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 아버지라는 이름으로…'나의 독재자'
  • 해당된 기사를 공유합니다

역사문화

<새영화> 아버지라는 이름으로…'나의 독재자'

 

14139353605290.jpg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성근(설경구)은 연극배우다. 선배들의 등만 바라보고 쫓아왔지만 변변한 역을 맡아본 적은 없다. 게다가 치고 올라오는 후배 탓에 연기는 고사하고 광고 전단이나 붙이는 신세다. 

 

그래도 연습은 열심이다. 남몰래 '리어왕'의 대본을 외며 무대에 설 그날을 꿈꾸던 그. 어느 날, 주연 배우가 펑크를 내면서 리어왕 역을 맡는다. 단지 리어왕의 대사를 암기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오랜만에 무대에 서 본 그는 혀와 뇌가 동시에 얼어붙는다. 연극은 엉망이 된다. 무대 뒤에서 연출에게 얻어맞는 장면을 아들 태식에게 들킨 성근은 결국 홀로 남겨진 분장실에서 울음을 터뜨린다. 

 

그런 그에게 정체불명의 연극과 교수(이병준)가 찾아와 오디션에 응해보라고 권고한다. 살 길이 막막해진 성근은 오디션에 응하지만, 연기 대신 매질과 고문만이 이어진다. 이상한 오디션이지만 성근은 죽기 아니면 살기로 온 힘을 다한다.

 

'나의 독재자'는 7·4 남북공동성명으로 남북 간의 해빙 기류가 이어졌던 1972년부터 김일성이 사망한 1994년까지, 격변했던 22년간 한 가정에서 빚어졌던 원망과 화해의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다. 

 

영화는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역사라는 도도한 물결 속에서 작아질 수밖에 없는 인간들, 하지만 그 탁류 속에서도 피고 지는 인간들의 꿈과 부정(父情)을 소재로 했다.

 

일단 배우들의 호연에 눈길이 간다.  

 

깡말랐다가 김일성의 체중에 맞춰서 몸무게를 불려야 하고, 22년의 세월을 넘나드는 연기를 해야 했던 설경구의 '무한도전'과, 어떤 영화에서건 제 몫 이상을 해주는 박해일의 절제된 감정연기가 시선을 끈다. 리허설을 기획하는 중앙정보부 오계장 역의 윤제균과 성근에게 연기를 지도하는 연극과 교수 이병균의 백업도 튼실하다.

 

유머 코드를 얹어 엄혹한 시대상을 표현한 이해준 감독의 필력(이 감독은 시나리오도 집필했다)과 화사한 화면 속에 부조리한 상황을 얹어놓는 역설 화법의 묘미도 흥미롭다.

 

그러나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뉘는 영화의 이음매가 덜커덕거리는 점은 다소 아쉽다.

 

배역과 완벽하게 동일화돼야 한다는 콘스탄틴 스타니슬랍스키의 연극론에 따라 김일성 자체가 돼 버린 무명 배우의 이야기를 다룬 전반부와 아버지에 대한 트라우마를 앓는 아들 태식의 이야기는 유기적이지 못하다.

 

무명배우의 이야기 속에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가 녹아들거나 부자간의 이야기에 무명배우의 이야기가 스며들든가 해야 하는데, 둘의 이야기가 어설프게 뒤섞였다.

 

성근이 왜 그렇게 배역에 미칠 수밖에 없었는가에 대한 설명은 부족하고, 성근과 태식이 나누는 추억의 두께도 깊지 않다. 영화 후반부에 태식이 아버지를 위해 오열하는 장면이 다소 공허하게 보이는 이유다.  

 

'천하장사 마돈나'(2006), '김씨표류기'(2009) 등을 연출해 주목받았던 이해준 감독이 메가폰을 들었다.  

 

10월30일 개봉. 15세이상관람가. 상영시간 127분.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