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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이주 1세대 고려인 부부, 모국 땅 처음 밟고 감격김블라디미르·임크세니아 "고국의 발전상에 자부심 느껴" (서울=연합뉴스) 강성철 기자 = "늘 동경하던 한국을 방문해 감개무량합니다. 소수민족으로 살아온 고려인에게 모국은 늘 동경의 대상이고 자부심의 원천입니다." 구소련 시절 강제이주를 겪은 고려인 1세대 김블라디미르(77)와 임크세니아(79·여) 부부는 29일 연합뉴스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힘없는 민족이었기에 강제이주도 겪었지만 경제 대국으로 성장한 모국 덕분에 어깨를 당당히 펴고 산다"며 밝게 웃었다. 러시아 하바롭스크에 사는 이 부부는 재외동포재단이 고려인 러시아 이주 150주년을 맞이해 마련한 러시아·CIS 지역 동포 초청행사에 참가해 지난 27일 모국 땅을 처음 밟았다. 1937년 스탈린의 명령으로 소련 연해주에 사는 고려인이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당할 때 김씨는 1살이었고 임씨는 3살이었다. 이들은 가족과 함께 한 달 가까이 열차에 실려 카자흐스탄의 크질오르다 지역에 내던져졌다. 당시 스탈린은 연해주 지역에 사는 고려인이 일본의 첩자 노릇을 할지 모른다는 의심 때문에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시켰다. 부부는 "영문도 모른 채 갑작스럽게 이주를 당한 터여서 먹을 것도 입을 것도 부족해 늘 춥고 배고팠던 것이 기억난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열차가 시베리아를 통과하는데 화물열차라 무척 추웠죠. 중간에 설 때마다 어른들이 주변에서 나무를 모아와 열차 안에서 불을 피웠습니다. 도착했다며 내리라고 한 곳이 허허벌판이었죠. 날은 점점 추워지고 당장 묵을 곳이 없어 토굴을 파서 첫 겨울을 보냈습니다." 김 씨는 "이듬해부터 황무지를 개간하고 가져간 볍씨를 뿌려 벼농사를 짓기 시작했다"며 "중앙아시아 지역에 벼농사를 보급한 것이 고려인"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강제이주 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는 1945년 8월까지가 가장 힘들었다고 전했다. "당시 남자 어른들은 부역 등에 동원돼 여자들이 농사를 지었죠. 추수를 해도 군량미로 대부분 가져가 논밭에서 이삭을 주워 풀죽을 쑤어 먹곤 했습니다. 그래도 고려인은 군소리 한마디 없이 묵묵히 견디며 열심히 일했습니다. 덕분에 어디를 가도 성실하고 근면한 민족이라며 인정을 받았습니다." 1953년 스탈린 사망 후 고려인은 소련 영토 내에서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게 됐고 김 씨는 하바롭스크의 비행전문학교에 진학해 민간항공기 조종사가 됐다. 그는 크질오르다에서 어려서부터 같이 자라 간호사가 된 임 씨와 결혼해 하바롭스크로 이주했고 지금은 둘 다 정년퇴직해 연금으로 생활하고 있다. 김 씨는 "러시아 정부는 과거 강제이주가 잘못된 것임을 인정해 당사자에게는 아파트 임대료를 비롯해 전기료 등 각종 공과금을 50% 감면해주고 있다"면서 "어렵고 힘든 시절이었지만 좌절하지 않고 이겨낸 덕분에 이렇게 초청을 받아 모국에도 와보게 됐다"며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부모와 조부모로부터 이야기만 듣던 모국 땅을 평생 그리워했다는 부부는 "이제 소원을 이뤘다"며 "경제 대국으로 눈부시게 발전한 모습에 저절로 어깨가 으쓱해진다"고 기뻐했다. 이들은 방문 기간 경기도 용인의 한국민속촌에서 전통문화를 체험했고 서울 남산타워, 경복궁,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인사동에서 모국의 정취를 맛보았다. 30일에 천안 독립기념관과 망향의 동산을 찾고 나서 인천의 사할린 한인센터 방문을 끝으로 초청 일정을 마치고 31일 출국한다. 