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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은·정진운, 3년째 열애…"동료에서 연인으로"(서울=연합뉴스) 김기훈 기자 = 그룹 2AM 출신 가수 정진운과 걸그룹 원더걸스 멤버 예은이 연인 사이로 알려졌다. 정진운의 소속사 미스틱엔터테인먼트와 예은의 소속사 JYP엔터테인먼트는 21일 "정진운과 예은은 JYP에서 한솥밥을 먹으며 각별한 친분을 이어왔다"며 "지난 2014년 초부터 친구에서 연인으로 발전했다"고 밝혔다. 이어 "정진운이 미스틱으로 소속사를 옮긴 현재까지도 예쁜 사랑을 이어오며 서로의 음악에 대한 아낌없는 조언과 배려, 지원을 통해 뮤지션 커플로서 아름다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며 "정진운과 예은의 만남을 좋은 시선으로 바라봐주시고 응원해주시길 진심으로 부탁한다"고 덧붙였다.예은은 2007년 원더걸스로, 정진운은 2008년 그룹 2AM 멤버로 데뷔했다. 예은과 함께 JYP 소속으로 활동하던 정진운은 지난해 4월 미스틱으로 소속사를 옮겼으며 솔로 가수로 활동하고 있다.가수 정진운[연합뉴스 자료사진]원더걸스 예은[연합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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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성폭력 근절하려면…"성범죄 목회자 면직해야"교회개혁실천연대 성폭력 포럼 개최 (서울=연합뉴스) 김기훈 기자 = 청소년사역단체를 운영하며 여고생 신도와 강압적으로 성관계를 맺은 A 목사, 논문 지도하던 제자를 성추행해 물의를 빚은 모 신학대 B 교수, 이주노동자 지원 단체를 이끌면서 여성 신도를 성추행했다는 의혹을 받은 C 목사 등 한국교회에서 목회자에 의한 성폭력 사건이 끊이질 않고 있다.이에 교회 내 성폭력 사건을 근절할 수 있도록 교회 정책과 제도 재정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교회개혁실천연대는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회관 2층 조에홀에서 '교회 성폭력 이제 교회가 응답할 때'라는 제목으로 교회 성폭력 근절을 위한 정책 제안 포럼을 열었다.이날 포럼에는 법률사무소 로그의 강문대 변호사가 '교회 성폭력에 관한 교단 헌법 구조 연구', 김애희 교회개혁실천연대 사무국장이 '교회 성폭력에 대한 해외 교단의 정책 사례로 본 한국교회의 실천과제'에 대해 주제발표를 했다.강 변호사는 "각 교단의 헌법(권징 조례) 중 성범죄를 처벌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는 헌법은 없는 것으로 확인된다"며 "각 교단이나 교회가 교회 내에서 발생한 성범죄를 인지한 경우, 성범죄를 폭행이나 절도와 마찬가지로 중대한 범죄로 보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성범죄에 대해 남자인 목사의 순간적인 실수나, 경건한 목회자가 영적인 차원에서 저지른 신앙의 일탈 정도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 같은 판단은 성범죄에 대한 본질을 흐리게 만들 우려도 있고 무엇보다 같은 일이 반복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우려했다.강 변호사는 또 교회 내 권징 재판의 관행 문제를 지적했다.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 진술이 중대하게 고려되지 않고 피해자의 신분이 드러나면서 되레 고립되거나 공격을 받는 '2차 가해'가 빈번하다는 것이다. 강 변호사는 이에 성폭력 사건을 온정주의적으로 보는 한국교회의 의식문화 개선을 촉구했다. 그는 "성범죄를 일회적인 실수나 영적인 문제로 보지 않고 형사법상의 범죄에 해당하는 문제로 봐야 한다"며 "성범죄를 행한 목회자에 대해서는 면직과 출교를 원칙적인 대응 방안으로 정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또 "권징 조례의 죄과에 성범죄가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죄과의 대상에 명시적으로 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아울러 강 변호사는 대부분 교단에서 권징 재판을 여는 비용을 고소인에게 기탁금 명목으로 부담시키는 풍토를 지적하며 성범죄 피해자에 대한 기탁금을 면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김애희 사무국장은 미국장로교회(PCUSA)나 독일개신교회(EKD) 등 해외 교단의 사례를 발표했다. PCUSA 등은 홈페이지를 통해 성적 비행에 대한 제보를 받고 피해자 상담을 진행하고 있으며, 이와 관련한 각종 지침을 제정하고 교단 헌법에 반영하고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김 사무국장은 특히 "PCUSA의 경우 사역자나 직원, 봉사자 등 교회 관련 인사가 성적 비행에 연루돼 피해를 줄 경우, 교회가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성적 비행 관련 조사와 재판에 드는 비용을 교회나 교단에서 부담한다"고 소개했다.