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릿한 손맛! 입맛도 달콤!…봉화은어축제 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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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문화

짜릿한 손맛! 입맛도 달콤!…봉화은어축제 체험


함께 어울려 노는 신명의 시간…생명존중 새기는 계기도 되길

 

(봉화=연합뉴스) 임형두 기자 = "왔다! 왔어!" "잡아! 확 잡으라구!"


땡볕 쏟아지는 봉화읍 내성천의 반두잡이 체험장. 사람과 은어의 물밑 싸움이 치열하다. 길이 400m, 폭 60m가량의 내성천 체험장은 그야말로 쫓고 쫓기는 추격전의 즐거운 현장.


줄잡아 1천여명의 체험 참가자들은 너나없이 고기잡이용 반두를 들고서 물속을 정신없이 훑어댄다. 요리조리 잽싸게 도망치는 은어들.


잡느냐, 잡히느냐의 숨가쁜 뒤쫓기와 줄행랑이 한껏 가슴 졸이게 한다. 은어들로선 생사가 달린 절체절명의 순간. 하지만 인간들은 마냥 즐겁다. 그리고 신났다.

14388348323998.jpg"은어가 어디 있나?" …두리번두리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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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반 사람 반'의 반두잡이 체험장


"잡았다! 잡았어!" "어휴, 또 놓쳤네! 또 놓쳤어!"


여기저기서 교차하는 탄성과 한숨소리. 잡은 자는 승자처럼 득의양양한 얼굴로 은빛 은어를 번쩍 치켜 올린다. 놓친 자는 이대론 물러설 수 없다는 듯 더욱 눈에 쌍불을 켠다. 그리고 반두로 개천 바닥을 힘껏 휘젓는다.


아들과 며느리가 무리에 뒤섞여 은어잡이에 흠뻑 빠져 있는 사이, 경주에서 왔다는 황은식(78) 할아버지와 손녀 선하(5) 양은 물장난에 신바람이 났다. 70년이 넘는 세월을 삽시간에 뛰어넘은 조손 사이의 어울림과 놀이.


가족들의 모습을 손기화(73) 할머니가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물론 손에 쥔 비닐봉지에는 아들, 며느리가 잡아넣은 은어들이 꿈틀대며 야단법석이다.


"은어는 난생처음 봐요. 정말 좋네요! 아들, 며느리, 손주랑 이렇게 함께하니 정말정말 좋아요!" 연신 웃는 황 할아버지의 얼굴에선 금세 주름살이 쫙 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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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반 고기 반'의 맨손잡이 체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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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현 군 "저도 잡았어요!"

이번에는 바로 옆의 맨손잡이 체험장으로 가보자. 정사각형의 커다란 야외수조에서도 한바탕 난리가 났다.

사람은 많고 공간은 좁은지라 더욱 스릴 넘친다. 은어를 풀어 넣고 맨손으로 잡게 하는 '인공 어장'. 위기에 몰린 은어들은 한사코 구석으로, 가장자리로 도망친다.


하지만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고 했으렷다! 힘을 합치면 효율적이라는 걸 본능으로 아는 몇몇 사람들. 순간적인 협업 체계를 구축한다. 빙 둘러 반쯤 앉는 자세를 취하는가 싶더니 윗도리를 각자 양손으로 걷어올리고서 그물망을 만든다. 그리고 포위망을 서서히 좁혀온다.


코너에 몰린 은어들로선 만사휴의! 죽기 살기로 발버둥쳐보지만 게임은 이미 끝난 거나 다름없다. 이렇듯 생판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 남녀노소 구분없이 공동전선이 긴급히 형성된 것도 축제장의 묘미이자 마력.


엄마, 아빠랑 대구에서 축제에 처음 왔다는 김도현(7) 군. 몇 마리나 잡았느냐고 묻자 싱글벙글 개구쟁이 얼굴로 이렇게 대답한다. "나도 몰라요! 잡은 은어가 하도 많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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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성천변의 은어 조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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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성대교의 은어상 조각품

봉화은어축제가 성황리에 열리고 있다. 올해로 17회째. 지난 1일 개막한 축제는 8일까지 계속된다. 주제는 '은어가 들려주는 여름날의 추억'.


해마다 이맘때면 내성천은 인파로 넘쳐난다. 봉화읍내를 관통하는 내성천의 내성대교 아래에서는 은어 반두잡이와 맨손잡이가 각각 하루 네 차례와 다섯 차례 진행되고 각종 공연 등 부대행사들도 쉴새없이 이어진다.


봉화은어축제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선정한 문화관광축제 중 하나. 올해는 우수축제 등급을 받아 더욱 활기에 넘친다. 축제 규모가 더 커지고 그 내용도 한결 풍성해진 건 당연지사.