부부는 "러시아 언론에서 종종 IT·자동차·조선·스포츠 강국으로 한국을 소개할 때마다 자긍심을 느꼈는데 직접 와보니 '과연'이란 생각이 들었다"며 "당당하게 주류사회에서 위상을 떨치는 고려인이 많은데 모국이 이들을 양국 간의 가교로 활용해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재외동포재단 초청으로 모국을 처음 방문한 러시아 고려인부부 김블라디미르(77)와 임크세니아(79·여) 씨는 구소련 시절 강제이주를 경험한 1세대로 "꿈에 그리던 모국 땅을 밟아 감격스럽다"고 소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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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독립운동가 최찬식 외손녀 전 예브게니야고국 첫 방문 감격의 눈물…"외할아버지 와야 할 땅 내가 왔지" (대구=연합뉴스) 왕길환 기자 = "한국엔 처음 왔지. 공항에 내리니 공기가 시원하게 다가왔지. 눈물이 쏟아져 한참을 서 있었지." 노령(露領·러시아 영토) 방면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한 최찬식(崔燦植·?∼1926년)의 외손녀 전 예브게니야(58) 씨는 눈물이 많았다. 그는 국민생활체육회가 15일부터 일주일 동안 서울과 대구에서 개최하는 2014 세계한민족축전에 참가했다.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40년째 살면서 꿈에 그리던 고국 땅을 처음 밟았다. 행사 나흘째인 17일 대구광역시 수성구에 있는 인터불고 호텔에서 전 씨를 만났다. '고국을 처음 방문한 소감을 말해 달라'고 하자 "외할아버지와 우리 부모가 와야 할 땅을 내가 왔지. 그저 고맙지"라며 두 번이나 말을 끊고는 손수건을 적셨다. 그는 기자의 질문에 러시아말과 한국말(고려말)을 섞어 대답했다. "난 고려말 잘 못하지. 그래도 하려고 (노력)하지"라고 일어서며 말했는데, 주위에서 깜짝 놀랄 정도로 소리가 컸다. 말할 때마다 끝에 특이하게도 '지'를 붙였다. 이후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한국말은 일반인보다 두 배나 됐다. 동행한 통역이 "독립투사의 피가 흘러서 그렇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자 맞장구를 친다. 2006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된 최찬식은 1920년 러시아 연해주 추풍(秋風)에서 항일 무장조직 구성에 참여했고, 한족공산당 연해주연합총회의 상의위원(常議委員)으로 집행부 비서와 재정부 부장을 역임했다. 1922년 솔밭관(송전관·松田關)에서 공산당총사령부 참모부 무기과장으로 활동했고, 같은 해 소련에 의해 고려인 공산당이 무장해제된 뒤에는 직접 50여 명의 부대를 지휘해 항일 무장투쟁을 전개했다. 전 씨는 부모에게서 외할아버지 얘기를 많이 듣고 자랐다고 한다. 부모는 모두 대학과 전문대를 졸업한 엘리트. 한국말과 한국 문화를 지키려는 열정도 남달라 딸에게 항시 한국 사람임을 잊지 않도록 한국말을 가르쳤다. "아부지 어무이는 저뿐만 아니고 다른 고려 사람들에게도 한국말을 가르쳤지. 어머니는 영국 런던까지 가서 학생들에게 한국말을 가르쳤지. 똑똑했지. 나도 부모를 닮았지." 전 씨의 고조부는 1889년 한반도에서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로 건너가 정착한 러시아 한인(고려인) 1세대. 그곳에서 자손을 낳고 살았다. 그러다 1937년 스탈린의 강제이주 정책에 따라 조부모와 부모가 카자흐스탄 우슈토베로 삶의 근거지를 옮겼다. 여느 고려인들의 강제이주 수난사와 다르지 않다. 그는 우슈토베에서 태어나 어릴 때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 부모를 따라갔고, 고교 졸업 후 러시아 모스크바 기술공업대로 유학했다. 졸업한 뒤 남편을 만나 결혼했지만 남편이 떠나 버리는 바람에 홀로 두 아들을 키워야 했다. "애들 잘 키웠지. 