이런 이유로 각 교단에서는 성적 비행에 관한 규칙을 철저하게 숙지하도록 교육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마지막으로 김 사무국장은 "교회의 정책 문서는 성적 비행에 대해 가볍게 여기거나 묵과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발현"이라며 "정책을 개발하고, 적용·보완하는 과정은 목회자와 교인이 함께 성적 비행을 예방하고 대처해나갈 수 있도록 학습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교회 성폭력 근절 위한 정책 포럼(서울=연합뉴스) 김기훈 기자 = 교회개혁실천연대는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회관 2층 조에홀에서 '교회 성폭력 이제 교회가 응답할 때'라는 제목으로 교회 성폭력 근절을 위한 정책 제안 포럼을 열었다. 2016.9.19. kih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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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직 목회자 신학적 근거 탄탄…긍지 가져야"김승호 교수 '이중직 목회' 출간 기자간담회 (서울=연합뉴스) 김기훈 기자 = "대부분 개척교회 목회자들은 생활이 영위가 안 돼요. 교회를 개척하면서 모교회로부터 지원을 받지만 대개 2∼3년이 지나면 재정적으로 버틸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자연히 목회자 개인이 다른 직업을 가질 수밖에요. 그래서 이를 '생계형 이중직(二重職)'이라고 표현합니다."12일 서울 종로구 연지동 연동교회 다사랑 세미나실에서 열린 '이중직 목회'(하명출판)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저자 김승호 영남신학대 교수는 대다수 목회자가 '생계형 이중직'에 내몰리는 현실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이중직 목회란 목회자가 세속의 직업을 겸하는 것을 말한다. 김 교수는 이어 "목회자들은 이중직으로 생활을 이어갈 수밖에 없지만, 대부분 개신교 교단은 목회자의 이중직을 금지하는 아이러니한 현실에 대해 한국교회는 그동안 대응책을 마련하려는 의지가 미약했다"고 비판했다.신학교 난립과 예비 목회자 과잉배출, 신도 수 감소 그리고 교회 재정 악화 등의 상황에서 목회자가 세속의 직업을 갖는 문제는 한국교회의 최대 이슈로 급부상하고 있다. 하지만 이중직에 대한 한국교회의 인식은 여전히 부정적이다. 한국 개신교 교단 가운데 이중직을 전면 허용하는 교단은 침례교뿐이며 감리교가 부분적으로 이중직을 허용하고 있다.대다수 교단은 '목회자 이중직 금지 조항'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며 이는 급변하는 사회와 목회자의 생활여건을 반영하지 못한 결과라고 김 교수는 지적했다.또 목회직을 일반직과는 다른 거룩한 '성직' 개념으로 보는 것도 문제다. 이러한 인식에 상처를 입는 것은 이중직에 내몰린 대다수 목회자다. 김 교수는 "어쩔 수 없는 현실에도 이중직 목회를 하는 목사들이 스스로 이류 혹은 삼류 목회자란 인식을 하고 있다"고 우려했다.김 교수는 "이중직 목회는 성경적·신학적·역사적 기초가 탄탄한 대안적 모델"이라며 "이중직 목회자들도 긍지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김 교수는 우선 이중직 목회가 타당한 성경적 근거로 사도 바울을 들었다. 바울은 생활의 필요를 위해 교회의 후원과 자급자족 모두를 경험했고, 세속의 일로 얻은 이익과 교회 재정 둘 모두를 하나님의 후원으로 긍정했다는 것이다. 이어 그는 "사도행전이나 바울이 남긴 서신을 볼 때 초기 교회에서는 이중직 목회가 일반적인 개념이었다"며 "4세기 들어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면서 전문적 목회자와 평신도의 구분이 생겨났다"고 설명했다.아울러 그는 "루터나 칼뱅이 이야기한 직업 소명설에 비춰볼 때도 이중직 목회는 자연스럽다"고 설명했다. 