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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경찰도 범죄로 판단했던 위안부 모집…문서 공개군 개입 알기 전까지 '유괴 사건'으로 인지 조사해 위안부 모집과정을 목격한 일본 경찰이 당시 상황을 '유괴'로 인지하고 조사했다는 내용을 담은 일본 경찰 문서가 나왔다.한일문화연구소 김문길 소장은 1938년 2월 7일 일본 와카야마현(和歌山) 경찰부장이 내무성 경찰국장에게 보낸 '시국 이용 부녀 유괴 피의사건' 문서를 13일 공개했다. '시국 이용 부녀자 유괴 피의사건' 문서[김문길 한일문화연구소장 제공 = 연합뉴스]문서는 소와13년(일본력·1938년) 1월 6일 오후 4시 와카야마현 후미사토(文里) 음식 상가에서 거동이 좋지 못한 남성 3명을 발견했다는 내용으로 시작한다.이에 후미사토 수상파출소 순사가 주의를 기울이자 남성 2명이 순사에게 "의심할 것 없다. 군부로부터 명령을 받아 황군위안소에 보낼 작부를 모집하고 있다. 3천 명을 요구받았는데 지금까지 70명을 육군 군함에 실어 나가사키 항에서 헌병들 보호 아래 상해로 보냈다"고 진술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문서에는 이후 정보계 순사가 이들을 수사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문서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여성들에게 '돈을 많이 주고, 군을 위문하기만 하면 음식 등을 군에서 지급한다'는 방식으로 '유괴(誘拐)'한 혐의가 있다"면서 이들 3명에 대해서는 '피의자(被疑者)라고 지칭하며 신분과 이름을 기록해 놓았다. 나가사키 외사경찰과장 답변내용[김문길 한일문화연구소 소장 제공 =연합뉴스]이 문서가 내무성으로 보내진 열흘 뒤 나가사키 경찰서 외사경찰과장이 와카야마 경찰서로 답신을 보낸다.답신에는 "부녀자 유괴 사건은 황군 장병 위안부 모집에 관한 것"이라면서 "상해에 있는 영사관에서 앞서 나가사키 수상경찰서도에 이런 내용을 통보하기도 했다"고 적어놨다. 답신에는 또 "본국에서뿐만 아니라 조선에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모집하고 있으니 증명서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편의를 봐주라"는 내용도 덧붙이고 있다. 나가사키 경찰서 답변내용 2[김문길 한일문화연구소 소장 제공 = 연합뉴스]이에 대해 김 소장은 "군부와 영사관이 개입한 사실을 알기 전에는 일본 경찰도 위안부 모집과정을 보고 '범죄'로 판단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면서 "자국에서조차 위안부를 동원하려고 '유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동원했는데 조선에서는 어떻게 동원했을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일본이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뒷받침할 증가가 없다고 매번 발뺌하는 것은 후안무치한 언행이 아닐 수 없다"며 "일본 정부는 과거의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피해자들에게 사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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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따라 멋따라] 해송·기암절벽이 반기는 곳…부산 태종대파도 드나들 때마다 사르르 소리 내는 자갈마당 부산대교를 지나 영도 해안을 따라 9.1㎞를 차로 달리면 영도 최남단 태종대에 도착한다.