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끝 약자들> 한달간 밤새 124만원…50대 대리기사의 추운 연말
  • 해당된 기사를 공유합니다

뉴스

<벼랑끝 약자들> 한달간 밤새 124만원…50대 대리기사의 추운 연말

경기 침체, 청탁금지법, 최순실 게이트 3중고에…손님 줄고 기사는 급증
교사 시절 회계부정 따지다 쫓겨나, 그리고 이혼 "떠난 가족 항상 그리워"

세상 모두가 사랑하는 이들의 곁을 찾아 행복의 조각을 맞추는 연말.


14827212064472.jpg추운 밤 기운을 이겨내며 콜 기다리는 김씨대리기사 김씨(사진 왼쪽)가 콜을 기다리며 편의점 야외테이블에서 대기하고 있다. 2016.12.24 (창원 = 박정헌 기자)

창원에서 7년째 전업 대리기사로 일하고 있는 김모(57)씨는 그러나 땅거미가 내려앉아 어둑어둑해진 오후 7∼8시쯤, 남들이 퇴근할 무렵 집을 나선다.


'출근'하는 것이지만 갈 곳이 따로 있는 건 아니다. 그저 집 인근 편의점까지 걸어간 뒤 야외테이블에 걸터앉아 '콜'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게 전부다.


보통 윗옷은 5겹, 하의는 3겹 정도 껴입지만 영하로 떨어지는 겨울 날씨는 견뎌낼 재간이 없다.


대기시간이 길어지면 편의점에 들어가 따뜻한 캔커피 한 잔을 사 마시며 기다린다. 편의점 직원이 눈치라도 주면 다시 밖으로 나와 쌀쌀한 겨울바람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한다.


하루평균 그가 소화하는 콜은 5건. 4년 전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경기 침체, 청탁금지법에 최순실 게이트로 인한 정국 혼란까지 겹쳐 '3중고'로 연말 술자리가 확 줄어든 탓이다.


수요는 줄었는데, 공급은 되려 늘었다. 최근 대리기사가 부쩍 많아져 이 바닥은 이미 포화를 넘어선 상태다.

 

예전에는 창원 마산역 인근에 대리기사들이 모이는 장소가 2∼3곳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어림잡아 10곳은 된다.


경쟁이 심하니 별수 없이 거리가 먼 콜이라도 잡아야 한다.


너무 멀면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한다. 버스비는 1천250원, 택시비는 평균 4천원 정도 든다.


1만원짜리 콜일 경우 콜 업체 수수료로 3천원을 뗀다. 택시라도 잡아타면 실제 김씨 손에 떨어지는 수입은 3천원 남짓인 셈이다.

14827212100156.jpg콜 기다리는 김씨의 휴대전화. 2016.12.24 (창원 = 박정헌 기자)

일과는 다음 날 새벽 3시쯤 되면 얼추 끝난다.


김씨는 11월 한 달 간 133시간 30분 일하며 총 123건의 콜을 소화했다. 총 주행거리는 1천327㎞, 운전시간은 1천654분이었다.


휴일도 없이 30일을 꼬박 일한 그의 손에 떨어진 돈은 124만원에 불과했다.


그나마 밤낮이 바뀐 고된 하루를 버틸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은 손님이다.


평소 대화할 사람이 많지 않은 그에게 손님과 나누는 대화는 크나큰 위안이다.


그래도 일과를 마치고 냉기 가득한 자신의 방으로 들어올 때면 공허함을 떨치기 힘들다.


오후 늦게 잠에서 깬 뒤 문득 혼자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도 역시 마찬가지다.


혼자라는 사실이 질릴 만큼 익숙해졌다고 생각하지만, 때때로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는 외로움마저 내쫓을 수는 없었다고 그는 고백했다.


"운전하다가 화려하게 꾸며진 크리스마스트리나 불이 환하게 밝혀진 백화점을 보면 기분이 좋아집다. 


구경할 여유가 없어 대부분 그냥 지나치지만 저에겐 그게 일종의 문화생활입니다. 그 순간 만큼은 부자와 빈자가 따로 없다고 생각해요. 열린 공간에 전시된 예쁜 트리를 보면서 지난 한해를 되돌아보는 것은 돈이 없어도 할 수 있으니까요"


그는 현재 창원시 마산회원구의 33㎡(10평) 남짓한 쪽방에서 매월 17만원을 주고 산다.


방에는 TV가 없다. 집안 가전제품이라 해봐야 몇 년 간 써본 적 없는 세탁기와 냉장고가 전부다.


빨래는 손으로 해결하고 끼니는 대부분 컵라면 하나로 때우기 일쑤다. 방은 난방이 안 돼 잠을 잘 때도 두꺼운 옷을 껴입어야 한다. 바닥에 깔아놓은 전기방석이 그가 유일하게 느낄 수 있는 온기다.

14827212127940.jpg따뜻한 커피 한모금에 몸을 녹이고…대리기사 김씨(사진 왼쪽)가 콜을 기다리며 편의점 야외테이블에서 대기하고 있다. 2016.12.24 (창원 = 박정헌 기자)

생계가 처음부터 어려웠던 것은 아니다.


김씨는 과거 창원의 한 중소기업에서 이사까지 지낸 뒤 한 사립고등학교에 교사로 들어가 정치·경제를 가르쳤다.


아내와 슬하에 아들, 딸을 두고 건실한 가장으로 자신의 역할을 다하며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그러나 1998년 즈음 이 학교의 회계부정에 올곧은 목소리를 내다가 쫓겨나고 말았다. 이때 아내와 이혼까지 겹치며 그의 가정도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한번 깨진 행복은 다시 쉽게 맞춰지지 않았다.


이후 한 기업체의 관리부장직을 얻어 근무했으나 이곳마저 몇 년 지나지 않아 그만두게 됐다.


그 사이 아내는 물론 아들, 딸과도 관계가 소원해졌다. 가족이 그리울 때마다 아들, 딸에게 전화를 하지만 아버지에 대한 섭섭함이 큰 까닭인지 받지 않을 때가 많다.


5년 전까진 간간이 왕래도 했으나 지금은 얼굴을 보기는커녕 어디 사는지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다.


김씨는 그렇게 10년이 훌쩍 넘는 세월 동안 홀로 연말을 보내고 새해를 맞았다.


손안의 모래처럼 흘러나간 이 세월은 대출잔액 200만원만 남겼다.


작년 일하던 중 넘어지면서 무릎과 복숭아뼈가 부러져 금융권으로부터 생활비 대출을 받아 생긴 빚 잔금이다.

14827212154654.jpg추운 밤 기운을 이겨내며 콜 기다리는 김씨대리기사 김씨가 콜을 기다리며 편의점 야외테이블에서 대기하고 있다. 2016.12.24 (창원 = 박정헌 기자)

그런 김씨의 새해 소망은 가족들과 함께 오붓한 시간을 한번이라도 보내는 것이다.


하루하루 근근이 먹고사느라 연말·연초 기분을 내기 힘들지만 가족을 향한 그리움만은 한순간도 놓아지지 않는다.

   

"남들보다 더 잘 살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지금이라도 가족끼리 모여 화목하게 지내고 싶어요. 가족이 떠나면서 행복도 같이 떠나버린 것 같습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혼자라는 사실을 견디기 힘듭니다"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