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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선희 "노래는 비우는 작업…'J에게'는 지금 들어도 뭉클"

기사입력 2015.11.04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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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악은 저를 기억하는 사람과의 소통…젊은 팬들 감사해"


    "목소리는 나만의 악기…다른 사람이 나와 다르다는 걸 인정해야"

    (서울=연합뉴스) 김보경 기자 = 이선희는 누구나 자신 있게 '국민가수'라 부를 수 있는 몇 안 되는 가요계 거장 중 하나다.


    1984년 '제5회 강변가요제'에서 'J에게'로 대상을 차지하며 데뷔한 그는 이듬해 1집 타이틀곡 '아! 옛날이여'를 시작으로 '갈바람', '알고 싶어요', '나 항상 그대를', '한바탕 웃음으로' 등을 히트시키며 1980년대 대표 디바로 자리 잡았다.


    그는 작은 체구에서 나오는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팬들을 사로잡으며 최초의 언니부대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1990년대에도 꾸준히 신곡을 발표했던 이선희는 2011년 미국 카네기홀의 아이작스턴 오디토리움에서 단독 콘서트도 열었다. 작년에는 데뷔 30주년을 기념해 정규 15집 '세런디피티'(Serendipity)를 발표하기도 했다.


    최근 이선희를 서울 강남구 청담동 소속사 건물에서 만났다. TV보다 훨씬 젊어 보이는 외모에 기자가 놀라자 그는 "제가 TV에 잘 안 나오죠"라고 농담을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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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선 최근 근황을 물었다. 이선희는 작년 3월 앨범을 발매하자마자 전국 투어 콘서트를 열어 1년여를 팬들 옆에서 보냈다. 올해에는 광복 70년 기념 프로그램 KBS '나는 대한민국'에 출연해 '1945 합창단'을 지휘하기도 했다.


    "이제 겨우 스케줄이 뜸해졌네요. 작년에는 1년 내내 공연하느라, 올해에는 '나는 대한민국'을 준비하느라 긴장을 풀 수 없었어요. 프로그램이 끝나고 한 2주를 앓았죠. 그러고 나니 좀 일상을 즐기겠더라고요. 쉴 때 하고 싶은 것들을 리스트로 적어놨거든요. 지금은 그것들을 하러 돌아다니느라 바쁘네요. (웃음)"

    그는 가수로서 31년을 살았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그는 노래와 희로애락을 함께 했다. 이선희에게 음악은 어떤 의미일까. 궁금해진 터에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음악은 일종의 소통이죠. 노래하는 사람은 노래로 자신을 표현해요. 제가 지난 시간 동안 어떤 생각을 했고,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결국 노래로 말하는거죠. 결국 저를 기억하는 사람과 계속 소통하는 거죠."

    수없이 무대에 서고, 팬들을 만나면서 스스로 기억에 남는 순간도 많았을 텐데. 질문을 던지니 우문현답이 돌아왔다.


    "담아두는 성격이 아니어서 무엇을 담으면 계속해서 쏟아내요. 노래도 그렇죠. 감정을 계속해서 쏟아내죠. 그래서 기쁘든 슬프든 감정은 그 순간에만 남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굳이 지나온 시간 동안 뭐가 남았는지 연연하지 않는 편이에요."


    이런 답을 들으니 선뜻 다른 질문을 하기가 망설여졌다. 하지만 질문을 멈출 순 없었다. 발표했던 곡 중에 가장 애착이 가는 곡을 물으니 자연스럽게 'J에게'라는 답이 나왔다.

     

    "저는 이 질문을 받으면 항상 'J에게'라고 대답해요. 이렇게 무덤덤하게 말하고 있지만 막상 'J에게'는 지금 들어도 뭉클해요. 제 스스로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게 하는 노래거든요."


    이 외에도 최근 그의 입속에 맴도는 노래가 있다. 작년 발표한 15집 수록곡 '이제야'다. '그땐 몰랐었던 거죠/ 다 알고 있다 생각했지만 어리석게도/ 느낌표, 쉼표도, 거기에 담겨 있음을'이라는 가사가 왠지 모르게 가슴에 와 닿는다.


    "요즘 제가 원래 가던 방향에서 좀 다르게 방향을 틀었거든요. 그렇게 결정하다 보니 갈등이 많아졌어요. 그랬더니 저도 모르게 이 노래를 입으로 읊조리고 있더라고요. 이 노래를 자꾸 부르는 걸 보면서 제 시선이 바뀐 걸 느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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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선희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짧은 커트 머리에 안경, 바지정장이 그것이다. 항상 바지만 입는 그를 보며 팬들은 '이선희 다리에 큰 흉터가 있다'고 수군거리기도 했다. 그는 데뷔 후 7~8년 동안 민 낯으로 방송에 나가기도 했다.


    하나의 스타일을 고집한 이유를 물으니 "그때는 그냥 그게 좋았다"라는 싱거운 반응이 돌아왔다.


