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과학수사> ② '99.99%의 확실성' DNA의 증거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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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문화

<한국의 과학수사> ② '99.99%의 확실성' DNA의 증거능력

신원확인 수단 중 가장 정확…인체 모든 곳에 존재
한국 국과수 감정역량 세계적 수준…인력 부족은 과제

(서울=연합뉴스) 임기창 기자 = "앞서 진술한 피의자 신문조서 내용이 사실인가요?" "아닙니다. 사실대로 말하겠습니다."


올 2월25일. 서울 용산경찰서 강력 2팀 사무실에 앉은 특수강도강간 피의자 이모(61)씨는 검거 직후와 달리 유순해진 상태였다. 불과 사흘 전까지 "나는 모른다", "그곳에 간 적이 없다"며 범행을 부인하던 그의 태도를 무엇이 바꿔놨을까.


이야기는 약 두 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작년 12월28일 새벽, 용산구의 한 다가구주택에서 40대 여성이 성폭행당하고 금품을 빼앗기는 사건이 벌어졌다. 집에 침입한 괴한이 흉기로 여성을 위협해 금품을 챙긴 뒤 여성을 결박, 성폭행하고 달아났다는 것이 사건 개요였다.


사건은 용산서 강력 2팀이 맡았다. 현장 주변 폐쇄회로(CC)TV 30여개의 영상을 입수해 '눈이 빠지도록' 돌려봤다. 피해자 집 근처 CCTV에서 범행 시간대 한 남성의 모습을 찾아냈다. 나머지 CCTV를 통해 용의자의 이동 경로도 파악했다.


CCTV 영상을 토대로 용의자 주변을 탐문했다. 오랜 시간 발품을 팔아 그의 인적사항을 확인하고 휴대전화 번호도 입수했다. 체포영장을 발부받은 경찰은 휴대전화 위치추적으로 소재지를 파악, 잠복 끝에 올 2월21일 밤 이씨를 붙잡았다.


용산서에는 2011년과 2012년 발생한 성폭행 사건 2건이 미제로 남아 있었다. 경찰은 이 역시 이씨 소행일 개연성을 염두에 뒀다. 이번 사건 피해자에게서 채취한 검사물 DNA가 미제사건 2건의 DNA와 동일하다는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 범인이 이씨라는 사실만 확인되면 나머지 2건은 자연히 해결된다.


그러나 이씨는 검거 당시부터 만만찮은 상대였다.


미란다 원칙을 고지하고 체포영장을 집행하려는 형사들에게 "당신들 뭐냐. 내가 왜 당신들을 따라가야 하냐"며 저항했다. 건장한 형사 여러 명에게 둘러싸인 터라 달아나지 못하고 경찰서로 끌려왔지만, 이후가 더 문제였다.


검거 다음날 첫 피의자 신문이 시작됐다. 이씨는 아무것도 인정하지 않았다. 사건 발생 지역에는 아예 간 적도 없다고 했다. CCTV 영상을 들이미니 "이 사람은 내가 아니다"라며 버텼다. 형사들이 쓰는 말로 '부인 조서'가 작성됐다.


언뜻 보면 경찰에게 불리한 상황이었다. 피의자는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었다, CCTV는 '피의자처럼 생긴 사람'이 범행 현장 주변을 오갔다는 정황증거일 뿐이었다. 다른 결정적 증거가 없다면 구속영장을 신청해도 기각될 가능성이 컸다.


체포영장으로 피의자를 검거한 뒤 48시간 안에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못하면 풀어줘야 한다. 서울지방경찰청이 '최우수 형사팀'으로 선정한 강력 2팀은 당황하지 않았다. '어럽쇼. 그렇게 나오신다?' 지금까지 아껴둔 '비장의 카드'가 등장했다.


경찰은 이씨의 구강 상피세포를 채취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긴급 감정을 의뢰했다. 사건 현장 DNA 감정은 이미 끝난 상태였으니 이씨 자신의 DNA와 일치한다면 상황은 끝이었다. 어떤 식으로 부인하려 한들 부인할 수 없었다.


