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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있어요' 부른 70년대 스타 이현 "40년만에 노래해요"'잘 있어요'를 부른 1970년대 스타 이현 원조 꽃미남 가수이자 장군의 아들…KBS '콘서트 7080'으로 은퇴 후 첫 방송 나들이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지난 23일 서초구 반포동 서래마을의 한 카페에 장년의 한 남성이 들어섰다. 첫 만남이었지만 1970년대 LP 재킷에서 본 '꽃미남' 청년이란 걸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젊은 날의 인상이 오롯했다. 바로 1970년대 '귀공자 가수'로 불린 이현(64)이다. '잘 있어요 잘 있어요/ 그 한마디 였었네/ 잘 가세요 잘 가세요/ 인사만 했었네~.'('잘 있어요') 그는 1970년 박춘석이 작곡한 '내 사랑 지금 어디'로 데뷔해 '잘 있어요'와 '춤추는 첫사랑'(번안곡), '똑같애', '잊지마' 등을 잇달아 히트시키며 수많은 소녀 팬들을 울렸던 TV 스타다. 한 블로그에선 그에 대해 '요즘 말로 완소남'(완전 소중한 남자)이었다고 했다. 그는 남다른 집안 출신으로도 화제였다. 외할아버지는 초대 육군참모총장을 지낸 고(故) 이응준 씨, 아버지는 '대한민국 군번 1번'으로 초대 합참의장·육군 참모총장을 지내고 1960년대 영국, 스웨덴, 노르웨이 등 각국 대사를 역임한 고(故) 이형근 씨다. 당시에도 '사생팬'(사생활을 쫓는 팬)을 몰고 다닌 이현은 1975년 12월 '언약'과 '누구일까'가 담긴 독집 앨범을 끝으로 1976년 갑자기 무대에서 사라졌다. 이후 방송과 언론에 단 한 차례도 모습을 비추지 않아 근황조차 제대로 전해지지 않았다. 잊히던 그가 약 40년 만에 가수로 돌아와 마이크를 잡았다. 앨범과 공연으로 거창한 컴백을 한 건 아니지만 방송 출연이란 결단을 내린 것이다. 오는 27일 방송하는 KBS 1TV '콘서트 7080' 녹화를 마친 그를 만났다. 언론 인터뷰도 은퇴 후 처음이다. "여러 차례 방송 제의가 왔는데 자신이 없었어요. 이번 출연을 결정하고도 후회했죠. 매일 악몽을 꿨어요. 하하." 그가 용기를 낸 데는 팬들의 힘이 컸다. 2012년 5월 '추억의 70년대 ♡ 가수 이현 팬카페'가 생겼고 흩어져 있던 중장년 팬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일본에서 사업하는 팬카페 지기 박상진(57) 씨가 중심에서 큰 역할을 했다. 이날 인터뷰 자리에도 박씨가 참석했다. 이현은 "처음엔 팬카페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며 "'대체 몇 명이냐'고 물었더니 5명이라더라. '그럼 오케이, 동호회 식으로 소통해보자'고 답했다. 상진 씨가 내 앨범 자료를 정리하고 내 노래에 영상을 편집해 유튜브에 올려주며 정말 열심이었다. 지금은 회원 수가 347명이다. 지난 40년간 아무것도 해준 게 없는데 고맙고 미안하더라. 이번 방송 출연은 팬들에 대한 답례"라고 말했다. ◇ 가수·배우·광고 모델로 전방위 활동…"사생팬 따라다닌 TV 스타" 가수 데뷔를 한 건 사실 궁여지책(窮餘之策)이었다. 영국에서 1년간 생활하다가 귀국한 그는 외교관 자녀 특례입학이 없던 시절, 예비고사 원년과 맞닥뜨렸다. 외국 생활 끝에 예비고사를 봐야 했고 성적에 맞춰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 69학번으로 입학했다. 과 이름도 생소했지만 연극, 영화를 하리라곤 꿈에도 몰랐기에 학교도 잘 나가지 않았다. 당시 과 선배로 현역 가수인 배성, 펄시스터즈의 배인순이 있었다. 이들처럼 앨범을 내거나 연기를 하면 학과 실기 점수에 반영돼 그는 앨범을 내기로 했다. 이현은 "아버지 지인의 소개로 지구레코드를 찾아갔다"며 "그곳에서 박춘석 선생을 소개받았고 노래를 들어보시더니 앨범을 내주겠다고 했다. 한마디로 '낙하산' 데뷔였다"고 웃었다. 그러나 데뷔 앨범부터 바로 반응이 왔다. 이어 '이별이 주고 간 슬픔', '춤추는 첫사랑'이 히트하자 오아시스레코드에 스카우트됐고 '잊지마', '잘 있어요' 등을 내며 승승장구했다. 신인상과 'MBC 10대 가수상'을 잇달아 받으며 6년간 11장의 앨범을 냈다. 특히 '잘 있어요'는 야구장에서 상대팀을 약 올리는 응원가로 쓰이며 오랜 시간 널리 불렸다. 그는 노래뿐 아니라 '아름다운 청춘'을 데뷔작으로 '별난 장군', '영광의 탈출', '청춘 교사', '아빠와 함께 춤을' 등 여러 편의 영화에도 출연했다. 당시 동아제약이 첫선을 보인 음료수 '오란씨'의 광고 모델로도 2년간 활동했다. 당시 파트너는 배우 윤여정, 김미영이었다. 이현의 인기는 정말 대단했다고 한다. 당시 한 신문 기사에선 '팬들이 이현의 머리카락을 뜯어가고 옷을 찢어갔다', '지방 공연 차 묵은 숙소의 신발과 옷을 가져갔다' 등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있다. 이현은 "그땐 지방을 돌며 극장식 공연을 많이 했다"며 "한번은 부산에서 대구로 이동했는데 내가 묵은 여관에 부산의 여고생 팬들이 따라와 방을 잡았더라. 그 방 가서 야단을 치고 내 차를 태워 보냈던 기억이 난다"고 웃었다. 중학교 때부터 팬이었다는 팬카페 지기 박씨가 마치 그 시절로 돌아간 듯 신바람 나는 '증언'을 했다. "살아있는 인형이었죠. 