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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을 기다리는 병영면 중고리 사람들, 대나무로 팔뚝만한 가물치 '번쩍’28일 오전 전남 강진군 병영면 요동제에 주민들이 대나무를 삶아 줄로 엮어 만든 원통형 바구니인 '가래'로 물고기를 잡고 있다. (강진=국민문화신문) 유석윤 기자=초겨울 추위가 몰고 온 강풍이 산과 들에 휘몰아친 28일 전남 강진군 병영면 요동제에 농민들이 뛰어들었다.두꺼운 솜옷을 껴입어도 몸이 떨리는 추위였지만, 가벼운 옷차림에 허리까지 올라가는 장화를 챙겨 입고 물속에 뛰어든 농민들의 얼굴은 상기돼 있었다.농민들 손에는 위아래가 모두 뚫린 커다란 대나무 바구니가 들려 있었다.성인 허벅지 높이까지 물이 빠진 저수지 구석구석을 오가며 농민들은 대나무 바구니 '가래'를 내리꽂고 그 안으로 손을 깊숙이 넣어 살폈다. "우와 잡았다!" 모두를 집중시키는 함성이 울려 퍼진 곳에서는 가래 속에서 팔뚝만 한 가물치를 잡아 올린 농민은 마스크 쓴 얼굴에서도 엿보일 만큼의 큰 함박웃음을 지어 보였다.전남 강진군 병영면 중고리 일대에서는 전통 어업 유산 '가래치기' 행사가 해마다 열린다.가래치기는 대나무로 만든 원통형 바구니로 물을 뺀 저수지 바닥을 눌러 가래 안에 갇힌 물고기를 잡는 전통어로 방법이다. 한 해 농사가 끝나면 저수지의 물을 빼 가래치기 축제를 연다. 100년도 훨씬 전부터 내려왔다는 온 마을의 축제. 대나무를 엮어 밑이 트이게 만든 가래를 힘껏 내리쳐서 물고기를 잡는 게 가래치기다.애피타이저로 쫄깃한 가물치회를 먹고 나면 고구마 대, 묵은지, 무, 대파에 참붕어를 잔뜩 넣고 오랜 시간 끓여낸 귀하신 몸! 물천어찜이 등장한다. 추위도, 코로나19도 잠시 잊고, 가물치 잡기에 여념이 없는 주민들에게 매운탕의 기대는 오랜만에 작은 즐거움이 될 것이다. 사진출처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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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가뭄에 말라버린 하천은 '물고기 무덤'이 됐다(종합)수천마리 떼죽음…폭염 속 그대로 썩어가 마을 토박이 "생전 이런 광경은 처음" 가뭄에 물고기 떼죽음(세종=연합뉴스) 이재림 기자 = 20일 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가물어 물이 마른 조천천 바닥에 물고기가 한꺼번에 모조리 죽어 있다. 2017.6.20 walden@yna.co.kr "수천마리는 될 것 같소."바짝 마른 하천 바닥에 수북이 쌓인 물고기를 바라보던 윤성길(76)씨는 20일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밭농사를 하는 윤씨는 세종시 전동면 토박이다.마을 인근을 지나는 경부선 철로 아래 샛길도 손금처럼 훤하다."웬만한 일에는 놀라지 않는다"는 윤씨지만 이번 가뭄에는 한숨부터 나온다.마을을 휘감아 돌아가는 조천천 일부가 이렇게 바닥을 드러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 평생 이런 광경은 처음"이라는 그는 "너무 안타깝다"며 단순하지만 분명한 한마디로 상황을 설명했다.사실 외지인이라면 이곳에 물이 흐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기란 어렵다.가까이 가기 전까지는 그렇다. 가물어 마른 세종시 하천 바닥에 물고기가 하얗게 배를 드러내고 죽어 있다.윤씨가 지목한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기가 무섭게 비릿한 냄새가 먼저 코를 찔렀다.갈라진 하천 바닥 곳곳에는 떼죽음한 물고기가 폭염 속에 그대로 썩고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악취는 더하는 듯했다. '물고기 무덤'은 축구장 반 정도 면적 하천 바닥 곳곳에서 목격됐다.