만 하루가 지나기도 전 국과수에서 전화로 회신이 왔다. "일치합니다." 강력 2팀이 바빠졌다. 검찰에 국과수 회신 내용을 급히 알리며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영장은 즉각 법원에 청구됐고,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 기일이 잡혔다.


영장실질심사 당일 아침, 국과수에서 문서로 감정 결과가 도착했다. 형사들은 감정 결과서를 영장담당 판사에게 제출했다. 그날 밤, 이씨의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발뺌으로 일관한 조서를 DNA라는 확실한 증거가 압도한 결과였다.


구속된 이씨는 체념한 듯 태도를 바꿨다. 두 번째 피의자 신문에서 그는 범행을 소상히 진술했다. 2011년과 2012년 발생한 미제사건 2건도 자신의 소행임을 인정했다. 신문을 마친 형사가 마지막으로 물었다. "이상의 진술은 모두 사실인가요?" 이씨는 대답했다. "네.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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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 신원확인 기법 중 가장 정확…사실상 100% 신뢰도

이씨 사건에서 보듯, 사건 증거로서 DNA의 위력은 가히 독보적이다. 지금까지 존재하는 개인 신원확인 기법 가운데 가장 정확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흔히 DNA의 신뢰도를 '99.99%'로까지 표현하는데, 사실상 100%라는 뜻이다.


인간은 후손을 남기는 존재이므로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DNA는 이 유전자의 '본체'에 해당한다. 모든 사람의 DNA는 서로 다르고, 돌연변이가 없는 한 죽는 날까지 변하지 않는다. DNA는 사람을 특정하는 가장 강력한 도구다. 혈액형, 성별, 친자 관계 등 개인을 특정하는 유전 정보를 DNA로 확인할 수 있다.

사람의 몸은 약 100조개의 세포로 이뤄진다. DNA는 세포마다 존재하고, 인체 모든 곳에 DNA가 있다. 범인이 범행 현장에서 피우고 버린 담배꽁초에 묻은 침, 자기도 모르게 떨어진 머리카락, 소량의 혈흔에서도 DNA가 검출된다.


DNA는 현장에서 채취된 극히 적은 양의 시료에서도 검출할 수 있다. 실제 한국 국과수도 중합효소 연쇄반응(PCR)을 이용, 1ng(나노그램)의 DNA를 증폭해 감정하는 기법을 쓰고 있다. 1ng은 1g의 -9제곱으로 극미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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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과수가 보유한 DNA 증폭기

20세기 과학수사에 일대 혁신을 가져온 DNA 감정은 역사가 길지 않다. 1985년 영국 생물학자 알렉 제프리스가 DNA 구조 차이로 개인을 식별하는 'DNA 지문법'을 발표하면서 비로소 DNA를 과학수사에 활용할 길이 열렸다.


DNA 지문법을 이용한 최초의 유전자 감식 사례는 영국에서 나왔다. 1983년 영국의 한 마을에서 15세 소녀가 성폭행당한 뒤 살해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3년 후인 1986년에는 첫 번째 사건 현장 인근 마을에서 15세 소녀가 살해됐다.


경찰은 당시 한 남성을 용의자로 검거한 상태였다. 그러나 DNA 지문법이 개발돼 이를 적용한 결과 범인이 아니라는 뜻밖의 결과가 나왔다. 하마터면 애먼 사람을 범인으로 몰아 죄를 뒤집어씌울 뻔한 상황이었다. 이후 사건 발생지역 인근 거주자 4천583명에 대한 DNA 감식이 이뤄졌고, 결국 진범을 찾아낼 수 있었다.


◇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한국 감정기술…인력 부족 해소해야

한국의 DNA 감정도 외국 역사와 맥을 같이한다. 1955년 국과수의 전신인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친자 감별과 혈액형 감정 등이 시작됐지만, 유전자를 분석하는 공식 부서가 설치된 것은 40년 가까이 지난 1991년이었다.


