 넘어 세계와 지속적으로 콘텐츠를 유통하고 교류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어린이문화원은 오는 12일까지 어린이공연문화축제 기간으로 정하고, 전당을 비롯한 광주 문화예술시설에서 11개국 41개 공연을 206차례 펼친다.


이날 문화원 어린이극장에서 오전과 오후 한 차례씩 손으로 만드는 상상력 쇼 '핸드 섀도 판타지' 공연이 열렸다. 1952년 창립된 일본 최초의 그림자 전문 극단 '카카시좌'가 꾸민 옴니버스 형식의 공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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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연은 이날 두 차례 모두 전석 매진됐다. 어린이문화원의 사업이 앞으로 아시아문화전당의 주요 수익 모델로 자리매김할 것이라는 기대를 불러일으키는 대목이다. 어린이문화원은 시아, 고니, 페리, 칼리, 엘리, 키니 등 문화원의 여섯 캐릭터도 상품화할 예정이다.  


어린이문화원이 아시아문화의 꿈나무를 위한 공간이었다면 문화정보원은 아시아문화의 과거를 14개 매체별로 집적·융합한 곳이다. 


현재 소장 도서와 콘텐츠는 1만5천∼2만권으로, 앞으로 10만권 소장이 목표다. 이제는 거의 쓰이지 않는 LP나 비디오테이프 등 원본 콘텐츠를 수집해 디지털화하는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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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정보원은 아카이브의 심각한 부재를 겪는 아시아에서 새로운 아시아를 상상하고 구성하는데 더없이 중요한 장소다.  


수집한 아시아문화 자원을 통해 다양한 형태로 지식을 생산하고 교육할 수 있는 중요한 원천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김선정 문화정보원 예술감독은 "서로 다른 정치적·종교적·문화적 배경과 역사를 지닌 아시아가 다양성의 토대 위에서 생산적이고 창조적으로 소통해야 새로운 아시아를 상상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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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음 방문 장소는 '아시아의 대표극장'을 지향하는 예술극장. 1천120석의 가변형 대극장과 512석의 중극장으로 나뉜다.  


가로 33m, 세로 20m의 대형 문에 비행기 격납고를 연상시키는 가변형 다목적 극장은 무대와 객석을 다양한 구조로 분리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무대도 정해져 있지 않다. 정해진 틀을 중시하는 전통 서양 극장과는 구조부터 다른 차별성을 엿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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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예술극장 개관페스티벌의 개막작은 대만 뉴웨이브 영화의 대표적인 감독으로 꼽히는 차이밍량의 연극 '당나라 승려'였다.  


약 1천년 전 미지의 인도에 있는 불교 경전 '반야심경'을 찾아 국경을 넘어 이역만리를 찾아간 승려의 이야기를 2시간20분간 종이와 목탄만으로 아주 느리고 조용하게 연출한 무대다. 


스펙트클하고 번쩍이는 특수 효과로 가득한 할리우드 영화에 익숙한 현대인에게는 지루하고 따분하게 다가올 정도다.  


다만, 볼거리보다는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예술이라고 여기면 얘기는 달라진다. 극이 진행되는 동안 그 옛날 당나라 승려의 인생과 배우가 펼치는 행위 하나하나의 의미를 유추하고 곱씹게 된다.  


느린 무대는 속세의 번잡함을 초탈하기 위한 풍경이자 아시아를 대표하는 정신 세계다. 공연 중 관람석 이동이 자유롭다는 안내 책자도 색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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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막작을 보러 온 관객 200여명 가운데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명예집행위원장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축제 기간 예술극장은 29명의 아시아 작가들이 제작한 총 33편의 작품을 소개한다. 이 가운데 12편은 예술극장에서 직접 제작하거나 공동으로 제작한 작품이다.


김성희 예술극장 예술감독은 "이제까지는 아시아가 아시아를 제대로 쳐다본 적이 없었다"며 "아시아의 공연방식과 문화를 계승해 서양 문화의 대안을 제시하는 동시대 공연 예술센터로 만들 것"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문화창조원은 랩(LAB) 기반의 창·제작 시스템을 갖추고, 여기서 만들어진 콘텐츠를 6개의 전시관에서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이다. 아시아문화를 창작·구현·전시하는 장소라고 할 수 있다. 


창조원 복합 1·2·3관은 올해 11월 말 개관 예정으로 공사가 한창이었다. 거대한 농구장에 온 듯한 복합 1관에 대해 정준모 문화창조원 전시감독은 "이곳에서 상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벌어질 것"이라고 했다.

 

정 감독은 "창조원은 완벽하게 만들어진 주문제작형 콘텐츠를 보여주는 곳이 아니라 완벽한 콘텐츠를 만들어가서 보여주는 문화공장"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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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복합 4관에서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아시아인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신화와 근대, 비껴서다' 전시가 진행됐다.  


세계적인 큐레이터 안젤름 프랑케가 총괄 기획하고, 총 7명의 작가가 참여한 이번 전시는 식민 지배에 의해 밀려났던 아시아의 수많은 가치와 지식을 다시 불러들여 오늘을 이야기하고 미래를 상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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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케 씨는 "전당 측이 작가들이 창의적으로 작품을 할 수 있는 무대를 계속 만들어준다면 아시아를 넘어 세계적인 기관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마미 가타오카 일본 모리미술관 학예실장은 "우선은 11월까지 진행될 시범공개에서 아시아문화전당의 비전을 잘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장기적으로는 광주뿐 아니라 아시아와 세계로부터 어떻게 관객들을 끌어들일 수 있을 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날 아시아문화전당을 찾은 강미정(46·여) 씨는 "아시아를 대표할 수 있는 이런 웅장하고 세련된 시설이 광주에 들어왔다는 사실이 광주 시민으로서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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