하하. '쇼쇼쇼', '명랑오락회', '가요스팟' 등 오빠가 출연하는 프로그램을 보기 위해 TV 앞에 모여들었죠. 팬카페에도 초등학교 4학년 때 필이 꽂혔다는 팬, 이대 후문 쪽 오빠 집을 찾아갔는데 아버지가 집으로 들어오라고 해 과자를 주셨다는 팬, 첫사랑이라는 팬 등 정말 추억담이 많아요."(박상진) 1970년대 발표한 앨범 재킷/팬카페 제공 1970년대 발표한 앨범 재킷/ 팬카페 제공 ◇ 인기 절정에서 아버지 반대로 은퇴…"40년간 사업에 전념, 돌아보니 후회" 그러나 이현은 인기의 절정에서 은퇴했다. 가수 생활은 대학 때까지만 하라는 아버지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외할머니는 신인상을 타고 세배를 갔을 때 뒤로 돌아앉아 울고 계셨다"고 한다. 그는 "반항심에 아버지가 보는 앞에서 앨범을 스스로 소각했다"며 "내가 법관이 되길 바라셨던 아버지는 내내 탐탁지 않게 여기셨다. 그때 더 버틸 걸 후회한다"고 말했다. "아버지가 2002년 작고했는데 병환으로 오래 누워계셨어요. 그때 저한테 '넌 가수를 하는 게 나을 뻔했다'는 말을 하시더군요. 그 말씀에 정말 약이 올랐어요." 스포트라이트에서 벗어난 그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았다. 당시 함께 활동한 남진, 나훈아, 배호, 이상렬 등 가요계 동료와도 연을 끊었다. 그는 1979년 강남역 뉴욕제과 뒤에 디스코텍 '스튜디오 80'을 오픈했다. 복싱 챔피언이자 친구인 홍수환이 이태원에서 스포츠 댄스 클럽을 하는 걸 보고 300평 규모로 꽤 크게 운영했다. 고(故) 이주일 등이 무대에 섰고 손님을 밀어낼 정도로 번창했다. 그러나 이것도 1년 만에 접을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에게 음악감상실을 한다고 거짓을 고했던 터라 이 사실을 안 아버지의 반대에 다시 부딪혔다. 이후 그는 "인테리어를 하다가 건축일을 했고 통신회사(기산통신)를 운영하는 등 쉬지 않고 사업을 했다"며 "현재 한국코아엔지니어링 회장으로 있다"고 말했다. "노래 맛을 알아갈 즈음 관두면서 미련이 남아 일종의 반항심에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사업을 한 거죠. 그런데 얼굴이 알려진 게 사업에는 지장이 되더군요. 사람들이 뒤돌아서면 '쟤가 '잘 있어요' 부른 사람'이라고 수군댔죠. 녹록지 않았어요." 그는 비로소 다시 노래할 수 있다는 게 더없는 기쁨이지만 거창한 '컴백'이 아니라 다시 음악 안에서 살고 싶은 것이라고 했다. 그는 "올해 김추자 씨가 33년 만에 컴백했다는데 대단한 용기이고 결단"이라며 "김추자 씨처럼 앨범 내고 본격적인 활동을 하는 건 어렵겠지만 팬들과 소통하며 기회가 닿을 때마다 노래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던 팬카페 지기 박씨가 한마디 거들었다. "팬카페에 엄마 따라온 20대 팬도 있고, 남성팬도 2~3할은 돼요. 출발은 미약하지만 오빠를 통해 토막 토막의 추억을 공유하니 즐거운 소풍 갔을 때 느낌이 들어요."(박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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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시한 현아는 빨개요…열정의 다른 표현이죠"미니앨범 '에이 토크' 발표…타이틀곡 '빨개요'로 활동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섹시미는 여성의 매력 중 하나다. 그러나 연예인에게 이러한 이미지가 두드러질 경우 때론 악플에 시달리며 상처를 입기도 한다. '섹시 걸'의 대명사인 포미닛의 현아(22)도 때론 도가 지나치는 말에 마음고생을 했지만, 섹시한 이미지를 자신의 '아이덴티티'로 규정하고 정면 돌파를 시도했다. 오는 28일 발매될 미니앨범 '에이 토크'(A Talk)에서 '빨개요'란 노래를 타이틀곡으로 내세운 것이다. 이번 앨범 콘셉트의 색깔을 '레드'로 정하고 재킷 이미지는 물론 입술 색깔도 붉게 칠했다. '빨개요'의 노랫말은 재치있어 인상적이다. 동요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의 멜로디를 이용해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왓(What), 빨간 건 현아, 현아는 예(Yeah)~'란 가사가 반복돼 귀에 쏙 꽂힌다. 최근 강남구 청담동 큐브 카페에서 인터뷰한 현아는 "'현아는 빨갛다'는 어감이 다소 세지만 나에게 빨간색은 행운의 색깔"이라며 "데뷔 전부터 좋아하던 색이고 1위를 할 때도 늘 빨간 옷을 입고 있었다. 나를 나타내는 의미 있는 색"이라고 설명했다. 노래에 맞춰 '몽키 댄스'도 춘다. 인터뷰 도중 자리에서 일어나 두 다리를 'O'자로 만들고서 한쪽 팔을 흔들어 보이는 모습이 재미있다. "제가 원숭이띠예요. 하하. 이번엔 하이힐을 신고 대놓고 원숭이 춤을 출 겁니다. 안무팀이 원숭이처럼 열심히 추지 않으면 임팩트가 없다고 해서 구두를 신고 날아다니려고요." 신곡을 낼 때마다 뮤직비디오에서 과감한 노출과 몽환적인 눈빛으로 화제가 된 만큼 이번 티저 영상도 공개와 함께 빠르게 클릭 수가 상승했다. 현아는 "'현아는 세다'란 기대가 있어 노출이 적진 않다"며 "이번엔 메이크업과 패션이 섹시하면서도 건강한 느낌이어서 복근 운동과 배드민턴 등 운동을 열심히 했다. 