그러다 대사관에서 한국에 가게 됐다고 알려줬지. 그날부터 인터넷을 통해 싹다(모두) 봤지. 와, 정말 대단했지. 그런데 직접 (한국에 와서) 보니까 말이 안 나왔지…" 이번 축전에 특별초청자로 선정돼 고국을 찾은 그는 또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았다. 잠시 감정을 추스르고는 "한국 사람 무척 예의 있고 친절하지. 작은 것도 베풀어주지. 멋있어"라고 칭찬했다. 전날 육군3사관학교를 방문한 소감을 묻자 소리가 다시 커졌다. "나라를 잃었을 때 할아버지는 러시아에서 나라를 찾겠다고 힘썼지. 일본놈들 많이 죽였지. 한국 사람을 많이 죽였으니까 죽였지. 나라가 없으면 죽는 사람도 많지. 나라를 지키겠다고 훈련받는 젊은이들 보니 좋아. 씩씩해 맘이 좋지. 나라를 잘 지킬 거라 믿지." 은퇴한 그는 현재 모스크바에 있는 독립유공자후손협회에서 일하고 있다. 후손 20명과 함께 선조의 영정을 만들고 자료를 모으고 있다. 후손에게 역사를 전하기 위해 인터넷에 자료를 담고 있다. 오는 21일 돌아가는 그는 '다시 고국에 오겠느냐'는 질문에 "오고는 싶지. 그러나 초청 안 하면 못 오지"라며 또다시 눈시울을 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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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知의 최전선'에서 만난 한국의 知 모으고 싶었다"'한국의 知를 읽다' 번역 출간한 노마 히데키 교수 (서울=연합뉴스) 임기창 기자 = "일본어권에서는 이미 분야별로 한국학 연구자들의 연구가 많이 이뤄져 왔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한국은 어디까지나 연구의 '대상'일 뿐이었죠. 지(知)라는 같은 평면에서 한국을 들여다보고 싶었습니다." 저서 '한글의 탄생'을 통해 한글을 '지'의 관점에서 조명한 언어학자 노마 히데키(野間秀樹) 일본 국제교양대 객원교수가 '한국의 지'에 관한 또 다른 기획의 결과물을 최근 국내에 번역 출간했다. 한국어권과 일본어권 지식인 140명의 글을 모아 엮은 '한국의 知를 읽다'(위즈덤하우스)다. 한국어판 출간에 맞춰 최근 방한한 노마 교수는 7일 인터뷰에서 "일본어권에서 '한국'과 '지'라는 말이 함께 등장하는 책은 거의 없었다"며 "한국의 지에 대한 일본어권과 한국어권 지식인들의 시각을 공유하는 계기를 만들고 싶었다"고 밝혔다. 노마 교수는 '지'를 "우리가 삶을 사는 데 꼭 필요한, 지성과 관련된 모든 것"으로 정의하면서 "물론 오랜 세월 전수되는 기술 등 '암묵지'도 지라고 할 수 있지만 이 책에서는 일단 언어화한, 번역된 지를 다뤘다"고 말했다. 책을 두고 "학자들의 연구성과 모음집이 아니다"라고 밝힌 노마 교수는 필자를 선정하면서 한국과 관련이 있는지는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오히려 그래야만 진정한 한국의 지에 다가갈 수 있다고 봤다"고 했다. 책의 구성 자체는 별로 특별하지 않다. 양국에서 활동하는 지식인들이 각자 읽은 책 가운데 자신을 '한국의 지'와 접촉하게 한 저작을 골라 소개하는 방식이다. 언뜻 흔한 서평 모음집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필자들의 폭은 상당히 넓다. 한국 독자 입장에서는 일본어권의 어떤 필자들이 어떤 책을 통해 한국의 지를 접했는가에 관심이 갈 법하다. 사상가 가라타니 고진(柄谷善男), 역사학자 와다 하루키(和田春樹) 등 유명 학자들은 물론 언론인, 출판인, 작가, 시민운동가, 영화감독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분야의 종사자 94명이 글을 썼다. 쉽게 손에 잡히는 주제가 아니어서 고사하려 한 필자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노마 교수가 일일이 전화와 이메일로 이들을 접촉, 여러 차례 설득하고 원고를 청탁했다. "한국 연구자나 한국학에 관여하는 사람, 한국과 접촉하는 사람뿐 아니라 일본어권에서 '지의 최전선'에 관여하는 이들이라면 어딘가에서 한국의 지와 접촉하는 지점이 있었을 겁니다. 