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
새삼 주목받는 '전주비빔밥'오색오미 음식에 담긴 상생·협치의 미덕 오색오미(五色五味)의 전통음식인 비빔밥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그 대표주자는 양반 고을이자 미식 1번지인 전주의 비빔밥. 전주 하면 비빔밥, 비빔밥 하면 전주가 자연스레 떠오를 만큼 이곳의 상징적 음식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비빔밥의 고장에서 그 멋과 맛을 새롭게 느껴본다. 전주전통비빔밥 [사진/임귀주 기자] 부드러운 곡선미의 황금색 유기그릇. 모난 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이 원만한 놋그릇 안의 풍경이 그야말로 장관이다. 멋스러운 맛의 향연이랄까. 보기에 따라 무슨 설치예술작품 같기도 하다. 황포묵, 콩나물, 쑥갓, 시금치, 표고버섯, 참깨…. 각양각색의 식재료들이 그릇 안에 모여 서로 손잡고 강강술래라도 추는 듯하다. 정중앙에 보란듯이 올려진 붉은색의 육회. 그 위에는 노란 은행과 연노랑의 잣이 세 개씩 앙증맞다 싶을 만큼 귀엽고 깜찍하게 놓였다. 이들 재료 아래로는 밥과 콩나물이 숨은 듯 깔려 있다. "아주 멋져요! 알록달록한 재료들이 참 잘 어울리네요! 맛이요? 매콤한 듯하면서도 순하다고 할까요, 아니면 부드러우면서도 감미롭다고 할까요? 아무튼 대만족입니다!" 일가족 4명이 전주 구경을 왔다는 김영희(57·경북 구미) 씨. 한 식당에서 비빔밥의 진미에 푹 빠진 김 씨는 "처음 방문한 전주인데 비빔밥 하나로 본전을 뽑고도 남는다"며 마냥 즐거운 표정이다. ◇ 궁중음식이 서민음식으로 한국인의 대표 음식 비빔밥이 최근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그 한 계기는 취임 직후 문재인 대통령의 행보였다. 대통령과 여야 5당 원내대표의 첫 오찬자리가 마련된 지난 5월 19일 청와대 상춘재. 원탁에 둘러앉아 진행된 이날 오찬에는 주요리로 비빔밥이 나와 눈길을 끌었다. 통합을 의미하는 비빔밥에서 소통과 협치의 국·청(국회·청와대) 관계를 정립하겠다는 의중이 담긴 것으로 읽혔다. 문 대통령은 하루 전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한 뒤 한 서민식당에서 일행들과 8천원짜리 비빔밥 점심을 먹어 화합과 상생의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비빔밥은 전통적으로 우리 민족에 매우 친숙한 음식이었다. 신분 고하를 떠나 실생활에서 쉽고 편하게 대할 수 있는 밥상. 그만큼 한민족의 정서에 꼭 맞는 일상의 먹거리였다. 비빔밥은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유래에 대해선 여러 가지 설이 전해진다. 밥, 고기, 나물 등을 상에 놓고 제사 지낸 뒤 후손들이 그 음식을 고루 비벼 나눠 먹었다는 제사음복설, 농번기에 구색 갖춘 상차림이 어려워 여러 음식을 한데 섞어 먹었다는 농번기음식설, 조선조의 임금이 점심으로 가볍게 먹는 비빔에서 유래했다는 궁중음식설 등이 그것이다. 전주비빔밥은 이중 궁중음식설에 토대를 두고 있다. 궁중음식이 시간이 지나면서 서민음식으로 퍼졌다는 것. 