건강해 보이는 건 자신 있다"고 웃었다. '빨개요'에서도 드러나듯이 이번 앨범에선 솔직한 자신의 이야기와 모습을 담았다. 현아는 세 곡의 작사에 참여했다. "공감대가 없는 제 얘기라고 여길 수 있겠지만 현아 자체가 브랜드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만든 앨범"이라며 "현아 하면 '핫하다'는 느낌이 들었으면 좋겠고 정열적이고 열정이 있다는 느낌을 주고 싶다"고 강조했다. 인트로곡 '에이 토크'(A Talk)에선 '원하는 것 이제 다 보여줄게, 알지 나는 절대 거짓말 못 해'라며 자기소개를 한다. 강렬한 힙합 비트의 댄스곡인 '프렌치 키스'에선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이성에게 어필하라는 도발적인 면모를, 비스트의 양요섭과 부른 '어디부터 어디까지'에선 스킨십 진도에 대해 갈등하는 사랑스러운 모습을 보여준다. 반면 힙합곡 '블랙리스트'에선 경고 메시지를 날리며 특유의 카리스마를 선보인다. 이처럼 다양한 모습이 있지만 섹시한 모습이 두드러진 탓인지 현아에 대한 편견도 많다. '잘 놀 것 같다', '연애를 엄청 많이 해봤을 것 같다', '성격이 셀 것 같다' 등. 현아는 "'난 이렇다'고 해명하기 어렵고 '이렇게 봐달라'고 말하는 건 내 주관적인 생각 아닌가"라며 "말로 해명하기보다 보여주는 게 더 빠르다고 생각한다. 이번에 SBS MTV 리얼리티 프로그램 '현아의 프리먼스'를 선보인 것도 평소 어떻게 생활하는지, 무대 아래에선 어떤 모습인지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제가 포미닛, 트러블메이커, 솔로 등 활동이 많아서 싫지만 어쩔 수 없이 보는 분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저도 사람이니 잘 보이고 싶고 예쁨 받고 싶죠. 단지 생각이 바뀐 건 저를 예뻐하지 않는 분들에게 상처받기보다 좋아해주고 기대해주는 분들에게 조금 더 잘 보이도록 열심히 해서 실망시키지 않겠다는 거죠." 그럼에도 현아가 좋다는 사람들의 이유는 다양하다. '어린 나이에 데뷔해 한결같이 열심히 해서', '몸매가 예뻐서', '끼가 넘쳐서' 등. 현아는 "'끼가 많다', '자신감 넘친다'란 말도 감사하지만 노력 없이 받는 칭찬 같아서 '현아 밖에 못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가장 좋다"며 "노력을 통해 뭔가를 만들어냈다는 느낌이 담겨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번엔 비슷한 시기, 원더걸스 시절 멤버이던 예은도 솔로 앨범을 내 의도치 않게 라이벌 구도가 됐다. 현아는 원더걸스를 나와 포미닛으로 활동하면서도 예은과 '절친'으로 지낸다. "예은 언니와 서로의 노래를 들어봤어요. 언니 노래는 저와 상반되는 느낌인데 제가 할 수 없는 모습이니 너무 좋았어요. 언니도 제 노래가 시원해서 여름 분위기에 어울린다고 말해줬죠. 라이벌이라기보다 어린 시절 같은 꿈을 꾸며 걸어왔기에 '우리가 이렇게 컸나'란 생각이 들고 무조건 응원해야죠." 실제 현아는 초등학교 1~2학년 때부터 연예계에 대한 꿈을 키웠다. 아버지와 함께 간 대학로 거리에서 비보잉 공연을 보고서 '춤을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현아는 "돌이켜보니 아버지가 '이걸 해볼래?'라고 말 안하고 눈으로 보여주려 한 것 같다"며 "당시 아역 배우 오디션에서 대본만 읽고 매번 떨어졌는데 춤을 배우고선 무기가 생기니 자신감이 생기더라. 춤을 추면 사람들이 날 달리 보는 게 좋았다"고 웃었다. 이날 현아는 모든 답변마다 한 뼘 자란 모습을 보여줬다. 무대 아래에선 포미닛 멤버뿐 아니라 소속사 직원들의 마음까지 '언니'처럼 살갑게 챙기는 걸로 잘 알려져 있다. "집안에 남동생만 둘이 있어 언니들을 무척 좋아했어요. 언니들이 저를 챙겨주는 모습을 봐서 자연스럽게 그런 행동이 나오는 것 같아요. 아빠가 '네가 있기에 주위 사람들이 있는 게 아니라 그들이 있어 네가 있는 것'이라고 늘 말씀하셨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더 와 닿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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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처세왕' 이열음 "민석이가 제일 원망스럽죠"'중학생A양' 거쳐 '고교처세왕'으로 인기몰이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 10대 소녀배우 이열음이 뜬다. 1996년생으로 올해 만 18세. 분당 영덕여고 3학년에 재학 중인, 키 165㎝ 깡마른 이 소녀가 연예계 데뷔 2년차에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해 JTBC 일일극 '더이상은 못참아'로 데뷔한 그는 MBC 단막극 '소년, 소녀를 다시 만나다'를 거쳐 지난 4월 방송된 KBS 단막극 '중학생 A양'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깜찍한 외모, 신인답지 않은 연기력에 드라마의 강렬한 스토리가 어우러지면서 이열음은 '중학생 A양'이라는 키워드로 인터넷 검색어 1위에 오르는 등 화제의 인물로 떠올랐다. 