그걸 모으고 싶었어요. 가라타니 고진처럼 한국과 관련이 있는 분들이 있지만 없는 분들도 있어요." 필자가 다양한 만큼 언급된 저작들도 매우 넓은 영역을 아우른다. 삼국사기, 삼국유사, 정도전의 삼봉집부터 윤동주와 김지하의 시, 전태일 평전, 박경리와 황석영의 소설 등 잘 알려진 저술이 있는가 하면 김중혁과 같은 현대 작가의 소설, 뮤지컬 '지하철 1호선' 시나리오 같은 의외의 작품도 포함됐다. 한일관계가 양국의 중요 현안이다 보니 이를 다룬 서적들도 여러 필자가 거론했다. 노마 교수는 "두 언어권 지식인들 간 차이를 부각하기보다 다양성에 무게를 두려 했다"며 "처음부터 한국의 지를 두고 다양한 시각이 나오리라 예상했지만 실제 원고를 취합해 보니 생각한 것보다 훨씬 다양성이 컸다"고 말했다. 비록 책이 명목상 '한국의 지'를 다루긴 했으나 본질적으로 지는 국가적 경계를 긋기 어려운 개념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국가라는 개념은 근대 이후 확립됐습니다. 일본 정부가 '일본 고유 영토' 운운하는데 그런 게 어딨습니까. 홋카이도나 오키나와가 지금 일본 영토라고 해서 처음부터 일본 땅이었다고 볼 수 있나요. 일본이라는 국가도 현대 이데올로기의 산물입니다. 그런 데 매몰되니 '지'도 안 보이는 거죠. 한국의 지, 일본의 지라는 식으로 지의 경계를 짓기 어려움을 증명하는 책이 됐으면 합니다." 노마 교수는 "다소 거칠어 보일 수도 있지만 이렇게라도 두 언어권에서 바라보는 한국의 지를 정리하는 출발점을 만들면 이후 단계로 얼마든지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며 "다음에는 일본어권과 한국어권에서 보는 한국의 아름다움(美)을, 그 다음에는 마음(心)을 다뤄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752쪽. 2만8천원. puls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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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홍보대사 "독도를 품고 대한민국을 세계로"글로벌 독도 홍보대사로 캠프에 참가한 50명의 중·고·대학생은 8일 오전 울릉도 대야리조트에서 열린 '독도 사관생도 비전 선포식'에서 독도 홍보대사로 활약할 것을 다짐했다. 2박 3일 울릉도·독도 체험 "세계인이 함께하는 독도 만들 것" 다짐 (울릉도=연합뉴스) 강성철 기자 = "울릉도서 배 타고 왕복 5시간 걸리는 데다 파도가 심하면 상륙조차 못하는 독도를 수많은 한국인이 찾는 것은 우리 것을 지키고 아끼려는 간절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망망대해 홀로 있는 독도(獨島)를 전 세계에 알려 더는 외롭지 않게 하겠습니다." 글로벌 독도 홍보대사로 캠프에 참가한 50명의 중·고·대학생은 8일 오전 울릉도 대아리조트에서 열린 '독도 사관생도 비전 선포식'에서 이구동성으로 "독도를 가슴에 품고 대한민국을 세계로"라는 구호를 외치며 독도 홍보대사로 활약할 것을 선언했다. 지난 6일부터 8일까지 2박 3일간 울릉도와 독도에서 열린 '2014 사이버 독도사관학교 독도 탐방 캠프'는 참가자들이 독도와 우리 역사를 다시 한 번 되돌아보고 독도를 널리 알리는 결의를 다진 자리였다. 비전 선포식에서 학생들은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가 제작한 세계지도에 자신들의 꿈을 적었다. '공공외교 전문가가 돼 대한민국 브랜드를 키우겠다', '세계인이 독도를 알기 쉽고 친근하게 느낄 수 있는 책을 만들겠다', '역사학자가 돼 독도 문제, 일본군 위안부 문제 왜곡 등에 맞서겠다', '방송작가가 꿈이지만 독도 홍보대사는 평생 하고 싶은 일'…. 이들은 이렇듯 다양한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서로 격려하고 응원하자며 손을 맞잡기도 했다. 