직업 소명설에 따르면 "세속사회의 모든 합법적 직업은 신이 부여한 소명"이며 "세속의 직업이 합법적이라면 목회를 하면서 세속의 일을 하는 것도 수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또 김 교수는 "기독교 역사가 오래된 유럽과 북미에서는 이중직 목회를 하나의 상식적 모델로 수용하고 있다"고 강조했다.김 교수는 마지막으로 "생계형 이중직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다양한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며 "이중직 목회를 전임제 목회를 대체하는 개념으로 인식하기 보다는 보완하는 개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김승호 영남신학대 교수(연합뉴스=김기훈 기자) 김승호 영남신학대 교수가 12일 서울 종로구 연지동 연동교회 다사랑 세미나실에서 열린 '이중직 목회'(하명출판)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출간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2016.9.12. kih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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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븐 "나쁜 행동 하지 않았다"…안마시술소 출입 논란 해명가수 세븐. [연합뉴스 자료사진](서울=연합뉴스) = 배우 이다해와 연인 사이임을 확인한 가수 세븐이 3년 전 군 복무 당시 안마시술소 출입 논란에 대해 뒤늦게 해명했다.세븐은 9일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장문의 글을 올려 당시 "근무지 이탈 및 군 품위 훼손 외에 다른 혐의가 없었다"며 성매매 관련 의혹을 부인했다.세븐은 "글에 앞서 저를 응원해주셨던 팬분들께 제 소식을 직접 전하지 못해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 전한다"라고 운을 뗀 뒤 "저의 이야기를 들어 주는 분들을 위해서라도 용기를 내어 진실을 전하고자 한다"고 밝혔다.이어 "당시, 태국·중국 전통마사지 두 곳에서 영업이 끝났다고 하여, 마지막에 간 곳이 문제가 됐다"며 "앞서 들렸던 두 곳에 간 모습은 방송에 보이지 않았고, 마치 처음부터 나쁜 의도로 그곳에 간 것처럼 비치게 됐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그는 "그곳에서 맹인 마사지를 받기 위해 기다리다가, 아무래도 장소 자체가 오해를 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취소하고 바로 나왔다"며 "많은 분이 말씀하시는 그런 나쁜 행동은 절대 하지 않았고, 그럴 의도조차 없었다"고 해명했다. 또 "이 모든 사실은 3년 전 당시 국방부가 정확한 증거를 가지고 한 달여 조사한 결과, '근무지 이탈 및 군 품위 훼손' 외에 다른 혐의가 없음을 밝혔다"고 강조했다.세븐은 "하지만 무엇보다도 근무지를 무단이탈한 것은 명백한 저의 잘못"이라며 "그로 인해 여러 파장이 생겼고, 이 부분에 대해서는 지금 이 순간까지 깊이 반성하고 사죄하는 마음이다"라고 밝혔다.그는 "앞으로 제 행동 하나하나에 더욱 조심하며 좋은 모습만 보여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세븐은 지난 2013년 6월 군 복무 당시 안마시술소로 들어가는 모습이 한 방송 프로그램에 포착돼 성매매 의혹으로 곤욕을 치렀다. 최근엔 배우 이다해와의 열애 사실이 공개돼 세간의 눈길을 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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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선교사, 침략자 아닌 순교자로 봐야"순교 150주년 맞아 총신대서 심포지엄 개최(서울=연합뉴스) 김기훈 기자 = "토마스가 선교사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 입국해 마지막 죽는 순간까지 복음을 전하다 죽었다면 그를 순교자로 봐야 할 것입니다."박용규 총신대학교 교수는 5일 서울 동작구 사당동 총신대학교 종합관에서 열린 '토마스 선교사 순교 150주년 기념 심포지엄'에서 이같이 말하며 "그로부터 성경을 전해 받은 여러 사람이 예수를 믿었고, 그 복음이 씨앗이 되어 교회들이 세워지고 복음이 확장되었으며, 문호가 열려 선교사들이 공식적으로 입국하는 환경이 열리게 되었다면 그를 우리는 순교자로 평가하기에 충분하다"고 주장했다.