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봐도 연민정은 해도 해도 너무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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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봐도 연민정은 해도 해도 너무해요"

MBC '왔다! 장보리'의 '미친 존재감' 황영희…"계 탄 기분"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 "계 탄 기분이에요. 요즘엔 모두가 저를 알아봐요. 정말 기분이 좋죠. 배우 하지 말라고 그렇게 반대했던 저희 엄마도 무척 좋아하세요. 태어나서 제일 큰 효도를 한 기분입니다."

 

'미친 존재감'이라는 표현이 있다. 주연은 아니지만 한 장면을 나와도 시선을 확 잡아끄는 연기력을 선보이는 배우에게 네티즌이 붙이는 찬사다.

 

지금까지는 주로 강한 카리스마를 뿜어내는 캐릭터에 따라붙었던 이 표현이 사투리를 걸쭉하게 쓰고 무식한데다 성격 한번 투박한 시골 아줌마의 머리 위에 걸렸다.

 

현재 시청률 고공행진 중인 MBC TV 주말극 '왔다! 장보리'에서 연민정(이유리 분)의 엄마 도씨(이름은 어울리지 않게 도혜옥이지만, 극중에서도 주로 도씨라 불린다)를 연기하고 있는 배우 황영희(45)가 그 주인공이다.

 

지난 26일 광화문에서 만난 황영희는 극중에서의 '촌스럽고 추레한 할매'의 모습과 달리 곱게 단장한 '차도녀'(차가운 도시 여자)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멋진 반전이다.

"요즘 살맛 납니다!"라며 활짝 웃은 그는 "어딜 가든 다 알아봐 주시는데 이런 건 정말 처음이에요.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오네요"라며 기쁨을 숨기지 않았다.

 

악녀 연민정의 친엄마이자 드라마의 주인공 도보리(오연서)의 계모인 도씨는 친딸을 위해서는 불구덩이에라도 뛰어들 수 있는 강한 모성애의 소유자이자, 의붓딸 도보리는 마음 내키는 대로 대하는 지극히 이기적인 인물이다. 하지만 투박한 인간미가 있고, 구석구석 코믹한 면을 가지고 있어 전형적인 악덕 계모와는 노선을 달리한다.

 

그래서 연민정과 작당해서 나쁜 짓을 할 때는 밉지만, 도보리 생각에 남몰래 가슴을 치는 모습에서는 측은지심이 든다. 또 들킬까 봐 가슴을 졸이면서도 입을 악물고 나쁜 짓을 할 때면 그 희극적인 모습에 웃음이 절로 나온다.

 

앞서 '왔다! 장보리'의 김순옥 작가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황영희 씨가 도씨를 아주 잘 연기해주고 있다. 독함과 코믹함이 공존하기가 어려운데 그게 다 되는 배우라 드라마가 산다. 앞으로 정말 잘 되길 바란다"고 극찬한 바 있다.

 

황영희는 "모든 게 다 대본에 들어 있다. 애드리브를 하는 건 없다. 대본이 너무 재미있어 우리 배우들도 매회 어찌 될지 궁금해하며 기다린다"며 자신에게 돌아오는 칭찬을 작가에게 돌렸다.

 

그는 이어 "또 백호민 PD님의 연출도 탁월하다. 어디서 어떻게 힘을 줘야 하는지 이 드라마를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알고 지시한다"고 덧붙였다.

 

도씨의 악행이 코믹하게 드러난 장면 중 하나는 도씨가 도보리의 유전자검사 결과를 조작하기 위해 자기가 이를 닦은 칫솔을 도보리의 칫솔과 바꿔치기하는 신이다. 그냥 이를 닦아도 될 것을 황영희는 비장한 표정으로 인상을 팍 쓴 채 박박 칫솔질을 해 폭소를 안겨줬다.

 

황영희는 "그 장면도 백 PD님이 '차인표 씨의 분노의 칫솔질'(과거 차인표가 드라마에서 보여줘 화제가 된 장면)을 구체적으로 주문해서 나온 것"이라며 웃었다.

그는 이렇게 시종 겸손해했지만, 도씨의 캐릭터가 황영희라는 배우를 만나 날개를 달았다는 데는 이견이 없어 보인다. 또한 그가 도씨를 통해 연기인생 20여 년 만에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이름 석자를 알리게 된 것 역시 분명하다.