박성현(17·안양외고) 양은 "작은 섬에 불과하지만 독도를 지키려는 마음은 두 번 다시 영토를 빼앗기지 않겠다는 의지란 것을 독도 땅을 밟고 실감했다"며 "독도를 더 널리 알리고 더 많이 사랑하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김내히(16·신연중) 양은 당찬 목소리로 "전 세계인에게 독도를 알리고 잘못된 역사와 표기를 바로잡는 것 못지않게 실질적으로 독도를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면서 "나중에 독도수비대에 지원해 봉사하는 길을 알아보겠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관광기획자가 꿈이라는 이민수(18·보정고) 군은 "접경 지역의 섬 독도를 세계인이 즐겨 찾는 관광명소로 만들겠다"며 "우리 것이지만 꼭꼭 숨겨두기보다 개방해 세계인이 아끼고 즐겨 찾는 곳이 되면 자연스럽게 누구도 넘보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독도 탐방 후 돌아오는 배에서 독도 주민 김성도 할아버지를 만난 것에 감동했다는 김지수(20·이화여대) 양은 "독도에서 생업을 이어가는 할아버지야말로 독도가 대한민국 땅임을 보여주는 증거"라며 "더 뜨거운 가슴으로 독도와 대한민국을 사랑할 것"이라고 가슴 뿌듯해했다. 선포식 후 2차 울릉도 탐방을 끝으로 캠프를 마친 참가자들에게 울릉군은 '독도 명예 주민증'을 발급했다. 참가자들은 "주민증을 받고 나니 독도에 사는 것처럼 더 가깝게 느껴진다"며 "어디서든 부끄럽지 않고 당당히 독도를 알리는 주민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박기태 반크 단장은 "홍보대사로서 대한민국을 올바르게 세계에 알리는 노력은 일본의 야욕을 분쇄하고 동북아 평화에도 이바지하는 일"이라고 강조한 뒤 "펜팔, 페이스북, 블로그 등 사이버상의 홍보가 미약해 보여도 꾸준히 해나가면 큰 결실로 돌아올 것"이라며 지금의 다짐을 잊지 말고 노력해 주기를 당부했다.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와 경상북도가 공동으로 마련한 이번 독도캠프에는 청소년 글로벌 독도 홍보대사 300명 중 우수한 활동 실적을 보인 50명이 참가했으며 독도 방문, 상황연극 발표회, 독도 사진전, 독도 사관생도 비전 선포식 등의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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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최우수 글로벌 독도 홍보대사 가채원 양'2014 사이버 독도사관학교 독도 탐방 캠프'에 참여한 가채원(17) 천안여고 1학년 학생은 7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직접 만들어 유튜브에 올린 독도 홍보 동영상 'Call my name'을 보여주며 독도 알리기의 중요성을 밝혔다. "독도의 의미요? 대한민국의 심장입니다" (울릉도=연합뉴스) 강성철 기자 = "독도는 우리가 일제 강점기의 아픈 기억을 잊지 않고 다시는 영토를 뺏기는 일이 없도록 한마음으로 뭉치게 합니다. 독도는 대한민국의 심장입니다." '2014 사이버독도사관학교 독도 탐방 캠프'가 열린 울릉도에서 7일 만난 글로벌 독도 홍보대사 가채원(17·천안여고 1년) 양은 "독도를 해외에 알리는 데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주장만으로는 부족하며 서로 소통하는 감성적 접근도 필요하다"고 자신의 생각을 똑 부러지게 밝혔다. 가 양은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의 '사이버 독도 사관학교'에 입학해 지난해 7월부터 1년간 가장 우수한 활동을 벌여 최정예 글로벌 독도 홍보대사 양성을 목적으로 울릉도에서 열린 독도 캠프에 선발됐다. 