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사가 김이나 "나이 들어도 아이돌 가사 쓰고픈 욕심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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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사가 김이나 "나이 들어도 아이돌 가사 쓰고픈 욕심 있죠"

노랫말로 가요계 독보적 입지…"조용필 '걷고 싶다' 훈장같은 곡"
"작사의 출발은 가수의 캐릭터…선한 가사만 쓰려하지 않아"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김이나(37)의 작업실은 스타 작사가의 공간치고는 단출했다.

 

강남구 역삼동에 아담한 작업실을 마련한 건 "프리랜서 같은 직업이다 보니 출퇴근하는 느낌을 갖기 위해서"라고 했다. 한 달에 적게는 2곡, 많게는 5~6곡씩 가사를 쓴다는 그는 일이 없어도 매일 작업실에 출근한다. "노력파이고 치열하게 사는 편"이라고 했다.

 

2000년대 말부터 업계에서 이름난 김이나는 현재 가수들의 앨범 재킷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이름이다.


작곡가 중에는 유명인이 많은 반면 스타 작사가는 드문 시장에서 독보적이라 할 수 있다. 박주연, 박창학, 양재선, 강은경 등 1990년대 정평이 난 작사가들의 계보를 잇는 유일한 인물이기도 하고, 미디어 노출이 적었던 '선배들'과 달리 지난해 '김이나의 작사법'이란 책을 낸 뒤 JTBC 예능 프로그램 '투유 프로젝트-슈가맨'에도 출연 중이다.


최근 작업실에서 만난 김이나는 "일에 지장을 받거나 들뜰까 봐 방송을 안 하다가 어느 순간 여유가 생기더라"며 "나름 사람들 웃기는데 일가견이 있는데 방송에서 다 편집된다"고 웃었다.

 

김이나의 작품 궤적은 광범위하다. 아이유의 '좋은 날'과 '잔소리', '너랑 나'를 비롯해 브라운아이드걸스의 '아브라카다브라', 이선희의 '그중에 그대를 만나', 조용필의 '걷고 싶다', 엑소의 '러키'(LUCKY), 동방신기의 '데스티니'(DESTINY), 가인의 '피어나' 등 가수의 연령과 음악 장르를 아우른다. "그중 '걷고 싶다'는 훈장 같은 곡"이란다.

   

2003년 성시경의 '10월에 눈이 내리면'으로 데뷔해 지금껏 만든 노랫말만 300여 곡. 지난해 한국음악저작권협회 '저작권대상' 시상식서 저작권료를 가장 많이 받은 작사가로 대상을 받았고 2012~2014에 이어 올해도 '가온차트 K팝 어워드'에서 '올해의 작사가'상을 차지했다.


저작권 수입을 묻자 그는 "어머니와 할머니 생활비를 드리는데 양껏 효도할 수 있을 만큼 번다"고 에둘러 답했다.


음악은 좋아했지만 그가 처음부터 작사가를 꿈꾼 건 아니다.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 후 고교 시절 아버지가 있는 미국으로 유학을 갔고 주립대에서 미술사를 전공했다. 첫 직장도 계측기를 납품하는 회사의 마케팅팀으로 음악과는 무관한 일이었다. 음악 비즈니스 관련 일을 하고 싶었지만 창작자가 될 거라곤 자신도 몰랐다고 한다.


작사가의 길로 인도한 건 유명 작곡가 김형석이었다.


"전 원하는 게 있으면 뻔뻔스러워져요. 우연히 한 음식점에서 김형석 씨를 만났는데 공연까지 갈 정도로 팬이던 터라 호기롭게 '음악을 배우고 싶다'고 인사했죠. 한번 찾아오라며 작업실 주소를 주셨는데 데모곡도 없이 찾아갔어요. 제가 어설프게 피아노 치는 걸 보시더니 '화성악을 독학한 후 오라'며 돌려보내셨죠. 그런데 제가 홈페이지에 올린 일기와 글을 보시고는 작사를 해보라고 조언하셨어요."


작사가로의 성장에는 유명 프로듀서인 남편, 조영철 에이팝엔터테인먼트 대표도 힘이 됐다. 한때는 "남편 덕에"란 말에 자격지심이 있었다는 그는 "성공할 확률이 높은 음원을 작업할 기회가 남들보다 많았고 남편 덕에 기획 마인드도 갖게 됐다"며 '복'이라고 쿨하게 인정했다.

 

김이나는 작사란 시 같은 문학이 아니라 실용음악의 한 영역일 뿐이란 가치관이 확고했다.

