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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철민 관장 "창의적으로 한글 가치 재발견해 알리겠습니다"

기사입력 2016.10.07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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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온공주 한글 혼례자료 전시에 증강현실 기법 도입"
    "11월 '한중일 문자의 현대적 창조' 심포지엄"

    (서울=연합뉴스) 이성섭 기자 = 서울 용산구에 있는 국립한글박물관은 한글의 우수성을 재발견하고 한글문화를 확산하는 구심점 역할을 하는 공간이다. 한글박물관에는 한글의 가치를 조명하고 변화 과정을 살펴보는 상설 전시장이 있으며 다양한 기획전시도 열린다.


    10월 9일 한글날을 앞두고 김철민 국립한글박물관장을 만나 박물관이 하는 일과 발전 구상을 들어봤다. 지난 5월 취임한 김 관장은 정보통신기술(IT)을 활용한 전시와 한글 우수성 알리기에 주력하는 등 창의적인 콘셉트로 한글박물관 발전에 주력하겠다고 밝혔다. 다음은 연합뉴스가 발간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10월호에 실린 일문일답이다.


    -- 국립한글박물관 개관 취지와 연혁을 소개해주십시오.

    ▲ 한글은 창제 취지와 사용법을 담은 문서(훈민정음 해례본)가 있는 지구 상에서 유일한 문자입니다. 세계인이 높이 평가해 유네스코 기록문화유산으로도 등재됐습니다. 어떤 문자가 만들어져 현재까지 쓰이는 나라는 우리와 중국밖에 없습니다. 중국에는 갑골문자의 기원을 기리는 국가문자박물관이 있습니다. 갑골문자는 자연스럽게 발생, 진화한 것이고 한글은 만들겠다고 생각해서 창제한 것입니다.


    이런 민족 최고의 문화유산인 한글의 가치와 한글문화를 전파하는 것이 필요한데 그 구심점 역할을 위해 2014년 10월 9일 한글날 박물관이 문을 열었습니다. 한글박물관은 자료 전시에 머무르지 않고 한글 문헌, 글꼴 등 한글 문화유산을 체계적으로 수집·보존·연구하고 다음 세대에 이를 전달하는 역할을 합니다.


    -- 박물관의 내·외부 구성과 상설 전시의 기본 콘셉트가 궁금합니다. 아울러 새롭게 계획하는 변화들이 있다면 설명해주십시오.

    ▲ 한글박물관은 지하 1층, 지상 3층으로 돼 있고 연면적 1만1천㎡ 정도 됩니다. 2층 상설전시장에서는 한글의 가치와 역사를 조명하고 변화 과정을 시대순으로 보여줍니다. 외국인도 쉽게 익힐 수 있도록 만든 체험학습 장소인 ‘한글 배움터’, 어린이들이 즐겁게 놀면서 한글을 경험하는 ‘한글 놀이터’도 대표적인 공간입니다.

    중국 갑골문자나 이집트 상형문자와 비교할 수 있는 오랜 콘텐츠는 없어도 한글 관련 유물에서 발견되는 일상적인 대화나 서간문 등을 창의력과 상상력 발휘를 통해 스토리텔링으로 연결하고 디자인해 전시합니다.

    12월 18일까지 이어지는 기획특별전 ‘1837년 가을 어느 혼례날-덕온공주 한글 자료’는 조선의 마지막 공주인 덕온공주(순조와 순원왕후 사이 막내딸)의 미공개 한글 혼례자료를 보여줍니다. 이 전시에선 증강현실(AR) 기법을 도입해 특정 장소에서 전시 설명문을 들고 있으면 종이에 비치는 영상을 감상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앞으로도 미디어와 첨단기술 등을 활용한 창의적인 시도들을 하려고 합니다.

    -- 한글박물관을 찾는 관람객 수는 어떻게 되는지요? 박물관을 대중에게 더욱 친숙한 장소로 만들기 위한 복안을 소개해주십시오.

    ▲ 개관 이래 현재까지 외국인 1만8천 명을 포함해 100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방문했고 지난 1년간 관람객 수가 약 15% 늘었습니다. 대중의 흥미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전시 주제가 증가 원인인 것으로 자체 분석하고 있습니다.

    11월까지 열리는 ‘광고 언어의 힘’ 특별전은 대중에게 가까이 갈 수 있는 주제입니다. 덕온공주의 한글 혼례 자료를 보여주는 전시에서도 공주가 시집간 지 5년 만에 숨지는 등 스토리가 있습니다. 관람객 중 결혼을 앞둔 분이 있으면 덕온공주 사주단자 속 글 같은 것을 예쁘게 써주는 퍼포먼스를 하려고 합니다.

