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다롄 안중근의사 매장추정지에 암장한 분묘 수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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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다롄 안중근의사 매장추정지에 암장한 분묘 수백기

(다롄=연합뉴스) 홍창진 특파원 = 안중근 의사가 일제에 의해 순국한 뒤 매장된 곳으로 추정되는 중국 랴오닝(遼寧)성 다롄(大連)의 야산은 수십 년 동안 곳곳에 암장(暗葬)한 개인분묘로 가득했다.

안 의사 순국일을 하루 앞둔 지난 25일 다롄 뤼순(旅順)구의 뤼순감옥박물관 북쪽 예전 '마잉허우'(馬營後)로 불린 야산을 답사했다.


이곳은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추적해온 연구자와 시민단체가 유해 매장 가능성이 크다고 공통으로 지목하는 곳이다.


야산을 뒤진 끝에 지난 2001년 다롄시문물관리위원회가 옛 뤼순 감옥 묘지터에 세운 비석을 발견했다.

일제는 1907년부터 1945년까지 이 묘지 터에 길이 90~100m, 넓이 1m, 깊이 2m 정도의 도랑을 5개 파서 사형을 집행하거나 옥사한 수감자들의 시신을 매장했다.


일제 패망 이후 방치되던 감옥묘지에 인근 주민들이 개인분묘를 설치하면서 현재 수백여기(基)가 난립했고 상당수는 허물어졌다.


관리의 손길이 닿지 않아 잡초가 무성하고 도랑이 있던 자리엔 나무들이 자라나 원형을 찾기도 힘든 상태이다.


일본 외무성 외교사료관이 소장한 사형보고서는 "당일(1910년 3월26일) 오전 10시 20분 안중근의 시신을 특별히 감옥에서 제작한 침관(寢棺)에 넣고 흰 천으로 덮어 교회당으로 운구한 뒤 우덕순·조도선·유동하 등 공범 3명을 끌어내 예배하게 하고 오후 1시 감옥 묘지에 매장했다"고 적었다.


그러나 뤼순 감옥에서 안 의사를 처형한 일제는 시신을 유족에게 인계하지 않고 유해를 어디에 묻었는지도 밝히지 않았다.


순국 당시 뤼순 감옥 형무소장의 딸 이마이 후사코(今正房子)가 제시한 두 장의 사진과 증언에 기초해 지난 2008년 한국 정부가 뤼순 현지에서 유해 발굴을 시도했으나 찾을 수 없었다.


감옥 주변은 20층 이상의 고층 건물과 아파트 등이 빼곡히 들어선 개발지역으로 변해버려서 안 의사의 유해를 찾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한국 정부는 재작년 중국 측에 감옥 묘지 일대에 대한 지표투과레이더(GPR) 조사를 요청했으나 공식적인 답변을 받지 못했다. 뤼순 일대가 군사보호지역인 데다가 안 의사 고향이 황해도 해주인 점을 들어 유해 발굴에 적극적인 북한 입장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다롄안중근연구회는 "유해 매장지와 관련한 네 가지 설 가운데 유력하던 원보산 남사면이 발굴에서 성과가 없었고 나머지 3곳은 감옥 묘지의 어딘가를 가리키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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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롄=연합뉴스) 홍창진 특파원 = 안중근 의사가 일제에 의해 순국한 뒤 매장된 것으로 추정되는 중국 랴오닝(遼寧)성 다롄(大連)의 옛 뤼순감옥 묘지터는 수십년동안 암장(暗葬)한 개인분묘로 가득했다. 2016.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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