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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문화재 탐방> 고성 왕곡마을, 600년 세월이 빚은 촌락

기사입력 2015.11.14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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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강원도 고성의 산봉우리에 둘러싸인 왕곡(旺谷)마을(중요민속문화재 제235호)은 독특하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안동 하회마을이나 경주 양동마을과는 명확하게 구별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양반 중심의 마을이 아니기 때문이다.

    왕곡마을의 역사는 양근 함씨인 함부열이라는 인물로부터 시작된다. 고려 대신 새로운 왕조가 들어서는 데 반대했던 그는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고성으로 낙향했다.


    마을은 함부열의 손자인 함영근이 정착하면서 본격적으로 조성됐다. 이후 강릉 최씨가 이주해 와 두 집안이 중심을 이루는 집성촌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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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성 왕곡마을.

    강원도의 바다와 산 사이에 자리한 왕곡마을은 세상과 거리를 둔 채 수백 년을 보냈다. 한국전쟁의 화마가 피해 갔고, 수시로 일어난 산불도 마을을 침범하지 못했다.


    대부분 전통마을은 마을 안에서도 건물의 규모가 뚜렷하게 대비된다. 보통 멋진 당호가 붙은 저택을 중심으로 특별한 이름이 없는 작은 집들이 배치된다.


    이러한 마을의 주인공이 되는 양반 가옥은 남성적이고 권위적이다. 솟을대문이 시야를 가로막고, 남성이 손님을 맞이하는 사랑채가 두드러진다.


    하지만 왕곡마을은 개방적이고 소박하다. 우선 대문이 있는 집이 거의 없다. 겨울철에 햇볕을 많이 받고, 눈으로 고립되지 않도록 설계한 장치다.


    반면 집 뒤쪽에는 차가운 북서풍을 막기 위해 높은 담장을 둘러쳤다. 또 건물 하나에 안방과 사랑방, 마루와 부엌을 집약시켰다. 옥호도 어려운 한문이 아니라 '큰상나말집', '한고개집', '갈벌집'처럼 수수하다.


    커다란 장승이 손님을 반기는 마을의 들머리에서는 정겨운 풍치가 느껴진다. 돌담을 따라 걸어가면 초가집과 기와집이 드문드문 보인다. 흙과 돌을 올려 쌓은 담에는 기와 대신 볏짚을 얹었다.


    만석꾼이 지은 고택인 구례 운조루나 강릉 선교장과 비교하면 가옥의 겉모습과 구조가 매우 단출하다.


    그래서 왕곡마을은 특정 가옥 하나가 아니라 전체가 중요민속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굴뚝은 왕곡마을에서 눈여겨봐야 할 대상이다. 이곳에서는 굴뚝을 숨기지 않고 밖으로 드러낸다. 게다가 연기가 솟아나오는 굴뚝의 모양이 제각각이다.


    그중에서도 기와를 차곡차곡 쌓아올린 뒤 항아리를 얹은 굴뚝이 인상적이다. 보일러 대신 아궁이로 난방과 취사를 하는 집에는 장작이 한가득하다.


    왕곡마을은 어린 자녀와 함께 돌아보면 더욱 좋다. 급격하게 변화하는 세태 속에서 살아 있는 전통을 접하고,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예약하면 전 부치기, 떡메 치기, 두부와 한과 만들기 같은 체험 활동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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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성 왕곡마을의 굴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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