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크> 장미희 "장모란은 새로운 캐릭터…뿌듯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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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크> 장미희 "장모란은 새로운 캐릭터…뿌듯했어요"

KBS '착하지 않은 여자들'서 우아하고 귀여운 장모란 창조
연기·패션 큰 화제…"나이요? 의식하지 않고 살아요"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 "아름다운 밤이에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면 전혀 이상하지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한국 영화 시상식에서, 그것도 1990년대에 불쑥 이런 '버터 같은' 말을 내뱉었더니 '파장'이 엄청났다. 너무 뜬금없어 황당함을 안겨줬고, 정말 신선했지만 폭소를 유발했던 이 수상소감은 두고두고 입에 오르내리고, 패러디 되면서 대중문화계의 최고 유행어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그리고 마침내, 이 발언의 '저작권자'가 자신의 발언을 패러디하는 날이 오기도 했다. 세월은 그렇게 바위에 구멍도 내고, 물길도 바꾼다.

 

지난 14일 종영한 KBS 2TV '착하지 않은 여자들'에서 우아하고 귀여운, 기품있으면서 코믹한 중년 여성 장모란을 창조해내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영원한 여배우' 장미희(58)다.

 

"장모란은 기존 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일반적인 캐릭터가 아닌, 새로운 캐릭터여서 정말 좋았어요. 장모란 캐릭터뿐만 아니라 '착하지 않은 여자들'이라는 좋은 작품을 해냈다는 뿌듯함이 큽니다. 잘 끝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요."

 

그간 부지런히 촬영장과 강단(명지전문대 연극영상과 교수)을 오가며 활동했지만, 인터뷰에는 인색했던 장미희를 18일 전화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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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일문일답.

--장미희만이 할 수 있는 우아하고 귀여운 캐릭터가 탄생했다.

 

▲그렇게 봐주셔서 감사하다. 기본적으로 작가 선생님이 잘 써주신 덕분이다. 초반에는 장모란이 냉소적이고 절제된 모습의 묘령의 여인이었다. 그러다 초중반 순옥(김혜자 분)과 공동의 아픔을 인식하고 서로를 이해하면서, 어려서부터 갖고 있었지만 누구에도 보여주지 않았던 좋은 천성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장모란이 순옥을 가족 같은 언니로 여기기 시작하면서 그를 둘러쌌던 오랜 어둠이 걷히고 본래의 따뜻함이 나왔다.

 

--공원에서 순옥과 셀카봉을 찍는 장면은 특히 압권이었다. 너무 천연덕스럽게 코믹 연기가 나왔다.

▲셀카봉이라는 것을 촬영 날 처음 봤다. 너무 재미있고 좋더라.(웃음) 그 장면이 장모란에게는 전환점이 되는 중요한 순간이었다. 그전까지 순옥의 꼬집고 할퀴는 말에 서러워서 울다가 함께 사진 찍으면서 모란이 이전까지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 그래서 나도 준비를 많이 한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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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믹 연기가 너무 자연스러워 시청자가 놀랐다.

 

▲보통 드라마는 기획의도와 초반 대본만 보고는 전체 상황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 그런데 '착하지 않은 여자들'은 4회까지만 대본을 읽었는데 아주 확실하게 전체 그림이 그려졌다. 그만큼 김인영 작가의 대본이 좋았다. 거기에 PD가 명연출이었다. 배우가 어떤 연기를 해도 두려움 없이 할 수 있도록 캐릭터에 맞게 잘 잡아주는 노련한 연출이었다. 배우가 그러면 안되지만 사실 장모란을 연기하면서 오그라드는 지점이 많았다. 하지만 그런 것들을 다 극복하고 주저 없이 연기하도록 현장에서 유현기 PD가 잘 이끌어줬다. 한동안 귀부인 캐릭터를 많이 해서 지루한 면도 없지 않았는데 그러던 차에 이렇게 따뜻하고 착한 캐릭터를 만나 너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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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장미희 안에 이런 코믹함이 자리하고 있나. 과거의 청순하거나 도도한 이미지와는 많이 다르다.

 

▲텍스트가 좋아야 배우의 연기가 무한대로 나온다. 코믹함이 내 안에 내재해 있든 아니든 '착하지 않은 여자들'의 대본이 내게서 그런 것을 끌어낸 것이다. 어떤 연기자도 자신이 코미디를 한다고 생각하고 연기하지 않는다. 보는 이들이 그렇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코미디언이 아니므로 웃겨야겠다고 연기하는 게 아니라 캐릭터를 분석하고 개연성에 의해 연기를 한다.

 

난 오로지 작품 안에서 연기를 하는 것이지 이미지를 좇지 않는다. 작품 활동 외에는 인터뷰도, 예능프로그램도 출연하지 않기에 대중에게는 내가 작품 속 이미지로 기억된다. 그런데 저마다 기억하는 이미지가 다르다. 누구는 '깊고 푸른 밤'을, 누구는 '겨울여자'를, 또 누군가는 '엄마가 뿔났다' 속의 내 모습을 나로 기억한다. 그동안 내가 출연한 작품 편수만큼 내게는 다양한 이미지가 있는데 그걸 일일이 신경쓰고 좇는 건 공허한 일이다.