전주시에 따르면, 조선조 때 '감영(監營) 내의 관찰사, 농악패의 판관 등이 입맛으로 즐겼고 성(城) 내외의 양가에서는 큰 잔치 때나 손님을 모실 때 외에는 입 사치로 다루지 아니하였다'는 기록으로 봐 비빔밥은 고관들이 식도락으로 즐긴 귀한 음식이었다. 비빔밥의 명칭이 어떻게 변천해왔는지 살펴보자. 조선 순조 때(1849년) 저술된 '동국세시기'에는 '골동지반(滑董之飯)'이라는 말이 나온다. '여러 가지 재료가 고루 섞여 있는 밥'이라는 뜻. 1913년 초판이 나온 방신영의 '조선요리제법'에서 '부빔밥'이라고 했다가 이후 '비빔밥'으로 바뀌어 오늘에 이른다. 전주비빔밥은 평양냉면, 개성탕반과 함께 조선의 3대 음식으로 꼽혔다. ◇ 콩나물, 황포묵 등 풍미 더해 현재 전주에는 한국집, 성미당, 고궁, 중앙회관, 한국관, 가족회관 등 내로라하는 비빔밥 전문식당이 성업 중이다. 이중 가장 오래된 곳이 1952년 문을 연 한국집. 이어 1960년대에 중앙회관(1960년)과 성미당(1965년)이 개업하고, 1970년대에는 한국관(1971년)과 고궁(1973년)이 차례로 그 대열에 합류했다. 가족회관이 문을 연 때는 1980년. 궁중음식설에 걸맞게 전주비빔밥은 풍부하고 우수한 식재료를 바탕으로 멋과 맛을 한껏 드러낸다. 앞에서 언급한 재료 외에도 고사리, 오이, 호박, 도라지 등에다 대추, 밤, 지단 등의 고명까지 모두 30여 가지가 합세한다. 이들 식재료가 밥과 콩나물 위에 차례차례 둥그렇게 놓여 보는 미감(美感)과 먹는 미감(味感)을 동시에 충족시켜준다. 이 가운데 콩나물과 황포묵, 고추장, 소고기 육회, 간장은 전주비빔밥만의 풍미를 살려주는 주역으로 꼽힌다. 20년 동안 비빔밥과 함께 살아왔다는 유상권(48) 한국집 조리사는 "신선한 식재료와 참기름, 고추장, 간장이 깊으면서도 은은한 비빔밥의 맛을 살리는 데 중요한 요소"라며 "우리 식당이 오래전부터 고추장, 된장, 간장을 직접 담가 사용해오는 이유"라고 귀띔했다. 재료 본연의 깊은 맛을 내기 위해 전통방식을 오롯이 지켜오고 있다는 얘기다. 전주비빔밥은 뜨겁게 데워진 유기그릇에 담겨 밥상에 올려진다. 손님이 따뜻한 온기를 느끼며 먹도록 하기 위해서다. 볶은 소고기가 들어가는 전통비빔밥과 생고기가 얹혀지는 육회비빔밥이 일반적인데 돌솥에 뜨거운 비빔밥이 담긴 돌솥비빔밥도 고령층을 중심으로 많이 찾는다고 한다. 식당별로 다소 차이가 있으나 반찬은 상추 겉절이, 콩자반, 김치, 야채 샐러드, 야채전 등 예닐곱 가지가 밥상에 놓인다. 비빔밥 옆에 시종처럼 다소곳이 놓인 콩나물국은 시원한 식감을 더하는 청량제 구실을 한다. 비빔밥을 맛있게 먹으려면 요리사의 솜씨에 못지않게 먹는 이의 정성도 중요하다. 젓가락으로 저어야 밥이 잘 섞이는 것으로 일부 알려졌지만 숟가락을 이용해 정성껏 비벼주는 게 깊은 맛을 즐기기에 더 좋다고 한다. 재료가 고루 비벼진 비빔밥은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돈다. 식재료의 융합과 협치의 결과랄까. 고추장에 버무려진 밥은 달착지근하면서도 매콤한 맛으로 멋스럽게 수저에 담긴다. 먹을 때 전주의 대표 술인 모주까지 한 잔 곁들이면 그야말로 금상첨화. 친구들과 함께 전주 관광을 왔다는 이현정(39·서울) 씨는 "갖가지 나물 향이 은은해서 좋다. 막 채취한 나물처럼 신선하고 맛도 담백하다"며 "알알이 살아 있는 밥맛도 그만인데 놋그릇에 담겨서인지 그런 느낌이 더한 것 같다"고 말했다. 