그는 이 드라마에서 항상 전교 1등만 하다 전학생에게 1등을 빼앗기자 '위험한 일'을 감행하는 도발적인 여중생을 연기했다. 여세를 몰아 tvN 월화극 '고교처세왕'에 캐스팅된 이열음은 서인국과 이하나의 현란한 연기가 화제를 모으는 이 드라마에서 두 선배에게 주눅들지 않는 강단 있는 모습으로 다시 한번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 24일 광화문에서 만난 이열음은 "운이 좋은 것 같다. '고교처세왕'을 촬영하는 것이 마냥 재미있고 그러면서도 배우는 게 너무너무 많아 행복하다"며 활짝 웃었다. '고교처세왕'에서 그가 맡은 정유아는 좋아하는 동급생 이민석(서인국 분)에게 물불 안 가리고 저돌적으로 달려드는 대찬 '고딩'(고등학생)이다. 이민석이 자신에게는 관심도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그를 결혼상대로까지 점찍고 공공연하게 "이서방!"이라고 부르는 못 말리는 소녀다. "실제의 나는 절대로 유아처럼 남자에게 대시하지 못한다. 애교도 떨 줄 모른다"며 웃은 그는 "하지만 유아의 행동을 이해한다. 성격 차이 아니겠냐"고 말했다. 하지만 정유아가 이민석에게 돌직구로 사랑을 던지는 것에만 그친다면 그의 캐릭터는 '부수적인 인물'에 머문다. 정유아 캐릭터가 방점을 찍는 것은 알고 보니 이민석이 좋아하는 상대가 정유아의 10살 연상 친언니 정수영(이하나)이고, 정수영도 이민석을 사랑한다는 기막히는 사연 때문이다. 인터뷰 초반에는 활짝 웃은 그는 현재 극중에서 정유아가 처한 상황으로 돌아가자 '급' 우울모드로 전환됐다. 이열음은 "요즘 유아의 처지를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고 우울해진다. 유아가 너무 불쌍해 보인다"고 말했다. "민석이가 자기 언니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몰랐을 때도 연기하면서 자존심도 상하고 서러움이 울컥 치밀어오르곤 했어요. 유아도 사람인데 쳐다봐주지도 않는 민석이가 너무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민석이랑 자기보다 열 살이나 많은 언니가 사랑에 빠졌다는 사실을 알게 됐으니 더 우울해지더라고요. 자신이 사랑하는 두 사람이 서로 사랑에 빠졌으니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어요." 이렇게 말하면서 다시 한번 '울컥'한 그는 "민석이가 제일 원망스럽다"고 말했다. "지난 회 방송 마지막 장면이 민석이가 괴로워하며 빗속에서 운동장을 마구 뛰는 모습을 유아가 몰래 지켜보는 거였어요. 민석이가 수영 언니를 좋아하는 줄 알면서도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던 유아가 민석이의 그 모습을 보며 마음을 고쳐먹게 되죠. 민석이가 정말 괴로워한다는 것을 확인한 거잖아요. 그 장면을 촬영하고 나서 실제로도 마음이 안 좋았는데 인국이 오빠가 그걸 알았는지 안아주며 달래줘서 한참 울었어요. 정작 극중 유아는 안 울었는데 촬영 끝나고 제가 운 거죠." 짧은 인터뷰에서도 감성이 풍부하다는 것이 느껴졌는데, 그의 이러한 감성과 타고난 외모는 엄마에게서 나온 것이다. 1985년 KBS 공채 11기 탤런트인 윤영주가 그의 엄마다. "엄마 영향 덕분인지 자라면서 가장 먼저 알게 된 직업이 배우이고, 가장 하고 싶은 직업도 배우였어요. 기억에 남은 첫 드라마가 8살 때 본 '풀하우스'인데 송혜교 언니의 연기를 보면서 꼭 배우가 돼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내달 초 '고교처세왕'이 끝나면 이열음은 당분간 '수험생 모드'로 들어간다. "일단 대학 입시에 집중하려고요. 연극영화과 진학을 위해 노력한 후 다시 연기에 뛰어들어야죠. 좋은 배우가 되는 게 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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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딩크·박지성 "한국축구, 이용수 믿고 기다려라"'다시 모인 2002월드컵 주역들' (서울=연합뉴스) 이지은 기자 = 거스 히딩크 감독이 25일 오후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오찬 행사에서 정몽준 대한축구협회 명예회장, 이영표, 박지성과 함께 입장하고 있다. 2014.7.25 jieunlee@yna.co.kr (서울=연합뉴스) 안홍석 기자 = 거스 히딩크 네덜란드 대표팀 감독을 비롯한 2002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인공들이 대한축구협회 신임 기술위원장으로 선임된 이용수 세종대 교수에게 힘을 실어줬다. 히딩크 감독과 박지성, 이영표는 25일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정몽준 축구협회 명예회장과 오찬을 하기에 앞서 취재진과 만났다. 기술위는 한국 축구의 발전 방향을 제시하고 각급 국가대표의 경기력 향상 방안을 모색하는 기구다. 그러나 2014 브라질 월드컵 준비 과정에서 제 역할을 하지 못했고 이는 실패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됐다. 위기를 맞은 축구협회는 2002 한·일 월드컵 때 기술위원장을 맡아 히딩크 감독을 도와 4강 신화를 쓰는 데 큰 역할을 한 바 있는 이 교수를 다시 불러들였다. 