왁자지껄, 정 넘치는 전주 도심 '시골장'…좌판 300여m 진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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왁자지껄, 정 넘치는 전주 도심 '시골장'…좌판 300여m 진풍경

전주천변 매곡교 아래 작은 장터 4∼5년 전부터 입소문 노점상 몰려

(전주=연합뉴스) 임청 기자 = 29일 새벽 3시 40분께 어둠이 깔린 전주 남부시장 매곡교 아래 전주천변.

전주천에서 피어오른 물안개로 둔치 주변은 영화에서나 등장할 듯한 묘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전주에서 40∼50여분 거리의 정읍에서 온 태모(65)씨 부부는 둔치에 임시 천막 2동을 설치하느라 몹시 분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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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노점(露店)을 열기 위해 집에서 나선 시각은 새벽 3시께. 집에서 가져온 것은 몇 년 전 귀농한 아들 부부와 직접 기른 양파와 감자, 깻잎, 상추, 부추 등 채소류였다.

태씨의 새벽 장사는 10여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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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시작할 때는 장사꾼들이 10∼20여 명밖에 없었어. 4∼5년 전부터 입소문을 타더니 전주는 물론 인근 정읍과 임실, 완주 등에서 노점상들이 대거 몰려 이렇게 엄청난 규모로 커졌지"

태씨와 잠시 이야기 하는 사이 어느새 좌판이 길게 늘어서더니 삽시간에 300m나 됐다.


어둠이 물러가고 서서히 날이 밝아온 새벽 5시께가 되자 여기저기서 장을 보려는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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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시장 인근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상점주에서부터 주말을 맞아 아침 반찬거리를 마련하려는 손님, 인근 전주한옥마을 숙소에서 잠을 잔 뒤 아침 운동 겸 장터 구경을 나온 관광객까지 각기 다양한 인파로 노점거리가 북적였다.


마침 매곡교 밑 끝쪽에 뒤늦게 좌판을 깔던 2명의 아낙은 서로 "내가 먼저 왔다"며 자리를 놓고 입씨름이 한창이었다.


인근서 자그마한 식당을 운영하는 정모(60·여)씨도 매일 아침 이곳을 찾는 단골 중 한 명이다. "콩나물과 호박, 나물 등을 사러 나왔는데 오늘 좋은 물건이 많이 보인다"는 그는 "아무래도 인근 시골에서 직접 농사를 지은 것들인 게 싱싱해서 좋지"라며 연신 좌판을 기웃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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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시장 앞 천변 좌판 노점이 열리기 시작한 것은 14∼15년전부터.

남부시장내 노점과 매곡교 위의 좌판이 점차 늘어면서 그 꼬리가 지금의 천변 둔치까지 이어진 때문이다.

노점거리에서 주인과 손님간에 '흥정'은 빠질 수 없는 재미다.

이날 남편과 함께 제철 맞은 마늘을 사기 위해 찾은 하모(59)씨도 상인과 흥정에 한창 열을 올렸다.

"하루 이틀 보는 것도 아니고 좀 깎아∼줘. 싸게 주면 더 살게". 하씨의 계속된 요구에 상인은 결국 두 손을 들고 말았다.

장터를 한 바퀴 돌고 다시 태씨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던 중 이곳에서 8년째 커피를 판다는 김모씨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는 "그래도 사람 냄새나는 장터지. 요즘 이곳에 나오는 상인들이 한 300여명정도 돼. 전국 도심 한가운데 이렇게 북적이는 장터는 아마 없을 거야. 1년중 각종 채소와 생것(살아있는 생선)들을 사기에는 요즘이 딱이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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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잔에 500원하는 커피 200여잔을 판다는 그는 "그것 팔아봐야 돈 안 돼. 겨우 먹고만 살지" 라며 너스레를 떨며 종이컵 잔들이 잔뜩 쌓인 소쿠리를 들고 일어섰다.


전주에서 30분가량 떨어진 임실에서 첫 버스 편으로 올라왔다는 최모(65)씨는 40여년째 야채 행상을 한다고 했다. 이날 보자기 채로 상추와 나물 몇 가지를 내놓은 그는 "아직 개시도 못 했다"며 마수걸이를 해달라는 눈치였다.


"내가 지금 나이에 돈을 벌면 얼마나 벌겄어. 그냥 집에 있으면 병 나니께 온 거야. 건강도 챙기고 손주들 까까(과자)나 사주거나 용돈 줄 돈이나 좀 벌어보려고 오는 거지".

바쁜 손을 놀리는 할머니의 마디 굵은 손에서 고된 세월의 흔적을 엿볼 수 있었다.


아침 7시께가 되자 노점거리의 인파는 최고조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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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철 맞은 '마늘'과 '매실'은 물론 전주의 대표 식재료인 콩나물과 각종 나물, 감자, 양파, 가지, 깻잎, 풋고추 등의 많은 식재료가 아침 식사의 구미를 당겼다.


어디서 왔는지 사진기를 든 여러 작가가 장터의 모습을 담기 위해 연신 셔터를 눌러댄다.


여느 도심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시끌벅적, 왁자지껄'한 시골 장터의 정감을 느낄 수 있는 아침 산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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