남자 친구와 여행 온 최유진(29·경기 화성) 씨도 "평소에는 고추장을 잘 못 먹는데 전주비빔밥에선 매운맛이 거부감없이 부드럽게 받아들여진다"면서 "콩나물국도 맛이 깔끔하고 개운하다"고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싱가포르에서 온 관광객인 쓰 롱 게리(24) 씨는 "비빔밥이 한국의 음식문화를 직접 느껴보는 데 큰 도움이 됐다"며 "아주 향긋해요(Very spicy)! 만족해요(Good)!"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전주비빔밥에 들어가는 오색오미의 식재료들 ◇ 세계화 넘어 우주 식품으로 진화 전주비빔밥은 그 명성에 걸맞게 전국화와 세계화를 넘어 우주 식품으로까지 진화하고 있다. 1970년대 이후 전국화가 본격적으로 이뤄지면서 서울 등 곳곳에 전주비빔밥 전문식당들이 속속 들어섰다. 이와 함께 미국, 중국 등 외국에서도 꾸준히 전주비빔밥의 세계화가 진전되고 있다. 비빔밥연구센터를 개소한 전주시는 세계인의 입맛에 맞는 비빔밥 개발과 마케팅 활동을 추진 중이다. 나아가 우주공간에서 간편히 먹을 수 있는 우주식을 개발한 데 이어 향후 우주정거장은 물론 화성탐사 프로젝트에도 공급할 예정이다. 전주비빔밥을 앞세운 '전주비빔밥축제'는 매년 10월 열린다. 올해로 11회째인 비빔밥축제는 전주시의 33개 동 주민들이 비빔밥을 마련해 관람객과 나눠 먹는 대형 비빔밥 퍼포먼스, 전국의 요리학과 학생과 전문가가 다양한 비빔밥 요리를 선보이는 전국요리경연대회 등으로 다채롭게 꾸며진다. 맛, 멋, 흥이 한데 버무려지는 대표적 음식축제다. 전주에서 비빔밥을 먹고 나서는 전통과 풍류를 느낄 수 있는 명소를 들러보면 더욱 좋다. 그 대표적인 지역이 풍남동과 교동 일대의 전주한옥마을. 전통한옥 700여 채가 들어선 이곳은 국내 최대 규모의 전통한옥촌이다. 경기전, 오목대, 향교, 한벽당, 풍남문 등을 차례로 돌아보면서 선비문화의 멋을 느껴볼 수 있다. 여름이면 연꽃향 그윽한 덕진공원도 찾아볼 만하다. 전주한옥마을의 경기전
-
'전통의 한마당' 문경찻사발축제먼 옛날, 영남과 한양을 잇는 관문이었던 백두대간 문경새재. 해발높이 1천75m의 주흘산과 1천26m의 조령산 사이의 깊은 계곡 영남대로에서 문경전통찻사발축제가 신록 향기와 싱그러운 봄바람 속에 다채롭게 펼쳐졌다. 역사성과 예술성, 향토성의 삼박자를 겸비한 전통의 한마당인 이 축제는 대한민국 대표축제로 승격된 뒤 올해 처음 열려 더욱 눈길을 끌었다. 한 어린이가 아빠와 함께 찻사발 만들기 체험을 하고 있다. [사진/문경시 제공] "햐, 신기하다! 멋진 작품을 금방금방 잘도 만들어내시네!" 도자기 발물레 시연이 진행된 새재가마골 사기장의 하루체험장. 지난해 전통 발물레 경진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던 도예가 강창성(38·문경 성주요) 씨가 물레를 빙글빙글 발로 차서 돌리며 찻사발을 하나하나 성형해내자 방문객들은 놀라움의 탄성을 너나없이 터뜨렸다. 체험 참가자들도 직접 물레 돌리기에 나섰으나 작품이 생각처럼 쉽게 빚어지지 않아 발을 동동 굴렀다. 대구에서 온 문주혁(11) 군은 "볼 때는 나도 따라할 수 있겠다 싶었는데 막상 해보니 어렵다. 아휴, 다리도 힘들어요"라며 한숨을 토했다. 