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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도전하는 신치용 감독 "지니까, 더 많은 게 보이더라"

기사입력 2015.04.14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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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합뉴스와 인터뷰하는 신치용 감독(용인=연합뉴스) 이승민 기자 = 남자 프로배구 삼성화재의 신치용 감독이 13일 경기도 용인 삼성트레이닝센터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신 감독은 인터뷰에서 "우승을 하지 못해서 얻은 것도 있다"면서 "지고 나니까 더 많은 게 보인다"고 말했다. 2015.4.14 photo@yna.co.kr

    챔프전 7연패 삼성화재 감독 "이번 패배, 내 생애 가장 가슴 아픈 경기"
    "위기이지만 내려가면 다시 올라오기 어렵다…해법은 지독한 훈련밖에 없다"

     

    (용인=연합뉴스) 하남직 기자 = 한국에서 남자 프로배구 삼성화재 사령탑 신치용(60) 감독만큼 많은 우승 트로피를 차지한 스포츠인은 없다.


    하지만 최근 신 감독을 만나는 사람들은 '위로의 말'을 자주 건넨다.


    13일 경기도 용인 삼성 트레이닝센터에서 만난 신 감독은 "나도 쉽지 않았는데, 나를 보는 사람들이 더 힘들어하네요"라고 껄껄 웃으며 "우승을 하지 못해서 얻은 것도 있습니다. 지고 나니까 더 많은 게 보이네요"라고 말했다.


    신 감독은 V리그 2014-2015시즌 팀을 정규리그 1위에 올려놓으며 실업리그를 포함해 19시즌 연속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했다.


    그러나 OK저축은행에 3패로 물러나면서 준우승에 그쳤다.


    19차례의 챔피언결정전에서 신 감독이 패한 건, 이번이 3번째다.


    그에게 패배는 낯설다. 삼성화재는 2006-2007시즌 현대캐피탈에 정상을 내준 후 8시즌 만에 패배의 쓴맛을 봤다.

     

    V리그 8년 연속 우승과 실업리그 포함 17번째이자 프로배구 출범 후 9번째 우승 달성은 실패. 그러나 신 감독은 "얻은 게 있다"고 했다.


    "그동안 정상을 지키느라 힘들었는데, 이제 한 칸 올라갈 곳이 생겨서 좋다"고도 했다.


    챔프전이 끝나고 나서 사흘 동안 정규리그와 챔프전을 복기한 신 감독은 "결국 내 책임이 컸다. 나와 우리 팀이 교만했고, 타성에 젖었다"고 패인을 밝히며 "진단하고 처방을 내렸다. 방향도 찾았다. 나는 길이 보이면 가시덤불도 뚫고 나아간다"고 각오를 다졌다.


    삼성화재의 다음 시즌 전망도 밝지 않다. 그래서 신 감독은 더 독해지려 한다.


    "지태환, 황동일이 곧 입대한다. 삼성화재는 위기를 맞았다"고 자각한 신 감독은 "여기서 어떻게든 버텨야 한다. 한 번 내려가면 다시 올라오기 어렵다. 결국 해법은 지독한 훈련이다"라고 비시즌 강훈련을 예고했다.


    다음은 신치용 감독과 일문일답.


    -- 아쉬움이 큰 시즌인 것 같다.


    ▲ 내 생애 가장 가슴 아픈 경기가 이번 챔피언결정전이었다. 실업리그를 포함해 9연패를 하다가 2005-2006시즌, 2006-2007시즌에 두 시즌 연속 현대캐피탈에 정상 자리를 내줬다. 2005-2006시즌에는 시리즈 전적 2승3패, 2006-2007시즌에는 3패로 물러났다. 10년 연속 우승을 달성하지 못했던 2005-2006시즌보다 3경기를 모두 패했던 2006-2007시즌이 끝나고서 더 힘들었다"고 떠올렸다. 그런데 이번 시즌 패배가 더 속상하다. 이번 시즌 삼성화재는 정규리그에서 단 한 번도 세트 스코어 0-3으로 패한 적이 없다. 그런데 챔프전에서는 1·2차전을 0-3으로 내주고, 3차전에서 1세트만 따내고 3패로 무너졌다. 8연패를 달성하지 못한 것보다 챔프전에서 너무 무기력했던 게 더 가슴 아프다. 구단과 팬들께 송구스럽다. 하지만 챔프전 패배로 얻은 것도 있다.


    -- 패배로 얻은 게 무엇인가.