국과수는 유전자 감정이 중요시되는 시대 흐름에 빠르게 대응했다. 1998년 국과수 본원에 유전자분석동이 세워졌고, 2004년에는 기존 생물학과를 유전자분석과로 개칭했다. 지역 연구소 생물학실도 유전자분석실로 이름을 바꿨다.


제도의 뒷받침도 뒤따랐다. 인권침해 논란이 있긴 했지만, 2010년 '디엔에이 신원확인 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DNA법)이 시행돼 구속 피의자, 수형인, 범죄 현장 DNA 증거 등을 데이터베이스(DB)로 축적할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종전에는 현장에서 DNA 증거가 채취됐더라도 용의자 신병이 확보돼야만 본인 DNA를 채취해 동일 여부를 대조할 수 있었다. 그러나 DB 구축으로 용의자가 미검 상태이더라도 그간 축적된 DNA 자료에 동일인이 있는지 확인할 수 있게 됐다. DNA가 일치하면 바로 용의선상에 올려 신속히 신병을 확보할 길이 열린 것이다.


한국 국과수의 DNA 감정 역량은 그간 여러 사건을 통해 세계적 수준으로 인정받았다. 2006년 서래마을 영아살해 사건 당시 생활용품에서까지 DNA를 수거해 신속히 분석, 프랑스인 여성이 자신의 아이를 살해한 혐의의 결정적 단서를 제공했다. 사건을 자체 수사한 프랑스 측은 국과수 감정 결과를 불신했으나 결과는 같았다.


국과수는 체액 등 시료뿐 아니라 용의자가 만진 물품에서까지 이른바 '터치 DNA'를 채취해 분석하는 기법도 발전시키고 있다. DNA 특성을 통해 인종 등 신체적 특성을 거꾸로 추정하는 'DNA 몽타주'도 연구 과제 중 하나다.


DNA 감정의 많은 부분을 장비에 의존하지만, 핵심은 결국 인간인 감정관의 역량이다. 경찰이 가져온 증거물에서 DNA를 채취하는 초반 작업부터가 감정관의 경륜에 좌우된다. DNA가 있을 만한 지점을 제대로 지목하지 못하면 기껏 확보한 증거가 무용지물이 된다. 이 때문에 감정관들은 채취 단계에서부터 신경을 곤두세운다.


여러 과정을 거쳐 DNA 특성이 나오더라도 끝이 아니다. 감정관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여기서부터다. 측정값이 선명한 지점은 고민할 필요가 없지만, 반응이 약한 값에 의미를 부여하느냐 마느냐에 따라 수사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다. 감정관들은 모호한 상황에서는 정확한 결과물을 내고자 여러 사람이 머리를 맞대기도 한다.


지금은 범죄 수사뿐 아니라 실종자나 대형 재난 현장 희생자 신원 확인에도 DNA와 같은 유전자 정보가 널리 활용된다. 국과수가 떠안는 DNA 감정 수요는 날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인력은 절대 부족인 상황이다.


현재 본원을 포함해 국과수의 DNA 감정 인력은 전국에 고작 75명이다. 서울과 수도권을 맡아 수요가 가장 많은 서울과학수사연구소에조차 긴급 감정을 담당하는 인원이 4명뿐이다. 감정 의뢰가 몰리기라도 하면 주말이든 야간이든 출근해야 한다. 퇴근하다 연락을 받고 다시 연구소로 발길을 돌리는 일도 종종 있다.


국과수 관계자는 "긴급 감정을 의뢰하는 수요가 계속 늘어나는 상황에 부응하려면 지속적으로 우수 인력이 확충돼야 한다"며 "감정관들이 일에 치이지 않고 안정적인 상태에서 업무에 임할 환경을 제공하는 것은 감정의 질적 향상과 새로운 기법 개발에 꼭 필요한 조건"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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