 

반전의 모습으로 인터뷰에 나타난 황영희는 나이도 반전이다. '왔다! 장보리'에서는 손녀도 있는 '할매'지만 그는 1969년생으로 올해 마흔다섯에 '불과'하다. 20대 때부터 할머니 역을 했다는 '전원일기'의 김수미 이래 최고의 노인 연기가 아닐까 싶다.

 

"사실 나이 부분을 밝히는 게 조심스러웠어요. 처음에 오디션 볼 때도 도씨를 맡기에는 나이가 너무 젊다고 작가님, PD님이 다 고민하셨거든요. 또 제 나이가 알려지면 시청자들의 몰입에 방해가 될까 걱정되기도 했고요."

 

하지만 연기를 못 해서가 아니라 잘해서 주목받는 지금, 그에 관한 모든 것이 화제가 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제가 피부가 하얀데 나이 들어 보이게 하려고 까맣게 분장을 하고 있고, 새치가 많아서 평소에는 염색하는데 이번에는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황영희는 목포 출신이다. 극중 유일하게 정통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하는 배우인 그는 "사투리 연기에 어려움이 없고 무엇보다 도씨가 우리 엄마나 그 주변 분들의 모습과 많이 닮아서 연기에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PD님께 다른 역 말고 도씨를 시켜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연극에서 모성애 강한 역을 많이 해본 것 역시 그가 도씨 역할에 욕심을 내게 했다.

그는 고교시절부터 목포에서 극단 생활을 했고, 목포전문대 유아교육과를 졸업한 후 상경해서는 극단 성좌를 거쳐 서른살부터 극단 골목길에서 활동 중이다.

 

"맞벌이 부모 밑에서 늦둥이로 자랐는데 시골에서 컸음에도 내성적이어서 동네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어요.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았는데 오빠들의 소설책을 읽거나 라디오방송 '김자옥의 사랑의 계절'을 들으면서 감수성을 키운 것 같아요. 대학도 연영과를 가고 싶었지만 엄마가 가난하고 힘든 연극배우의 길을 무척 반대하셨어요. 그래서 차선책으로 유아교육과를 선택했는데 실습을 나가보니 적성에 안 맞더라고요.(웃음)"

 

지금은 '미친 존재감'이라는 찬사를 받고, 연극 '만선', '경숙이, 경숙이아버지', '목란언니' 등을 본 관객에게는 이미 '묵직한 배우'로 평가받는 황영희는 그러나 "예전에 연기를 정말 너무 못했다"고 말했다.

 

"연기를 정말 못했어요. 그래서 불러주는 데도 없어서 3년을 쉬기도 했죠. 그러다 극단 골목길에 들어가 박근형 선생님에게 '연기하지 마라', '가짜로 하지 마라'는 말을 듣고 배우면서 조금씩 나아진 것 같아요."

 

'경숙이, 경숙이 아버지'를 본 이재규 PD에게 발탁돼 '베토벤 바이러스'를 시작으로 드라마에 진출한 그는 '파스타', '마이 프린세스', '내 마음이 들리니', '제왕의 딸 수백향', '정도전' 등에 차례로 출연하며 시청자를 만났다. 그리고 '왔다! 장보리'를 통해 연기인생 20여 년 만에 홈런을 쳤다.

 

"우리 드라마 보고 '막장'이라고 하는데 회를 거듭할수록 철학이 보이는 것 같아요. 등장인물 모두가 엄마인데 그들을 통해 여러 엄마의 모습, 여러 형태의 모성애를 보여주며 생각하게 하죠. 모성애가 다 아름답지도, 다 뜨겁지도 않잖아요. 도씨는 이기적인 모성을 대변하는 인물인 거죠."

 

친딸 연민정을 위해 어떤 짓도 마다하지 않던 도씨는 그러나 연민정이 브레이크없이 내달리자 마지막 남은 인간적인 양심으로 최근 그에게 제동을 걸고 나섰다.

 

"도씨가 보기에도 연민정이 해도 해도 너무하니까, 미치지 않고서는 금세 들통날 짓을 하니까 엄마로서 바로잡으려고 나선거죠. 인간이라면 이렇게까지는 할 수 없다고 생각한 거죠. 시청자들도 연민정이 과연 나중에 어떻게 벌을 받고 용서를 받을 것인가를 보려고 기다리시는 건데, 저희도 궁금해 죽겠어요.(웃음)"

 

"드라마를 많이 안 해봐서 울렁증도 있었고, 이번 드라마 연기가 이제까지 했던 패턴과 달라 고민도 많았다"는 그는 "좋은 작가, 연출자를 만나 또 새로운 연기를 경험했다. 반응까지 좋아 정말 기분 좋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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