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현의 풍진세상> 모란봉악단은 소녀시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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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현의 풍진세상> 모란봉악단은 소녀시대가 아니다

(서울=연합뉴스) 북한의 모란봉악단이 베이징 외교가를 한차례 흔들어 놓았다. 지난 12일 베이징 공연을 앞두고 전격 철수하면서 배경을 놓고 설이 무성하다.

모란봉악단 공연 내용에 김정은 우상화가 포함된 걸 중국 측이 문제 삼았다거나 김정은이 수소폭탄을 언급하면서 중국 측이 공연 참석자의 격을 낮춘 데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격노했다는 등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하지만 어떤 것도 확실치 않다. 모란봉악단을 김정은이 직접 불러들였다는 것만은 팩트인 것 같다. 김정은만이 그런 결정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해프닝으로 북한과 중국의 외교적 긴장이 높아졌고, 이는 남북 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 사건은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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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은 모란봉악단을 북한판 소녀시대라고 부르고 있다. 모란봉악단은 17인조(연주자 10명, 가수 7명), 소녀시대는 8인조다. 외모와 키, 끼, 춤과 노래솜씨 등을 보고 엄선했다는 점은 같다. 스파르타식으로 집중 조련했다는 점도 유사하다. 섹시미를 뽐내는 발랄하고 경쾌한 율동으로 높은 인기를 누리며 남북한에서 각각 '국민 걸그룹'으로 조명받고 있다는 점도 비슷하다.


하지만 모란봉악단은 소녀시대와 다르다. 소녀시대는 이수만이라는 가수 출신의 연예기획자가 양성했지만, 모란봉악단은 북한의 최고 권력자인 김정은이 만들고 이름도 내렸다. 소녀시대는 SM엔터테인먼트라는 기업과 계약을 맺은 민간인이며 상업적 동기에 의해서만 움직인다. 모란봉악단의 신분은 민간인이 아니라 '혁명의 전사(군인)'다. 또 김정은의 지시에만 따라야 하며 철저하게 정치적 동기에 구속돼 있다.

 

모란봉악단이 베이징에 도착할 당시 입은 옷은 카키색 군복이었다.


물론 소녀시대도 세계 각국을 다니며 춤추고 노래함으로써 한류를 전파하고 국위를 선양하는 민간외교관 역할을 하지만 이는 돈과 인기를 좇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생긴 부수효과일 뿐이다


노동신문은 지난 5월 기사에서 "오늘날 모란봉악단은 백두의 혁명정신으로 천만군민을 힘있게 고무 추동하는 항일유격대 나팔수"이며 "음악 포성의 메아리는 전체 군대와 인민을 무한히 흥분시키며 혁명열, 투쟁열을 북돋워 주고 있다"고 썼다. 또 다른 기사에서는 "모란봉악단처럼 당이 준 과업을 당에서 정해준 시간에, 당이 요구하는 높이에서 결사관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2012년 7월 모란봉악단의 창단 시범공연 때는 김정은 위원장을 비롯해 최룡해 당시 인민군 총정치국장, 현철해 인민무력부 제1부부장, 김영철 정찰총국장, 조경철 보위사령관 등 권력층이 총출동해 악단에 힘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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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봉악단의 존재 이유는 사회주의 북한 체제를 공고히 하고 김정은 위원장을 옹위하는 것이다. 대표곡도 '가리라 백두산으로', '죽어도 혁명신념 버리지 말자', '내 마음', '인정의 세계' 등 김정은 위원장을 숭배·찬양하는 노래다.


중국 지도자들이 이런 노래들이 뒤섞인 모란봉악단의 공연에 거부감을 느끼고 제동을 걸었다면 그걸 탓할 수는 없다. 북한은 모란봉악단의 공연이 "비상한 감화력과 견인력으로 중국 인민들을 끝없이 매혹시킬 것"이라고 했지만, 중국 쪽에서는 베이징의 문화예술을 상징하는 국가대극원의 위엄에 어울리는 격을 갖춘 공연이 못된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안타까운 건 베이징 공연에 한껏 들떠 있다가 졸지에 귀국 지시를 받아 황망해했을 모란봉악단 단원들의 '속마음'이다. 권력의 의지와 취향, 변덕에 절대 복종해야하는 젊음이 안쓰럽다.


모란봉악단은 창단 시범공연 당시 팝송 '마이 웨이(My way)'도 불렀다고 한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이 악단이 종잡을 수 없는 '최고 존엄'의 꼭두각시에서 해방돼 카키색 군복을 벗어 던지고, 열정을 마음껏 발산하며 '마이 웨이'를 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 (김종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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