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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말보다 묵직한 신체언어…연극 '투명인간'

기사입력 2014.10.02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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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연합뉴스) 임기창 기자 = 최근 서울 남산예술센터에서 막을 올린 연극 '투명인간'은 대중적 연극으로 보기엔 쉽지 않은 작품이다. 대사를 중심으로 뚜렷한 줄거리를 제시하는 것이 '드라마'라는 장르에 대한 일반적 기대라면 '투명인간'은 그와는 분명 거리가 있다. 이 연극의 중심요소는 대사라기보다 '몸'이다.

    대본이 달랑 14쪽인 이 작품에도 물론 줄거리는 있다. 아버지의 생일상을 준비하던 어머니와 아들, 딸이 모의를 한다. 아버지가 보이지 않는 듯 연기하는 '투명인간 놀이'를 하자는 것이다. 시작은 그저 아버지를 위한 '깜짝 쇼'였지만, 장난이 계속되면서 아버지를 정말로 '보이지 않는 존재'처럼 취급하게 된다.

     

    장난이 시작되고, 장난의 주체들이 행위에 몰입하면서 장난이 현실을 압도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진다. 심지어 장난의 대상이던 아버지조차 '정말 내가 보이지 않는가'라는 의심을 품은 끝에 급기야 자신이 투명인간임을 인정(?)하는 지경에 이른다. 대략적인 줄거리는 이렇다.

    '가족 분열과 소외'라는 말로 작품의 메시지를 간단히 설명할 수는 있지만 너무 피상적이고 단순하다. 건축현장에서 쓰는 비계 파이프가 마치 카메라의 가로-세로 분할선처럼 설치된 무대, 그 무대에서 보기 좋은 구도를 이루며 각자 위치에 놓인 배우들과 소품, 배우들의 초현실적인 몸짓 등을 실제로 봐야 한다.

     

    얼마 되지도 않는 대사는 극 초반에 대부분 '소진'된다. 이후에는 한 마디 대사도 없이 오로지 배우들의 몸짓과 음향, 조명만으로 한참 동안 극이 진행되는 구간이 잇달아 등장한다. '이 장면은 어떤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오'라는 일언반구 설명도 없지만 지루하다는 생각은 의외로 들지 않는다.

     

    스스로 시작한 장난에 압도된 엄마·아들·딸의 무심하기 짝이 없는 표정과 심드렁한 몸짓, 의아함에서 당혹감과 절박함을 거쳐 인정과 체념에 이르는 아버지의 기괴한 신체언어는 말의 언어를 대신하기에 큰 무리가 없어 보인다. 몸짓 하나하나의 의미를 다 이해하진 못해도 거기에 담긴 감정의 형태는 충분히 느껴진다.

     

    결국 극은 가족의 해체를 보여준다. 끝내 양쪽은 서로 말을 걸지 않고, 누구도 '게임 끝'을 먼저 선언하지 않는다. 존재를 부정당한 끝에 스스로 투명인간의 정체성을 확립해 버린 아버지만 남았다. 마치 짐승 같은, 때로는 물속을 떠다니는 해파리 같은 몸짓과 기계음처럼 건조한 목소리가 그의 존재를 규정한다.

     

    2010년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손홍규의 동명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다양한 신체언어를 꾸준히 실험해 온 극단 동의 강량원 대표가 각색하고 연출했다. 이번에도 무중력 상태, 마네킹 같은 신체 등 독특한 신체언어를 통해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허무는 여러 시도를 선보였다.

     

    19일까지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에서 공연한다.

    전석 2만5천원. ☎ 02-758-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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