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길 천국 제주> ① "이제 가을이다…제주를 걷자"
  • 해당된 기사를 공유합니다

공연문화

<걷는 길 천국 제주> ① "이제 가을이다…제주를 걷자"

14409922592950.jpg무레 2코스 알작지(제주=연합뉴스) 제주시 외도동 월대천 인근에 펼쳐진 알작지를 걷는 관광객들 모습. 알작지는 아주 작은 돌(작지)이라는 뜻의 제주어다. << 연합 DB >>
물 만난 올레 '무레'·어린이들이 만든 '곽금올레'
제주인의 문화·삶 접하는 길…아름다운 자연은 덤

(제주=연합뉴스) 변지철 전지혜 기자 = 무더운 여름이 가고 트레킹의 계절 가을이 왔다. 걷는 길 천국 제주를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계절. 9년 전 올레길이 처음 만들어진 이후 제주에는 수많은 걷는 길이 만들어졌다.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훌륭한 자연환경은 물론 독특한 테마를 활용해 제주의 문화를 동시에 접할 수 있는 도보여행 길을 소개한다.


◇ 산물 여행 코스 '무레'

오소록 산도록 조로록 샘솟는 용천수를 따라 걸으며 과거와 현재의 제주를 있는 그대로 느껴보는 여행 코스가 있다면 함께 하겠는가.


제주시 삼양과 건입, 도두, 내도 등 곳곳에 흩어져 있는 90여 개의 용천수를 이어 만든 총연장 66.5㎞의 산물(生水) 여행 코스 '무레'<물(水)+에를 발음 그대로 표기한 것으로 '물가'란 의미>가 그것이다.


'산물'은 말 그대로 '살아 샘솟는 물'(용천·湧泉)이란 뜻의 제주어다.


14409923178880.jpg시원한 카약 체험(제주=연합뉴스) 산물 코스 무레길이 지나는 도두동에는 해마다 오레물축제를 열어 많은 사람들이 카약 등 다양한 체험활동을 할 수 있다. 사진은 제15회 도두 오래물축제를 찾은 관람객들이 카약 체험을 하는 모습. << 연합 DB >>

제주 용천수는 강수 후에 한라산이나 곶자왈 등지에서 스며들어 땅속을 흐르던 지하수가 지층의 깨지거나 열린 틈을 통해 지표면으로 자연스럽게 솟아나는 샘물이다. 탐방객은 오소록(조용하고 인적이 드문 곳을 뜻하는 제주어)한 곳에서 일년 내내 15∼18도를 유지하는 산도록(시원하고 차가운)하고 조로록(물이 맑게 흐르거나 떨어지는) 흐르는 물맛을 느낄 수 있다.


용천수는 현무암으로 형성된 화산섬 제주의 독특한 지질적 특성에 기인한 것으로, 제주에는 전역에 911개의 산물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해발 5m 이하 해안선 부근지역에 있는 것은 모두 520곳으로 전체의 57%에 이른다.


제주발전연구원은 2009년 10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현장답사를 거쳐 도보로 3∼4시간이면 완주할 수 있는 6개 걷기코스를 만들었다.


섬이라는 자연적 특성상 물이 매우 귀했던 제주는 해안 저지대에 주로 형성된 용천수를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마을이 자리 잡았다.


귀한 용천수를 공동으로 이용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물을 사용하고 관리하는 방법에 대해 따로 마을마다 규약을 정해 엄격하게 지켰다. 생명수와 다름없는 물을 깨끗하게 보전하기 위한 노력과 연대의식이 생겨났고 물허벅, 물구덕, 물맞이 등 제주의 독특한 물 이용 문화가 싹텄다.


14409921113914.jpg제주 '무레' 코스의 다끄네물(제주=연합뉴스) 전지혜 기자 = 용천수를 따라 걸으며 제주를 느끼는 산물 여행 코스 '무레'가 지나는 제주시 용담동 다끄네물. 2015.8.31 atoz@yna.co.kr

용천수 주변으로는 탐라국을 세운 고(高)·양(梁)·부(夫) 세 신인이 활쏘기 경합을 벌였다는 장소와 고려시대 목장과 절터, 조선시대 제주에 흉년이 들자 전 재산을 털어 굶주린 백성을 구한 여성 거상 김만덕이 운영했던 마을 객주터 등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탐방객들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를 여행하듯 탐라 왕국에서 고려, 조선 등에 이르기까지 용천수마다 흘러온 세월의 흔적과 역사의 숨결을 직접 보고 손으로 만지고 마음으로 느끼며 온몸으로 체험할 수 있다.