    한글박물관이 원본을 소장 중인 김천택의 ‘청구영언’ 속 문장도 하나하나 풀어서 내년 초에 특별 기획전시를 할 예정입니다. 역사적 자료들에 들어 있는 콘텐츠를 풀어서 대중에게 친숙한 것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 10월 9일 한글날에는 어떤 행사를 진행하는지요?

    ▲ 한글박물관에서는 매년 세종대왕 탄생일(5월 15일)과 한글날에 큰 문화행사를 엽니다. 10월 8일과 한글날이자 일요일인 9일 이틀간 기념행사를 개최합니다. 한글 창제를 축하하는 창작국악 공연과 함께 훈민정음 목판인쇄 체험, 한글나무 만들기, 한글편지 쓰기 등 다양한 체험행사도 준비합니다. 7일부터 도쿄 한국문화원에서 첫 국외전시인 ‘훈민정음과 한글 디자인’ 전시를 엽니다. 한글박물관 별관에서는 지난 4일 한글 글꼴 1세대인 최정호와 최정순의 이야기를 다룬 특별전을 개막했습니다.


    -- 한글날이 10월 9일로 정해진 이유가 궁금합니다.

    ▲ 한글날은 ‘훈민정음 해례본’을 만들어 반포한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1940년 경북 안동에서 해례본이 발견되기 전까지는 훈민정음 반포 날짜를 음력 9월 29일로 정하고, 1926년부터 한글날 기념식(‘가갸날’)을 열었습니다.


    그러나 훈민정음 해례본이 발견된 후에는 해례본의 정인지 후서 부분에 “정통 십일년 구월 상한(上澣)”이라고 적힌 것을 근거로 1945년부터 음력 9월 10일을 양력으로 바꿔 10월 9일에 한글날을 기념하게 됐습니다. 정통 11년은 1446년을 가리키고 ‘상한’은 ‘상순’과 같은 말인데 당시 조선어학회에서는 1일부터 10일 중 어느 날인지 정확히 알 수 없어 상순의 마지막 날인 음력 9월 10일을 해례본을 반포한 날로 간주해 한글날을 10월 9일로 정한 것입니다.


    북한의 경우, 1443년 음력 12월 30일 자 ‘조선왕조실록’에 “이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 28자를 지으셨다”라는 기록이 있는 것을 근거로 한글 창제일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에 새 문자가 만들어졌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12월의 중간인 12월 15일을 창제일로 잡고 그 날짜를 양력으로 바꾸어 1월 15일을 기념일로 삼은 것입니다.


    -- 근거를 알 수 없는 줄임말과 비속어들이 범람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요?

    ▲ 기존 단어의 초성이나 중성 등을 따서 줄임말을 만드는 것은 한글이 자음과 모음이 분리된 음소글자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ㅋㅋ’(크크), ‘ㅇㅋ’(오케이), ‘ㄱㅅ’(감사), ‘ㅠㅠ’(눈물 모양 상징) 등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이러한 줄임말은 인터넷이나 스마트폰 등 같은 새로운 매체 사용 환경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날 수 있는 하나의 상징 기호입니다. 이것은 적은 수의 글자 입력만으로 자신의 의사를 전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경제적이며 사용하는 사람 간 친밀감과 유대감을 키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표준어나 고유성을 해치는 정도까지 가면 안 됩니다. 줄임말을 모르는 사람이 소외되거나 세대 간 소통 단절 같은 것이 초래되면 안 됩니다. 학교, 사무 공간, 언론 등에서 표준어가 엄격하게 준수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4758159546493.jpg 국립한글박물관 전경. 사진/임귀주 기자

     

    -- 국내에서 진행되는 한글 연구와 발전 노력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요?

    ▲ 한글 연구는 문자로서의 한글연구와 한글문화 연구로 나뉠 수 있습니다. 한글박물관에서는 기존 국어학자들의 한글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한글의 제자(製字) 원리 속에 담긴 독창성과 과학성을 기반으로 상설전시 일부를 꾸몄고, 한글문화의 다양성을 보여주기 위해 한글문화 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현재 특별전시장에서 진행되는 ‘광고언어의 힘’인데요, 작년에 ‘근현대 광고와 한글’이라는 주제로 전시 토대 연구를 수행한 성과가 전시로 구현됐습니다. 그 외에도 우리 한글이 어떻게 변화하고 발전해 왔는지를 살피는 한글성장사 연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훈민정음 해례에 있는 한글 창제 원리에는 음양오행과 성리학이 들어가고 해례에 쓰인 글자가 108자인데 불교적인 의미가 있을 수 있는 등 여러 함의가 있습니다. 한글박물관에서는 훈민정음 연구회를 운영하고 있는데 연말쯤 연구 결과를 학술대회 형식으로 발표하고 정리할 예정입니다. 여기에는 한자, 파스파 문자(몽골어용 문자), 비교 문자 전문가들도 참여합니다.