이날 박 교수는 '로버트 토마스 선교사, 역사적 평가: 토마스, 그는 순교자가 아닌가'라는 발제문에서 로버트 토마스(1840∼1866)의 활동과 죽음의 성격을 재조명했다. 1863년 런던선교회 선교사로 중국 상하이에 파송된 토마스 선교사는 1965년 9월 조선 선교를 위해 약 두 달 반 동안 조선연안을 탐사한 바 있다. 이어 1866년 8월 9일에는 미국 상선 제너럴 셔먼호에 통역자로 승선해 중국 지푸항에서 조선으로 향했다.백령도·초도·곶석도를 거쳐,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간 제너럴 셔먼호의 승조원들은 조선에 통상과 교역을 강요하며 마찰을 겪었다.결국 제너럴 셔먼호는 1866년 9월 5일 조선 관군의 화공에 의해 불탔으며 토마스 역시 관군에 붙잡힌 뒤 살해됐다. 그동안 개신교계에서는 그의 죽음을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순교자적 측면에 대한 찬양과 제국주의를 근간에 둔 무모한 힘의 선교란 비판이 맞섰다. 특히 토마스 선교사가 승선했던 제너럴 셔먼호의 약탈적 성격은 토마스를 선교사가 아닌 침략자로 규정하는 근거가 됐다. 박 교수는 조선에 입국하는 길이 극히 제한된 상황에서 제너럴 셔먼호의 성격보다는 토마스의 입국 목적을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토마스가 중국에서 복음전파를 위해 한국어를 배우는 등 토마스의 입국 동기가 선교라는 사실은 여러 사료가 뒷받침하고 있다는 것이다.박 교수는 또 "제국주의적 영향 때문에 토마스의 입국이 선교적 동기가 아니라거나 그의 활동이 선교활동이 아니었다거나 그의 죽음이 순교가 아니라는 주장은 상당히 주관적 평가이며 또 다른 비약"이라고 반박했다. 이은선 안양대학교 교수 역시 '토마스 선교사의 순교와 한국선교의 연관성'이란 발표문에서 토마스의 입국 목적을 강조했다. 이 교수는 "제너럴 셔먼호를 타고 입국한 토마스 선교사의 입국 목적은 성경을 널리 보급하는 것"이라며 토마스가 1866년 지인에게 보낸 편지를 근거로 제시했다. 이 편지에서 토마스 선교사는 "작년 가을 조선 해안을 위협한 몹쓸 바람도 별로 겁내지 않고 있습니다. 저는 조선을 개신교 선교사로서 처음 방문한 영예를 가질 것입니다"라고 밝히고 있다.이 교수는 다만 토마스 선교사의 마지막 순간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1928년 평양 숭의여학교 교사였던 오문환은 자신의 '도마스 목사전'에서 토마스 선교사가 마지막 순간까지 성경을 전하다 순교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토마스 선교사의 순교자적 면모를 미화하기 위해 과장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이 교수는 이에 대해 "그가 강가에 도달했을 때, 포승줄에 묶여 분노한 군민들에게 살해되었다는 점에서 가능성은 크지 않다"면서도 "토마스가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과정에서 성경을 보급하고 투척한 것은 후일 평양교회의 성립과 부흥에 크게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그의 죽음을 순교라고 평가하는 것을 부정하는 비판들을 변증법적으로 극복하면서, 동시에 선교사적인 관점과 신앙적인 관점, 한국교회의 기원으로서의 관점에서 가지는 그의 순교로서 참된 의미를 계승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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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시경·유관순…위대한 감리교인의 생애를 들여다보다'대한민국을 세운 위대한 감리교인' 출간 (서울=연합뉴스) 김기훈 기자 = "역사를 망각한 민족은 희망이 없습니다. 역사를 알아야만 미래가 있고, 희망이 있습니다."전용재 기독교대한감리회 감독회장은 23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제일교회에서 열린 '대한민국을 세운 위대한 감리교인'(KMC) 출간기념회에서 "감리교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가장 큰 문제는 역사를 망각하고 있는 것"이라며 역사 속 인물에 주목할 것을 역설했다.기독교대한감리회는 전 감독회장 주도로 한국 근현대사에 큰 족적을 남긴 감리교인들의 삶과 업적을 정리한 '대한민국을 세운 위대한 감리교인'(KMC)을 최근 출간했다.이 책에는 '조선 선교의 아버지'로 불리는 존 가우처를 비롯해 로버트 매클레이, 헨리 아펜젤러 등 선교사들의 헌신적 생애가 담겼다. 또 일제강점기 국권 회복을 위해 헌신한 이준 열사와 유관순 열사, 겨레의 스승 주시경 선생과 농촌운동가 최용신 등 감리교인들의 삶과 신앙 이야기가 실렸다.