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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파벨 하스 콰르텟 내한공연

기사입력 2015.12.08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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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성과 기교, 참신함까지 갖춘 21세기 현악4중주의 모범답안

    (서울=연합뉴스) 최은규 객원기자 = 일찍이 독일의 대문호 괴테는 현악4중주를 가리켜 "네 명의 지식인이 나누는 대화"와 같다 고 말했지만 파벨 하스 콰르텟의 연주는 마치 "네 명의 자유인이 벌이는 게임"과 같았다.


    각각의 개성은 살아있으면서도 서로 잘 어우러지고, 표현의 한계를 넘어선 자유로운 연주를 들려주면서도 모든 것이 정교한 기교로 다듬어졌다. 규칙 속의 자유, 정리된 분방함. 아마도 파벨 하스 콰르텟만의 독특한 앙상블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잘 알려진 드보르작의 현악4중주 12번 '아메리카'의 도입부만 해도 그렇다. 비올라로 시작하는 유명한 제1주제를 제1바이올린이 받아 연주하자 리듬도 아티큘레이션(음을 분절하는 방식)도 모두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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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G아트센터 제공>>

    중간 중간 중요한 선율을 연주한 제2바이올린 주자의 음색과 연주 스타일도 제1바이올린 주자와는 딴판이었다. 그러나 특유의 개성이 살아있는 선율들은 다른 악기 소리와 합해지며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곤 했다.


    잘 알려진 명곡에 대한 고정관념마저 뒤흔든 그들의 작품 해석 능력 역시 놀라웠다. 공연을 관람한 한 관객은 파벨 하스 콰르텟이 연주한 드보르작의 '아메리카' 4중주곡을 들으며 "베토벤의 후기 현악4중주곡과 같은 아득한 우주 공간이 느껴졌다"고 말하기도 했는데, 이는 작품에 대한 그들의 접근방식이 얼마나 독특한지를 말해준다.


    지극히 여린 소리에서부터 매우 강렬한 소리에 이르기까지 강약의 범위가 매우 넓고 음색의 표현 방식도 다양한 그들의 연주는, 향토색 짙은 드보르작 음악에서도 우주적인 아름다움까지 끄집어낼 수 있었다.


    '아메리카' 4중주곡 2악장의 애절한 선율엔 베토벤 교향곡의 느린 아다지오 악장을 닮은 숭고함이 배어 있었고, 1악장의 전개부는 베토벤의 교향곡을 방불케 하는 추진력으로 가득했다.


    무엇보다도 익숙한 선율을 참신하게 만드는 마법의 연주야말로 파벨 하스 콰르텟의 매력이라 하겠다. 드보르작의 '아메리카' 4중주 1악장 재현부에서 비올라가 다시 제시부에서 연주했던 처음의 주제를 재현할 때, 악보에 표기된 강약기호를 넘어선 풍부한 감흥이 전해졌다.


    악보 상으론 제시부의 제1주제는 메조 포르테(mf, 조금 세게)로, 재현부의 제1주제는 메조 피아노(mp, 조금 여리게)에서 메조 포르테로 강해지는 것으로 나와 있지만, 재현부에서 비올리스트가 표현한 제1주제는 단지 조금 여리게 시작해 점점 강해지는 정도의 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숨을 멈추게 할 만큼 부드럽고 감미로운 소리로 시작해 이 세상 전체를 끌어 안을만한 풍요롭고 따뜻한 소리로 번져갔다. 너무나 익숙해서 진부하기까지 한 선율에서 이와 같은 놀라운 가능성을 발견하는 상상력도 놀랍지만, 이를 구체적인 소리로 구현해낼 수 있는 능력은 더욱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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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G아트센터 제공>>

    공연 후반부에 연주된 야나체크의 현악4중주 제2번 '비밀편지'에서는 파벨 하스 콰르텟의 뛰어난 기교와 표현력에 압도될 수밖에 없었다.


    파벨 하스 콰르텟은 작곡가 야나체크가 그의 연인 카밀라에게서 느낀 연애감정을 담은 이 작품을 마치 한 편의 연극처럼 표현해냈다. 복잡한 연애감정만큼이나 템포 변화가 잦은 이 곡의 각 부분은 마치 연극의 한 장면처럼 의미심장하게 전달됐다. 특히 작곡가가 "연인의 모습을 닮았다"고 표현한 3악장에서 연인의 주제가 고요히 사라져가다가 갑자기 제1바이올린이 찌르듯 강렬하게 높은 E음을 연주하는 순간, 마치 전기 충격과 같은 사랑의 전율마저 느껴졌다.


    마르티누의 현악4중주 제3번으로부터 앙코르로 연주한 스메타나의 현악4중주 제1번의 3악장에 이르기까지 시종일관 청중의 몰입을 이끌어낸 파벨 하스 콰르텟은 개성과 기교, 참신함까지 두루 갖춘 이 시대 최고의 현악4중주단이라 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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