해발 250m 태종산을 중심으로 해송과 수목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해안에는 깎아 세운듯한 절벽과 기암괴석이 관광객을 반기는 곳이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부산하면 해운대 바다를 공식처럼 떠올리지만 사실 부산사람의 화끈한 기질을 닮은 바다는 태종대 앞바다다. 날씨가 궂은 날에는 거대한 바위 절벽을 향해 간담이 서늘할 정도로 무섭게 파도가 치다가도 맑은 날은 에메랄드빛 파도가 하얗게 부서지며 예쁜 풍경을 자랑하는 곳이다. 태종대 전경[연합뉴스 자료사진]태종대 유원지 입구에 차를 대고 관광객들은 3가지 방법으로 태종대를 둘러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다누비 열차'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태종대 산책로를 따라 순환하는 꼬마 열차로 한번 표를 끊으면 타고 내리기를 반복하며 관광지를 둘러 볼 수 있다. 두 번째는 유람선을 이용하는 방법이다.40여 분간 바다 위에서 태종대를 볼 수 있는데 유람선을 따라 쫓아다니는 갈매기떼에게 먹이를 주면 눈앞까지 바짝 다가와 먹이를 채 가는 이색적인 장면도 볼 수 있다. 태종대 다누비 열차[연합뉴스 자료사진]마지막 방법은 두발로 산책로를 따라 1시간여가량 걸으며 태종대를 즐기는 것이다. 가장 추천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태종대 광장에서 시작하는 산책로는 둥글게 연결되기 때문에 좌우 어느 방향으로 출발하든 따라 걸으면 광장으로 돌아올 수 있다.우측 산책로에서는 가장 먼저 생달나무, 후박나무, 동백나무 등 200여 종의 수목과 60여 종의 새를 만날 수 있다.나무 사이로 보이는 해안의 모습은 한 폭의 그림 같다.20여 분간 천천히 걸어 태종대의 끝자락인 전망대에 도착하면 탁 트인 바다가 한눈에 안겨온다.일출과 일몰 명소로도 유명한 곳이다. 태종대 등대 태종대라는 이름은 신라 태종무열왕에게서 왔다. 무열왕이 이곳에서 활을 쏘고 말을 달렸다는 설이 있다.전망대에서 기암절벽과 해안을 보고 있노라면 말을 타고 누비는 무열왕의 기상이 절로 떠오르는 듯하다.망망대해에는 꼬마 섬과 오륙도가 눈에 들어온다. 날이 좋을 때는 태종대에서 약 56㎞ 떨어진 일본 대마도도 희미하게 보인다. 전망대에서 내려와 산책로를 따라 5분 정도 더 걸으면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영도 등대를 볼 수 있다.1906년 12월에 설치된 등대로 세계 각국의 선박이 영도 등대를 지표로 부산항을 찾았다. 이곳 영도 등대에는 2004년 자연사박물관, 해양도서실, 해양영상관, 갤러리 등 부대시설도 갖춰졌다.등대에서 바다를 향해 오른쪽으로 고개를 살짝 돌리면 넓고 평평한 바위 하나가 보인다. 옛날 선녀들이 노닐었다는 전설이 있는 신선바위다. 신라말 고운 최치원 선생이 '신선대'라고 쓴 진필 각자도 있었다고 한다.신선바위에는 유일하게 우뚝 솟은 망부석이 있다. 태종대 신선바위와 망부석[연합뉴스 자료사진]신라 눌지왕 때 일본에 볼모로 있는 왕자를 구하고 죽은 박제상의 아내가 이곳에서 남편을 기다리다 망부석이 됐다는 사연이 전해진다.등대 왼편을 절벽 계단을 따라 한참 내려가면 파도를 눈앞에서 볼 수 있는 자갈마당이 나온다.쉴 새 없이 파도가 들었다가 나가며 자갈들이 휩쓸리고 부딪쳐 사르르∼ 낮게 소리를 낸다. 시원한 해풍을 맞으며 자갈 소리를 한참 듣고 있으면 마음에 평화가 찾아온다. 태종사 수국 6월이면 태종대에서 꼭 들러야 할 곳도 있다. 35종의 수국 4천여 그루가 활짝 피는 태종사다.경내 곳곳에 붉은색, 하얀색, 보라색 등 탐스럽게 핀 수국을 배경으로 인생 샷을 남기려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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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먹거리 대저토마토 축제 8∼9일 열린다'대저토마토 축제 오세요' [자료사진](부산=연합뉴스) 31일 부산 강서구 강서체육공원에서 대저농협 관계자들이 4월 2일 개막하는 대저토마토축제를 홍보하고 있다. 