전 감독회장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이 땅에 들어온 초대 감리교 선교사들과 그들로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감리교의 선진들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세우기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고 땀 흘리고 씨를 뿌렸다"며 "이 같은 역사를 젊은 후손들에게 알려줘야 우리에게 미래가 있다"고 강조했다.전 감독회장은 20명의 감리교인을 선정한 기준에 대해 "단순히 감리교회를 부흥하게 한 인물들이 아니라 국가와 민족, 사회에 괄목할만한 업적을 남긴 분들"이라며 이들이 근대 교육과 의료 사업, 항일운동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앞장선 인물들임을 강조했다.이 책의 집필에는 장춘식 전 배재대 교수, 염창선 호서대 교수, 김동진 헐버트기념사업회 회장, 김칠성 목원대 교수, 오영교 연세대 교수 등 교회사에 정통한 학자와 목회자 20명이 참가했다. 전 감독회장은 서문과 프랭크 윌리엄스 선교사의 생애를 직접 썼다.이날 출판기념회가 열린 정동제일교회는 선교사 헨리 아펜젤러가 1885년 설립한 한국 최초의 감리교 교회이다. 서재필 박사, 주시경 선생 등이 예배에 참석한 개화기의 역사적 장소이자 1920년 유관순 열사의 장례식이 거행된 장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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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명의 인생 이야기…극동방송 토크쇼 방송 600회 맞아김장환 목사 진행 '만나고 싶은 사람, 듣고 싶은 이야기' (서울=연합뉴스) 김기훈 기자 = 극동방송의 토크쇼 프로그램인 '만나고 싶은 사람, 듣고 싶은 이야기'(이하 '만나고')가 오는 26일로 방송 600회를 맞는다. 지난 2005년 1월 처음 전파를 탄 '만나고'는 극동방송의 최장수 방송 프로그램으로 11년이 넘는 시간 동안 각계각층의 이웃을 만났다. 김영삼·이명박 전 대통령 등 정치지도자와 유명 목회자를 비롯해 환경미화원, 이발사 등 평범한 이웃들을 초대해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그동안 '만나고'를 다녀간 출연자 수만도 800여 명이 넘는다. 지난 11년간 '만나고'를 이끈 진행자 김장환(82) 목사는 22일 서울 마포구 상수동 극동방송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목회를 은퇴하면서 방송 사역으로 청취자들과 가까워지기 위해 이 프로그램을 만들었다"며 "꼭 기독교인 아니더라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사람들, 청취자들이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만나왔는데, 참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주셔서 보람됐다"고 600회를 맞는 소감을 밝혔다. 김 목사는 600회를 맞기까지 단 한 차례도 쉬지 않고 대담자들을 만나왔으며 솔직하면서도 따뜻한 화법으로 진솔한 대화를 끌어내 청취자들의 사랑을 받았다.극동아트홀에서 생중계로 진행되는 이번 600회 특집 방송의 주제는 '어게인(Again) 1973'이다.이번 방송은 1973년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대형 집회를 콘셉트로 마련됐다. 빌리 그레이엄 집회는 한국교회 부흥의 '마중물'이 된 집회로 평가받는다. 당시 100만여 명이 운집한 이 집회에서 약 4만여 명이 회심했으며, 김 목사는 당시 그레이엄 목사의 통역을 맡았다.김 목사는 "빌 그레이엄의 전도대회 이후에 한국교회가 대형교회로 발전하기 시작했다"며 "그때의 감동을 이야기하는 게 젊은 세대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김 목사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로 제갈성렬 전 스피드스케이팅 해설위원이 결혼하게 된 뒷이야기를 전했다. 제갈성렬은 지난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 해설 도중 '종교적 발언'이 논란이 돼 SBS 해설위원 직에서 하차하게 됐다. 이어 '만나고'에 출연한 제갈성렬의 방송을 들은 한 권사가 '자신의 딸과 잘 어울릴 것 같다'며 만남을 주선해 결혼에까지 이르게 됐다는 것이다.김 목사는 또 유엔사무총장이 장래 희망인 어린이 합창단원을 미국 뉴욕에 데려가 반기문 총장을 만나게 해 준 일 등을 기억에 남는 일로 소개했다.앞으로 '만나고'에 모시고 싶은 명사로는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을 꼽았다.