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상세페이지

황석정 "사는 '꼬라지' 보여줄 게 없는데 반응에 놀라"

기사입력 2015.05.10 09:34

SNS 공유하기

fa tw gp
  • ba
  • ka ks url

    MBC '나 혼자 산다' 출연후 관심집중…"아버지는 인민군 출신 트롬본 연주자"
    서울대 국악과 출신…"음악 대신 택한 연기에 한때 괴로웠지만 그 덕분에 인간 돼"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그는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의 40년 된 아파트에서, 사람으로 치면 일흔 살도 넘은 삽살개와 함께 산다.

     

    쪼그리고 앉아 머리 한 번 감고 나면 화장실 하수구가 금방 막히지만, 그에게는 별일 아니다.

     

    그는 특별한 날이 아닌데도 김밥을 만다. 외출했다가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나눠주려고 도시락은 항상 두 통씩 싸는 것을 잊지 않는다.

     

    유명인들의 싱글 라이프를 관찰하는 예능 프로그램 MBC TV '나 혼자 산다'에 지난 1일 게스트로 출연한 배우 황석정(45)의 이야기다.

     

    연예계는 다른 어떤 곳보다도 경제적으로 넉넉지 않은 형편이 결코 자랑일 수 없는 세계다. 그런 곳에 몸담은 황석정의 범상치 않은 일상은 시청자들에게 꽤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는 혼자 자유롭게 살면서도 주변 사람들을 살뜰히 챙겼다. 그의 삶은 소박했지만 남루하지 않았다.

    대학 학력이 경제적 풍요를 어느 정도 보장하는 우리 사회에서 서울대 국악과라는 그의 학력은 방송 후 인터넷에서 다시 한 번 화제가 됐다.

     

    황석정은 강한 부산 억양으로 "사는 '꼬라지'(꼬락서니)를 보여 드릴 만한 게 없는데 방송을 본 사람들이 좋아한다고 들어서 많이 놀랐다"고 밝혔다.

     

    그를 최근 인터뷰했다.

    14312179789349.jpg

    ◇ "소유욕 없어…남들과 나누는 일 신나"

     

    황석정은 "꾸미는 걸 좋아하지도, 정말 갖고 싶은 것도 많지 않다"면서 "갖고 있던 것도 다른 사람이 원하면 바로 줄 정도로 소유욕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부지런히 베푸는 이유에 대해 물었더니 "누군가를 위해서 무언가를 만들어서 함께 나누는 일이 정말 신난다"는 답이 돌아왔다.

     

    "촌스러워서 그런가 봐요. 제 몸을 부지런히 움직여서 싸게 재료를 사서 반찬을 만들고 그걸 함께 나눌 때 기뻐요. 그걸 받아주는 사람들도 반찬이 넘쳐나는 사람들이 아니거든요."

    14312179859665.jpg

    방송에서 그의 소박한 일상과 함께 주목받은 것은 넘치는 그의 끼였다.

     

    이미 '명품 조연'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연기는 제외하더라도, 정성껏 민화를 그리고 술을 마시다 말고 목청껏 열창하는 모습은 매력적이었다.

     

    그 끼의 원천이 궁금했다. 그는 반세기도 더 지난 이야기를 꺼냈다.

     

    거제 포로수용소에 수용됐던 인민군 포로가 부산에서 한 아가씨를 만나면서 시작된 이야기였다.

     

    "아버지가 트롬본 연주자였어요. 아버지는 평소 말씀도 없었고 술을 드시면서 슬퍼하시곤 했는데 가끔 (이북) 고향 이야기를 했어요. 할아버지가 그렇게 소리를 잘했대요. 어머니도 글을 잘 쓰시고 음악에 대한 열정이 강하셨어요."

     

    "그런 것들이 유전자에 쌓이지 않았겠느냐"라고 말하던 황석정은 이야기 끝에 "그 끼를 펼치지 못했을 때 정말 괴로웠는데 그걸 참고, 또 참고 다듬고 하다 보니 이렇게 됐다"고 설명했다.

     

    ◇ "배우 선택 후회 안해…연기 덕에 삶의 균형 찾아"

     

    황석정은 서울대 국악과를 졸업한 뒤 관현악단 입단을 앞두고 있었지만 "잠이 오지 않고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은 나날이 계속되면서" 결국 길을 틀었다.

     

    설경구, 이문식 등이 활동하던 극단 한양레퍼토리에 들어갔다가 1995년 한국예술종합학교에 다시 입학해 본격적으로 연기를 갈고 닦았다.

     

    배우의 길을 선택한 걸 후회하지는 않았을까. 스펙 좋은 그가 국악을 계속하고 입시학원이라도 차렸다면 목돈을 손에 쥐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전혀 후회하지 않아요. 살다가 무엇을 했는데 신이 나면 그걸 하는 거죠."

     

    다만, 그는 "연기를 하기에 최악의 조건에서 시작한 탓에 한때는 너무 괴로웠다"고 털어놓았다.

     

    "가령 '오늘 날씨가 너무 좋아요'라는 대사가 있잖아요. 저는 그런 대사를 하기가 너무 어려웠어요. 집안 환경이 사랑을 제대로 주고받는 데 서툴렀어요. 제게 없는 부분을 채우기 위해, '오늘 날씨가 너무 좋아요'라는 대사를 하기 위해 연기를 시작하고 10년 동안 너무 고생했어요."

     

    황석정은 "어린 시절이 트라우마나 편견으로 가득 찬 사람은 균형 잡기가 쉽지 않다"면서 "제게는 그 균형을 잡게 해준 것이 연기"라고 강조했다.

     

    그는 오랫동안 연기를 했음에도 "나는 배우"라는 생각이 든 건 불과 3년 전이라고 했다.

     

    "특별한 계기는 없었어요. 그냥 문득, 배우로 살면서 나를 채우고 완성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편견으로 가득찼던 어린 시절을 보낸 한 아이가 이렇게 되기까지는 참 어렵더라고요."

    14312179728336.jpg

    ◇ "'미생'이 인생의 전환점" 

     

    황석정은 지난해 잠깐 등장한 tvN 드라마 '미생'을 "인생의 전환점"이라고 말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사회적으로도 큰 반향을 일으켰던 '미생'에서 이른바 '하회탈 미소'로 불리는 재무부장으로 등장한 것이 그의 인지도 상승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다들 저더러 '만찢녀'(만화를 찢고 나온 여자)라고 부르는데 '미생' 만화원작을 본 적도 없다"면서 "작품 자체가 화제가 되면서 저도 화제가 된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황석정은 현재 tvN '식샤를 합시다2'에서 억척스런 세종빌라 주인이자 아들에 죽고 사는 아줌마 김미란으로 출연하고 있다.  

     

    무엇보다 "내 모온(못) 산다"라는 걸쭉한 사투리가 인상적인 캐릭터다.

     

    그는 실감 나는 엄마 연기에 대해 "아등바등했던 우리 엄마 생각도 하고 아줌마가 된 주변 사람들도 관찰했다"면서 "요즘 아줌마들이 짠하게 느껴지면서 이해가 됐다"고 설명했다.

     

    "앞으로의 계획이요? 사람 일은 한 치 앞도 모르는 것이니 '죽어도 연기하겠다' 이런 건 없어요. 가수를 할 수도 있고 집을 올리거나 농사를 짓고 있을 수도 있겠죠. 다만 연기를 한 덕분에 인간 꼴을 갖추고 있다고는 생각해요. 하하하."

    14312179880687.jpg

    airan@yna.co.kr 

    backward top h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