토마토 무료시식회, 토마토 경매 이벤트 등 다양한 행사가 이틀간 이어진다. 2016.3.31 [부산 농협 제공] ccho@yna.co.kr부산의 먹거리 중 하나인 대저토마토를 주제로 한 축제가 강서구 대저동 강서체육공원 광장 일대에서 오는 8∼9일 열린다.1일 대저토마토축제위원회에 따르면 축제 첫날인 8일 오전 10시에는 '토마토 생태탐방 걷기대회'가 열린다. 걷기대회에 참가한 시민들은 1시간 20분가량 토마토 농가 곳곳을 탐방하며 토마토 시식을 한다. 오후 1시부터는 토마토 풍년 기원제, 난타공연, 소망풍선 날리기, 대형 토마토 스파게티 만들기 행사가 열린다.토마토 경매를 통해 시민들은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도 있다.이튿날인 9일은 체험행사가 많다. 토마토 높이 쌓기, 토마토 빨리 먹기, 포춘쿠키 체험, 냅킨아트, 토마토 대형 버거 만들기가 준비됐다.대저 토마토는 일명 '짭짤이 토마토'라고도 불린다. 낙동강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곳에서 재배돼 토양에 스며든 바닷물의 영향으로 약간 짠맛이 나는 것이 특징이다.아삭한 식감이 좋기로도 유명하다. 이틀간 5천㎏이 넘는 대저토마토가 공수되는 축제에는 매년 10만 명 안팎의 시민과 관광객이 참가하고 있다.대저토마토축제위원회가 주최하는 축제는 올해로 17회째를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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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편 환승대기 '틈새 관광객' 부산 1천100명 유치김해공항 이륙하는 에어부산 항공기 [연합뉴스 자료사진]김해국제공항에서 비행기를 갈아타는 외국인 환승 승객들이 대기시간 부산을 관광할 수 있도록 부산시가 환승 관광객 유치 지원프로그램을 시행한 지 1년 만에 관광객 1천 명을 유치했다.부산시는 지난해 4월부터 올해 3월 말까지 김해국제공항 환승 관광객 지원프로그램을 이용했거나 이용이 예정된 승객이 모두 1천148명이라고 4일 밝혔다.이 가운데 개별관광객은 238명, 단체관광객은 910명이다.이 프로그램은 환승 승객이 틈새 시간 부산의 매력을 맛보게 해 다음번에는 부산을 목적지로 하는 관광을 유도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외국인이 김해공항 안내데스크에 환승 비행기 티켓을 보여주면 1만5천 원짜리 교통카드, 음식점 할인티켓, 관광안내도 제공 등 다양한 혜택을 준다.부산시청 [연합뉴스 자료사진]지난해에는 일본인 관광객을 대상으로만 우선 시행했고 올해 4월부터는 무비자 협정이 맺어진 동남아 지역 관광객까지 대상을 확대할 예정이다.부산 김해공항에는 12개 국가 42개 노선이 촘촘하게 연결돼 외국인 환승객이 매년 4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부산시의 한 관계자는 "시행 첫해이고 대상도 6∼8시간 이상 환승을 기다리는 일본인으로 한정돼 있어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지는 못했지만 새로운 관광수요를 창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강해상 동서대학교 관광학부 교수는 "김해공항에서 서면이나 남포동 도심까지 30분 정도 걸리는데 홍콩공항이나 오사카 공항과 비슷한 수준이어서 환승 관광을 하기에 결코 나쁜 조건이 아니다"면서 "맛보기 관광을 제공해 외국인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다면 관광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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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케시마의 날?" 