히딩크 감독은 '어떤 감독이 새 대표팀 사령탑에 돼야 하느냐'는 질문에 "나는 지금 한국 축구에서 떨어져 있는 입장이어서 판단하기 힘들다"면서 "다만 이 교수를 선임한 것을 올바른 선택이고 현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발걸음"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 교수는 축구를 발전시키는 것에 관해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라면서 "그에게 좋은 감독이 누구인지 검토할 충분한 시간을 주면 된다"고 제언했다. 이 교수에게 쉽지만은 않은 작업이 될 것이라고도 했다. 히딩크 감독은 한국 대표팀을 맡았던 초기에 감정의 파고가 큰 한국 축구팬들의 열정이 불러오는 부정적인 면을 직접 겪은 바 있다. 히딩크 감독은 "현재 세계 축구와 한국 축구 수준의 차이를 현실적으로 봐야 한다. 큰 기대는 언제나 이성과는 거리가 멀다. 실망과 비난이 기다리곤 한다"고 말했다. 이영표와 박지성도 축구팬들에게 이 교수를 향한 '믿음'과 '기다림'을 강조했다. 이영표는 "이상적인 지도자가 와야 한다는 정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그러나 좋은 사람을 찾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면서 "기술위가 해답을 갖고 있을 것이다. 기술위가 독립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지성도 "이 교수는 이미 기술위원장을 한 번 했던 분이라 한국 축구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있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우리가 차기 감독을 얼마나 믿고 도움을 줄지 고민해야 한다. 감독이 자신만의 색깔을 낼 수 있도록 시간을 보장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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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요원, 지난 5월 둘째 딸 출산…하반기 복귀(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 배우 이요원(34)이 지난 5월초 둘째 딸을 출산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이요원의 소속사 매니지먼트구는 25일 이같이 전하며 "산모와 아기 모두 건강하다. 이요원은 현재 차기작을 고르고 있고 1~2주 안에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소속사는 "이요원이 사생활 부분은 노출하길 원하지 않아 출산 사실을 굳이 알리지는 않았다"면서 "이미 몸조리를 마친 상황이며 현재 하반기 출연할 작품을 고르고 있는데 드라마 3편, 영화 3편을 놓고 논의 중이다"고 설명했다. 이요원은 지난 2003년 1월10일 사업가 박진우 씨와 결혼해 그해 12월 첫 딸을 낳았다. 그는 지난해 9월 막을 내린 SBS 드라마 '황금의 제국' 이후 출산을 준비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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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도' 개봉 이틀 만에 100만 관객 돌파올해 개봉작 중 최단 기간 100만 돌파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하정우·강동원 주연의 '군도: 민란의 시대'가 개봉 이틀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올해 개봉작 중 가장 빠른 흥행속도다. 배급사 쇼박스는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을 근거로 개봉 이틀 만에 104만 명을 동원했다고 25일 밝혔다. 이는 올해 가장 빨리 100만 관객을 돌파한 '트랜스포머 4'보다는 하루, 한국영화 중 최단 기간 100만 관객을 돌파한 '신의 한 수'보다는 이틀 앞선 흥행속도다. 앞서 '군도'는 개봉 첫날 55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역대 개봉 영화 중 최고의 오프닝 성적을 올린 바 있다. 영화는 양반과 탐관오리의 착취가 극에 달했던 조선 말기를 배경으로 의적과 악덕 지주의 대결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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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관광 60년> 완행열차, 느릿한 철도에 옛 추억1967년 서울 북가좌역을 통과하는 경의선 열차. (연합뉴스DB)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해방됐을 무렵 우리 국토에는 이미 많은 철로가 개설돼 있었다. 경인선을 비롯해 경부선, 경의선, 호남선, 경원선, 장항선, 전라선, 경춘선, 중앙선이 운영됐다. 