구미에서 왔다는 양지우(9) 양은 "찻잔을 만들려 했는데 접시가 돼버렸다"고 어이없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직접 자신이 만든 거라 그런지 너무 귀엽다고 활짝 웃으면서 갓 빚은 지기를 든 채 포즈를 취했다. 성인 참가자인 남태희(50·울산) 씨도 "보기에는 쉬운 듯했는데 막상 해보니 그게 아니다"라며 "직접 체험으로 사기장들의 노고가 조금이나마 헤아려진다"고 말했다. ◇ 명불허전(名不虛傳) 일깨운 '대한민국 대표축제' 국내의 대표적 도자기축제로 꼽히는 문경전통찻사발축제가 지난 4월 29일부터 5월 7일까지 9일 동안 경북 문경새재 오픈세트장에서 열렸다. '문경 찻사발의 꿈! 세계를 담다'를 주제로 한 올해 축제는 공식행사, 기획전시, 특별행사, 체험행사, 알찬행사 등 다양한 프로그램들로 꾸며져 대한민국 대표축제라는 이름값을 톡톡히 하며 관람객들에게 만족감을 듬뿍 안겨줬다. 이번 19회 축제는 지난해 말 문화체육관광부가 선정한 2017년도 문화관광축제 중 최고 등급인 대표축제 반열에 오른 뒤 처음 열리는 것이어서 한층 더 주목받았다. 대표축제는 전국에서 개최되는 1천여 개의 축제 중 가장 높은 단계다. 문경전통찻사발축제는 김제지평선축제, 얼음나라화천산천어축제와 함께 3대 대표축제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문경찻사발축제는 전통찻사발과 전통차, 전통한옥을 삼위일체로 결합함으로써 옛것을 본받아 새로움을 창조한다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을 절묘하게 구현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문경 지역 고유의 사기 예술에 찻사발과 차, 그리고 한옥 문화를 끌어들여 자기확장에 성공한 것이다. 문경찻사발축제를 성공궤도에 안착시킨 비결 중 하나는 문경새재 제1관문과 제2관문 사이에 있는 오픈세트장. 2000년 KBS 역사드라마 '태조 왕건' 촬영지로 조성된 이곳은 2008년 조선시대의 궁전과 초가집 등 건축물로 새로 단장해 문경새재의 새로운 볼거리로 등장했다. 1999년부터 찻사발축제를 개최해온 문경시는 2009년부터 축제장소를 기존의 문경도자기박물관 앞 광장에서 이곳 오픈세트장으로 옮겨 찻사발의 전통과 한옥의 멋이 한데 어울리게 했다. 이에 따라 올해 참가한 37개 도요지는 천막이 아닌 한옥을 부스 삼아 작품을 전시·판매해 격조를 한껏 높였다. 방문객들로선 마치 사극의 한 대목에 출연한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문경시장, 축제위원장 등 관계인사들은 축제기간 내내 고유의 한복을 입고 행사에 참가해 전통성을 되살리는 데 일정한 역할을 했다. 고윤환 문경시장은 "도예인과 다인들의 참여를 대폭 늘리고 방문객들의 체험 프로그램도 많이 늘림으로써 누구나 전통의 오감만족을 하실 수 있도록 노력했다"고 말했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찻사발 빚기 체험을 하고 있다. [사진/문경시 제공] ◇ 사기장의 하루 체험 프로그램, 실감 극대화 축제의 주인공인 찻사발은 오픈세트장에 줄줄이 늘어선 한옥 부스에서 맘껏 감상할 수 있었다. 