일본 엉터리 주장에 대한 3가지 반박한일문화연구소, 일본 문서 근거로 모순 지적 일본은 112년 전 오늘, 독도를 자기 땅으로 편입했다고 주장한다. 일본 시마네현이 1905년 2월 22일 '고시 40호'를 통해 독도를 편입했다는 것이다. 시마네현은 2005년부터 이날을 기념해 '다케시마(일본인이 독도를 부르는 명칭)의 날' 행사를 여는 등 일본의 역사 왜곡이 도를 넘고 있다. 국내 학자들은 이런 일본의 주장이 "터무니없다"고 말한다. 특히 한일문화연구소 김문길 소장은 일본 자료를 근거로 일본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하며 자기모순 점을 지적한다. 연합뉴스는 21일 김 소장을 인터뷰했다. 김 소장은 이날 3개의 일본 자료를 통해 "고시를 통한 영토 편입" 주장을 반박했다. ◇ "독도 편입 고시 실제로 있었는지 의문" 김 소장은 '시마네현 고시 40호'의 원본을 누구도 실제로 본 사람은 없다고 말한다. 일본은 원본이 1945년 '불에 탔다'고 주장한다. 현재는 사본 2장만 남아있다. 김 소장은 이 사본이 진짜인지도 의심스럽지만, 잘 분석해볼 필요는 있다고 한다. 생각하기에 따라 일본 측에 유리하기만 한 자료는 아니라는 것이다. 김 소장은 고시 40호 사본에 있는 '회람(回覽)'이라는 붉은 글자에 주목했다. 시마네현 고시 40호파란선으로 표시한 부분이 '회람' 글자. [김문길 교수 제공 = 연합뉴스] '회람'은 말 그대로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결정된 사항을 대외적으로 공표하기 전에 내부 검토를 위해 활용하는 문서로 외부에 공표되지 않았으면 아무런 효력이 없다. 김 소장은 이 문서가 회람용이었을 뿐 실제로 외부에 공표됐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고 말했다. 오히려 이 문서가 공표되지 못했을 수 있다는 정황은 차고 넘친다고 주장했다. 김 소장은 "구체적 정황을 밝히기에 앞서 타국의 영토를 '고시'라는 행위를 통해 편입한다는 일본의 발상 자체가 어이가 없다"면서 "국제법 전문가는 아니지만, 고시로 남의 땅을 편입할 수 있다는 말은 부산시 조례로 일본땅을 편입했다는 주장이랑 비슷한 소리"라고 지적했다. ◇ "1905년에 편입? 일본 자료에는 '1939년' 편입" 김 소장의 이런 지적은 시마네현 박물관에서 발견한 2장의 문서 때문이다. 1939년 9월에 작성된 문서로 시마네현 관료가 시마네현 소속 지방촌인 오키섬의 촌장에게 독도 관련 역사를 묻고 답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문서를 보면 시마네현 관료가 오키섬 촌장에게 "독도를 언제, 어떤 방식으로 편입했느냐"고 묻자 오키섬 촌장은 "다케시마를 쇼와14년(1939년) 4월 24일 편입했으며 당시 촌의회를 거쳐 만장일치로 편입했다"고 답하고 있다. 오키섬 촌장과 시마네현 관료가 주고받은 2장의 문서 1905년 고시로 편입했다는 일본 주장과 달리 실제로 독도 편입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오키섬 주민들은 정작 1939년에야 독도를 편입했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 편입 시기의 차이는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일본이 그동안 '1905년' 편입을 주장한 것은 1910년 국권침탈 전에 영토를 편입했다는 주장을 하고 싶어서다. 1910년 경술국치 이후 독도를 편입한 것이라면 1945년 일본의 패전과 동시에 독도는 당연히 반환돼야 할 영토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김 소장은 "1939년에 독도가 편입됐다면 합일합병 이후에 편입한 것이어서 당연히 반환 대상"이라면서 "1939년에 실제로 독도를 편입했다는 사료는 1905년의 고시가 내부열람용에 그쳤다는 정황과도 딱 맞아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 일본 어부 "독도 편입 비밀리에…" 독도는 1900년대 초 물개 '강치'의 대표적인 서식지였다. 