    "지금 생각하면 별거 아닌데 그 당시 순간순간 부딪치는 게 많았어요. 화장도 하고, 안경도 벗으라고 하는데 그냥 싫었어요. '노래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스타일로 가야 하는데 내가 왜 저 사람들을 따라가야 하나?'라는 물음이 계속 들었어요. 그래서 고집 반 반항심 반으로 계속 밀고 나가니 그냥 제 스타일로 굳어지더라고요. 그런데 그렇게 되니 그 스타일이 싫어지더라고요. (웃음) 그냥 그때그때 하고 싶은 대로 자연스럽게 따른 것 같아요."


    이선희의 공연장에 중장년층 관객만 찾을 것으로 생각하면 상당한 오산이다. 그의 콘서트장에는 늘 20~30대 관객들이 북적인다. 특히 영화 '왕의 남자' 오리지널사운드트랙(OST)에 수록된 '인연'이란 노래가 큰 히트를 치면서 그는 젊은 세대에게 이름을 알렸다. 이선희가 손 편지를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직접 쓴 팬레터를 보내는 소녀팬들도 수두룩하다.


    "공연장에서 관객석을 보면 깜짝 놀라요. 예전보다 관객들이 젊어져서 확연하게 드러나거든요. 너무 감사한 일이죠."


    "요즘 젊은 팬들의 의사 표현은 정말 통통 튀어요. 공연 후기 게시판도 꼼꼼히 살펴보는 편인데 반응을 보면 너무 재밌어요. (웃음) 저를 언니라고 부르는 중학생 팬이 하나 있는데 자기 엄마도 저를 언니라고 부른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더니 '저희 엄마도 언니 팬인데 족보가 어떻게 돼요?'라고 물어온 적도 있어요."


    이선희는 MBC 오디션 프로그램 '위대한 탄생 2'에서 멘토를 맡는 등 후배들에게도 각별한 애정을 쏟는다. 그러나 요즘 가요계를 보면 아쉬움도 크다고 했다. 강변가요제 출신인 그는 요즘 우후죽순 생겨나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면 특히 그런 느낌을 받는다.

     

    "당시 강변가요제나 대학가요제는 우리끼리의 축제 같은 느낌이었어요. 물론 결승, 준결승을 가며 경쟁하긴 했지만 다들 노래를 좋아했고, 서로가 다르다는 걸 인정했죠. 그런데 요즘은 정말 경쟁만 해요. 모두가 다 다른 건데 나만 잘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아서 안타까워요. 1,2위 하는 순간으로 가수가 되는 건 아닌데 말이죠."


    그는 말을 이어갔다.

    "목소리는 나만의 악기에요. 다른 사람이 나보다 노래를 더 잘한다고 해서 내 자리를 가지는 건 아니에요. 모두 다 다른 목소리를 가지고 있거든요. 자신만의 목소리를 가져야 더 풍성하게 살 수 있어요. 먹자골목을 생각해보세요. 한 음식점이 아니라 다양한 음식점이 모여 있으니 많은 사람이 찾아오는 거잖아요. 다른 사람이 나와 다르다는 걸 인정하면 모두 다 잘할 수 있어요."

    이선희는 후배들이 존경하고, 닮고 싶어 하는 거장 중 하나다. 그런 만큼 요즘 TV를 틀면 이선희의 노래를 리메이크하거나 모창하는 가수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런 모습을 보며 정작 본인은 어떤 생각이 드는지 궁금했다.


    "요즘 후배들은 정말 음악을 잘해요. 예전에는 좋은 걸 표현할 줄도 몰랐어요. 또 음악 하시는 분 상당수가 쫓아가는 음악을 했죠. 그런데 요즘은 음악으로 잘 표현하는 세대가 됐어요. 제 노래를 후배들이 불러주면 너무 좋죠. 그걸 듣고 '저런 방향으로도 노래를 부를 수 있겠구나' 느끼기도 해요. 그러나 제가 부른 방식 그대로 노래하는 후배를 보면 잘하고를 떠나서 좀 아쉬워요." . 그런 후배들에게 선배로서 해주고 싶은 조언은 없을까.


    "어쨌든 겪는 거예요. 겪어낸다는 건 쌓이는 거고, 쌓이면 뱉어낼 줄 알아야 하죠. 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음악으로 뱉어내야 해요. 물론 경쟁이 다는 아니지만 그런 과정을 이겨내는 것도 필요해요. 하지만 기억해야 할 것이 있어요. 남 때문에 내가 안 되는 게 아니에요. 남도 되고 나도 되는 거죠."


    인터뷰를 진행하며 31년의 내공은 역시 다르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았다. 서두르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조목조목 밝히는 그의 카리스마에 압도되는 순간도 많았다. 한 시간여의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작은 거인' 이선희의 답은 역시 특별했다.


    "예전에는 남성과 여성의 목소리를 동시에 가진 소년 같은 목소리였다면 지금은 여성스런 목소리가 됐어요. 그러다 보니 거기에 맞는 노래를 부르게 됐고 목소리도 맑아졌어요. 이제 저는 50대 이후에 어떤 노래를 할지 고민하고 있어요. 다음 앨범이요? 앨범을 낸다는 건 비우는 작업이에요. 그래서 뭔가 가득 채워져야지만 열매가 맺어질 수 있어요. 그런데 지금은 채울 수 있는 시간이 길지 않았어요. 그래서 당분간은 계획이 없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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