    한글을 더욱 알차게 보존, 발전시키는 일은 박물관과 국립국어원 등 정부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무엇보다 국민 개개인이 관심을 갖고 노력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 외국 학자들도 한글을 연구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들의 연구 동기와 목적, 성과가 궁금합니다.

    ▲ 초기에 외국인들이 한글에 대한 관심을 가진 것은 정치적, 종교적, 교육적 이유였습니다. 서양에서는 식민지 개척을 위해서, 선교사들은 기독교 포교를 위해 관심을 가졌습니다. 제임스 게일, 존 로스 등 개화기 조선에 왔던 선교사들이 한글을 연구하고, 성경을 한글로 번역한 일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지요.

    그러나 오늘날 외국의 학자들이 한글을 연구하는 이유는 학문적 호기심 때문입니다. 이들은 언어, 문자적 관점에서 한글을 연구하고 이해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어 동아시아의 다른 문자인 중국의 한자, 일본의 가나와 관련짓는 비교문자연구를 수행하거나 문자일반론적 관점에서 한글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국내 연구가 한글의 ‘독창성’에 주목하는 것과는 매우 다른 모습입니다.


    외국 학자들은 한글이 새로 만들어지고 반포된 역사를 가진 특수한 문자이기 때문에, 한글 창제 이전의 문자생활이나 한글을 만드는 데 영향을 미친 문자, 한글 표기 규칙, 그리고 한글이 어떻게 성공적으로 한국인의 문자생활에 뿌리내리게 됐는지를 학문적으로 궁금해합니다.


    영미권의 한글 연구는 한글을 가장 정확하게 평가하고 있는데, 특히 영국의 언어학자 제프리 샘슨은 ‘라이팅 시스템스’(Writing Systems)라는 책에서 한글을 ‘자질문자’(featural alphabet)라고 소개하면서 한글의 과학성을 학문적으로 설명했습니다.


    외국인의 한글 연구는 우리가 보지 못하는 한글의 가치를 새롭게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세계문자사 속에서 한글이 기여할 바가 무엇인지 알 수 있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은 한글 연구의 세계화에서 반드시 거쳐야 할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 전 세계에 한글을 알리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글박물관이 하는 일을 소개해주십시오.

    ▲ 국립한글박물관은 학술 연구 발표와 국외 특별전을 개최하는 등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오는 11월 25일에는 서울에서 ‘한중일 문자의 현대적 창조’를 주제로 국제 심포지엄을 여는 등 한중일의 대표적인 문자 관련 기관 간 연구·전시·교육을 통해 박물관 사업의 네트워크를 확대하려고 합니다. 전 세계에서 국립 문자박물관을 갖고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중국밖에 없어 교류에 의의가 있습니다. 일본의 경우 국립민속박물관에서 문자 관련 업무를 담당합니다.


    10월 도쿄 한국문화원에서는 ‘훈민정음과 한글 디자인’이라는 제목으로 교류 특별전을 엽니다. 훈민정음 해례본의 내용을 공유하고 협업해 한글의 원형성과 확장성을 보여주는 작품을 선보이는데, 입체·평면 디자이너 22명이 참여해 한글날에 맞춰 진행합니다. 내년에는 프랑스 한국문화원, 중국 국가문자박물관과의 교류 전시를 하도록 준비하는 등 한글문화의 다양한 모습을 세계인에게 알리려고 합니다.


    -- 한글박물관 후원회는 어떤 조직인가요?

    ▲ 후원회가 박물관 개관 전인 2014년 5월부터 활동하고 있습니다. 김상헌 네이버 대표(후원회장)를 비롯해 유명 손글씨 작가 강병인씨, 한글무용가 이숙재씨 등 다양한 분야의 인사들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후원회는 회원들의 기증과 기부 사업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한글과 한글문화를 홍보하는 일을 합니다. 회원이 1천 명 정도인데 후원회에는 한글과 한글박물관에 관심 있는 분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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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임귀주 기자

     

    -- 추진하고 싶은 일이 많아 보입니다. 인력과 예산 문제는 없나요?

    ▲ 한글박물관의 일은 아이디어 싸움입니다. 디자이너, 기획자, 연구자들이 창의성을 발휘해야 하고 그 때문에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있어야 합니다. 한글 연구에 역사적인, 시각적인 관점들이 다 들어가야 하고 미디어와 IT도 동원하는데 이런 것을 잘 활용할 수 있는 인적 자원이 점점 더 필요해지고 있습니다. 인적 자원의 성격에 따라 한글박물관이 내놓는 콘텐츠의 질과 양이 결정되기 때문에 우수 인력에 관심을 두고 챙기려고 합니다.


    일반인의 자발적 후원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첨단기술을 접목한 창의적인 전시회를 열어 좋은 반응을 얻은 경험을 토대로 IT 업체 등 관련 기업들과의 협업을 지속해서 추진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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