국가무형문화재인 김정옥 사기장과 경북 무형문화재인 천한봉 사기장의 작품이 전시된 '대한민국 도예명장 특별전'과 문경의 전통도예작가 37명의 진수를 직접 느껴보는 '문경도자기 명품전', 올해 제14회 전국찻사발공모대전 수상작이 선보인 '전국 찻사발 공모대전 수장작 전시', 문경 지역의 미래 사기장들의 예술세계를 미리 들여다본 '어린이 사기장전' 등이 많은 관람객을 불러모았다. 체험행사도 다채롭게 이어졌다. 모두 11개의 체험관에서는 찻사발 빚기, 찻사발 그림 그리기, 찻사발 풍경 만들기 등을 직접 해보며 도자기 문화의 정수를 온몸으로 느껴보도록 했다. 사기장의 하루체험 프로그램도 그중 하나. 이 프로그램에서는 자신의 소원지가 묶인 장작을 불이 이글이글 타오르는 망댕이가마 봉통에 직접 던져보게 함으로써 체험자의 실감을 극대화했다. 찻사발과 함께 차 문화를 직접 경험케 하는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마련됐다. 한국과 중국, 일본 전통차의 정수를 느끼게 한 '한·중·일 다례시연'과 '전국차회 다례시연', '전국 가루차 투다대회' 등이 강녕전 앞마당에서 진행됐다. 이 가운데 4월 30일 오후 국제티클럽 주최로 진행된 '한·중·일 다례시연'은 역사적 공통분모를 지니고 있는 동북아 3국의 문화적 공감대를 재확인하는 자리였다. 전통차 시연을 지켜보던 고재숙(68·문경) 씨는 "차에 관심이 많고 평소에 차를 즐긴다"면서 "시연과 시음을 통해 고요한 내면의 아름다움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됐다"고 만족감을 표시했다. 파키스탄에서 왔다는 아사드 울라(24·경희대 유학생) 씨는 "한국 전통공간에서 전통복장을 입고 하는 시연이라 더 감명 깊었다"며 "중국과 파키스탄의 경우 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무척 가까운 이웃인데 이번 축제를 통해 차가 주는 문화적 힘을 새삼 느꼈다"고 말했다. ◇ 문경 도자기, 조선시대 초기부터 생산 문경에서 도자기가 생산되기 시작한 때는 조선시대 초기로 추정된다. 경기도 광주나 이천 등의 관요(官窯)와 달리 문경 도자기는 서민의 그릇을 구워내는 민요(民窯)가 한국전쟁 무렵까지 주류를 이뤘다. 일본 도자기 문화의 정수로 꼽히는 이도다완(井戶茶碗)도 그 뿌리가 문경의 막사발로 알려져 있다. 임진왜란이 '도자기 전쟁', '다완 전쟁'이라고 불리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문경의 도공들은 일본으로 끌려가 일본 도자기 문화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막사발 중심의 문경도자기가 찻사발로 거듭 태어난 것은 1970년대 초반이다. 차 문화가 발달한 일본인들은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 활발해진 양국 교류를 계기로 문경의 막사발을 최고급 다완으로 주목했다. 말차를 주로 먹는 그들에게 주둥이가 넓은 문경 찻사발은 그야말로 제격이 아닐 수 없었다. 1999년 시작된 문경전통찻사발축제는 그 전통을 축제로 승화시켜 대표축제의 영예를 안게 됐다. 문경이 도자기의 명소가 된 배경에는 천혜의 자연적 조건이 있다. 도자기의 원재료인 흙이 풍부한 데다 자기를 굽는 데 필요한 목재 연료를 구하기가 쉽다. 중첩된 산악지대이면서도 도자기 운송이 생각 밖으로 편리했는데, 인근의 달천과 단양천 등을 따라가다 보면 남한강이 나오고 남한강 뱃길을 통해 서울, 경기도 등 각지로 운반할 수 있었다. 