사통팔달 연결된 철도는 가장 중요한 교통수단이었다. 1946년 경부선에 특별 급행열차인 ‘조선해방자(朝鮮解放者)호’가 도입되면서 열차의 차별화 시대가 열렸다. 조선해방자호는 전망, 우등, 일등으로 구성된 열차로 이등칸과 삼등칸이 없었다. 일반 운임에 급행료가 붙어서 가격이 비쌌다. 열차는 주로 운송수단으로 인식됐지만, 관광 용도로도 쓰였다. 한국전쟁이 휴전된 지 얼마 되지 않은 1950년대에는 서울에서 경주와 대천으로 향하는 관광열차가 인기를 끌었다. 1955년 피서객을 겨냥해 선보인 대천행 열차는 오전 6시 40분 서울을 출발해 정오 무렵에 도착했다. 오늘날 용산에서 대천까지 무궁화호가 2시간 40분 정도 소요되는 점을 감안하면 매우 느린 편이었다. 이외에도 여름이면 대구와 포항을 오가는 열차, 부산에서 송정리를 왕복하는 열차 등이 운행됐다. 해운대 동쪽에 위치한 송정리역에서는 송정해수욕장이 지척이었다. 경춘선이 출발하는 기점이었던 서울 성동역. (연합뉴스DB) 초창기에 우리나라의 철로를 누비던 열차는 증기기관차였다. 증기기관으로 동력을 얻어 달리는 이 기차는 1927년부터 1945년까지 국내에서 만들어졌다. 하지만 1950년대 미군이 사용하던 수송용 디젤기관차를 인수한 뒤에는 설 자리가 점점 줄어들었다. 결국 1967년 8월 31일 증기기관차의 마지막 운행을 알리는 종운식(終運式)이 열렸다. 이날 '파시형' 증기기관차는 남원에서 서울까지 운행한 뒤 퇴역했다. 하지만 증기기관차는 독특한 모양새와 소리 때문에 이후에도 어린이날 행사 등에 이용됐다. 디젤기관차의 출현은 속도전의 시작이었다. 신속하고 쾌적한 열차들이 끊임없이 모습을 드러냈다. 1969년 2월 경부선에 나타난 '초특급' 열차인 '관광호'가 신호탄이었다. 442㎞ 거리를 평균 시속 78㎞로 달리는 관광호는 여러모로 화제를 모았다. 관광호는 경부선의 또 다른 열차인 '재건호', '비둘기호', '맹호호', '통일호'보다 1시간 이상 빨랐다. 그러나 턱없이 비싼 운임과 운행 2개월 만에 발생한 사고 때문에 탑승객이 많지는 않았다. 그때 서울에서는 여수, 목포, 강릉으로도 특급열차가 다녔는데, 서울과 강릉을 잇는 '십자성호'는 11시간이나 걸리는 '완행' 특급이었다. 경인선 열차의 1969년 모습. (연합뉴스DB) 열차 여행객은 1970년대 들어서면서 급속하게 증가했다. 비용이 저렴하고, 비교적 안전하다는 평가 때문이었다. 1972년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비행기와 고속버스의 탑승료는 각각 4천200원, 1천950원이었다. 그러나 관광호는 2천690원, 특급열차는 1천570원, 완행열차는 810원이었다. 특히 완행열차는 시간은 조금 더 걸리지만, 모든 교통수단 가운데 가장 싼 찻삯을 자랑했다. 그중에서도 중앙선이나 경춘선 완행열차는 풍광이 수려한 명소를 통과해 여행자들이 애용했다. 1980년대에는 선로를 늘리는 복선화 사업이 곳곳에서 진행됐고, 여객 철도 체계도 정비됐다. '관광호'를 개명한 '새마을호'를 필두로 우등열차는 '무궁화호', 특급열차는 '통일호', 완행열차는 '비둘기호'로 명칭이 바뀌었다. 이러한 변화는 수익성이 좋지 않은 완행열차에 대한 폐지와 푸대접으로 이어졌다. 1989년에는 부산과 광주를 연결하는 경전선을 비롯해 경북선과 영동선의 비둘기호 운행이 중단됐다. 1998년에는 천안-대전, 대구-마산, 포항-부산, 동대구-부산 등에서 기적을 울리던 비둘기호 열차 89개가 자취를 감췄다. 지난 10여 년간은 철도 환경이 급변한 시기였다. 증산역에서 구절리역까지 45.9㎞ 구간을 달리던 정선선 비둘기호가 2000년 11월 14일 마지막 운행을 마쳤다. 이로써 비둘기호는 역사에서 완전히 퇴장했다. 정선 증산역과 구절리역을 오가던 비둘기호 열차. (연합뉴스DB) 반면 2004년 4월에는 12년간의 공사를 통해 완공된 경부고속철도가 개통돼 최고 시속 300㎞의 고속열차인 KTX가 투입됐다. KTX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2시간 40분 만에 주파했다. 비둘기호에 이어 통일호도 뒤안길로 물러났지만, 완행열차는 여전히 존재한다. 30년 전 우등열차였던 무궁화호가 완행열차의 바통을 이어받았다. 무궁화호를 타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5시간 30분이 걸리지만, 가장 먼저 매진될 만큼 인기가 높다. 또 경전선과 장항선, 영동선 등에서 운행되는 무궁화호도 열차 여행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광주에서 전남 화순으로 향하는 경전선 무궁화호 열차. (연합뉴스DB) 이제 완행열차는 '관광열차'로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중부내륙 순환열차(O-트레인), 백두대간 협곡열차(V-트레인), 남도해양 열차(S-트레인) 등은 아름다운 자연을 감상할 수 있는 열차 여행 상품이다. 간이역마다 정차하지는 않지만, 예스러운 정취를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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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접기 종주국은 일본이 아니라 한국이랍니다"일본 국비유학생들이 삼태극부채를 접은 뒤 들어보이고 있다.