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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부부의 고달픈 사랑, 영화로 전해졌으면"

기사입력 2015.08.21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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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401251498498.jpg다문화 영화 감독 박제욱씨
    박제욱 감독, 자전적 영화 '찡찡 막막' 태국서 개봉
     

    (서울=연합뉴스) 신유리 기자 = 가난한 영화감독은 태국에서 만난 아가씨와 운명처럼 사랑에 빠졌다.

    부부의 연을 맺고 한국에 보금자리를 꾸렸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빠듯한 벌이, 국제결혼 가정을 향한 차가운 시선…. 


    아내는 상처를 견디다 못해 태국으로 돌아갔고 끝내 이혼을 결심했다. 남자는 어쩔 수 없이 아내를 놓아줘야 했지만, 아직 못다 한 말이 있다. 미안했다고.


    영화일까. 실화일까.  


    독립 영화감독 박제욱(41) 씨의 실제 이야기다. 박 감독의 자전적 영화 '찡찡 막막'이 오는 9월 바다를 건너가 전 부인이 사는 태국 방콕에서 상영된다.


    그는 20일 연합뉴스와 전화 인터뷰에서 "전 부인에게 보내려던 사과 편지가 이제야 태국에 도착하게 된 셈"이라고 말했다. 


    무슨 뜻일까. 

    "영화를 만들 당시 입버릇처럼 말했죠. 전 부인에게 전하는 사과 편지가 됐으면 한다고. 이제 정말로 전 부인이 사는 태국에서 상영되네요. 관객의 평가가 어떨지 궁금합니다." 


    박 감독은 2008년 영화 '반두비'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다문화 영화 제작에 뛰어들었다. 2011년엔 '러브 인 코리아'라는 다문화 다큐멘터리 영화를 내놔 그해 '인디다큐페스티발' 개막작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2013년 작인 '찡찡 막막'은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돼 관객과 만났다. 하지만, 아직 정식 배급은 성사되지 못했다. 


    "운이 좋게도 태국에서 영화관을 잡는 데 성공했네요. 포스터가 예뻐서 그런지 일단은 관심을 많이 보이고 있죠. '찡찡 막막'이 태국어로 '진짜 진짜 많이 많이'라는 뜻이어서 호기심이 생기나 봅니다." 


    '찡찡 막막'은 다음 달 3일부터 일주일 동안 방콕의 대표적 독립 영화 상영관인 '더 하우스'(The House)에서 상영된다. 200석 규모다.


    한국에서는 이 영화에 대해 자칫 어둡게 흘러갈만한 얘기도 아기자기한 분위기로 풀어냈다는 평가가 많았다. 박 감독이 태국에서 기대하는 반응은 뭘까.


    "전체적으로는 사랑 얘기입니다. 그런데 영화 곳곳에 국제결혼 가정을 바라보는 편견, 영화판을 맴도는 감독 지망생의 구차함 등이 깔렸죠. 태국인들이 K-팝, 명동 쇼핑 등에 사로잡혀 한국을 무척 동경하거든요. 하지만, 실제로는 그런 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귀띔해주고 싶습니다." 


    박 감독은 2013년 1월 태국으로 건너가고서 방콕의 한 공립 고등학교에서 한국어 원어민 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치며 살고 있다. 그 사이 인연을 맺은 태국인 여성과 결혼해 새롭게 가정도 꾸렸다. 


    박 감독 자신이 태국에서는 국제결혼으로 이주해온 '외국인 남편'이 된 셈이다. 한국과 태국에서는 국제결혼에 대한 인식이 "하늘과 땅 차이"라는 걸 피부로 느꼈다고 한다.    


    "태국에 와보니 한국 사회의 편견이 얼마나 큰 것인지 새삼 깨닫게 됐죠. 여기는 '다문화'라는 개념이 아예 없거든요. 그냥 저희를 다양한 커플 중 하나로 바라볼 뿐이죠. 한국에서는 태국인 아내가 편견 섞인 농담도 많이 들어야 했는데…. 그것 때문에 둘 다 많이 힘들었죠. 여기선 제가 '국제결혼 남성'이 됐는데 거의 편견이나 차별을 못 느꼈어요." 


    영화는 '웃기고도 슬픈' 한국 사회의 자화상을 고스란히 드러내면서도 마지막에 가서는 절망 속 희망을 암시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박 감독은 현실에서도 이러한 '열린 결말'을 꿈꾼다. 


    "'해피엔딩'이 실제로는 얼마나 힘든 일이겠어요? 다만, 한국 사회가 좀 더 열린 마음, 열린 시각으로 서로 바라봤으면 합니다. 유럽인이나 미국인도 있는데 무작정 동남아 여성이나 노동자만 다문화 이주민으로 규정짓는 것도 말이 안 되고…. 조금만 더 인식을 바꿨으면 해요." 


    박 감독은 차기작으로 한국인 여성과 태국인 남성의 사랑 얘기를 만들고 있다.


    그는 "나이, 국적, 성별을 초월한 사랑 얘기를 그려보고 싶다"면서 "그렇다고 해서 한국에서 '찡찡 막막'의 배급과 개봉을 포기한 것은 결코 아니다"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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