 

싱어송라이터가 아닌 이상, 가사는 주인공이 따로 있는 창작물이니 작사가의 자아 대신 가수의 캐릭터에 맞는 말을 만드는 일이라고 했다. 예쁜 여가수가 '너무 자신이 없다'고 하거나, 모범생 이미지의 남자 가수가 '난 거칠고 나쁜 남자'라고 하면 공감을 얻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그는 "곡이 사람이라면 가사는 성격, 성질을 보태는 작업"이라며 "그래서 가수의 이미지를 가장 먼저 고려한다. 시작점은 가수이고 내가 아는 사실들에서 출발하지만 한 문장이 나오면 이후 감정을 과장하거나 축소하는 과정을 거친다. 20% 정도를 논픽션에서 시작해도 80%는 픽션으로 전개한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펀치 라인'(핵심적인 한줄), '테마'를 고르는 작업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대중의 공감을 끌어내는 게 핵심이다. 그는 가수의 목소리와 궁합이 잘 맞으면 가사의 전달력은 증폭된다고 했다.

 

"'그중에 그대를 만나'가 시적으로 들리는 건 이선희 선배님의 목소리 힘이죠. 목소리가 입혀지면 다른 글이 되거든요. 조용필 선배님이 '너와 걷고 싶다~'라고 노래하면 임팩트가 달라요. 제가 쓴 가사가 명문(名文)이라기 보다 가수와 합이 맞았기에 '좋다'고 해주시는 겁니다."

  

이제 대중의 마음이 좀 읽히는지 묻자 그는 "읽히다, 말다 한다"고 웃었다.


"대중이 좋아하는 포인트까지 아는 건 확실히 아닙니다. 그러니 예상과 달리 저조한 성적을 거둔 곡도 있는 거죠. 그래도 특정 가수의 팬덤이 좋아하는 포인트는 조금 알겠어요. 최근 작사한 김재중의 '서랍'도 팬들이 좋아해 줬죠."


김이나의 '글발'이 때론 도발적인 건 '선한 가사'만 쓰지 않아서다. "작사가로서 사회적 책임과 대의를 품고 긍정적인 메시지만 전파해야 하는 건 아니란 생각"이라며 "단, 10대 가수의 노래에서 성적인 코드는 가급적 피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노래도 하나의 극이니까 비극일 때도 있는 것"이라며 "내가 쓴 가사 중 '아브라카다브라'는 자기 파멸적이다. 도발적인 건 터부시 되지만 매력적이지 않나. 하지만 터부 자체가 되면 위험한 콘텐츠가 된다. 나 역시 '네거티브'(부정적인 것)에 공을 들이진 않는다"고 덧붙였다.


아이유가 작사한 '제제'의 가사 논란에 대한 생각도 물었다. 가사의 해석을 둘러싸고 '표현의 자유'와 '예술에도 금기가 존재한다'는 의견이 분분했다.


그는 "아이유의 유명세가 컸겠지만 논란을 보며 한편으론 대중문화 콘텐츠가 담론을 만들어내는 위력에 놀랐다"며 "각자의 생각일 테니 어떤 판단이 맞다, 틀리다 할 수 없다. 분명한 건 아이유는 자기 언어로 생각을 솔직하게 전달하는, 가사를 정말 잘 쓰는 뮤지션이란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꼭 작업해보고 싶은 가수로는 나훈아를 꼽았다. 나훈아의 '홍시'란 노래를 듣고서 주옥같은 언어에 반했다고 한다. "가사를 무슨 생각으로 쓰실까 싶을 정도로 위대한 싱어송라이터 중 한 분"이라고 했다. 또 구창모의 '희나리'나 이문세의 '옛사랑'처럼 시간이 흘러도 새삼스럽게 감동을 주는 가사를 좋아한다고도 했다.

 

작사가로서 스스로 "성공했다"고 즉답한 그는 지금도 글을 닥치는 대로 읽는 건 게을리하지 않는다. 작사가를 꿈꾸는 이들에게 주는 '팁'도 글을 다루는 직업이니 재료가 되는 글을 많이 읽으란 것이다.


"수식어 없이 담백한 김훈 작가의 '칼의 노래' 같은 책을 좋아해요. 가사가 안 풀릴 때면 정치·사회 기사와 판례문처럼 꾸밈없는 글을 읽고요. 심지어 치약통 뒤의 사용설명서까지요. 모든 글은 작사가에게 요리의 재료이거든요. 많은 분이 '어떻게 멋있게 꾸며 쓸까'로 빠지는데 담백체를 잘 쓰면 꾸밈글도 잘 쓰죠. 또 장르에 호불호 없이 음악을 많이 들어야 하고요."

 

작사가는 좋은 직업이라는 그는 "여전히 욕심이 있다"고 했다.


그는 "나이가 들어도 아이돌 노래의 가사를 쓰고 싶다"며 "아이돌 가사 섭외가 계속 온다는 건 현역의 증명이기도 하다. 음반제작자들은 트렌드에 민감해 아이돌 가사를 쓰는 건 여전히 '감'이 있다는 증거"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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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작사가 김이나 <<김이나 측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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