<<종이문화재단 제공>> 종이문화재단, 일본 가는 유학생 100명에게 종이접기 특강 (서울=연합뉴스) 왕길환 기자 = "전 세계인들은 대부분 종이접기라고 하면 일본의 '오리가미'를 떠올리는데, 사실 한국이 종이접기 문화를 선도한 종주국입니다." 종이문화재단·세계종이접기연합(이사장 노영혜)이 24일 경희대 국제교육원(원장 김중섭)에서 국비로 일본 유학을 떠나는 대학생 100명을 대상으로 '종이접기' 특강을 열었다. 한일 양국은 지난 1998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일본 국빈 방문 당시 '일본공과대학 학부 유학생 파견 사업'에 합의했다. 이날 특강에 참석한 수강생들은 올해 선발된 유학생들로, 지난 3월부터 6개월 과정의 예비교육 과정을 이수하고 있다. 노영혜 이사장은 '우리의 종이접기·종이문화의 세계화를 위하여'라는 주제의 특강에서 "우리는 선조부터 내려온 세계 제일의 종이문화와 종이접기의 전통이 있음에도 세계 많은 나라에서 종이접기의 외국어는 '오리가미'로 통용되고 있다"면서 "가라테(Karate)와의 경쟁을 뚫고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된 태권도(Taekwondo) 사례를 모델로 삼아 우리말 그대로 '종이접기'로 발음하고, 표기할 때도 'Jongie Jupgi'로 할 수 있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학생들은 조선시대 전기에 유행했던 승경도놀이의 종이접기 방식 설명에 높은 관심을 보였다. 4∼8명이 즐기는 승경도놀이는 관직의 등급과 상호관계를 놀이로 익히며 벼슬에 오르는 꿈을 키워준다. 이들은 특강을 들은 후 종이문화재단 부설 한국수학종이접기교육협회 오영재 회장의 지도로 마름모를 이용한 삼태극(三太極) 부채와 정육면체를 접으며 종이접기의 수학적 활용을 배우기도 했다. 종이문화재단은 매년 일본에 나가는 국비 유학생들에게 한국문화 소양교육을 위한 종이문화 특강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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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과수 "유병언 틀림없지만 사망원인은 판명 못해"(종합2보)유병언 사인 감정결과 브리핑 (서울=연합뉴스) 임헌정 기자 = 서중석 국립과학수사연구원장이 25일 오전 서울 양천구 신월동 국과수 서울분원에서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사인 감정결과를 브리핑하고 있다. 서중석 원장 "부패 심하고 장기 소실돼 원인 판명 어려워" "질식사·지병·외력에 의한 사망 확인 불가"…"중독·약물 가능성은 없어" (서울=연합뉴스) 윤보람 이태수 이도연 기자 = 변사체로 발견된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시신을 정밀 감식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은 25일 "독극물 분석과 질식사, 지병, 외력에 의한 사망 여부 등을 분석했으나 부패가 심해 사망 원인을 판명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서중석 국과수 원장은 이날 오전 서울 양천구 소재 국과수 서울분원에서 브리핑을 열고 이같이 발표했다. 국과수는 지난달 12일 전남 순천 송치재 인근 밭에서 숨진 채 발견된 유씨의 시신을 지난 22일 서울분원으로 옮겨 사인을 규명하기 위한 정밀 부검과 약독물 검사 등을 진행해왔다. 국과수는 독극물에 의한 사망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유씨의 간과 폐, 근육 등 감정물을 일반독물과 마약류, 케톤체류 등으로 감정했다. 그 결과 간과 폐는 모두 음성 반응을 보였고 근육은 케톤체류의 경우에만 음성 반응을 보였으며 나머지는 반응이 나타나지 않았다. 서 원장은 또 목 등 질식사 가능성, 지병 등에 의한 사망 가능성, 멍 등 외력에 의한 사망 가능성 등을 모두 분석했으나 시신이 심하게 부패하고 내부장기가 소실된 탓에 사인을 판명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손가락 뼈 결손으로 유병언 확인 (서울=연합뉴스) 임헌정 기자 = 서중석 국립과학수사연구원장이 25일 오전 서울 양천구 신월동 국과수 서울분원에서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사인 감정결과를 브리핑하고 있다. 사인 분석에서 뱀 등 맹독성 동물에 의한 중독 또는 약물에 의한 사망 가능성은 낮아 배제됐다. 이로써 유씨의 사망 원인과 경위는 결국 미궁에 빠질 것으로 보인다. 서 원장은 아울러 시신이 발견된 현장에서 수거한 증거물들에서 DNA를 분석한 결과 소주병과 스쿠알렌병에서 유씨의 DNA가 검출됐다고 밝혔다. 다만 DNA가 유씨 몸에 붙어 있던 파리 등을 통해 옮겨진 것일 수 있어 유씨가 이 물건들을 직접 만졌다고 속단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유씨 주변에서 발견된 술병들에서는 약독물이 검출되지 않았다. 사인 감정에 참여한 이한영 중앙법의학센터장은 "일반적인 부패 시신이라도 사인 규명이 가능한 경우가 있는데 유씨 같은 경우는 너무 많은 조직이 손실돼 사인을 규명할만한 실마리가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 국과수 "유병언 목 골절 없어…외력여부 추측 안돼" (서울=연합뉴스) 임헌정 기자 = 이한영 중앙법의학센터장이 25일 오전 서울 양천구 신월동 국과수 서울분원에서 열린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사인 감정결과 브리핑에서 설명을 하고 있다. 