당시 일본에서는 강치의 기름과 가죽으로 만든 제품이 불티나게 팔렸고 일본 어부들은 이 강치 포획에 열을 올렸다. 일본 어부인 '나카이 요사부로'가 1904년 강치잡이를 위해 독도를 주인 없는 땅이라고 말하며 시마네현에 독도를 편입해 달라고 최초로 주장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나카이 요사부로는 독도가 대한제국의 땅인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앞서 대한제국 정부에 독도 어업독점권을 청원했지만 거절당하자 "주인없는 땅"이라는 망언을 하며 일본 내무성과 외무성, 농무부에 민원을 제기한 사실이 다양한 사료를 통해 확인된다. 김 소장은 "나카이 요사부로는 독도 편입을 신청하면서도 '편입 사실을 세상에 알리지 말아달라'고 당부하는 등 자신의 주장이 얼마나 억지스러운 것인지를 인지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당시 일본 내무성도 독도 편입을 반대한 것으로 알려진다. '한일어업교섭사료'를 보면 내무부가 "러시아와 전쟁 중인 상황에서 독도를 편입하면 주변국 관계를 고려할 때 외교적으로 손해"라는 의견을 표했다는 부분이 나와 있다. 한일어업교섭사료[김문길 소장 제공 =연합뉴스] 김 소장은 "일본은 다케시마의 날 행사를 당장 폐지하고 억지 주장과 역사 왜곡을 멈춰야 한다"면서 "과오는 반성하고 피해자에게는 진심 어린 사과를 할 때 한일 관계에 발전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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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던 버스서 굉음ㆍ누유ㆍ연기…경찰, 사투 끝 폭발 막았다엔진 굉음과 함께 기름이 누출되고 연기가 나는 관광버스에 경찰이 탑승해 엔진을 끄고 주변 시민들을 대피시켰다.3일 부산 사상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1일 낮 12시 10분께 부산 사상구의 편도 4차선 도로 2차로를 달리던 관광버스에서 연기가 발생했다.버스 기사 A(61)씨는 차량을 급제동한 뒤 엔진을 끄려 했지만 오히려 굉음만 커지고 기름까지 누출되는 등 상황은 악화했다. 일대는 연기에 휩싸였고 주변 차량들은 통행이 불가능해져 모두 멈춰섰다. 기름새고 연기나는 버스 [부산지방경찰청 제공 = 연합뉴스]순찰 중 이 장면을 목격한 학장지구대 서보훈 순경과 박강학 경위는 곧장 사고 현장으로 뛰어들었다. 관광버스 내부에 탑승객이 없는 것을 가장 먼저 확인한 뒤 다리를 저는 기사를 대피시키고 대신 박 경위가 올라탔다. 서 순경은 그 사이 119에 지원을 요청하면서 폭발 가능성에 대비해 길가에 있는 시민을 대피하도록 유도했다. 박 경위는 "엔진을 어떻게든 꺼야 하는 상황이었고, 만약의 상황이 닥치면 다리가 불편한 기사보다 내가 더 빨리 나올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면서 "차 열쇠를 아무리 돌려도 엔진이 꺼지지 않았는데 10분 정도 시도한 뒤 겨우 꺼져 안도했다"고 말했다.경찰의 한 관계자는 "차고지로 복귀하는 관광버스여서 다행히 승객은 없었는데 생각만 해도 아찔한 사고"라면서 "두 경찰이 2차 사고를 막으려고 애를 쓴 덕분에 불상사가 없었던 것 같다"고 전했다.경찰은 버스업체를 상대로 화재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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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따라 멋따라> 석양이 그린 한 폭의 그림…부산 다대포 낙조(부산=연합뉴스) 차근호 기자 = 석양이 질 때쯤이면 부산 다대포 해수욕장에는 붉은 수채화 한 폭이 그려진다.