그는 가장 먼저 독도를 알리는 홍보 동영상 'Call my name'을 만들어 유튜브에 올렸고 해외 네티즌들로부터 많은 호응을 받았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굳세게 홀로 자리를 지켜온 독도(獨島)가 잊히지 않도록 이름을 불러 주고 또 그 이름을 빼앗아가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를 담았죠." 장래 국어 교사가 꿈인 가 양은 우리말을 잘 아는 것 못지않게 우리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반크의 문을 두드렸다. 그는 "막연히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생각 정도만 있었는데 활동을 하면서 얼마나 소중한 곳인지와 이곳을 지키기 위한 노력의 중요성을 깨달았다"면서 "독도의 영유권이 대한민국에 있음을 세계에 알리는 일이 동북아 평화에도 이바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7일 '독도 평화호'를 타고 독도에 입도한 가 양은 "천혜의 절경인 독도를 눈에 담을 수 있어서 무척 행복하고 가슴 벅차다"며 "울릉도와 독도 영상을 담아 이번에는 독도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리겠다"고 포부를 전했다. 울릉도의 독도박물관에서 '독도의용군수비대'의 활약상을 접하고 큰 감동을 느꼈다는 가 양은 "목숨을 바쳐 독도를 지켜온 분들의 노고를 접해보니 독도의 가치는 경제적인 것이 아니라 정신적이라는 확신이 들었다"고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6일부터 2박 3일 일정으로 열리고 있는 '2014 독도사관학교 독도 탐방 캠프'는 반크가 경상북도와 함께 마련한 것으로, 사이버 독도사관학교에서 선발한 청소년 글로벌 독도 홍보대사 300명 중 우수한 활동 실적을 보인 중·고·대학생 50여 명이 참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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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들, 독도 비경 사진에 담아 세계에 알린다서경덕 교수·LG하우시스, 20명 선발해 내달 출사 (서울=연합뉴스) 왕길환 기자 = 전국 대학의 사진 관련 학과와 사진 동아리에서 활동하는 학생들이 독도의 비경을 앵글에 담아 전 세계에 알리는 프로젝트가 진행된다. 대학생들은 8월 초 독도에 들어가 자연환경을 촬영하고, 그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사진을 선별해 세계인들이 자주 방문하는 야후의 플리커, 구글 플러스의 스토리, 인스타그램 등 SNS에 올려 홍보할 계획이다. 이 프로젝트를 기획·추진하는 한국 홍보 전문가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와 종합 건축자재업체인 LG하우시스는 지난 한 달간 사진 포토폴리오를 통해 대학생 20명을 선발했다. 서 교수는 23일 "독도는 역사적·지리적·국제법적으로 당연히 대한민국 영토이기에 정치·외교적인 문제로 접근하기보다는 문화·예술을 통해 자연스럽게 홍보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며 "이번 기획은 사진 콘텐츠를 통해 세계적인 사진 관련 사이트에 독도를 비경을 올려 'Dokdo'를 검색하면 자연스럽게 'Korea'가 함께 노출될 수 있도록 하는 전략"이라고 소개했다. 20명의 대학생이 찍은 독도 사진은 국제 사진 경연대회와 각국 여행 사진 공모전 등에 출품해 독도가 한국의 대표 '관광 섬'임을 알릴 계획이다. 이와 함께 영화를 통한 국제 홍보도 준비하고 있다. 5년 전 제작한 최초의 독도 다큐멘터리 영화 '미안하다, 독도야'를 영어 버전으로 새롭게 편집해 세계 다큐멘터리 영화제에 출품할 예정이다. LG하우시스는 지난 2009년 문화재청과 '한 문화재 한 지킴이' 협약을 맺고 친환경 건축자재를 활용, 독도 주민과 경비대원들의 생활환경을 꾸준히 개선해 왔고 대학생들을 매년 선발해 '독도 사랑 청년 캠프'를 개최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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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크, 초등생 눈높이에 맞춘 독도 홍보 영상 제작초등학생들도 독도를 세계인에게 쉽게 알릴 수 있는 영상. <<유튜브 캡처>> 日 초등 교과서 검정 결과에 대응해 전 세계에 배포 (서울=연합뉴스) 왕길환 기자 = "세계인들에게 어떻게 독도를 알려야 할까요? '한국 영토인 독도를 일본이 훔치려 해요'처럼 감정만 앞세워 대응하면 되레 외국인들은 당황하게 됩니다. 