한쪽으론 풀 한 포기 없는 봉분처럼 층층이 포개진 채 군집을 이룬 모습도 보였다.간간이 아가미를 벌렁거리며 마지막 힘을 내는 것도 있었다.힘없이 꼬리를 파닥거리는 것도 있었다.생사의 갈림길에 있는 이들에겐 그러나 희망이 없어 보였다.주변엔 물은커녕 웽웽 소리를 내는 파리만 들끓었다.고랑이 파인 곳은 더 심각했다.야구 홈 베이스에서 1루까지 정도 되는 거리의 길고 좁은 천 바닥을 따라 하얀 배를 드러낸 물고기가 가득했다.잉어, 가물치, 붕어 등 어종도 다양했다. 20일 세종시 전동면 조천천 인근에서 마을 주민이 그물에 걸린 물고기를 바구니에 담고 있다. 이들은 가물어 물이 말라가는 하천에서 다른 연못으로 물고기를 옮겨 줬다. "더는 지켜볼 수 없었다"는 윤씨는 이날 천렵 장비를 챙겼다.아직 살아있는 물고기를 다른 곳으로 옮겨주기 위해서다.다른 주민과 함께 그물질을 이어가던 그는 인근 연못에 물고기 몇십 마리를 풀어놨다.윤씨는 "진작에 더 많이 잡아서 이동시켰으면 좋았을 뻔했다"며 "이번 가뭄은 참 심하다"고 혼잣말했다.세종시 최근 6개월 강수량은 122.0㎜다. 지난해 같은 기간의 33.4% 수준이다.열흘 남짓 남은 이번 달에도 강수량은 평년(149.6㎜)보다 적을 것으로 기상청은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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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카페, 집처럼 편안하게 만화를 즐기다만화 카페 '즐거운 작당'. 사진/임귀주 기자(서울=연합뉴스) 임동근 기자 = 짜장면을 후루룩거리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만화책에 빠져들던 시절이 있었다. 만화책을 보고 있으면푹 꺼지고 비좁은 소파도, 매캐한 담배 연기도 거리낌이 없었다. 만화방은 만화책을 탐독하는 공간이자 친구들이 만나 우정을 나누고 연인이 데이트를 즐기던 장소였다. ‘만화방에서 인생을 알게 됐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였다. 시간이 흘러 이제 ‘웹툰’이 만화의 대명사가 됐다. 우리에게 친숙했던 만화방은 하나둘 모습을 감추었고 기억 저편으로 멀어져 버렸다. 최근 만화방이 ‘카페’란 이름을 달고 나타나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깔끔하고 예쁜 실내장식에 편안함과 안락함까지 제공하며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 만화 카페 일번지 ‘즐거운 작당’서울 지하철 합정역 인근에 있는 ‘즐거운 작당’은 최근 곳곳에 등장한 깔끔하고 세련된 만화 카페의 선두주자이다. 지난 2014년 4월만화방에 깔끔한 분위기의 카페를 접목해 누구나 편안하게 만화를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탄생시켰다.고양이 두 마리가 선글라스를 쓰고 있는 간판 아래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사방이 만화책으로 둘러싸인 공간이 펼쳐진다. 책장에는 성인·무협·판타지 만화를 제외한 각종 만화책 3만3천여 권이 빼곡하게 꽂혀 있다. 연인, 가족, 친구로 보이는 사람들은 의자나 바닥에 앉아 저마다의 편안한 자세로 만화책 삼매경에 빠져 있다.‘즐거운 작당’은 어릴 때부터 만화방을 놀이터로 삼았다는 김민정 대표가 2014년 4월 문을 연 공간이다. “언젠가 만화방 주인이 되고 싶었다”는 김 대표는 20년 회사 생활을 등을 떠밀려 접게 되자 곧바로 창업에 나섰고 준비 4개월 만에 만화 카페를 열었다. 이렇듯 뜻하지 않은 퇴직과 갑작스러운 창업으로 어릴 때 꿈은 실현됐다. 