파란 가을 하늘 속 저물어 가는 태양에서 피어오르는 붉은 기운은 어느새 온 하늘을 층층이 붉은 색감으로 물들인다. 어쩌다 구름 사이로 빛내림이 생길 때면 아름다운 풍경은 경외감마저 들게 한다. 부산 다대포 낙조 촬영 차근호 기자 부산 시내에서 서남쪽으로 8㎞ 떨어진 곳에 있는 다대포 해수욕장은 낙동강과 바다를 동시에 품고 있다.낙동강에서 밀려 내려온 부드러운 모래가 반원형으로 완만하게 쌓여 경사를 이루는 다대포 해변은 '부산 낙조 1번지'다. 해가 기울기 시작할 때쯤이면 어디선가 몰려든 사진 애호가들이 해변에 진을 친다.길게는 15분 정도 이어지는 그림 같은 순간이 사진가들을 매료한다.하늘에 붉은 색감이 진해질 때면 다대포의 모든 것들이 피사체가 된다.노을을 배경으로 걷는 남녀와 그저 바다를 바라보는 누군가의 모습은 아무렇게나 셔터를 눌러도 예쁘다. 부산 다대포 낙조촬영 차근호 기자 다대포에서 물결치는 건 파도만이 아니다. 파도가 물러난 자리 개펄은 겹겹이 주름져 파도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석양과 함께 담아내는 개펄의 모습도 사진가들이 좋아하는 장면 중 하나다.사진 촬영하기에는 다대포 하조대가 좋다. 이곳에서는 몇 발짝만 옮기면 서쪽 바다와 동쪽 바다를 번갈아 볼 수 있다. 다대포 서편 꽃지에서는 해송이 어우러진 울창한 숲과 함께 일몰을 감상할 수 있다. 부산 다대포, 물결 치는 듯한 개펄촬영 차근호 기자 다대포는 어린이들의 손을 잡고 놀러 가기도 좋은 곳이다.여름에는 해수욕이 가능하고, 생태체험교육을 하기도 좋다. 개펄에 송송 뚫린 구멍 사이로 빠르게 몸을 숨기는 게와 조개를 관찰하고 잡는 것이 가능하다.부산시는 2014년 '그 순간 그 장면-부산관광 명소' 9곳을 발표했다. 다대포 바닷가는 이 가운데 두 곳이나 선정됐다. 부산 다대포 모습촬영 차근호 기자 다대포 해수욕장 옆 명승지인 해발 78m의 몰운대는 그 이름이 구름에 잠겨 있는 곳이라는 뜻이다. 원래는 섬이었지만 모래톱이 쌓이면서 육지와 붙어 지금의 모양이 되었다. 일본 조선통신사 조엄은 해사 일기에서 몰운대의 경치를 "아리따운 여자가 꽃 속에서 치장한 것 같다"고 빗대기도 했다. 이곳에는 다대포 객사와 이순신 장군의 밑에서 유능한 장수로 이름을 떨친 정운 장군의 순의비가 있으니 꼭 가보자.다대포 해수욕장 뒤편 아미산 중턱에 있는 전망대도 꼭 들러보자. 낙동강 하구에 펼쳐진 모래톱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강물이 운반해온 고운 모래들이 쌓여 하나의 비경을 만들어 낸다. 이 모래톱에는 물고기, 조개, 곤충 등 새들의 먹잇감이 풍부하고, 알을 낳고 새끼를 키울 수 있는 모래밭 갈대밭이 있어서 새들에게는 천국과도 같은 장소다. 낙동강 모래톱[연합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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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는 국내로> ⑨ 소박한 골목길이 아름다운 부산 감천문화마을6·25 때 부산에 몰린 피란민이 만든 마을파스텔톤으로 알록달록 칠해진 지붕이 예쁜 마을 (부산=연합뉴스) 차근호 기자 = 감천문화마을의 매력은 소박한 골목길에 있다.꼬불꼬불 끊어질 듯 이어지는 골목길.막다른 골목인 줄 알았는데 골목 끝자락에 길이 연결되고,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마주하는 막다른 골목. '예측불허' 우리 인생을 닮은 이 골목길에는 한국전쟁 이후 힘들었지만 정겨움이 가득했던 우리네 삶의 흔적들을 곳곳에서 마주할 수 있다.그래서 감천문화마을을 방문했던 사람은 말한다. 그곳에 가니 사람 냄새가 나더라고. 감천문화마을 행정구역상 부산 사하구 감천 2동에 속하는 '감천문화마을'은 우리 민족 근대사의 아픈 일면을 담은 곳이다.한국전쟁 때 낙동강 이남으로 몰려든 피란민들이 팍팍한 산 중턱에 삶의 뿌리를 내리면서 생긴 곳이다.