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역사교육> ④한국사 교과서에 비친 이승만·김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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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역사교육> ④한국사 교과서에 비친 이승만·김일성

이승만, '친일청산실패ㆍ독재' 부정적 묘사 많아
김일성, 개인숭배ㆍ권력세습에 비판적

(세종=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해방 공간에서 남북한의 정치 정점에 올라 장기간 통치한 이승만과 김일성을 기술한 현행 검정 역사 교과서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갈린다.


이승만에 대한 서술은 주로 부정적인 면이 조명되고 있다. 독립운동 활동에 대한 언급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인 반면 친일청산 실패와 독재권력 행사에 대해선 비판에 날을 세우고 있다는 지적이다.


김일성에 대해선 개인숭배와 권력세습체제 구축 등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으나 일제시대 김일성이 활동한 동북항일연군을 기술한 교과서도 있다. 황우여 교육부 장관이 "한국 광복군보다 더 자세히 다루고 있다"고 지적했을 정도다.


김일성의 통치이념인 주체사상은 북한의 선전 주장이 그대로 실려 있는 경우가 있어 가치 체계 정립도가 낮은 학생들에게 혼란을 줄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진보 진영은 이 같은 기술 경향에 대해 "북한은 엄연한 실체인데, 그 북한을 50년간 통치해온 김일성에 대한 객관적인 기술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반해 보수 진영은 기계적 객관주의 방식을 취한 교묘한 역사 편향적 사례라고 맞선다.


이승만에 대해선 공과(功過)가 병존해 있는데 과만 부각시켰다고 지적하며 "건국의 아버지"로서 제대로 된 위상을 회복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 이승만, 독립운동 언급 거의 없어…'친일청산실패·독재' 부정적

대부분 교과서에서 이승만이라는 이름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임정)의 수립과 활동을 다루는 부분에서 처음 등장한다. 1919년 9월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통령에 이승만이, 국무총리에 이동휘가 추대됐다는 내용이나 그 외 독립운동 관련 내용은 거의 없다.


다만 비상교육, 금성, 리베르 교과서에 이승만의 독립운동 활동상이 간략하게 소개돼 있다.


이승만의 독립운동 활동이 가장 자세히 묘사된 것은 검정 교과서 가운데 유일하게 보수쪽 성향이 있는 교학사 교과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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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초대 대통령 (연합뉴스 자료사진)

이 교과서는 구미위원회 활동은 물론, 이승만이 '리튼보고서'를 발췌한 '만주의 한국인'이란 소책자를 1933년 국제연맹 회의에 제출해 만주 거주 한국인의 인권 문제를 다뤄 달라고 요청했고, 1941년 여름에는 미국과 일본의 전쟁 가능성을 경고하는 '일본 내막기'를 출간했다면서 책의 사진도 함께 실었다.


다만 이승만이 임시정부 대통령에서 탄핵당한 사실은 모든 교과서에서 기술돼 있다. 미래엔 교과서는 "미주지역의 독립자금을 독점하면서 대통령의 직무를 다하지 않은 이승만을 탄핵했다"고 서술했다.


해방공간에서 등장하는 이승만은 거의 대부분 부정적이다.


금성출판사 교과서는 "이승만 정부는 친일파 청산보다는 반공이 우선이라는 주장을 펴며 반민특위 활동을 공개적으로 반대하였다"고, 두산동아 교과서는 "이승만은 귀국 후 친일 세력들에게 많은 지원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친일파 청산에 소극적이었다"고 기술했다.


리베르 교과서는 "반민특위가 활동을 시작하자 방해공작이 잇따랐다"면서 경찰의 반민특위 습격 사실과 국회의원 체포 등이 있었다고 썼다.


이후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서술은 3·15 부정선거와 4·19 혁명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독재'와 '장기집권'이란 표현이 적잖게 등장한다.


리베르 교과서는 '발췌 개헌과 사사오입 개헌이 이뤄지다'라는 제목에서 "위기에 몰린 이승만 정부는 진보당을 창당한 조봉암에게 간첩 혐의를 씌워 사형에 처하였다"고 표현했다.


지학사 교과서는 '이승만의 권위주의 통치'라는 대항목 아래 "조봉암을 비롯한 진보당 관련자들이 간첩 혐의로 기소됐고 조봉암은 사형에 처해졌다"고 기술했다.


미래엔과 비상 교과서는 '장기독재체제 추구', '전후 독재체제 강화' 등을 단원명으로 사용했다.


◇ 김일성 권력세습에 비판적…주체사상 '분석적 내용비판' 없어

김일성의 개인숭배와 권력세습체제 구축 등에 대해선 부정적인 시각을 보이고 있으나 전체적으로 분량이 많은 편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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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연합뉴스 자료사진)

주체사상에 대해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접근하나, 주체사상의 내용 자체에 대해선 분석적인 비판 대신 북한이 주장하는 내용을 그대로 싣는 경우가 왕왕 있다.


김일성에 대한 언급은 거의 모든 교과서에서 1946년 2월 소련의 후원 아래 김일성을 위원장으로 하는 북조선 임시 인민위원회 수립을 시작으로 1948년 9월 최고 인민회의에서 헌법을 만들고 김일성을 수상으로 선출했다는 부분부터 찾아볼 수 있다.


김일성의 이전 행적에 대해서는 금성출판사 교과서에서 본문이 아닌 '더 알아보기' 코너에서 '북한 초기 정권의 성격'을 다루면서 "소련군을 따라 귀국한 항일 빨치산파의 김일성은 주로 만주에서 항일 유격대 활동을 하였다"는 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두산동아 교과서도 '그날의 역사'라는 별도 코너에서 1937년 동북항일연군 내의 한인 부대원들이 함경남도 보천보 지역을 습격했던 '보천보 전투'를 소개하며 "이 작전을 성공시킨 김일성의 이름도 국내에 알려지게 되었다…(중략)…북한은 이 사건을 김일성 우상화에 이용했다"고 전했다.


김일성의 이름은 6·25 전쟁 부분에서 다시 등장하나 대부분의 교과서는 간략히 다룬다.


그러나 교학사 교과서는 6·25 전쟁 발발 배경으로 김일성이 소련의 남한 적화 전략을 부추겼다면서 김일성의 당시 판단이 '오판'이었다고 평가하는 등 비교적 자세히 다뤘다.


6·25 전쟁 이후 김일성 관련 서술은 공통으로 남로당과 연안파 등을 숙청하면서 1인 독재체제를 강화하는 과정에 나온다.


일부 교과서는 주체사상이 1인 지배체제를 뒷받침하는 이론적 바탕을 제공했다는 점을 언급하지만 서술 분량은 조금씩 다르다.


비상교육 교과서는 "주체사상이 유일사상으로 체계화돼 북한의 통치이념으로 자리잡았다"고 서술했고, 지학사 교과서 역시 김일성이 1인 독재체제를 사상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주체사상을 내세웠다고 설명했다.


천재교육은 별도 자료 꼭지로 '주체'를 처음 언급했던 '김일성 전집'의 해당 부분을 소개했고, 금성출판사 교과서 역시 '더 알아보기'라는 별도 꼭지로 '주체사상의 성립과 그 역할'을 다뤘다.


미래엔과 리베르, 두산동아 교과서에서는 김일성 독재 체제를 설명하면서 주체사상을 간략히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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