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 어둠 속을 뚫는 담담한 사랑 '파스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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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문화

<새영화> 어둠 속을 뚫는 담담한 사랑 '파스카'

2013년 부산국제영화제 뉴 커런츠상 수상작

(서울=연합뉴스) 홍국기 기자 = 마흔 살 여자 '가을'(김소희)과 열아홉 남자 '요셉'(성호준)은 연인 관계다.


둘은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일자리를 가지고 빠듯한 살림살이 속에서 근근이 살아간다. 그럼에도 고양이를 좋아하는 둘은 길고양이에게 먹이를 주고, 죽어가는 고양이를 살리느라 카드빚을 감수한다.

 

가을과 요셉 앞에는 경제적 궁핍, 가족의 반대, 남자의 입대 등 예상 가능한 난관이 잇따라 펼쳐진다.  


제도권의 삶을 오롯이 부정하는 이 둘은 일자리를 잃고, 고양이를 잃고, 그들 사이에 가장 소중한 존재인 뱃속의 아이마저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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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은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제도권 사회로부터 지켜 낼만한 힘과 능력이 없다.


그러나 이들에게 상실은 허무와 좌절로 점철되지 않고, 더 질긴 삶의 동력으로 연결된다.


두 사람은 부러지거나 꺾일 듯한 아픔 속에서도 서로 더욱 강하게 보듬는다.


계속된 상실의 과정 속에서 두 사람은 이렇다 할 항변이나 울분도 토해내지 않는다.


동물병원에서 사랑하는 고양이를 갑작스레 떠나보낸 그들은 카드로 30만원을 계산하며 할부 개월 수를 고민한다. 그것이 그들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영화 '파스카'는 제도권의 삶을 부정한 채 살아가는 남녀의 담담한 사랑을 그렸다.

 

파스카(Pascha)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말로, 오랫동안 이집트의 노예로 살았던 이스라엘 민족이 노예의 삶에서 해방돼 이집트 땅을 떠나는 역사적인 사건을 뜻한다. 종교적으로 보통 구원이나 부활을 의미한다.  


또 종교적인 의미를 걷어내면 이 단어는 '지나가다, 통과하다'(Passover)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기나긴 삶의 어둠 속에서 문득 한 줄기 빛이 보일 때,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다가 어느 순간 짐을 벗어낸 것처럼 가벼움을 느낄 때 그 온전하고 평화로운 마음의 상태가 바로 '파스카'인 것이다.  


영화는 연인의 삶을 담백한 어법과 정직한 시선으로 조명하면서 제목이 주는 주제의식을 점점 확장해나간다.  


영화 중반에 여주인공 '가을'이 낙태를 한 뒤 아이의 주검을 확인하는 장면은 관객들에게 강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물론 소품이지만, 지금껏 한 번도 보지 못한 장면이 주는 자극이 상당하다.  


안선경 감독은 "많은 영화에서 낙태에 대한 고통과 상처를 추상적으로 표현한다"면서 "시간이 흘러도 훗날 그 생각을 하면 마음이 쑤신다는 아픔을 직접 마주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번 영화는 2013년 제18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뉴 커런츠 상을 받은 이후 3년 만에 개봉하는 것이다. 독립예술영화로 출발한 이 영화가 개봉하기까지 적잖은 시일이 걸린 셈이다.


7월 9일 개봉. 15세 관람가. 9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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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fla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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