앞집이 만들어지면 뒷집은 조금씩 산등성이를 올라가며 지어졌다. 어느새 산허리까지 집이 들어섰다.레고블록으로 쌓은 듯 계단식 집들이 촘촘히 서 있다. 비슷한 모양의 집들에 개성을 더하는 건 지붕색깔이다. 파스텔톤으로 알록달록 칠해진 집들은 독특한 색감을 자랑한다. 감천문화마을 대형 버스주차장이 있는 마을 입구부터 둘러보는 게 좋다. 이곳에서 마을 지도를 구매해 둘러볼 곳을 미리 생각해두자. 투어 코스는 모두 두 개다. 사진촬영을 나왔거나 기억에 남을 '셀카'를 찍고 싶다면 '스탬프 코스'가 좋다. 만약 감천문화마을의 방문이 두 번째라면 '공방체험 코스'를 택하는 게 좋겠다. 공방체험 코스는 '스탬프 코스' 중 몇 개의 주요코스를 예술가들이 있는 공방을 중심으로 추린 코스다. 모두 1시간 반이면 완주가 가능한 코스다. 스탬프 코스보다 짧고 주로 내리막으로 구성돼 체력이 약한 사람에게도 추천한다.감천문화마을의 명물은 148계단이다. 마을 꼭대기부터 아래까지 직선으로 한 번에 연결하는 계단이다. 어마어마한 길이에 처음 본 사람들은 입이 떡 벌어질 것이다.이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하늘까지 갈 것 같다고 해서 주민들은 '별 보러 가는 계단'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감천문화마을 148계단 일부 모습148계단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은 감내어울터다. 좁고 가파른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면 등에서 절로 땀이 나는 것 같다.감내어울터는 젊은 사람들에게는 '셀카 인증샷'을 찍어야 하는 포토존이기도 하다. 마을에 있었던 목욕탕을 고쳐 이색적인 휴식 공간으로 탄생시킨 감내어울터도 볼거리 중 중 하나다. 안으로 들어가면 그대로 보존된 욕탕과 샤워장 앞에서 의자를 놓고 쉬는 다른 관광객들과 마주칠 수 있다. 감내어울터 골목길에는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긴다. 주민들이 전을 굽다가 식히기 위해 골목 한쪽에 놓아둔 전 바구니의 모습, 따사로운 햇볕을 피해 그늘진 골목길에서 쉬고 있는 고양이 모습은 어릴 적 시골 마을의 한 풍경 같다.골목 곳곳에는 '빛의 집', '낙서갤러리' '카툰공방' '바람의 집' '현대인의 방' 등 폐가를 활용해 만든 시설이 나온다.이들 시설에서는 주민이 만든 작품과 전문작가들이 만든 작품들을 두루 볼 수 있다. 생태공예 공방, 서양화 공방, 천연염색 공방에 들러 체험해볼 수도 있다. 감천문화마을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곳은 어린 왕자 동상이 있는 곳이다. 감천문화마을이 발아래 펼쳐진 도로 한 쪽에 어린 왕자 동상이 여우 한 마리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앉아있다. 동화 속에서 여우와 친구 되는 법을 보여준 어린 왕자는 관광객들에게 '이제 감천문화마을과 친구가 됐느냐'고 묻는 듯하다. 마을을 다 둘러본 뒤 아쉬움이 남는다면 마을 입구 주변에 있는 작은 박물관에 가보자. 이곳에서는 주민들이 예전에 사용했던 물품을 기증해 전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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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공항 안개로 항공편 무더기 결항…1천800명 발 동동(종합)<<연합뉴스 자료사진>>(부산=연합뉴스) 차근호 기자 = 6일 오후 부산 김해공항에 안개가 짙게 끼면서 출발이 지연되던 항공기가 야간운행금지 시간에 걸려 무더기로 결항했다.7일 김해공항 항무통제실에 따르면 6일 오후 6시 40분부터 공항에 안개가 짙게 끼며 현재까지 저시정 경보가 발효됐다. 