김 대표는 “냄새나지 않고 쾌적하며 집에서 뒹굴며 보듯이 편안하고 부모와도 함께 갈 수 있는 만화방을 만들고 싶었다”고 밝혔다. 냄새나고 불량한 공간이란 이미지의 만화방에서 벗어나 보고 싶었다고 한다.즐거운 작당은 복층 구조로 공간을 둘러싼 책장에도, 탁자나 계단 아래에도 만화가 진열돼 있다. 카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의자와 테이블을 이용하기도 하고, 바닥에 앉아서 편안하게 만화책을 볼 수도 있다. 또 계단 아래와 책장 사이의 비스듬한 공간에서도 만화를 본다.쿠션이나 담요도 자유롭게 가져다 사용할 수 있다. 만화는 신간, 코믹스, 순정, 그래픽 노블(만화와 소설의 중간 형식), 추천 작가로 구분돼 있고, 음식·동물·가정·직업 등 주제별로도 비치돼 취향에 따라 만화를 골라 볼 수 있다. 단 성인만화, 무협만화 등 성인물은 취급하지 않는다.먹거리도 다양하게 판매한다. 커피와 음료는 물론 가볍게 맥주를 마실 수도 있다. 또 과자뿐만 아니라 만화 ‘심야식당’에 등장하는 메뉴인 ‘고양이 맘마’와 ‘연어오차즈케’도 있다.또 한 가지 특징은 손님의 추천으로 새로운 만화가 소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읽고 싶은 만화는 검색 시스템을 통해 위치를 찾을 수 있는데, 만약 찾는 만화가 없으면 기록이 자동으로 시스템에 남아 만화를 사는 데 참고자료로 이용된다. 매일 나오는 신간 소식도 빠뜨리지 않고 페이스북을 통해 알린다. 즐거운 작당 한편에는 ‘메이크 유어 스토리 해픈’(Make Your Story Happen)이란 글귀가 새겨져 있다. 어릴 적 만화방의 꿈을 실현한 김 대표의 모토이다. 김 대표는 “남녀노소 누구나 찾아와 편안하게 만화책을 즐기고 또 저처럼 꿈을 실현하는 공간을 만들어가고 싶다”고 밝혔다. '만화 카페 섬'의 볼 풀. 사진/임귀주 기자◇ 볼 풀·해먹에 샤워실 갖춘 체인 만화방 만화 카페의 운영 방식은 대부분 비슷하다. 만화를 본 시간만큼 돈을 내는 시간제가 있고 음료가 포함된 정액요금제, 종일제 등이 있다. 시간제의 경우 기본 1시간이 2천400원 또는 3천원이고, 종일제는 1만원 또는 1만5천원을 받고 있다. 종일제에는 음료가 포함되기도 한다. 고객은 요금제를 선택한 후 카드를 받고 만화의 세계에 풍덩 빠져들면 된다. 카드는 음료나 음식을 먹을 때 사용할 수 있고 만화 카페를 나설 때 사용한 비용을 한꺼번에 지불하면 된다. 만화 카페 대부분은 이런 비슷한 콘셉트로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저마다 독특한 인테리어와 시설을 갖추고 고객을 유혹한다.서울과 부산에 만화 카페 4곳을 운영하는‘만화 카페 섬’의 특징은 그리스 산토리니를 연상시키는 파란색과 하얀색의 인테리어이다. 또 고무공이 가득한 볼 풀, 편안하게 누울 수 있는 해먹, 피카추·도라에몽 등 커다란 만화 캐릭터 인형이 비치된 골방 등 다양하고 아기자기한 공간을 꾸며놓았다. 메뉴도 인기 만화 ‘원피스’에서 패러디한 ‘악마의 열매 에이드’, ‘치즈 인 더 트랩’에서 차용한 ‘치즈 인 더 김치 볶음밥’ 등을 선보인다. 이런 시설과 메뉴는 특히 젊은 층에게 주목을 받고 있다. '콩툰'의 식사 메뉴. 사진/임귀주 기자 지난해 9월 서울 강남에 문을 연 ‘콩툰’은 24시간 운영하고 샤워실과 흡연실을 갖추고 있다. 30~40대 직장인이 주요 고객으로, 별도의 공간에 성인만화도 비치돼 있다. 테이블과 의자, 다리를 뻗고 앉을 수 있는 좌식 좌석은 물론 두 사람이 이용할 수 있는 조그만 방과 칸막이 방도 있다. 엽서에 사연을 적어 우체통에 넣으면 100일 후에 발송해주는 ‘마음을 전하는 콩툰 우체통’도 운영하고 있다. 가장 인기가 높은 시설은 샤워실. 2천원을 내면 사용할 수 있는데 샴푸, 칫솔, 면도기는 별도 사야 한다.정혜진 콩툰 팀장은 “직장인과 대학생이 많이 찾고 밤 문화가 발달한 곳에 있어 쉴 수 있는 편안한 공간과 샤워실을 갖추게 됐다”며 “24시간 운영돼 만화책을 보며 아침 첫차를 기다리는 이들도 많다”고 귀띔했다.