    ▲ 지니까, 더 많은 게 보이더라. 그동안 정상의 자리를 지키는 것에 부담을 느껴왔는데, 한 칸 올라갈 곳이 생겨서 좋다. 우리가 7연패를 하는 동안 실패를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도 모르게 자만에 빠져 있었다. 냉정하게 우리 팀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 챔프전 패인은 무엇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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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합뉴스와 인터뷰하는 신치용 감독(용인=연합뉴스) 이승민 기자 = 남자 프로배구 삼성화재의 신치용 감독이 13일 경기도 용인 삼성트레이닝센터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신 감독은 인터뷰에서 "우승을 하지 못해서 얻은 것도 있다"면서 "지고 나니까 더 많은 게 보인다"고 말했다. 2015.4.14 photo@yna.co.kr

    ▲ 챔프전이 끝난 뒤 사흘 동안 시즌을 복기했다. 챔프전에서 지독할 정도로 서브 리시브가 흔들렸지만, 사실 서브리시브에 대해 큰 기대는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만 패인이라고 볼 수는 없다. (세터)유광우와 (외국인 공격수)레오까지 한꺼번에 무너지니 돌파구를 찾기가 어려웠다. 정규리그는 관리와 전술을 통해 팀을 정상에 세울 수 있다. 챔프전은 힘 대 힘, 기대 기(氣)의 싸움이다. 힘과 기에서 모두 밀렸다.


    -- 이번 챔프전에서 삼성화재는 예전과 너무 달랐다.


    ▲ 어려움이 있어도, 치고 올라가는 게 삼성화재의 문화였다. 버티다 보면 결국 승부를 뒤집는 게 삼성화재 스타일이다. 지난 시즌에도 챔프전에서 4세트를 먼저 내주고 9세트를 내리 따내며 우승하지 않았나. 그런데 이번에는 우리만의 리듬이 전혀 살아나지 않았다. 19번 연속 챔프전에 나가면서 '챔프전 준비는 자신있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리듬 조절을 하지 못한 내 잘못이다. 삼성화재가 7연패를 달성했지만, 그 사이 주전 선수가 대부분 바뀌었다. 구성원이 바뀌면 문화도 달라지는데, 안이하게 생각하고 바로잡지 못했다. 나와 우리 팀이 교만했고, 타성에 젖었다.

     

    -- 입대한 주전 라이트 박철우의 공백도 커 보였다.


    ▲ 박철우가 국내 선수 중에는 손꼽히는 선수 아닌가. 정규리그에서는 김명진, 황동일로 빈자리를 메웠지만 챔프전에서는 공백이 크더라. 힘 있는 선수가 있으면 기량이 다소 부족한 선수를 보호할 수 있다. 하지만 힘 있는 국내 선수가 없다 보니 다 같이 무너졌다. 사실 세터 유광우에게 코트 내 리더 역할을 기대했는데, 챔프전을 앞두고 갑자기 흔들렸다. 왼 발목 통증 탓에 매주 두 세 차례 주사를 맞고 뛰는 있는 선수를 다그칠 수는 없었다. 유광우에게는 늘 미안한 마음이 있다.


    -- 매년 성적이 좋다 보니 좋은 신인을 뽑지 못한 것도 전력 약화의 이유가 됐을 텐데.


    ▲ 우리 주전 선수 상당수가 다른 팀에서 왔다. 챔프전에서도 세터 출신이 라이트로, 센터가 레프트로, 리베로가 레프트로 뛰는 장면이 나오지 않았나. 아무래도 지난 시즌 역순으로 지명하는 드래프트에서 좋은 선수를 뽑지 못하면서 전력이 약해진 면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더 '원팀(One team)이 돼야 한다. 챔프전이 끝나고 '반성 미팅'을 하면서 선수들에게 "나는 우리가 원팀인 줄 알았다. 그런데 내가 생각한 원팀이 아니더라. 감독인 나부터 반성하겠다"고 말했다. 나는 '1만 번의 법칙'을 믿는다. 배구의 특성상 고교, 대학시절 잘했던 선수가 프로에서도 성공한다. 그러니 더욱 기량이 부족한 선수는 다른 선수가 천 번 훈련할 때, 만 번 훈련하면서 몸으로 익혀야 한다. 자유계약선수(FA) 영입 등으로 전력이 보강되면 좋겠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결국 기존 선수들의 기량을 끌어올려야 한다.


    -- 내년 시즌 전망도 밝지는 않은 것 같다.


    ▲ (센터)지태환, (세터·라이트)황동일이 곧 입대한다. 삼성화재는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여기서 어떻게든 버텨야 한다. 한 번 내려가면 다시 올라오기 어렵다.


    -- 해법이 있는지.


    ▲ 무기력했던 챔프전을 통해 팀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처방했다. 지금은 방향을 잡은 상태다. 나는 길이 보이면 가시덤불이라도 뚫고 나아간다. 결국 해법은 지독한 훈련이다. 이번 시즌에 드러난 문제점을 적당히 해결하려 하면 또다시 실패한다. 철저하게 반성하고, 독하게 바로 잡아야 한다. 선수들에게 2주의 휴가를 줬다. 26일 저녁에 복귀하면 바로 훈련을 시작할 생각이다.