이 때문에 해당 시간 전후로 출발할 예정이던 국제·국내 항공편의 출·도착이 1∼4시간가량 지연되다가 오후 11시 김해공항 야간운행금지 시간을 넘기면서 모두 31편이 결항했다. 국제선 18편(출발 18편, 도착 0편), 국내선 13편(출발 5편, 도착 8편)이다.이들 항공편 중에는 승객을 기내에 태운 상태로 몇 시간을 대기하다가 출발이 무산된 경우도 있어 손님들이 집단으로 항의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또 피해를 본 손님들이 대부분 국제선 이용객으로 출국장을 빠져나오려고 구매한 면세물품을 반환하는 행렬이 이어지면서 공항은 오전 2시까지 북새통을 이뤘다.한 항공사 관계자는 "천재지변으로 말미암은 결항이어서 별도의 보상은 없고 승객들은 환불을 받거나 대체 항공편을 이용할 수 있다"고 전했다.항무통제실은 이날 결항으로 국제선 이용객 1천300명을 포함해 모두 1천800명가량이 피해를 본 것으로 집계했다.현재 김해공항에는 밤사이 안개가 걷히면서 저시정 경보가 해제돼 이날 새벽 6시부터 항공기들이 정상운행 하고 있다.김해공항에는 인근 주민들의 야간 소음피해를 방지하려고 야간운행금지 시간(오후 11시부터 다음날 오전 6시)이 설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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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 못 쉬지만, 수출역군 자부심으로 일합니다"부산 신항 자료 사진명절 연휴 못 쉬는 부산항 트레일러 기사들 (부산=연합뉴스) 차근호 기자 = "13년간 제대로 명절 연휴를 보낸 적이 없습니다. 그래도 수출역군이라는 자부심으로 일터에 나옵니다."부산 신항 야드 트레일러 기사인 신영주(43) 씨의 추석은 올해도 정신없이 흘러갔다. 추석 전날인 26일 오후부터 시작된 근무는 추석날 오전 9시까지 이어졌다. 하역된 컨테이너를 실어 나르느라 좁은 트레일러 운전석에서 다리 한번 제대로 못 펴보고 일했지만, 근무를 끝내고 숨돌릴 틈도 없이 집으로 향했다. 오전 10시 30분. 남들보다 늦은 차례상이 차려졌다. 올해는 경북 의성에 사는 아버지가 부산으로 역귀성했다. 어머니를 여의고 혼자 남은 팔순 아버지를 오시라 해 죄송한 마음뿐이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명절 연휴 내내 얼굴 뵙기도 어렵다. 그래도 올해는 가족끼리 차례를 지낼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트레일러 운전대를 잡은 13년 동안 신씨가 추석 연휴를 제대로 보낸 것은 손에 꼽을 정도다. 신씨뿐만 아니다. 신항에 근무하는 250명 야드 트레일러 노동자들이 다 그렇다.명절 연휴에도 3조 2교대 근무는 어김없이 돌아온다. 낮에는 11시간 밤에는 13시간 일한다. 남들이 가족, 친지들과 둘러앉아 정겨운 시간을 보낼 때 1평 남짓한 공간에서 운전대를 잡고 온종일 씨름한다. 명절이면 트레일러에 혼자 있다는 사실이 간혹 서럽기도 하다.신씨는 "우리 트레일러 기사뿐 아니라 부산항 컨테이너터미널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명절 연휴 때 쉬는 날은 설과 추석 당일뿐이에요. 고향에 맘 놓고 다녀오기도 어렵죠"라고 말했다. 신씨의 말처럼 신항 근무자 몇 천명은 밤낮없이 일한다. 39m 높이 겐트리 크레인 조종석에서 하루 11∼13시간 앉아 컨테이너를 선박이나 부두에 싣고 내리는 기사들과, 지상에서 근무하는 야드 트랙터 기사, 신호수, 하역선적 책임자와 상황실 근무자 등이다. 신씨는 "덤핑이 심해지고 화물 운반 단가가 떨어져서 항만근로자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명절에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힘든 여건 속에서 일하지만 우리가 수출입 현장의 최일선에 일하는 수출역군이라는 생각에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