 

--'아름다운 밤이에요~'를 스스로 패러디할 줄은 몰랐다.

 

▲초고에는 없던 대사인데 수정 원고에 들어왔다. 장미희 개인과 장모란이라는 캐릭터의 공존을 통해 친숙함을 유도하려는 작가의 의도라고 생각했다. 그 의도를 받아들여 대본 안의 대사로 충실히 소화했다. 또 요즘은 그 말을 많이 하지 않나.(웃음)

 

--많이 여유로워진 것 같다.

▲아무래도 그렇지 않겠나. 나이 먹으면서 '아~ 그렇구나' 하는 순간이 많아졌다. 많은 이해가 생겼다. 따져봐야 별 차이가 없더라. (웃음) 두려움, 불안감 등에서 자유로워졌으니 그런 의미에서는 많이 여유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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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실감하고 사나.

 

▲실감할 때도 있고 잊고 살 때도 있는데 비교적 의식을 안 하고 사는 것 같다. 누구로부터도 평소 나이를 확인받지 않는 생활을 한다. 보통은 엄마로서 나이를 실감하지만 내 경우는 어려서부터 쭉 배역과 학교 안에서 살아와서 별로 나이를 실감하는 순간이 없다. 아, 예전에는 학생들이 '제가 팬이에요' 하다가 요즘에는 '우리 엄마가 팬이에요'라고 하는 게 달라졌다면 달라진 것이다.(웃음) 책과 삶 속에서 의식이 발전돼 나가고는 있겠지만 나이를 의식하지는 않고 있다.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미모와 패션감각이 화제였다. 헤어스타일부터 액세서리 하나까지 모두 세련됨의 최고봉을 걸었다는 평가다.

 

▲한동안 채식을 하다가 운동을 하면서 소고기, 닭고기는 먹는다. 특별히 뭔가를 챙겨 먹기보다는 좋지 않은 것을 안 하려고 한다. 술, 담배, 유흥을 하지 않고 촬영이 없을 때는 운동을 하면서 음식을 조절한다. 인스턴트음식 안 먹고 생활습관을 나태하지 않게 하려고 한다. 관리는 배우의 숙명이다. 더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관리가 되지 않으면 배우로서는 그만둬야 한다.

 

패션은 '엄마가 뿔났다' 때부터 작업한 스타일리스트와 함께 하고 있고, 나 스스로도 관심을 많이 기울인다. 패션은 캐릭터의 일환이기 때문에 당연히 내가 신경을 써야 한다. 그래서 직접 많은 옷을 구매한다. 새로운 것을 보여 드리고 싶어 외국의 샵을 통해 구입하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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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귀부인 역이라 협찬을 받지 않으면 의상 구매비도 만만치 않을 것 같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클 것 같다.

 

▲그런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부유한 캐릭터를 많이 해서 어쩔 수가 없다. 하지만 배우가 자기 캐릭터를 위해 의상을 준비하는 것은 나로서는 당연한 것이다. (협찬에만 의존해) 남들이 입는 것을 똑같이 입고 나오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다른 연기자들과의 호흡은 어떠했나.

▲김혜자 선배님이야 대연기자이고 즉흥 연기의 대가이시라 더 보탤 말이 없고, 채시라 씨도 굉장히 성실한 연기자고 몸을 사리지 않는다. 또 다른 연기자 모두 스타성이 아닌 연기로 승부를 겨루려는 분들이라 정말 좋았다. 어쩜 그리 다들 연기를 잘하나 싶었다. 좋은 대본과 좋은 스태프가 조화롭게 만나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이번 드라마는 그게 다 맞아떨어졌다. 그래서 다들 끝내면서 너무 기분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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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로워진 만큼 연기할 때도 편안한가.  

 

▲연기는 계속 어렵다. 매번 새롭고, 준비하고 연구해야 하는 게 너무 많다. 어려서는 몰라서 못한 게 있었지만 지금은 내 한계를 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더 많은 고민을 한다. 게을러서, 지성이 부족해서 연기가 제대로 안 나오면 그것만큼 부끄러운 일이 어디 있나. 그런 아픔을 매번 줄이려고 노력한다.  

 

--'장미빛 연인들'도 그렇고 '착하지 않은 여자들'에서도 여전히 멜로가 어울린다.

 

▲멜로는 어려서부터 내 주전공이다.(웃음)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 '아무르' 같은 영화처럼 좋은 작품만 있다면 멜로는 계속 하고 싶다. 사랑에 있어 연령제한이 어디 있나. 사랑의 농도와 종류는 다양하다. 고령화사회에서 나이든 사랑은 어떤 것이지, 좋은 텍스트를 통해 보여주고 싶다.  

prett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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