    -- 위기라고는 했지만, 사실 삼성화재처럼 오래 전성기를 누린 팀도 없다. '신치용 효과'라고들 하는데.


    ▲ 그런 면에서 나는 참 운이 좋다. 내가 한 게 있다면 원칙과 기준을 세우고, 어긋나지 않고자 한 것뿐이다. 내가 감독 생활을 하는 동안 단 한 명의 코치도 우리 집을 찾지 않았다. 선수와 따로 술 한잔한 적도 없다. "할 말이 있으면 감독실로 오라"고 했지 절대 밖에서 코치나 선수를 만나지 않았다. 감독이 팀 내 누군가와 사적으로 친해지면 다른 사람들은 불안감을 느낀다. 결국 패가 갈린다. 학연과 지연 등으로 갈라서면 코트에 서기 전에 자멸한다. '10분 전 문화'도 팀 분위기를 다잡는 데 도움이 됐다. 내가 코치를 할 때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 약속 시간에 늦은 걸 보고 '내가 감독이 되면 절대 저런 부분은 용납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나는 팀이 이동할 때 10분 전에 차에 오른다. 내 눈치를 보다 보니 선수들은 15분 전에 나온다. 사실 깐깐한 나 때문에 코칭스태프나 선수들이 피곤할 수 있다. 그러나 원칙을 따르면 결국 모두가 편해진다. 그 지론은 확실히 지켰다.


    -- 이번에 우승을 차지한 김세진 OK저축은행 감독, 플레이오프에 오른 신영철 감독, 새로 현대캐피탈 사령탑에 오른 최태웅 감독 등이 삼성화재에서 만난 제자들이다. 후배 감독들에게 조언하자면.  


    ▲ 후배 감독들이 나보다 잘해야 하지 않나.(웃음) 후배 감독들은 나와 오래 함께 하면서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떻게 팀을 이끄는지 잘 알고 있다. 거기에 자신의 철학을 더하면 더 나은 방법으로 팀을 이끌 수 있지 않나. 굳이 조언을 하자면 '삼성화재처럼 하라'고 말하고 싶다. 삼성화재가 20년 가까이 정상을 지키는 이유가 분명히 있다. 감독은 감독의 역할, 코치는 코치의 역할, 프런트는 프런트의 역할에 집중해야 한다. 그래야 선수들이 훈련과 경기에 집중할 수 있다. 특히 감독은 '인기'만 추구하는 언행을 삼가야 한다. 진정성을 담았다면 강한 질책도 선수들에게 뼈가 되고 살이 된다. 하지만 모두 스타 플레이어 출신이니까 '넌 왜 그것도 못해'라는 말은 하지 마라. 선수들이 바로 돌아설 수 있다. 나야 현역 생활이 화려하지 않았으니 그런 말을 해도 괜찮겠지.(웃음) 감독과 선수는 '불편한 속에 애정을 쌓아가는 사이'다. 모두 좋은 사령탑이 되리라 믿는다. 나도 후배 감독들과 함께 한국 배구가 팬들께 사랑받을 수 있도록 좋은 경기를 펼치겠다.  


    -- 최근 큰 딸(신혜림 씨)이 결혼했다.  


    ▲ 내가 두 가지 변화를 계획하고 있는데, 하나는 독하게 훈련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가 가정적인 남편이 되는 것이다. 11일에 혜림이가 결혼하고 아내(전 농구선수 전미애 씨)와 둘이 집에 있으니 기분이 묘하더라. 둘째 혜인이는 이미 결혼을 했고(2009년 박철우와 결혼), 이제 큰 아이도 가정을 이뤘으니 두 딸에게 고맙고, 홀가분하다. 그런데 아내를 보니 '이제 내가 정말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아내에게 '이제 잘할게'라는 말도 했다. 다행히 최근에 훈련장 근처로 이사했다. 훈련하다 식사 시간이 되면 집으로 가서 아내와 함께 식사한다. 나는 아내를 생각해서 집에 자주 가는데 이게 또 민폐더라. 아내에게 '둘이 먹는데 그냥 밖에서 간단히 사먹자'고 해도 아내가 '밖에서 식사하시는 걸 싫어하시지 않나'라고 꼭 직접 밥을 챙긴다. 배구만 신경 쓰느라 집에 들어가지 않은 날이 더 많았다. 물론 세 모녀가 워낙 잘 지내서 내가 외톨이긴 했다.(웃음) 그래도 이젠 집에 자주 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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