'올레길'이 아름다운 제주의 비경을 걸으며 자신을 돌아보고 힐링을 추구하는 길이라면 산물 코스 '무레길'은 척박한 자연환경을 이겨내며 살아온 제주인의 삶을 좀 더 이해하고 제주를 있는 그대로 느끼기 위한 길이다.


◇ 어린이가 만든 '곽금올레'

제주시 애월읍 곽금초등학교 인근에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아름다운 자연, 곽금팔경(郭錦八景)이 있다.


곽금올레 해안 절경(제주=연합뉴스) 변지철 기자 = 제주시 애월읍 곽금초등학교 학생들이 곽지리와 금성리의 여덟가지 아름다운 경치인 곽금팔경(郭錦八景)을 이어 만든 '곽금올레'의 해안 절경 모습. 지난 29일 주말을 맞아 여행 온 관광객들이 한가롭게 거닐며 경치를 감상하고 있다. 2015.8.31 bjc@yna.co.kr

곽금팔경은 '곽지리와 금성리의 여덟 가지 아름다운 경치'라는 의미로 곽악삼태(郭岳三台·세개의 오름으로 이뤄진 풍경), 문필지봉(文筆之峰·붓 모양으로 생긴 봉우리), 치소기암(人변 없는 低+鳥 巢奇岩·날개를 펴고 날아오르는 솔개 모양의 바위), 장사포어(長沙捕魚·곽지해수욕장 주변 고기잡이), 남당암수(南堂岩水·남당머리와 용천수), 정자정천(丁字亭川·정짓내의 경관), 선인기국(仙人碁局·신선들이 바둑을 두는 모양), 유지부압(柳池浮鴨·버들못에 철새가 노는 모습)이다.


곽금초는 2008년부터 곽지와 금성의 아름다운 풍경인 곽금팔경에 대한 자연생태교육을 진행한 데 이어 2010년부터 교사와 학생들은 이곳 팔경으로 가는 여러 갈레 길 중 아름다운 길들을 찾아 이어 '곽금올레'를 만들었다.


한두 학년 건너 형제 또는 자매, 수년간 눈을 맞춘 동네 친구들이 마을 자료를 모으고 왁자지껄 마을 곳곳을 돌아다니며 직접 발품을 팔아 만든 소중한 길이다.


곽금초를 중심으로 과오름·곽지해수욕장 등 곽지마을을 둘러볼 수 있는 곽지코스(5.1㎞)와 금성 뒷동산·정자천 등을 둘러볼 수 있는 금성코스(5.8㎞) 등 약 11㎞에 이르는 곽금올레는 남녀노소 누구나 함께 즐길 수 있는 마을의 자랑이 됐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만든 길에 예쁜 이름을 붙였다.


14409921055295.jpg곽금올레 지나는 제주 곽지해수욕장(제주=연합뉴스) 전지혜 기자 = 제주시 애월읍 곽금초등학교 학생들이 곽지리와 금성리의 여덟가지 아름다운 경치인 곽금팔경(郭錦八景)을 이어 만든 '곽금올레'가 지나는 제주 곽지해수욕장 입구. 2015.8.31 atoz@yna.co.kr

곽금2경 문필지봉으로 가는 길에 '희망길'이란 이름을, 해안가로 이어지는 길에는 구불구불하다고 해서 '지팡이길'이란 별명을 붙였다. 과오름을 오르는 길은 양쪽에 소나무가 울창하게 자라고 있어 소낭길로 불린다. 곽지해수욕장을 끼고 도는 길은 옥빛바닷길 등이다.


수업시간에도 곽금올레는 곧잘 활용된다. 방위가 어떻고 쓰레기를 버리지 말자는 딱딱한 문장들 대신 곽금초 학생들은 선배들이 만든 마을길을 탐사하면서 어른들이 버린 담배꽁초나 빈병 등 쓰레기를 줍는 자연보호활동을 한다.


누가 알려주기도 전에 스스로 깨닫는 산교육인 셈이다.


이외에도 일반인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조선시대 제주 유배기간에 자신만의 서체를 완성한 '귀양다리'(유배인을 뜻하는 제주어) 추사 김정희의 생활을 체험할 수 있는 '추사의 길'과 곽금올레처럼 한림공업고등학교 학생들과 교사가 함께 개발한' 한수풀 역사순례길' 등 다양하고 독특한 '걷는 길'이 많이 있다.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