세계인 중에는 한국을 모르는 경우도 많고, 한국의 3천 개 섬 중 하나인 독도에 대해 올바른 지식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지도 모릅니다."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는 초등학생들도 세계에 독도를 쉽게 알릴 방법을 담은 4분 50초 분량의 영상을 제작해 유튜브(http://youtu.be/6UhFr4jbzkI)에 올렸다. '독도를 세계에 알리는 한국의 청소년'이란 제목의 이 영상은 "한국을 잘 모르는 외국인이라면 한국에 대한 외국인의 관심도에 따라 자연스럽게 한국 역사·문화·관광·음식을 소개하면서 독도를 연결지어 이야기할 수 있는 실력이 필요합니다"라고 답을 제시해주는 형식으로 제작됐다. '독도를 일본 영토로 아는 외국인들에게 어떻게 소개할까요'라고 묻고는 독도와 홀로코스트를 연결해 알려주라고 일러준다. 제2차 세계대전의 전쟁범죄 상징인 홀로코스트처럼 독도는 한일 간의 영토 전쟁이 아닌 독일처럼 과거 일본 제국주의가 자행한 전쟁범죄라는 사실을 홍보하라는 것이다. "독도는 100년 전 한국이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 지배를 받기 시작한 시절 무력과 폭력으로부터 강제로 빼앗긴 섬입니다. 따라서 21세기 현재 독도를 다시 빼앗으려는 일본의 행동은 일본 제국주의의 부활이라고 유럽 홀로코스트 문제와 독도를 비교해 알려나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 일본 학생들에게도 독도를 소개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지난 2012년 9월경 1천270여 명의 일본 지식인이 "일본인은 독도가 한국 국민에게 침략과 식민지 지배의 시작이고 상징이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일본은 한국이 가장 약하고 외교적 주장을 할 수 없을 때 독도를 편입했다"고 호소한 내용을 소개하면서 아시아 평화를 위해 일본 스스로 독도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버리도록 설득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크가 이 영상을 만들어 배포한 것은 지난 4월 4일 일본의 문부과학성이 "한국이 독도를 불법 점령하고 있다"고 기술한 초등학교 교과서를 검정했기 때문이다. 지난 2010년에 4개 출판사 10종 가운데 1종만이 이같이 서술했지만 4년 만인 현재 4개 출판사 8종 가운데 6종(75%)으로 늘어났다. 외교부 조사자료를 보면, 일본 교과서뿐만 아니라 전 세계 학생이 보는 세계지도 5개 중 1개만이 독도를 단독 표기하고 있고, 대부분이 독도와 다케시마를 병기하고 있어 이곳이 분쟁 지역인 것으로 오인하도록 유도하는 일본의 전략에 따르고 있다. 심지어 일본땅으로 기재한 세계지도도 14%에 달한다. 박기태 반크 단장은 21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머지않아 일본의 모든 청소년은 교과서에 왜곡된 독도 서술을 배우고, 한국이 불법을 저지르는 범죄국가로 인식하게 될지도 모른다"며 "한국 청소년들이 일본과 전 세계 또래들에게 올바르게 독도를 알릴 수 있도록 실력을 키워야 한다"고 영상 제작 동기를 밝혔다. 반크는 이 영상을 전국 초·중·고교의 교장·교감·교사 연수 등에 활용하도록 제공하고, SNS를 통해 퍼뜨려 나갈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