서울과 경기 지역 체인 만화 카페인 ‘놀숲’도 인기가 높다. 특히 신촌점은 22개에 달하는 토굴방을 갖추고 있는데, 내부에는 폭신한 매트리스가 깔렸고 쿠션과 탁자를 갖춰 집처럼 편안하게 만화책을 볼 수 있는 것은 물론 연인들의 데이트 공간으로도 그만이다.놀숲 신촌점을 찾은 한 커플은 “내부가 넓고 누울 수 있는 공간도 있어 집에서 만화책을 빌려보는 것 같은 느낌”이라며 “둘이 영화 보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면 돈이 많이 드는데 여기서는 훨씬 싸게 즐거운 데이트를 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놀숲'의 실내 풍경. 사진/임귀주 기자◇ 맥주 즐기며 만화 보는 어른들의 만화방 요즘 가장 핫한 공간 중 하나인 서울 연남동에는 맥주를 즐기며 만화책을 볼 수 있는 ‘만화왕’이 있다. 평소 만화를 좋아하는 온세미씨가 만화를 전공한 남편 김동환씨와 함께 지난해 6월 문을 열었다. 만화왕은 다른 만화 카페처럼 토굴방, 좌식 좌석, 샤워실 등 눈길을 끄는 시설도 없고 공간도 크지 않다. 하지만 평소 맥주를 마시며 만화책 읽기를 좋아하는 부부의 취향이 가미돼 ‘맥주 마시는 만화방’이란 특징이 생겨났다.냉장고에는 국산 맥주는 물론 하이네켄, 코로나, 칭다오, 블루문, 인디카, 사무엘 아담스, 기네스 등 맥주 바를 연상시킬 정도로 다양한 맥주가 진열돼 있다. 처음에는 생맥주도 판매했지만 소음 때문에 불편을 주는 것 같아 치웠다고 한다. 맥주 한 병을 주문하면 1시간은 무료로 만화를 볼 수 있다. 물론 맥주와 스낵으로 구성된 2시간짜리 세트 메뉴도 있다. 비엔나소시지, 달걀말이, 쥐포와 땅콩, 오징어와 땅콩 등 간단한 안주도 마련돼 있다.만화왕이란 이름은 영화 ‘족구왕’을 빗대 지어졌다. 온씨는 “남들이 싫어한다고 좋아하는 것을 감추는 것은 바보 같다는 생각에서 이렇게 지었다”고 설명했다. 그래선지 진열된 만화책 2만 권 가운데는 호시노 유키노부의 걸작 SF ‘2001 야화’, 마사야 도쿠히로의 ‘교시로 2030’, 이유정의 ‘가물치전’이나 ‘미나’등 다른 곳에선 좀체 보기 어려운 희귀작도 있다. 또 다른 매력은 ‘양팔이’와 ‘해팔이’라 불리는 고양이다. 뚱뚱하게 살찐 누런 고양이들이 만화방을 어슬렁거린다. 때론 손님에게 가서 재롱을 부리기도 한다. 온씨는 “고양이를 싫어해 들어왔다가 곧바로 나가는 사람도 있지만 좋아하는 사람이 더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온씨는 “예쁘고 시설 좋은 만화 카페를 기대했다면 실망할지도 모르겠지만 조용하고 편안하게 맥주 한 잔 들이켜며 만화책을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밝혔다. 맥주 마시며 만화 즐기는 '만화왕'. 사진/임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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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따라 멋따라> 구불구불 곡선의 안갯길, 임실 옥정호섬진감댐 준공 때 생긴 인공호수…호수 낀 둘레길은 '선경(仙境)' (임실=연합뉴스) 홍인철 기자 = 가을의 끝자락에 있다면 옥정호로 갈 일이다. 햇빛에 반짝이는 물결, 산자락이 투영된 호수, 안개에 휘감긴 봉우리, 붉게 타들어가는 단풍나무 길이 모두 거기에 있다.평일에는 차량 통행마저 뜸해 한가로움을 즐기려는 이들에게 옥정호는 더없이 좋다.옥정호는 전북 임실군 운암면∼강진면∼정읍시 산내면에 걸친 드넓은 호수로 섬진강 상류다. 1965년 우리나라 최초의 다목적댐인 섬진강댐이 준공되면서 골을 메운 물과 산으로 형성된 인공호수다. 전북 저수지 중 가장 규모가 큰 옥정호는 3만여㎾의 전기 생산은 물론 하류 지역의 만성적인 홍수나 가뭄의 자연재해를 벗어날 수 있게 했다.하지만, 인공이란 말이 무색하게 경치가 빼어나다. 