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연합뉴스) 임청 기자 = 29일 새벽 3시 40분께 어둠이 깔린 전주 남부시장 매곡교 아래 전주천변.
전주천에서 피어오른 물안개로 둔치 주변은 영화에서나 등장할 듯한 묘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전주에서 40∼50여분 거리의 정읍에서 온 태모(65)씨 부부는 둔치에 임시 천막 2동을 설치하느라 몹시 분주했다.
태씨의 새벽 장사는 10여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태씨와 잠시 이야기 하는 사이 어느새 좌판이 길게 늘어서더니 삽시간에 300m나 됐다.
어둠이 물러가고 서서히 날이 밝아온 새벽 5시께가 되자 여기저기서 장을 보려는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마침 매곡교 밑 끝쪽에 뒤늦게 좌판을 깔던 2명의 아낙은 서로 "내가 먼저 왔다"며 자리를 놓고 입씨름이 한창이었다.
인근서 자그마한 식당을 운영하는 정모(60·여)씨도 매일 아침 이곳을 찾는 단골 중 한 명이다. "콩나물과 호박, 나물 등을 사러 나왔는데 오늘 좋은 물건이 많이 보인다"는 그는 "아무래도 인근 시골에서 직접 농사를 지은 것들인 게 싱싱해서 좋지"라며 연신 좌판을 기웃거렸다.
남부시장내 노점과 매곡교 위의 좌판이 점차 늘어면서 그 꼬리가 지금의 천변 둔치까지 이어진 때문이다.
노점거리에서 주인과 손님간에 '흥정'은 빠질 수 없는 재미다.
이날 남편과 함께 제철 맞은 마늘을 사기 위해 찾은 하모(59)씨도 상인과 흥정에 한창 열을 올렸다.
"하루 이틀 보는 것도 아니고 좀 깎아∼줘. 싸게 주면 더 살게". 하씨의 계속된 요구에 상인은 결국 두 손을 들고 말았다.
장터를 한 바퀴 돌고 다시 태씨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던 중 이곳에서 8년째 커피를 판다는 김모씨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는 "그래도 사람 냄새나는 장터지. 요즘 이곳에 나오는 상인들이 한 300여명정도 돼. 전국 도심 한가운데 이렇게 북적이는 장터는 아마 없을 거야. 1년중 각종 채소와 생것(살아있는 생선)들을 사기에는 요즘이 딱이지 뭐"
전주에서 30분가량 떨어진 임실에서 첫 버스 편으로 올라왔다는 최모(65)씨는 40여년째 야채 행상을 한다고 했다. 이날 보자기 채로 상추와 나물 몇 가지를 내놓은 그는 "아직 개시도 못 했다"며 마수걸이를 해달라는 눈치였다.
"내가 지금 나이에 돈을 벌면 얼마나 벌겄어. 그냥 집에 있으면 병 나니께 온 거야. 건강도 챙기고 손주들 까까(과자)나 사주거나 용돈 줄 돈이나 좀 벌어보려고 오는 거지".
바쁜 손을 놀리는 할머니의 마디 굵은 손에서 고된 세월의 흔적을 엿볼 수 있었다.
아침 7시께가 되자 노점거리의 인파는 최고조에 달했다.
어디서 왔는지 사진기를 든 여러 작가가 장터의 모습을 담기 위해 연신 셔터를 눌러댄다.
여느 도심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시끌벅적, 왁자지껄'한 시골 장터의 정감을 느낄 수 있는 아침 산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