김 목사는 "조윤선 장관은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프로그램에 모셔서 앞으로 문화정책을 어떻게 세울 것인가, 또 종교정책은 어떻게 펴갈 것인가 이야기를 듣는다면 좋은 자리가 될 것"이라고 했다.김 목사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의 인연도 밝혔다. 그는 "김삼환 목사와 함께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위해 두 차례 기도를 올리고 성경을 드린 적이 있다"며 "신 회장 측의 요청으로 찾아가 기도했는데 마음의 위로를 많이 받으신 것 같더라"라고 전했다. 이어 김 목사는 "늘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위해 기도해왔다"며 "신 회장에게 믿음을 전하고, 신 회장이 프로그램에 출연해준다면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한편 극동방송은 올해 창사 60주년을 맞아 다양한 문화행사를 진행한다. 다음 달 7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제31회 찬양합창제를, 10월 11일 예술의전당에서 가을음악회를 개최한다. 또 12월 6일과 29일 극동아트홀에서는 성탄음악회와 송년음악회가 열릴 예정이다. (서울=연합뉴스) 극동방송의 토크쇼 프로그램 '만나고 싶은 사람, 듣고 싶은 이야기' 진행자인 김장환 목사가 22일 서울 마포구 상수동 극동방송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600회 특집 방송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016.8.22. [극동방송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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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박형규 목사 영결식 엄수김상근 목사 "고인 본받아 '파수꾼의 함성'으로 살자" (서울=연합뉴스) 김기훈 기자 = 평생 민주화를 위해 헌신한 개신교계 원로 고(故) 박형규 목사의 영결식이 22일 오전 9시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회관 2층 조예홀에서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장으로 거행됐다.이날 장례예배는 박원순 서울시장, 이재오 전 새누리당 의원, 손학규 전 민주당 상임고문, 김영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총무, 이철 민청학련운동 계승사업회 회장, 강성영 한신대학교 총장 등 각계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 부총회장인 권오륜 목사의 집례로 진행됐다.김상근 전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장은 이날 설교에서 "박 목사님은 이 나라를 반민주·반민중·반민족인 독재시대를 민주·민중·민족의 시대로 대전환을 이뤄냈다고"고 고인을 회고하며 "우리 모두 박 목사님을 본받아 '파수꾼의 함성'으로 '실천하는 신앙인'으로 살자"고 말했다.김영주 NCCK 총무는 조사에서 "한국교회는 이웃을 위해 존재해야 할 사명을 팽개치고 번영신학의 노예가 되어 바벨탑을 쌓기에 여념이 없는데 목사님, 하늘나라로 가십니까"라고 애도했다.고인은 경기도 파주시 기독교상조회 묘지에 안장된다.지난 18일 별세한 박 목사는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 총회장,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을 지냈으며 빈민선교와 인권운동, 민주화운동에 평생을 헌신하며 '길 위의 목사'로 불렸다.(서울=연합뉴스) 김기훈 기자 = 평생 민주화를 위해 헌신한 개신교계 원로 고(故) 박형규 목사의 영결식이 22일 오전 9시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회관 2층 조예홀에서 열렸다. 이철 민청학련운동 계승사업회 회장이 조사를 낭독하고 있다. 2016.8.22. kih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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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운동 산증인' 박형규 목사 별세(종합)(서울=연합뉴스) 김기훈 기자 = 한국 민주화운동 역사의 산증인인 박형규 목사가 18일 오후 5시 30분 자택에서 별세했다. 