봄에는 벚꽃과 장미꽃이, 가을에는 코스모스와 단풍나무가 옥정호 주변을 수놓는다.특히 한낮 동안 데워졌던 물 아지랑이가 서늘한 새벽공기와 만나면서 만들어지는 물안개와 그 사이로 언뜻언뜻 비치는 작은 산들은 한 폭의 산수화를 연상케 한다.경치 좋은 곳에 흔히 갖다 붙이는 선경(仙境)이란 찬사가 들어맞을 풍광이 길을 따라 펼쳐진다.국토해양부가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한국관광공사가 '가볼 만한 곳'에 꼽은 이유를 짐작케한다.옥정호는 전북 어느 곳에서나 가기 쉽지만 보통은 임실군과 맞닿은 전주시 완산구 평화동에서 출발한다.전주-운암 간 자동차 전용도로를 타면 한달음이지만 고즈넉하고 느린 삶을 엿보고 싶다면 전용도로를 버리고 옛 구이 길로 가면 된다.조상대대로 오랜 세월 터를 잡고 살아온 이들을 그 길 양쪽에서 만날 수 있다. 이리 가든 저리 가든 운암방면으로 빠져나와 옛 운암대교를 200m쯤 앞에다 두고 삼거리에서 좌회전하면 구불구불한 길이 시작된다.이 길은 굴곡이 심해 저절로 속도를 늦출 수밖에 없는데, 그 덕분에 호반 풍경을 여유롭게 감상할 수 있다.자연이 내 준 이 길은 어디까지 이어질까.호수를 내려다보면서 가는 길은 푸근하다. 파스텔 색조의 갖가지 나뭇잎들이 오르막과 내리막에 줄지었다.그렇게 끝이 없을 것처럼 이어진 길을 따라 달리다 보면 어느새 드넓은 호수를 만나 가슴을 풀어낸다. 올해는 봄부터 계속된 가뭄으로 물이 빠져 찰랑거리는 호수를 감상할 수 없어 아쉽긴 하다.중간 중간 작은 공원과 정자, 전망대도 지어놨다.6㎞가량 가다 보면 조망이 좋은 국사봉(478m) 전망대가 있다. 전망대 앞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숲 속의 나무계단과 등산로를 따라 20분가량 올라가면 국사봉 중턱에 도달한다. 애써 정상까지 올라가지 않아도 노령산맥의 첩첩한 산줄기에 둘러싸인 옥정호가 한눈에 들어온다. 쾌청한 날에는 가까운 순창 회문산뿐만 아니라 멀리 진안 마이산까지 또렷하게 보인다. 특히 옥정호를 가장 아름답게 감상할 수 있는 이 명당에서는 소나무 사이로 들어오는 호수와 호수 속에 떠있는 붕어섬, 호수를 둘러싼 둘레길이 한눈에 들어온다.이 섬의 원래 이름은 '외안날'이지만 붕어모양과 흡사하다고 해서 모두 붕어섬으로 부른다.아침 안개가 걷히며 햇빛이 들기 시작하면 이 섬은 황금색으로 변한다.옥정호에는 붕어ㆍ잉어ㆍ가물치ㆍ쏘가리ㆍ메기ㆍ뱀장어ㆍ자라ㆍ눈치ㆍ꺽조기ㆍ피라미ㆍ납조기ㆍ떡붕어ㆍ날치ㆍ빙어 등 담수어족이 풍부하다.호수 주변을 끼고 군데군데 민물 탕을 요리하는 음식점들이 제법 많다.섬진강의 깨끗한 물에서 자란 것들이어서 신선하고 개운한 맛이 그만이다. 게다가 모든 매운탕에는 새우와 민물고기를 우린 육수를 사용해 깊고 고소한 맛을 자랑한다.매운탕은 건새우, 무청을 말린 시래기, 마늘, 파 등을 넣고 들깻가루와 고추장으로 맛을 내면 된다고 한다.옥정호를 가로지르는 '운암대교'는 옛 대교와 새 대교가 첫 사랑을 잊지 못한 듯 일정한 거리를 두고 마주하고 있다. 2011년 새로 건설된 910m길이의 4차선인 새 운암대교는 화려한 야경을 뽐내며 전주-임실- 순창-전남 담양- 광주를 자동차 전용도로로 잇는다.다섯 개의 주탑과 황포 돛단배의 돛을 상징하는 케이블로 디자인된 새 대교는 나트륨과 메탈램프 190개를 부착해 자연과 인공의 조화를 이뤄 호반의 야경을 찾는 관광객에게 색다른 볼거리다.옛 운암대교 휴게소에는 올해 물 박물관이 세워져 옥정호의 역사와 기능을 알리고 사라져간 기억을 잇고 있다.직선을 버리고 자신을 굽힌 곡선 17.6㎞를 그렇게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눈과 마음이 취한 채 그 길의 끝에 서게 된다.그러면 보드랍고 여린 이파리처럼 아이들의 맑은 마음을 읽어내 시를 짓는 '섬진강 시인' 김용택씨가 살았던 진뫼마을을 잠시 들러보는 것도 이 길이 주는 또 하나의 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