맑은 계곡물이 항상 흘러 도자기 흙을 수비(水飛·물속에 넣고 휘저어 잡물을 없애는 것)하기에도 그만이었다. 문경도자기협동조합 전진영 실장은 "원래 생활 도자기를 빚어내던 우리 문경에서 찻사발을 처음 만들었던 1970년대에는 7개소의 찻사발 도요지가 있었으나 지금은 50여 곳으로 늘었다"며 "이번 축제에 참여한 37개 도요지를 비롯해 문경 지역의 모든 도예인이 오로지 장작가마에서 작품을 생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경 도자기의 비결은 망댕이가마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망댕이가마는 길이 25cm, 지금 13cm가량의 어른 팔뚝만 한 흙덩어리를 15도의 경사로에 5~6칸씩 쌓아 만든 것이다. 오름가마, 등가마, 계단가마로도 불린다. 가장 오래된 망댕이가마(경북민속자료 135호)는 조선요에 있는 것으로, 현 소유주인 도예가 김영식(49) 씨의 6대조인 김영수 사기장이 1843년 개설했다고 한다. 도자기는 크게 도토 수비와 성형, 굽기의 과정을 거쳐 완성된다. 점성과 내화성, 발색의 요소를 두루 갖춘 도토를 채취한 뒤 잘게 부숴 물로 희석해 미세한 흙 분을 받는 수비 과정을 거쳐 굽기에 들어간다. 만들어진 찻사발은 망댕이가마에서 800도로 초벌구이를 한 뒤 유약을 입혀 1천200도 고온에서 재벌구이 과정을 거쳐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된다. 한·중·일 3국에 문화적 공감대가 형성된 다도가 시연되고 있다. [사진/임귀주 기자] 문경 전통 찻잔으로 차맛을 음미하고 있다. [사진/문경시 제공] ◇ 축제 분위기 고조시킨 문경새재아리랑 축제장인 오픈세트장의 주무대를 중심으로 각종 공연 프로그램이 다채롭게 이어져 방문객들을 즐겁게 했다. 문경새재아리랑과 전통연희 퍼포먼스, 상설해학극 '찻사발의 꿈'이 연일 주무대에서 펼쳐졌고, 축제장 밖인 문경읍 온천지구에서는 '2017 별이 빚차는 신북천에'가 야간에 진행됐다. 축제 이틀째인 4월 30일 오후 오픈세트장 광화문 앞에서 진행된 민속공연도 눈길을 사로잡은 프로그램 중 하나였다. 문경의 모전들소리와 횡성의 상여·회다지소리, 증평의 장뜰두레놀이가 차례로 이어져 축제장을 떠들썩하게 흔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이들 이벤트는 본래 프로그램에 없는 일종의 '깜짝' 공연이어서 흥미를 돋웠다. 백의민족 전통의 하얀 복장과 밀집모자 차림에 짚신을 신은 공연단은 신명난 사물악기 소리와 함께 각 고장의 전통놀이는 물론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소'로 이어지는 '문경새재아리랑' 등을 선보여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켰다. 이종필 문경시청 관광진흥과장은 "구슬픈 상여소리가 들어 있어 축제 분위기에 어울리겠느냐는 우려가 있었지만 공연을 지켜본 방문객들은 희로애락의 연희성을 깊게 해주는 데 큰 도움이 됐다며 한 목소리로 만족스러움을 나타냈다"고 말했다. 올해 축제에는 부대행사를 포함해 모두 25만여 명의 방문객이 찾은 것으로 집계됐다. 이중 외국인 관광객이 7천600여 명으로 전체 관광객의 3%를 차지했다. 특히 개막식에는 이란 대사 등 각국 외교사절 100여 명이 방문해 눈길을 끌었다. 문경전통찻사발축제추진위원회 김억주(황담요 사기장) 위원장은 "대표축제 승격 후 처음 치러졌는데 '문경 찻사발의 꿈! 세계를 담다'라는 축제 주제에 걸맞게 내외국인들로부터 폭넓게 각광받았다"면서 "특히 외국관광객이 지난해 대비 80%가량 늘어 우리를 한껏 고무시켰다"고 했다. 그는 "대표 프로그램 '사기장의 하루체험'을 위해 올해 처음으로 '새재가마골'을 축제기간에 설치했는데 반응이 아주 뜨거웠다"고 덧붙였다.
