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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 증축 대지서 영조 막내딸 집터 유적 확인

기사입력 2016.06.28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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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단부, 초석 잘 남아…근현대사 압축적으로 펼쳐진 장소"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헌법재판소 청사 증축 대지에서 조선 영조의 막내딸이 시집간 뒤 살았던 집터로 추정되는 유적이 나왔다.


    28일 문화재청에 따르면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건물 남쪽의 도서관 건축 예정지를 발굴조사한 결과 18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 사이에 지어진 건물 6동의 유구(遺構)와 백자 조각, 분청사기, 기와 조각 등이 확인됐다.


    이들 유적은 1960년대 건설된 창덕여고 부속 건물과 1922년 세워진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의 콘크리트 기초부 아래에서 발견됐다.


    그중 시기가 가장 오래된 18세기 후반 집터 유적은 옛 지도나 사료 등으로 미뤄 영조와 숙의 문씨 사이에서 태어난 화길옹주(1754∼1772)가 1765년 능성위(綾城尉) 구민화와 혼례를 올리자 영조가 하사한 능성위궁으로 보인다고 문화재청은 설명했다.


    화길옹주의 어머니인 숙의 문씨는 사도세자의 죽음에 일조한 인물로, 정조가 즉위한 1776년 궁에서 쫓겨났으며 그해 사약을 마시고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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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능성위궁 추정 집터 유적. [문화재청 제공]

    능성위궁 집터 유적은 전문가 검토 결과 기단부와 온돌, 초석 등이 잘 남아 있고,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에 위치해 조선 후기 상류층 가옥 연구에 도움이 된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곳은 이후 구한말 개화파 지식인인 민영익의 집이 들어섰고, 군국기무를 총괄하는 통리기무아문이 설치된 것으로 추정된다.


    앞서 지난 17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문화재위원회 매장분과 회의에서는 능성위궁 집터를 보존하는 방안이 논의됐다.


    헌법재판소는 능성위궁 건물터 중 일부인 15㎡만 이전 복원하겠다는 의견을 제시했으나, 문화재위원회는 새로운 방법을 강구하라는 이유로 이 안을 부결시켰다. 문화재청은 건물터와 주변을 포함해 150㎡를 이전 복원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 문화재위원은 "화강암을 잘 깎아서 기단부로 사용한 것을 보면 상당히 격이 높았던 건물"이라며 "일반 가옥과는 다른 석재들이 쓰였기 때문에 보존할 필요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현혜 매장분과 위원장은 "헌법재판소 증축 대지는 지난 200여 년간 능성위궁을 거쳐 정치인의 집, 관청, 학교 등 다양한 용도로 변했다"며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장소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집터 유적은 건물 안이나 밖에 전시되는 형태로 보존될 것"이라며 "유적이 최대한 잘 보존되는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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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능성위궁 추정 집터 유적. [문화재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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