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벽' 폐간후 90년…시인 이상화 가족 독립운동에 관심 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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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벽' 폐간후 90년…시인 이상화 가족 독립운동에 관심 커져

1926년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개벽 발표 후 잡지 폐간
형수 권기옥, 비행기타고 조선총독부에 폭탄투하 꿈꿨다

(대구=연합뉴스) 김용민 기자 =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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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화 시인 초상

시인 이상화(1901∼1943)가 1926년 국내 최초의 종합잡지 '개벽(開闢)' 70호에 발표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는 한국의 대표적인 저항시다.


일제는 이 시가 실렸다는 이유로 '개벽'을 발매 금지 처분했다.


그해 8월 1일 개벽은 72호를 끝으로 강제 폐간된다.


3·1 독립운동을 주도한 천도교 이념을 기반으로 발간된 '개벽' 폐간 90년을 맞아 시인 이상화와 그의 집안 사람들이 다시 조명받고 있다.


저항 민족시인이라는 말이 어울리게 이상화는 어린 시절부터 일제에 저항하는 면모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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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수성못에 세워진 이상화 시비

1901년 대구에서 태어난 그는 1918년 서울 중앙학교 3년을 수료한 뒤 이듬해 대구 3·1 운동 거사 모임에 참석했다가 사전에 발각되자 다시 서울로 몸을 피한다.


1922년 문예지 '백조(白潮)' 동인으로 참여해 '말세의 희탄', '단조', '가을의 풍경' 등 시를 발표한 뒤 일본으로 건너가 공부하던 그는 이듬해 9월 관동대지진으로 일본인들이 조선인을 무차별 학살하는 모습에 분노해 1924년 귀국한다.


그해 서울 가회동에 머물며 시 '나의 침실로'를 발표하고 1925년 카프(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 발기인으로 참여한 뒤 이듬해(1926년)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개벽'에 발표하면서 우리나라 대표적인 저항 민족시인 반열에 오른다.


그 후 그의 인생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1928년 6월 신간회 출판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우국지사들이 달성군의 한 부호를 권총으로 위협한 사건에 연루돼 고초를 겪는다.


1936년에는 독립운동가인 형 이상정 장군을 만나러 중국을 다녀온 뒤 일본경찰에 붙잡혀 심한 고초를 당한다.


1939년에는 교남학교 조선어, 영어, 작문교사로 지내며 불온한 내용의 교가를 지어 부르게 했다는 이유로 가택 수색을 당해 자신의 작품 원고는 물론 시인 이장희의 유고까지 압수되는 고통을 겪었다.


1941년 시 '서러운 해조'를 문장 폐간호에 발표한 그는 결국 1943년 4월 25일 대구 계산동에서 숨을 거둔다.


1948년 그를 기리는 문인들이 해방 후 최초로 대구 달성공원에 그의 시비를 세웠고 1985년 죽순문학회가 '상화 시인상'을 제정한 이래 매년 수상자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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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화 시인 고택

2008년 8월 광복 63년을 맞아 대구시민 정성으로 문을 연 그의 고택은 해마다 20만명이 찾는 명소가 돼 있다.


그의 형 이상정(1897∼1947)은 계성·신명학교 교사로 일하다 1923년 만주로 망명, 독립운동에 헌신한 애국지사다.


상해·남경 등 중국 각지에서 항일투쟁하던 그는 1939년 임시정부 의정원 의원을 지내고 신한민주혁명당을 조직하는 한편 화중군 사령부 고급막료로 남경전투, 한구전투에 참전해 일제와 싸웠다.


해방 후 상해에 머물며 교포 보호에 힘쓰던 그는 1947년 귀국 후 뇌일혈로 별세했다.


정부는 1977년 그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이상정의 부인이자 시인 이상화의 형수인 권기옥(1901~1988)은 한국과 중국 양국의 첫 여성 비행사로 유명한 인물이다.


1901년 평양에서 태어난 그녀는 숭의여학교에서 송죽결사대에 가입, 1919년 3·1 운동에 참여했다가 6개월 옥고를 치렀다.


그 뒤 임시정부공채 판매에 나서는 등 적극적인 항일운동을 하던 중 일제의 추격을 피해 상하이로 망명했다.


권기옥은 중국에서 미국인 비행사 아트 스미스의 곡예비행을 보고 "비행기를 타고 조선총독부에 폭탄을 던지겠다"고 결심한다.


1924년 중국 윈난성 윈난항공학교에 입학한 뒤 이듬해 2월 여성 비행사 자격을 얻었지만 항공 전투단을 구성할 여력이 없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신에 중국 공군에 들어가 일제와 싸웠다.


해방 후 한국 공군 창설에 기여했고 6·25 당시에는 국회 국방위원회 최초로 여성 전문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이처럼 항일에 앞장선 이상화 집안 사람들의 이야기가 최근 여러 예술 작품으로 소개되고 있다.


소설가 정혜주는 최근 권기옥 평전 '날개옷을 찾아서'(하늘자연)를 출간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권기옥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섬세한 필치로 다룬 이 작품은 식민지 여성의 수동성을 뛰어넘어 진취적인 여성상을 유감없이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구시립극단도 최근 권기옥·이상정 부부와 시인 이상화 일대기를 연극과 뮤지컬로 동시에 제작해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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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두류공원에 세워진 이상화 동상

지난 4∼6일 대구문화예술회관 무대에 오른 연극 '비상'은 항일 독립운동가 권기옥을, 지난 11∼13일 무대에 오른 뮤지컬 '비 갠 하늘'은 한국 최초 여성비행사 권기옥을 중심으로 이상화 집안 사람들과 항일운동가들의 애환을 그려냈다.


특히 뮤지컬 작품에서 이상화 역을 맡은 배우가 '빼앗긴 들의 봄을 찾아서'라는 노래를 부르는 장면에서 관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이상화기념사업회 관계자는 "이상화 집안 사람들은 엄혹한 일제시대에 불같은 저항정신으로 나라 잃은 백성의 책무가 무엇이며 지조와 애국이 무엇인가를 행동으로 보여 준 참된 애국지사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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