이 센터장은 "시신에서 목 골절이 없어 외력 여부는 추측되지 않지만 흉기가 작용했다는 증거는 없다"며 "연조직이 전혀 남아있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질식사 가능성에 대해서는 용단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유씨가 5월 25일 이후 사망한 것으로 추정했을 때 불과 17∼18일 만에 반 백골화 상태가 될 수 있느냐는 논란에 대해, 외국 연구 결과를 소개하며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서 원장은 부검을 통해 확인한 좌측 대퇴골 길이와 추정 신장, 왼쪽 둘째 손가락 끝마디 뼈 결손, 치아 및 DNA 분석 결과 변사체가 유씨가 맞다고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사망 시점에 대해서는 "부패에 영향을 주는 습도와 온도가 매번 달라 현재로서는 확인이 불가능하다"면서도 "시신 사진상으로 사망한 지 10∼15일쯤 된 것 같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것보다 오래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서 원장은 또 "유씨의 간과 폐에서 미량의 알코올 수치가 발견됐지만 이는 일반적인 시신보다는 낮은 수치"라며 "이것만으로 유씨가 음주를 했는지는 알 수 없으며 숨질 당시 알코올이 검출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 정확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오로지 과학적 지식과 방법으로 진실 규명을 위해 최선을 다해 이번 감정에 임했다"며 "의혹을 완전히 풀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있지만 이번 발표를 통해 많은 불신과 오해가 해소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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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 난입 팬 껴안고 보호한 로드리게스>하메스 "고맙습니다"(AP=연합뉴스) 구름관중 앞 훈훈한 장면…슈퍼스타 호날두와 닮은꼴 (서울=연합뉴스) 장재은 기자 = 월드컵 득점왕 하메스 로드리게스(23)의 레알 마드리드 입단식이 돌발사건 덕에 더 달아올랐다. 23일(한국시간) 스페인 프로축구 레알 마드리드에 따르면 홈구장 베르나배우에서 열린 로드리게스의 팬 대면식에는 관중 4만6천여 명이 운집했다. 로드리게스는 10번이 새겨진 흰 유니폼을 입고 축구공을 던지거나 차는 방식으로 관중석에 나눠줬다. 그 과정에서 한 남성팬이 운동장으로 뛰어들어 로드리게스를 껴안았다. 이 남성은 주위에 있던 경호원들에게 목이 졸린 채 바닥에 고꾸라졌다. 로드리게스는 경호원들의 제지를 뜯어말려 팬을 다시 일으켜 세운 뒤 축구공 하나를 건넸다. 경호원들의 양해를 얻어 어깨동무하고 난입 팬을 필드 밖까지 직접 안내하기도 했다. 훈훈한 장면에 관중의 우레 같은 박수갈채가 쏟아지는 가운데 또 한 명의 팬이 난입했다. '활약 기대해 주세요' (AP=연합뉴스) 하메스 로드리게스가 22일(현지시간) 스페인 마드리드의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구장에서 열린 레알 마드리드 입단식 중 계약서에 서명 한 뒤 손을 흔들고 있다. 레알 마드리드는 로드리게스와 6년 계약을 맺었다. New Real Madrid player James Rodriguez, from Colombia, waves during his official presentation at the Santiago Bernabeu stadium in Madrid, Spain, Tuesday, July 22, 2014, after signing for Real Madrid. Real Madrid have signed Rodriguez from Monaco on a six-year contract, (AP Photo/Daniel Ochoa de Olza) 이 팬은 로드리게스를 껴안기 전에 경호원들에게 붙잡혀 필드 밖으로 끌려나갔다. 로드리게스는 퇴장당하는 이 팬에게는 포옹 대신 축구공 하나를 직접 건넸다. 레알 마드리드에서 거액을 들여 영입한 슈퍼스타들은 열성팬들을 깍듯이 대하는 태도를 보여왔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작년 9월 미국 마이애미에서 열린 친선경기에 난입한 팬을 경호원들의 거센 제압으로부터 보호했다. 호날두는 난입 팬을 한참 껴안고 귀엣말까지 나누고 나서 필드 밖으로 보냈다. 알바니아에서 미국으로 유학을 온 이 팬은 경기장 난입 때문에 기소돼 자국으로 추방될 처지에 몰렸다. 호날두는 나중에 이 상황을 전해듣자 미국 사법당국에 탄원서를 보내 해당 팬이 추방되지 않고 학업을 계속하도록 돕기까지 했다. <경기장 난입 팬 껴안고 보호한 로드리게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