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書香萬里> 美교실 흔드는 '그릿 열풍'…"성공은 재능보다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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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문화

<書香萬里> 美교실 흔드는 '그릿 열풍'…"성공은 재능보다 노력"

안젤라 덕워스 美펜실베이니아대 교수 『그릿(Grit):열정과 인내의 힘』

(워싱턴=연합뉴스) 노효동 특파원 =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전미 영어철자대회'(일명 스펠링비)의 지난해 우승 트로피는 13세의 켈리 클로즈에게 돌아갔다. 5년째 출전해 '4전5기'를 해낸 클로즈는 그야말로 지독한 '노력파'였다. 클로즈가 철자 익히기에 공을 들인 시간은 적어도 3천시간. 스스로에게 퀴즈를 내고 답하는 형식으로 실수를 찾아내고 이를 교정해나가는 부단한 연습의 과정이었다. 이 어린 소녀에게는 분명 중도 탈락한 학생들과는 다른 '그 무언가'가 있었다.


안젤라 덕워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심리학 교수가 최근 펴낸 저서 『그릿(Grit):열정과 인내의 힘』은 바로 '그 무언가'를, 한걸음 더 나아가 성공의 방정식을 알려주는 책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제목 그대로 '그릿', 즉 목표를 반드시 이뤄내겠다는 투지 또는 불굴의 의지가 재능이나 IQ(지능지수), 소질을 압도한다는게 책을 관통하는 메시지다. 클로즈에게는 바로 강력한 그릿이 있었다.


어찌보면 누구라도 손쉽게 말할 수 있는 주제일 수도 있지만 이 책은 추상화된 개념이 아니라 구체적 실증 사례와 연구분석 결과로 뒷받침하고 있어 '힘'이 느껴진다.


저자가 가장 먼저 '그릿'에 주목하게 된 계기는 일명 '야수의 막사'(Beast Barracks)로 불리는 미국 육사(웨스트포인트)의 신입생 프로그램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매년 입학생들을 상대로 1학년 과정을 시작하기 전 6주간에 걸쳐 기초 군사훈련을 실시하는 과정이다.


특이한 것은 전국 각지에서 어마어마한 경쟁의 관문을 뚫고 들어온 이 우수한 인재들의 5% 가량이 매년 스스로 중도 하차한다는 점이다. 2004년의 경우 1천218명 가운데 71명이 4년 전액 장학금을 받고 육사를 다닐 기회를 스스로 포기했다. SAT(미국대학수능) 성적이나 고등학교 내신, 체력점수 등과는 상관관계가 없었다. 끝까지 훈련을 마친 이들과 그렇지 못한 이들의 결정적 차이는 바로 그릿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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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각계에서 성공한 리더들이 한결같이 '그릿의 표본'(Grit Paragons)이라고 주저없이 말한다. 재계와 예술계, 체육계, 학계, 언론계, 법조계의 리더들을 직접 심층 인터뷰해 체득한 결론이다.


물론 그들에게는 분명 재능이 있었고 운도 따라줬다. 그러나 진짜 성공스토리는 거기에 있지 않았다. 실패 앞에서 좌절하지 않고 끈질기게 견디며 이를 다시 극복해낸데 있었다. 탁월한 재능과 잠재력을 갖고도 실패 앞에서 주저앉는 경쟁자들은 결국 뒤안길로 사라졌다. 젊었을 때 어설픈 신파조의 글을 쓴다고 조롱을 받았던 한 작가가 부단하게 정진한 끝에 '구겐하임 상(賞)'을 수상한 것도 바로 이 그릿의 힘이었다.


어려서 부터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 '후터스 걸'까지 했던 캣 콜(38)이 유명 빵집 체인인 '시나봉'의 최고경영자로 스카웃될 수 있었던 것도 뭇사람들에게서 찾기 힘든 투지와 열정, 그리고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자는 그릿의 중요성을 알기 쉽게 설명하기 위해 '재능×노력=기량, 기량×노력=성공'이라는 나름의 방정식을 내놨다. 결국 그릿의 현실적 결정체인 노력이 가미되지 않으면 아무리 재능이 있고 기량이 뛰어나도 한계가 명백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책이 주는 보다 중요한 메시지는 그릿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길러지는 것'이라는데 있다. 저자는 그릿을 기르는 방법으로 4단계를 꼽았다. 첫째는 열정을 따르는 것(follow your passion), 즉 자신의 관심사를 분명히 하고, 둘째는 엄청난 연습을 하는 것이며, 셋째는 다 높은 목표의식을 갖고, 넷째는 '7전8기'의 정신처럼 어떤 난관도 뚫고 성장해나갈 수 있다는 마음가짐, 다시 말해 희망을 품는 것이다.


덕워스 교수가 제시한 성공 방정식은 이미 미국의 일선 교육현장에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1994년 뉴욕 빈민촌에서 시작된 KIPP(지식이 힘이라는 프로그램: Knowledge Is Power Program)를 확대 발전시키는데 결정적 영향을 끼친 이가 바로 덕워스 교수다. 마이클 페인버그와 데이빗 레빈이 시작한 이 프로그램은 애초부터 '사랑의 매'(tough love)식의 강력한 규율식 교육으로 빈민층과 소수인종 자녀들의 학업성적을 크게 끌어올린 것으로 유명했다. 덕워스 교수는 여기에 학생들이 스스로 동기와 자기조절, 회복능력을 갖추도록 하는 그릿 개념을 적용했다. 대성공을 거둔 이 프로그램은 지금 20개주에 걸쳐 183개의 차터스쿨에 적용되고 있다.


물론 이견이 없지는 않다. 뉴욕타임스(NYT) 베스트셀러 서평을 맡은 주디스 슐레비츠는 자기표현보다 자기규제를 강조하는 교육이 빈곤층 자녀를 가난에서 벗어나게 할지는 몰라도 결국 행동이 억제되고 지나치게 저자세를 보이는 '일벌레'로만 만드는 것 아니냐고 꼬집는다.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고 독자적 판단과 창의성을 키우는게 보다 올바른 교육의 지향점이라는 주장이다.


재능과 지능은 타고나는 것이며 성공의 소수 천재의 몫이라는 인식이 팽배한 미국 사회에 그릿 열풍이 드리우는 파장은 분명히 신선하다. 그러나 아무리 그릿이 뛰어나더라도 성공에 이르기까지 넘기 힘든 '시스템적 장벽'이 많은 것 역시 미국 사회의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갈수록 심화되는 부의 불평등을 비롯해 인종, 성, 종교를 기준으로 '보이지 않는 칸막이'가 너무나도 많다.


덕워스 교수도 그릿을 만병통치약이라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그는 "내 연구에는 좋은 스승을 두는 것과 같은 외부적 힘과 운이 고려되지 않았다"며 "이것은 성공의 심리학일 뿐이며 완전하지는 않다"고 말했다. 그릿 만으로도 성공이 가능한 시스템, 그것은 단순히 미국 뿐만 아니라 작금의 한국교육과 사회도 의미있게 곱씹어봐야할 화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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