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시마가 사라지고 없었다"…한인피폭자가 전하는 원폭 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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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가 사라지고 없었다"…한인피폭자가 전하는 원폭 참상

 재일동포 2세 박남주 씨 수기…"피투성이 된 사람들 가스폭발인줄 알아"
"무사했던 이들, 코피 흘리더니 며칠 만에 사망…핵무기는 정말로 안돼"

(도쿄=연합뉴스) 조준형 특파원 = "B-29(미군 전략폭격기)가 날았다. '공습경보가 해제됐는데 왜 왔나'하는 생각이 들었을 때 희미하게 폭음이 들렸다. 그와 동시에 '번쩍'하는 굉장한 빛과 '꽝'하는 소리에 이어 거대한 불덩어리가 전차를 덮치듯 했다."


"피투성이가 된 사람들은 가스탱크 폭발로 생각했다. 누구도 핵폭탄으로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폭심(폭발의 중심 지점)에서 가까운 쪽으로부터 사람들은 '뜨거워. 도와줘'라고 외치며 다가왔다. 모두 화상을 입어 머리는 오글오글해져 있었고, 피부는 벗겨져 끔찍한 상태였다."

  

22일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일본 히로시마(廣島) 방문이 닷새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원폭투하일인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서 참상을 체험한 재일동포 2세 박남주(84·히로시마 거주) 씨는 연합뉴스에 제공한 자신의 피폭 증언 수기에 이렇게 적었다.


원폭 투하 당시 12살 여학생이었던 박 씨는 폭심에서 1.8km 떨어진 곳을 달리던 노면(路面) 전차 안에 있다 머리에 상처를 입었지만 함께 있던 두 동생과 함께 목숨을 건졌다.

 

이후 높은 곳에 올라가 바라본 시내 모습에 대해 박 씨는 "히로시마가 사라진 것 같았다. 정말로, 이미 다 흩어져 있었다. 지금도 그 광경을 생각하면 무서워서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무서움이었다"고 회고했다.


박 씨는 원폭이 떨어진 뒤 내린 이른바 '검은비'(방사성 낙진비)에 대해 "새까만 색깔의 기름 같은 비였다"며 "그 비를 맞으며 사람들은 'B-29가 특수폭탄을 떨어뜨린 것'이라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차분하게 생각하면 히로시마는 폐허가 된 채 아무것도 없었기에 (추가) 공습이 있을 리 없었지만 사람들은 모두 산으로 도망갔다"고 그는 당시 상황을 전했다.


또 한여름이었던 당시 살아있는 사람이나 시신이나 할 것 없어 모두 상처가 곪았고 그 상처에 파리가 알을 낳아 애벌레가 들끓었다고 회상했다. 그럼에도 당시 워낙 황망한 상황에서 "더럽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고 박 씨는 적었다.


아울러 박 씨는 지금은 매립된 당시의 후쿠시마가와(福島川·원폭투하 지점에서 1.6∼1.7km)에서 수영하던 아이들의 비참한 죽음에 대해서도 적었다.


그는 당시 수영하던 아이들의 운명은 세 갈래로 엇갈렸다고 전했다. 물에 몸을 담그고 있던 아이들은 상반신 화상을, 물에서 모래사장으로 올라가고 있던 아이들은 전신 화상을 각각 입었고, 모래사장에 있던 아이들은 거의 다 죽었다는 것이다.


또한 박 씨는 일본의 패망 다음 달인 1945년 9월부터 주변 사람들에게서 피폭 후유증이 본격적으로 나타났다고 소개했다.


"건강했던 이웃 사람의 잇몸에서 갑자기 피가 나거나 코피가 흘렀고, 머리털이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며 "그러더니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죽어 갔다"고 박 씨는 전했다. 당시에 코피가 나고 머리가 빠지는 것은 '사망선고'나 마찬가지였다고 회고했다.


박 씨는 "그렇게 부지런했던 아버지가 전쟁 후 갑자기 일을 하지 않았다"면서 "늘 몸이 나른하다고 말하길래 '왜 전쟁이 끝나고 아버지는 저렇게 게을러졌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결국 박 씨의 아버지는 간암 판정을 받았고, 원폭에 따른 질병으로 인정받았다고 박 씨는 전했다.


또 자신과 남동생, 여동생 등 삼 남매 역시 "혈변 같은 게 나오고 2∼3일씩 의식불명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고 박 씨는 전했다. 그러면서 당시에 거의 다 빠졌던 자신의 머리카락이 아직 남아있는 것이 신기할 정도라고도 했다. 박 씨는 훗날 유방암과 피부암 등 피폭에 의한 것으로 보이는 질환과 싸워야 했다.


박 씨는 "'전쟁이라는 것이 그런 것인가'하고 생각해보려 해도 정말로 원폭은 '도와달라'고 하는 말을 할 순간도 없이 사람을 죽이고 만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정말로 핵은 안 된다. 무서운 폭탄이다"라고 반복해서 강조했다.

 

'한국의 원폭 피해자를 돕는 시민의 모임 히로시마 지부' 등에서 활동 중인 박 씨는 10여 년 전부터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서 자신의 피폭 경험을 학생들에게 증언하는 일을 하고 있다.


원폭 투하로 1945년 말까지 히로시마 주민 약 35만 명 중 약 14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희생자 중에는 당시 일본 식민지였던 조선 출신자도 약 2만 명 포함된 것으로 재일본대한민국민단은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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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6일 원자폭탄이 투하된 히로시마의 폐허에 그해 9월8일 한 연합군 종군기자가 서 있는 모습.[AP=연합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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