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의 美의회 합동연설로 시험대 오른 '미국의 가치'
  • 해당된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베의 美의회 합동연설로 시험대 오른 '미국의 가치'

서울=연합뉴스) 미국 의회가 내달 26일 미국을 방문하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상·하원 합동 연설을 사실상 수용하는 쪽으로 결론냈다고 한다. 역사상 단 한번도 일본 총리의 합동연설을 허용한 적이 없는 미 의회다. 워싱턴을 찾는 외국 정상이 미 상·하원 의원들의 기립박수를 받는 합동연설은 미국이 제공할수 있는 최고의 예우다. 그런 자리에 태평양 전쟁 도발국의 국가지도자를 세울수 없다는 것이 미 의회의 오랜 전통이었다. 지난 2006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합동연설을 시도한바 있지만 헨리 하이드 하원 외교위원장이 고이즈미의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문제 삼아 반대 서한을 쓰면서 연설이 무산되기도 했다. 과거사 문제에 이처럼 단호한 태도를 보였던 미 의회가 역대 어느 일본 총리보다 과거사에 대해 퇴행적 인식을 갖고 있는 아베 총리의 합동연설을 허용키로 했다는 소식은 실망스럽고 충격적이다. 그것도 1941년 일본군의 진주만 공습 다음날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합동연설에서 "(진주만 공습은) 치욕의 날"이라고 규정했던 그 자리에 아베 총리가 서서 전후 70년을 맞는 미일관계를 주제로 연설을 하게 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전후 70년을 맞아 미국이 일본과의 과거사 문제에 종지부를 찍고 전범국이 아닌 최고 우방으로 받아들이겠다는 선언적 의미를 내포한 것으로 볼수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미 의회의 태도 변화를 일본의 돈과 인맥이 따낸 외교적 승리라고 분석한다. 그러나 그 보다는 미국의 큰 틀의 외교 안보 전략 차원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일본은 미국 주도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참여키로 했고, 반면 중국 주도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는 확고한 불참의사를 밝힘으로써 동북아에서 미국과 함께 가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게다가 변칙적인 헌법 해석으로 집단자위권 보유를 선언한 일본은 동북아 나아가 전세계에서 미국과 군사적 협업을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지도 없는 냉혹한 국제사회의 현실에서 입의 혀처럼 노는 일본을 미국이 마다할리 없을 것이다. 더욱이 중국의 정치경제적 부상을 최일선에서 저지할 세력으로 일본만한 대항마를 찾기도 힘든게 사실이다.  


그런 현실적 여건은 이해하지만, 미국이 간과해선 안 되는 것도 있다. 미국의 동북아 전략은 한미일 안보 동맹이 핵심축이다. 마크 리퍼트 대사가 피습후 SNS에 "함께 갑시다"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 역시 한미 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에 다름 아닐 것이다. 그러나 한미, 미일간 양자 동맹이 아무리 확고해도 한일 관계가 삐걱인다면 미국의 아시아 전략은 차질이 불가피하다. 한일 관계 정상화의 핵심은 과거사 문제다. 지금 정세에서 일본의 과거사 인식 변화를 끌어낼수 있는 국가는 미국뿐이다. 그런데도 미국이 일본을 설득하는 대신 한국에 대해 "과거사 문제에 집착해선 안 된다"며 태도 변화를 요구한다면 상황은 복잡하게 꼬일수 있다. 한일 관계는 이성 보다 감성이 우선할 때가 많다. 한국 국민들은 과거사의 진실을 외면하는 일본, 그리고 그를 후원하는 미국을 이성이 아닌 감성으로 거부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그렇게 되면 한미 동맹의 근간마저 위태로울수 있다.  


미국이 세계 강국으로 등장한 한 세기 전부터, 그리고 단일 슈퍼 파워가 된 지난 20여년 동안 미국은 민주주의와 인권, 자본주의의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과 함께해 왔다. 미국이 다른 나라를 공격하고 외교적으로 고립시킬때도 그런 도덕적 명분이 있었기에 국내외의 상당한 지지를 얻을수 있었다. 그런 미국의 가치가 아베 총리의 합동연설로 시험대에 올랐다. 그러나 위기는 언제나 기회가 될수 있는 법이다. 아베 총리가 연설을 하게 된다면 미 의회와의 조율은 필수적이다. 그 연설에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사과를 담아 낼수 있다면 아베의 미 상·하원 합동연설은 한미일 3각 동맹의 새로운 전환점이 될수도 있을 것이다.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