향년 94세.1923년생인 박 목사는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 총회장,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을 지냈으며 빈민선교와 인권운동, 민주화운동에 평생을 헌신하며 '길 위의 목사'로도 불렸다.박 목사는 1959년 4월 한국기독교장로회 서울노회 공덕교회 부목사로 부임하며 목회자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평범한 목회자였던 박 목사를 교회 밖으로 끌어낸 계기는 1960년 4·19 혁명이었다.당시 결혼식 주례를 마치고 나오던 길에 총소리와 함께 피 흘리는 학생들을 목격한 박 목사는 충격에 휩싸였다. 박 목사는 회고록 '나의 믿음은 길 위에 있다'에서 "들것에 실린 학생들이 피를 흘리는 모습을 보았을 때, 무언가 내 머리를 강하게 내리치는 느낌이 들었다. 그들에게서 나는 십자가에서 피 흘리는 예수의 모습을 보았다"고 당시를 회고했다.박 목사의 '길 위의 신앙'은 그렇게 시작됐다. 이에 서슬 파랗던 군사 독재 정권의 박 목사에 대한 탄압도 본격화됐다.대표적인 사건이 1973년 4월 이른바 '남산 부활절 사건'이다.박 목사는 당시 기독교 부활절 연합예배에서 유신체제를 비판하는 플래카드와 전단을 배포하려다 실패한 뒤 '내란예비음모죄'로 기소돼 징역형을 선고받는다.이어 1978년 2월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회관에서 유신체제를 비판하고 새 민주헌법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내용의 '3.1 민주선언'을 발표했다가 기소돼 징역형을 선고받는 등 무려 6차례의 옥고를 치렀다.하지만 민주화운동의 맨 앞자리에는 박 목사의 이름이 빠지지 않았다. 박정희 정권에 이어 전두환 정권에서도 박 목사의 투쟁은 계속됐다.전두환 정권은 폭력배를 동원해 그가 목회하던 서울제일교회에서 난동을 부리게 하는 등 박 목사를 탄압했다. 하지만 거리로 내몰린 박 목사와 교인들은 무려 6년 동안 서울 중부경찰서 앞에서 '노상 예배'를 이어갔다. 이 사건은 독일의 시사 주간지가 보도하면서 국제사회에 널리 알려지기도 했다.한편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던 박 목사는 지난 2014년 법원의 재심 결과 무죄를 선고받으며 35년 만에 억울함을 벗었다. 저서로는 '해방의 길목에서', '해방을 향한 순례', '파수꾼의 함성', '행동하는 신학 실천하는 신앙인', '나의 믿음은 길 위에 있다' 등이 있다. 박 목사는 회고록 '나의 믿음은 길 위에 있다'로 지난 2010년 만해문학상을 받기도 했다.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301호실에 마련됐다. 장례는 5일장으로 치러질 예정이다. 유족과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는 구체적 장례 절차를 논의 중이다.유족으로는 아들 종렬·종관, 딸 순자·경란 등 2남2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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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뱅 "다섯명 만난 게 가장 잘한 일…제대 후에도 함께할 것"(종합)데뷔 10주년 기념 전시회…"연습생 시절 가장 기억 나" (서울=연합뉴스) 김기훈 기자 = "저희가 데뷔했을 때 '신화' 형님들 10주년이었는데 '저렇게 오래 활동하면 무대가 어떻게 느껴질까?' 궁금했어요. 아마 껌처럼 쉽지 않을까 했는데 10주년이 돼 보니 껌이기는 커녕 씹기도 힘들 정도로 무대는 여전히 긴장되고 버겁고 흥분되는 곳입니다."(대성)빅뱅의 대성은 4일 서울 성동구 성수동 '에스-팩토리'(S-FACTORY)에서 열린 데뷔 10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이 말하며 "아직도 그런 무대에서 노래할 수 있도록 사랑하고 응원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밝혔다.또 "특히 요즘 같은 시대에 10년간 사랑받으면서 한 가지 일을 한다는 게 그것만으로도 큰 복"이라고 덧붙였다. 데뷔 10주년을 맞아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빅뱅은 5일부터 이곳에서 전시회 '빅뱅10 더 엑시비션(BIGBANG10 THE EXHIBITION) : A TO Z'를 연다.태양은 "이번 전시는 어떻게 하면 의미 있게 팬들과 교감할 수 있을지 멤버들이 고민하고 의견을 내 만들었다"며 "팬들에게 추억이 될만한 시간을 만들기 위해 전시를 기획했다"고 취지를 밝혔다.