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메카' 반세기 지킨 충무로 터줏대감
  • 해당된 기사를 공유합니다

'영화의 메카' 반세기 지킨 충무로 터줏대감

영화사 사장 아내 문금순 씨…한식당 46년째 운영

(서울=연합뉴스) 이태수 기자 = 한국 영화의 메카로 불리는 서울 중구 충무로에서 반백년 세월을 함께 한 음식점 주인이 있다. 그의 남편 역시 영화사 대표를 맡아 한국 영화의 중흥기를 이끌어 '한국 영화사의 산 증인'이라 부를 만하다.


8일 서울 중구에 따르면 그 주인공은 한식집 '장독대'를 운영하는 문금순(80)씨다.


서울 중구 토박이인 문씨는 어린 시절부터 만담, 연극, 악극 등을 보며 연예계를 어깨너머로 지켜봤다.


한국전쟁 이후 한국연예주식회사 경리직원으로 취직하면서 영화계에 발을 담갔다.


당시 회사 사장이던 임화수 씨는 민간 자본을 끌어모으는가 하면, 영화제작비에 대해서 재무부의 면세 조치를 따내 한국 영화산업의 토대를 닦았다고 평가받는 인물이었다. 임씨가 영화 수준을 높이고자 찾은 기획자가 바로 문씨의 남편인 차태진 극동흥업영화사 사장이었다.


1959년 화촉을 밝힌 문씨 부부는 충무로와 명동 일대를 열 번 넘게 이사 다니며 셋방살이를 이어갔다.


이 기간 남편 차씨가 대표로 있는 회사에서 '노란샤쓰 입은 사나이'(1962), '김약국집 딸들' (1964), '맨발의 청춘'(1964) 등 한국 영화의 대표작 108편이 만들어졌다.


이 시기 충무로는 배우, 스태프, 극작가 들이 모여들었고 이들이 지낼 여관과 다방이 많아 그야말로 한국의 할리우드라 불렸다.


문씨는 "영화는 생선과 같다. 현장에서 생동감 있게 찍은 영화를 유행에 밀리지 않게 바로 영화관에 올려야 흥행에 성공한다"며 "충무로는 그 조건을 다 갖췄다"고 회고했다.


요즘 영화계에서는 1천만 관객을 들여야 '대박'이 났다고 하지만, 당시에는 10만명이 히트작의 기준이었다고 한다.


달도 차면 기울듯이, 충무로 영화산업은 1960년대 후반 TV의 등장으로 시들해지기 시작했다. 남편의 극동흥업영화사도 1969년 부도를 내고 말았다.


생계를 떠맡은 문씨는 1970년 설렁탕집 '설미옥'을 열었고, 이는 지금의 '장독대'라는 음식점으로 이어졌다. 이곳은 지금도 김기덕 감독 등 유명 영화인들이 드물지 않게 찾아오는 곳이다.


그는 인근 서울 중부경찰서에서 26년째 의경어머니회 봉사활동도 펼치고 있다.


문씨는 "충무로가 살려면 명동과 이어져야 한다"며 "문예인들이 자유롭게 드나들도록 임대료도 싸게 해야 하고, 건물 리모델링도 쉽게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14653455727832.jpg
문금순 씨 (서울 중구 제공)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