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코로나19로 인한 ‘정신‧심리적 공포’를 이겨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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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우리는 코로나19로 인한 ‘정신‧심리적 공포’를 이겨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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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왕석 전 중앙대학교 교수>


(국민문화신문) 구명석 기자= 요즈음 밖에 나가 보면 모두 마스크를 깊게 눌러쓰고 있다. 공포에 가위눌려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전 세계가 마찬가지 형국이다.

 

코로나19’ 감염은 아직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마치 자신이 직접 감염된 것 이상으로 엄청난 공포를 느끼고 있다.

 

도대체 무슨 이유 때문일까? 왜 우리는 깊은 공포를 갖는 것일까? 우선 이것부터 명확히 해보자. 우리가 코로나19에 대해 갖고 있는 공포가 때문인지, 아니면 코로나19라는실체때문인지 이 점을 먼저 분명히 밝힐 필요가 있다.

 

대부분 우리가 알고 있는 공포의 근원은 과거에 듣거나 본 말이나 지식, 정보, 관념에 근거한다. 이 말의 뜻은 우리가 갖고 있는 공포는 상상에 근거한다는 뜻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사실이고 실제이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사실일 뿐이다. 거기에는 아무 공포가 없다. 우리가 갖고 있는 공포는 사실이 아니라, 우리의 머릿속 생각과 상상이 만들어 낸 것이다.

 

가령 끊임없는 생각과 상상이란 이런 것들이 포함된다. 병에 감염되면 죽을지도 모른다고 상상한다. 예컨대 병에 감염되면, 내가 이 세상에서 절벽처럼 사라진다고 비약한다. 또 죽으면 내가 가지고 있는 재산. 명예. 지위. 친구. 활동. 욕망. 쾌락. 생활 등도 함께 끝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우려가 도피처를 찾아낸다. 감염되지 않고, 죽지 않기 위한 방법이다. 생각의 도피처, 그것이 공포다. 아예 죽지 않고 감염되지 않는 방법에 생각이 총동원된다.

 

사실은 그냥 사실일 뿐이다. 이 세상 어디에도 사실에 대한 공포는 없다. 공포를 일으키는 중요 원인은 사실에 대한 나의 안전 욕망이다. 나의 안전 욕망이 공포를 만들어 내게 된다. 공포는 또 다른 형태의 욕망이다.

 

사실과의 관계가 불확실하며, 그 불확실한 관계가 나에게 어떤 작용으로 돌아올지가 불안한 것이다. 나의 욕망이 공포의 근간이다.

 

그렇다면 이런 공포는 과연 극복될 수 있을까? 방법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 우선 중요한 문제는 공포 대상과의 관계를 분명하게 이해하는 일이다.

 

공포는 죽음. 경쟁. 사랑. 질병. 사업. 명예라는 관계 속에서 발생하며, 그 대상과의 관계에 대해 모호하게 알게 되면 불안과 공포는 그만큼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예컨대 천둥은 구름과 구름, 번개는 구름과 지질 사이의 대기의 전압 차이에서 온다는 것을 모르면, 천둥과 번개는 끝없는 공포를 가져오는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코로나19의 정확한 명칭은 ‘SARS -COV-2’이다. 사스보다 더 발전한 사스의 변종 바이러스라는 뜻이다. 아직은 숙주와 백신, 치료제도 개발되지 않았다.

 

하지만 인류는 더 치명적인 바이러스도 극복해 왔다. 분명 인류는 인간을 위협하는 어떤 신종 바이러스도 과학을 총동원하여 단호하고 굳건하게 극복할 것이다. 그 믿음은 추호도 변함이 없다.

 

하지만 지금 시급한 문제는 코로나19가 주는 정신 공포이다. 정신적 강박과 피해 의식이 어마어마한 수준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러한 공포가 실체나 사실에 기반한 것이 아닌, 말과 생각, 상상에 기반한 것이라는 점이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코로나19와 정면으로 마주하는 일이다. 공포의 실체와 원인을 파악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일이 시급하다.

 

산에 가서 뱀을 만나거나 어두운 밤에 길을 가다가 긴장하는 것은 공포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사실과 실제에 대처하는 삶의 지혜이다. 공포와 실제를 대처하는 지혜는 전혀 다른 차원이다

 

지금은 상상 속 피해 의식보다는 확산을 막는 예방의 방법을 정확하게 숙지하고 실천하는 일이 중요하다.

 

말이나 머릿속 상상이 아니라, 여럿이 모이는 곳을 피하고, 꼭 마스크를 착용하고, 손을 자주 씻고, 감염경로와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실체를 정확히 이해하는 일이 공포를 없애는 지혜이다.

 

거듭 말하지만, 공포는 사실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안전하고 싶은 우리들의 욕망이 우리들의 말. 생각. 사고를 동원해 만들어낸 것이 공포이다. 그것이 코로나19 ‘정신 공포의 진실이다.

 

결론을 맺자. 우리는 지금 어두운 긴 터널을 건너고 있다. 지금은 한줄기 빛이지만, 그 빛의 끝은 푸른 창공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날, 우리는 마음 놓고 어떤 찻집에 모여 담담한 이야기를 나누는 일상으로 다시 돌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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