지난 2006년 데뷔한 빅뱅은 '거짓말', '마지막 인사', '하루하루' 등의 곡을 발표하며 단순한 아이돌 그룹이 아닌 한국을 대표하는 아티스트로 자리매김했다.지드래곤은 데뷔 10년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으로 연습생 시절을 꼽았다. 그는 "데뷔 이래 많은 일이 있었지만, 기억에 오래 남는 건 데뷔 전 연습생 시절"이라며 "그때가 없었다면 지금의 저희도 없다. 가장 힘들고 고민도 많고 당장 내일 일조차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열심히 연습에 임했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고 회상했다.태양은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MTV 유럽뮤직어워드(EMA)에서 수상한 게 터닝 포인트였다"며 "그때 이후로 나온 앨범들이 많은 사랑을 받았다. EMA 수상이 큰 동기부여가 됐다"고 했다.실제 빅뱅은 2009년 일본 메이저 음악 시장 진출을 시작으로 K팝의 세계화에 앞장서왔다. 특히 한국 가수 최초로 2011년 MTV 유럽뮤직어워드에서 '월드와이드액트' 부문을 수상해 화제가 됐다. 태양은 또 가장 소중한 기억으로 "빅뱅이 돼서, 가수가 된 것을 제외하고도 이 다섯 명을 만난 게 가장 잘한 일인 것 같다"고 멤버들에 대한 애정을 나타냈다. 탑 역시 "지난 10년 동안 단 한 번도 멤버들이 다툰 적이 없다. 성향이 달라서 부딪힌 일도 없다"며 "그것 하나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이라고 돈독한 우정을 과시했다.지드래곤은 자신이 가장 잘한 일에 대해 "예전에 연습생 때 양현석 사장님이 집에 가라고 했는데 집에 안 간 걸 잘한 것 같다"며 "집에 갔다면 여기 없었을 것이다. 안 가고 버텼다"고 말해 좌중의 웃음을 자아냈다.태양은 "저희가 좋아하는 일을 해나가면서 앞으로 자라날 아티스트라든지 많은 사람에게 문화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이끌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빅뱅의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멤버들은 입대에 대한 솔직한 생각도 공개했다. 지드래곤은 "나라의 부름을 받으면 언제든 갈 생각"이라며 "그런데 그 시기가 언제가 될지는 모르기 때문에 시간이 허락하는 한 계속해서 빅뱅 다섯 명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이어 군 제대 이후에 대해서는 "우선은 국방의 의무를 잘 마치고 난 다음의 문제"라면서도 "'빅뱅을 계속한다, 안 한다'가 아니라 우리는 빅뱅일 것이고, 다섯 명이 계속 함께할 사람들이라는 믿음과 확신이 있다"라고 강조했다.이번 10주년 기념 전시는 '아티스트로서의 빅뱅', '무대에서의 빅뱅' 등 빅뱅을 바라보는 다섯 가지 시선이라는 테마에 맞춰 구성됐다. 콘서트 실황 영상과 사진, 멤버들이 참여한 다양한 작품을 선보인다. 태양은 이번 전시작품 가운데 가장 의미 있는 작품으로 팬들의 낙서가 담긴 담벼락을 꼽았다. 원래 이 담벼락이 있던 장소는 빅뱅의 소속사 YG엔터테인먼트의 구사옥인 덕양빌딩 주차장이다.전시장 입구에 설치된 이 담벼락에는 "사랑해요" 등 팬들이 빅뱅에게 남긴 메시지가 가득했다. 또 뒷면에는 빅뱅이 팬들을 위해 그린 페인팅 작품이 담겼다. 태양은 "처음 전시회를 하자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게 그 담벼락이었다"며 "쉽게 뗄 수 있는 게 아닌데 이번 전시에서 가장 중요한 게 될 것으로 생각해서 강력하게 밀어붙였다"고 설명했다. 탑은 "우리 역사를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게 뭘까 질문하다가 구사옥 건물 뒤 담벼락에 팬들이 저희 이름과 응원 메시지를 써준 기억이 났다"며 "그 벽을 떼서 전시장에 둬도 재미난 개념의 아트 워크가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팬들과 저희가 함께 만든 일종의 컬래버레이션(협업)"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빅뱅은 오는 20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에서 10주년 콘서트 '빅뱅10 더 콘서트(BIGBANG10 THE CONCERT) - 0. TO. 10'을 열 예정이다. (서울=연합뉴스) 빅뱅이 4일 서울 성동구 성수동 '에스-팩토리'(S-FACTORY)에서 열린 데뷔 10주년 기자간담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YG엔터테인먼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