경북도의 북쪽 산간지역에 위치한 봉화군은 조그만 지자체에 지나지 않았다. 면적은 서울보다 2배가 훨씬 넓으나 인구는 고작 3만4천여명. 이 작은 지자체의 존재감과 명성을 일거에 전국적으로 높여준 효자가 바로 은어다.


봉화군청 관계자는 "1급수를 유지하는 청정 산림휴양지역의 이미지를 살리고자 은어축제를 기획했다"며 "화천산천어축제, 영덕황금은어축제, 예천은붕어축제 등이 우리 축제를 벤치마킹해갔다"고 자랑한다.


은어는 맑고 깨끗한 1급수에서 사는 회귀성 어종. 한국과 중국, 대만, 일본 등 동아시아에서만 산다. 가을에 알에서 깨어난 새끼 은어는 바다로 내려가 겨울을 지낸 뒤 성어가 돼 이듬해 봄에 원천회귀한다. 물론 일부 육봉형은 일생을 민물에서만 지낸다.


한여름은 은어들로선 전성기인 셈. 이때 사람들이 너나없이 반두를 집어들고 개천으로 뛰어들곤 했다. 갓 잡은 싱싱한 은어를 굽거나 튀겨 먹으면 맛이 그야말로 일품.


하도 영양 많고 맛이 좋아 조선시대에는 임금님 수라상에 올랐다고 한다. 말 그대로 한여름의 진객이자 대표적 웰빙 식품이었던 것.


한 판매장에서 튀김 한 입을 깨물자 고소한 수박향이 코로 스며들고 달콤한 고기맛이 혀를 묘하게 자극한다. 은어 튀김을 목으로 막 넘기자 이 판매장의 주인이 웃으며 하는 말. "선생님도 이제 임금님이 되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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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성천에 방류된 은어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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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두를 들고 은어잡이 나선 사람들

내성천은 낙동강 상류 중의 상류다. 강원도 태백의 황지연못에서 발원한 낙동강은 경북을 거쳐 경남의 남해로 흘러 내린다. 무려 525km의 대장정.


은어는 본디 이 낙동강을 오르내리며 일생을 살았다. 내성천 은어의 경우 장장 1천300리 물길을 오가며 한해살이의 삶을 노래했던 것. 성어의 길이가 고작 20여cm라는 점을 감안하면 정말 대단하다 싶다. 대부분의 은어는 암수 모두 알을 낳은 뒤 곧바로 1년의 짧은 생애를 마감한다. 눈물겨운 삶의 드라마!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의 은어는 이 같은 자생적 삶터와 생애주기를 상실했다. 하천과 바다를 왕복하며 일생을 살았던 회귀성을 잃어버린 것. 형편은 전국의 다른 지역도 비슷하다.


이승훈 봉화군축제위원장은 "1960년대만 해도 자연생태적 회귀성 은어들이 내성천에 무척 많이 살았다"고 회고한다. 하지만 1977년 안동댐이 준공되고 이어 각종 댐과 보들이 잇달아 생기면서 은어들은 더이상 개천과 강과 바다를 오갈 수 없게 됐다.


현재 축제장에서 잡는 은어는 모두 양식이다. 매년 축제에는 16t의 은어들이 반두잡이 체험장과 맨손잡이 체험장에 투입된다. 은어를 잡으면서도 마음 한편으로 애잔하고 불편한 느낌이 드는 이유다.

14388348567203.jpg여성 수중달리기 시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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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수중달리기 시합

아무튼 폭염특보 속에 연일 푹푹 찌는 복더위의 여름날. 봉화은어축제는 가족단위 관광객들이 모처럼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놀아서 즐겁고 잡아서 신나는 휴가. 물속을 첨벙첨벙 내달리는 수중 달리기 같은 이열치열의 이벤트도 흥겨움을 더한다.


주최측은 단순 이벤트를 벗어나 축제가 좀 더 내실있는 체험과 즐김, 배움의 장으로 승화하도록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은어 주제관을 운영하고 나비·반딧불이 체험관을 신설한 것도 그중 하나.


축제장에는 매년 90만명 안팎이 찾는다. 봉화 인구의 30배에 가까운 관광객들이 일 주일여 사이에 미끈한 몸매의 은어와 함께 후련한 여름날을 보내는 것. 올해는 과연 얼마나 찾을까?


밤이면 수변무대에서 펼쳐지는 공연도 볼만하다. 춤과 노래, 음악 등 각종 프로그램이 다채롭게 이어져 방문객들에게 또 다른 낭만과 즐거움을 선사한다.


건듯 부는 시원한 강바람에 더위마저 잠시 움츠려드는 여름밤! 다투듯 시원스레 솟구치는 분수들과 데칼코마니처럼 냇물에 얼비치는 낭만적 조명 속에 하루는 또 그렇게 저물어간다. 내성천의 멋진 풍경화!

14388348703018.jpg수변무대의 야간 예술공연
14388348740112.jpg내성천의 은어 모형 등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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