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란하지 않게 마음을 울리는 '5일의 마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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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요란하지 않게 마음을 울리는 '5일의 마중'>

 

부산영화제 프레젠테이션 부문…장이머우-궁리 7년만에 재회


(부산=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아내는 남편이 돌아오기로 약속한 매월 5일이면 아침 일찍부터 기차역으로 나간다.
 

기차에서 한 무더기의 사람들이 모두 내리고 철문이 닫히고 나서야 아내는 실망을 애써 감춘 채 발걸음을 돌린다.  

 

그 옆에는 아내를 부축하는 남편이 있다.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갈라 프레젠테이션 부문에 초청된 중국 출신 장이머우 감독의 '5일의 마중'은 기억을 잃은 채 남편을 곁에 두고도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의 이야기다.  

 

영화는 1960년대와 1970년대에 걸쳐 중국 전역에 극좌 광풍을 일으킨 문화대혁명으로 처참하게 무너져내린 가족의 비극을 보여준다.

 

불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대학교수인 루옌스(친따오밍 분)는 반동분자로 낙인 찍혀 아내 펑완위(궁리)와 어린 딸 단단(장후이원)을 남겨둔 채 투옥된다.

영화는 10여년간 연락 한 번 할 수 없었던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견디다 못한 루옌스가 탈옥해 집을 찾아오는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펑완위는 루옌스를 잡아들이는 데 혈안이 된 당의 명령에 고민하지만, 아내로서의 본분을 다하기로 한다. 이미 마오쩌둥 사상에 세뇌당한 단단은 그런 엄마가 못마땅하다. 

 

부부의 가슴 졸이는 재회는 결국 불발된다. 다시 끌려간 루옌스는 문화대혁명이 끝난 뒤 집으로 돌아오지만, 아내는 심인성 기억장애로 그를 알아보지 못한다.

 

'5월의 마중'은 장면 하나하나가 영화가 끝나고서도 오래도록 기억나는 영화다.

 

관객들은 도입부에 등장하는 부부의 이별 장면부터 마음을 빼앗긴다.

 

서로 찾아 헤매다 엇갈리는 아내와 남편의 모습은 관객들을 함께 애타게 하고 찐빵과 이불을 정성스레 싼 아내의 보따리가 내팽개쳐지는 장면은 결국 눈물을 유도한다.  

수년 후 그토록 그리워했던 남편을 알아보지 못하는 펑완위의 모습도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을 아리게 만든다. 남편의 이 정도 노력이라면 펑완위의 기억이 돌아오지 않을까, 라는 희망을 품었던 관객의 기대는 번번이 배반당한다.

 

장이머우 감독은 전작 '책상 서랍 속의 동화'나 '집으로 가는 길'에서 보여준 따뜻한 감성을 맘껏 풀어냈다.  

 

아내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20년 만에 피아노 앞에 앉은 남편의 연주 장면은 아름답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피아노 연주 장면을 어떻게 연출할지 고심했다는 장이머우 감독 또한 4일 기자회견에서 "피아노는 음률을 통해 말로 다할 수 없는 감정을 전달하는 데 정말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우리 바람과는 달리 역사가 망가뜨린 개인의 삶은 원래 모습을 찾지 못한다.

 

하지만 고통스러운 나날 속에서도 묵묵히 버티고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이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다.  

문화대혁명을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는 많고, 망부석 이야기도 고전적인 소재다.

'5월의 마중'은 역사가 남긴 상처를 요란하지 않게 담아낸 수작이다.

 

무엇보다 세계적인 여배우 궁리의 연기는 크게 박수받을 만하다. 말없이 흘러내리는 눈물, 미세하게 떨리는 눈동자, 이마에 팬 주름 하나하나가 예사롭지 않은 연기 내공을 보여준다.  

 

딸의 앞날과 남편에 대한 걱정으로 갈등하는 어머니, 목숨을 걸고 남편을 지켜내려는 강인한 아내, 곁에 있는 남편을 알아보지 못하는 기막힌 상황의 아내 모두 흠잡을 데가 없다.  

 

궁리는 배급사와 사전에 진행한 인터뷰에서 "펑완위 역은 지금까지 연기한 캐릭터 중 가장 어려웠고 내게는 하나의 큰 도전이었다"면서 "완전히 새로운 궁리를 관객에게 선보이는 것과 다름없었다"고 밝혔다.

 

이 작품은 장이머우와 궁리가 '황후화' 이후 7년 만에 재회한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관심을 모은다.  

1987년 영화 '붉은 수수밭'으로 처음 인연을 맺은 이후 오랜 기간 영화적 동지이자 연인으로 지냈던 장이머우와 궁리는 수년전 연인관계는 청산했지만 감독과 여배우로는 다시 호흡을 맞추며 이번에도 멋진 앙상블을 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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