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터민 팝페라 가수 명성희 "노래로 감동 주고 싶어요"
  • 해당된 기사를 공유합니다

공연문화

새터민 팝페라 가수 명성희 "노래로 감동 주고 싶어요"

(서울=연합뉴스) 임은진 기자 = "내 어릴 적 고향 그 작은 마을에 계절 따라 들꽃이 피었네. 이제 나는 더 갈 수가 없네. 꿈에서나 그 땅을 다시 밟으리." (팝페라 가수 명성희의 노래 '제발' 중)


27일 추석을 맞아 전화로 만난 새터민 팝페라 가수 명성희 씨는 추석만 되면 북에 두고 온 고향과 가족 생각에 마음 한쪽이 아파진다고 했다.


고향을 떠난 지 벌써 10년이 넘었지만 어릴 적 가족과 친지, 이웃과 함께 송편을 나눠 먹던 추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가 남녘 땅을 밟은 건 지난 2005년. 하고 싶은 노래를 마음껏 부르고 싶어서다. 


어릴 때부터 목소리가 곱다는 칭찬을 듣고 자란 그는 조선인민군협주단 단원이었던 어머니를 통해 노래를 어깨너머로 배우며 가수의 꿈을 키웠다.


그는 평양음악무용대학 성악과 재학 중 '꿈의 악단'인 왕재산경음악단에 들어가기 위해 오디션과 신체검사는 물론, 6개월 동안 신원조회 과정을 하나하나 거치며 무대에 오를 날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결과는 불합격. 이모가 북한의 대표적 정치범 수용소로 알려진 요덕수용소에 수용된 사실이 신원조회에서 드러나면서 마지막 관문을 넘지 못했다.


대신 영화 배경음악을 부르는 평양영화방송음악단에 들어갔지만 마음에 차지는 않았다.  


그의 목소리가 얇고 간드러진 북한식 창법에 맞지 않는 데다 '얼굴 없는 가수'로 스크린 뒤에만 머물러야 하는 점도 못내 아쉬웠던 것.


"제 목소리가 북한식 창법에 맞지 않는 데다 북한 노래를 부르고 싶지도 않았거든요. 저 혼자 연습할 때는 서태지 씨나 김현정 씨 노래, 또는 영화 '타이타닉' 주제곡을 몰래 부르기도 했어요.(웃음)" 


북한 국가대표 축구팀 감독이었던 아버지(故 명동찬)가 1999년 간암으로 세상을 떠난 것도 새로운 삶을 찾아 남쪽으로 내려오게 한 이유였다.


그러나 아는 사람도 없고 기댈 곳 하나 없는 남한에서 생활을 이어가기란 만만치 않았다. 


노래하고 싶다는 자신의 꿈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나온 어머니와 동생을 책임지기 위해 그는 2010년 명가람이라는 예명으로 성인가요 가수로 데뷔했다.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 해서 트로트 가수 활동을 시작했어요. 그러나 제가 원하던 음악은 아니었기에 오래 활동하지는 않았습니다."


2년 뒤 팝페라로 장르를 바꾼 그는 한 공중파 방송 다큐멘터리에 출연하면서 본격적인 방송 활동을 시작했다. 2014년에는 예능 프로그램에 잇달아 출연하며 이름과 얼굴을 알렸다. 


"예능 프로그램 '스타킹'에 출연해 뮤지컬 삽입곡을 부르며 그동안 감춰뒀던 제 끼를 마음껏 펼칠 수 있어 기뻤어요. 이후 많은 분이 저를 알아봐 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그는 최근 발표한 싱글 '제발'을 비롯해 뮤지컬 '레 미제라블'의 삽입곡 '아이 드림드 어 드림'(I dreamed a dream), 가곡 '그리운 금강산' 등을 포함한 미니 앨범을 다음 달 낼 예정이다. 


"이제야 제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하게 됐습니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겠지만, 열심히 해서 제 목소리로 많은 분께 감동을 주고 싶습니다."

14433338575439.jpg팝페라 가수 명성희 (사진=명성희 씨 제공)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