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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펴 준 것" 장애인 노예처럼 부린 '강자'들의 비겁한 변명

기사입력 2016.10.29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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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장·토마토·식당·축사·타이어 노예 잇따라…前도의원, 마을이장도 가세
    "오갈곳 없어 돌본 것" 강변…사회적 약자 인권 무시하는 비뚤어진 의식이 문제 

    (전국종합=연합뉴스) 김형우 기자 =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을 상대로 한 인권유린사건이 끊이지 않는다. 자고 나면 '장애인 노예' 사건이 언론을 장식한다.


    장기간에 걸쳐 힘없는 장애인을 상대로 부당하게 노동력을 착취해 더 얻으려는 '강자'들의 탐욕스러운 모습은 마치 약육강식의 정글을 떠올리게 한다.


    가해자들이 늘어놓는 변명은 한결같다. 한결같이 측은지심에서 갈 곳 없고, 생계유지 능력이 안 되는 장애인들을 돕고, 보살피려 했다고 둘러댄다.


    제대로 된 임금도 주지 않고 길게는 십수년 강제 노역을 시켜왔으면서도 오히려 '관용'을 베풀었다고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한다.


    전남 장성경찰서는 지난 28일 인지 능력이 부족한 60대 남성에게 10년간 축사와 농장 일을 시키며 착취한 혐의(준사기, 노인복지법 위반, 횡령)로 오모(67)씨를 불구속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도의원 출신인 오씨는 2006년부터 지난 5월까지 전북 순창에서 데려온 A(66)씨에게 곡성과 장성의 자신의 농장 2곳에서 일을 시키고 임금을 지급하지 않은 혐의를 받고 있다.

    지역 조합장 출신으로 1990년대 초 도의원을 지낸 오씨는 경찰 조사에서 "오갈 곳 없는 A씨에게 쌀과 찬거리, 소주를 사다 주며 숙식을 제공했다. 명절 때는 50만원씩 지급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조사 결과 지난 10년간 최저임금 기준 1억원 이상을 미지급한 것으로 밝혀졌다.


    자신의 잇속을 채우기 위해 정신이나 육체적으로 미약한 상태에 놓인 지적 장애인을 강제 노역시켰다는 비판을 피해가기 어려운 이유다.

    14777149814023.jpg17년간 임금 못 받은 청각장애인의 일터(청주=연합뉴스) 김형우 기자 = 28일 17년간 임금을 못 받은 청각장애인이 일하던 곳으로 추정되는 청주시 흥덕구 한 비닐하우스의 모습. 2016.10.28 vodcast@yna.co.kr

    보살핀다는 핑계로 장애인에게 부당한 노동착취를 한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 18일 충주에서 지적 장애인에게 임금을 제대로 주지 않고 막노동을 시키고, 그에게 지급되는 장애인 수당 등을 챙긴 혐의(준사기)로 마을이장 A(58)씨가 불구속 입건됐다.

    14777149786282.jpg'축사 노예'에 이어 이번에는 '타이어 노예'(청주=연합뉴스) 이승민 기자 = 40대 지적장애인을 10년 동안 임금을 주지 않고 타이어 수리점에서 일하게 한 업주가 경찰에 붙잡혔다. 12일 오후 지적장애인 A(42)씨가 10년간 일한 타이어 수리점이 텅 비어있다. 2016.9.12

    그는 2004년부터 최근까지 13년에 걸쳐 지적장애인 B씨에게 1년에 100만∼250만원의 임금만 주고 자신의 방울토마토 재배 하우스에서 일을 시켜왔다.


    그 역시 홀로 외롭게 사는 동네 후배인 B씨를 챙겨주려 했을 뿐이라고 군색한 이유를 댔다.


    지난 18일 전분 김제경찰서는 13년간 식당에서 임금도 제대로 주지 않고 지적 장애인 전모(70)씨를 부려 먹은 혐의(장애인복지법 위반)로 식당주인인 조모(64)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당시 식당주인 조모(64)씨는 경찰에서 "갈 곳 없는 노인을 거둬서 부양했을 뿐"이라고 혐의를 부인했다.

    최근 충북에서 전 국민의 공분을 샀던 '축사노예'와 '타이어 노예' 사건의 가해자들 역시 '어려운 사람을 도운 것'이라며 비슷한 논리를 폈다.


    장애우 권익문제연소 산하 장애인 인권침해예방센터가 지난해 발표한 '장애인 학대사건, 장애인 인권교육의 현황' 자료에 따르면 전체 장애인 학대 관련 상담 6천116건 중 지적장애인과 관련된 상담이 38.2%로 가장 많았다.

    14777149750917.jpg곰팡이 가득한 '농장노예' 숙소(장성=연합뉴스) 장아름 기자 = 전남 장성경찰서는 지적장애가 있는 A(66)씨에게 10년간 축사와 농장 일을 시키며 임금을 주지 않고 착취한 혐의(준사기)로 전직 도의원 오모(67)씨를 불구속 입건했다고 27일 밝혔다. 사진은 A씨가 거주했던 전남 장성군 소재 농장 숙소 내부의 모습. A씨는 먼지와 곰팡이가 가득하고 난방도 되지 않는 공간에서 전기장판과 낡은 매트리스에 의지해 생활해야 했다. 2016.10.27 [장성경찰서 제공=연합뉴스] areum@yna.co.kr

    예방센터 관계자는 "지적장애인의 비율이 전체 장애인 중 7.39%에 불과하지만, 인권 침해 상담 비율은 가장 높았다"며 "지적 장애인에 대한 인권침해가 상당히 심각하다는 것을 미루어 판단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최근 잇따라 터진 사건들이 빙산의 일각일 수 있으며 또 다른 노예들이 전국에 산재해있다는 얘기다.


    비슷한 사건이 잇따라 터지는 주요 원인으로 전문가들은 지역사회에서의 열악한 인권의식을 꼽았다.


    장애인인권침해예방센터 김강원 팀장은 "지역주민들은 '갈 곳 없는 장애인을 먹여주고 재워줬다'라는 명목으로 자신들을 정당화했고 염전노예 사건의 경우에는 장애인이 도망가는 것을 발견하면 서로에게 알려줘 다시 잡혀가도록 하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지역사회 내에서 장애인에 대한 근본 인식을 바꿀 수 있도록 지속적인 교육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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