-
안동지방 대표음식 '안동찜닭'양은 푸짐, 값은 저렴, 맛은 매콤달콤 경북 안동 하면 찜닭이 먼저 생각날 만큼 '안동찜닭'은 이 고장의 대표 음식으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 닭고기와 각종 야채, 고추, 당면이 함께 연출해내는 맛의 어울림은 환상적이라 할 만하다. 물론 영양도 만점이다. 안동찜닭의 본향(本鄕)인 안동시 서부동 안동구(舊)시장에 가면 골목 양쪽으로 길게 늘어선 찜닭 식당들이 손님을 맞는다. 푸짐한 찜닭 요리 [사진/임귀주 기자] "오 마이 갓! 이게 소짜 맞아? 아휴, 이걸 언제 다 먹어!" 안동구시장의 한 찜닭 식당. 세 명의 중년 여성이 주문한 소짜 찜닭요리가 상에 놓이자 놀랍다는 듯 두 눈을 크게 뜨고서 걱정(?) 섞인 탄성을 내지른다. 넓적한 접시에는 갓 조리된 찜닭 음식이 하얀 김을 모락모락 피워 올리며 푸짐하게 담겨 있다. 보기만 해도 배가 절로 불러지는 분량. 성인 두세 명이 먹을 수 있다는 이 닭 한 마리 소짜 음식의 가격은 2만5천원이다. 늦은 점심시간이라서 더 그랬을까? 세 여성은 앞다퉈 젓가락을 들더니 찜닭의 맛에 정신없이 빠져들었다. 그리고 얼마 뒤, 동산처럼 불룩하게 쌓였던 음식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채 공허한 접시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한동안 식후 정담을 주고받던 이들은 그제서야 제정신이 돌아왔는지 휘둥그레진 눈으로 접시를 내려다 보더니 또다시 외친다. "오 마이 갓! 우리가 다 먹은 게 맞아? 접시가 텅 비었네!" 안동구시장 찜닭골목 전경 [사진/임귀주 기자]◇ 1980년대 등장한 안동의 대표 음식100여 년 역사의 안동구시장에 가면 대형 닭 조형물이 먼저 손님을 맞는다. 서문 쪽에 높이 2m로 설치된 이 조형물은 마치 '어서 오시라'는 듯 매시 정각에 목을 움직이며 닭울음소리를 낸다. 시장의 찜닭골목은 특히 주말이면 외지 손님들로 북적거린다. 골목 양쪽으로 나란히 늘어선 찜닭전문식당은 무려 30여 곳. 콧속으로 은근슬쩍 파고드는 찜닭 내음을 맡으며 걷노라면 목구멍에서는 침이 절로 꿀꺽 넘어감을 어쩌지 못한다. 안동찜닭은 언제 탄생했을까? 안동이 전통의 고장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찜닭도 오랜 역사를 지닌 음식이려니 싶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지금의 '찜닭골목'은 1970년대만 해도 생닭과 튀김통닭을 주로 파는 '통닭골목'이었다. 튀김통닭에 다진 마늘을 듬뿍 버무려 넣어 맵고 칼칼한 맛을 내는 마늘통닭이 등장해 1980년대 초반까지 입맛을 유혹했다. 하지만 이 또한 급변하는 소비자들의 취향을 따라잡기엔 역부족이었다. 대형 프렌차이즈를 앞세운 서양식 프라이드 치킨점들이 여기저기 생겨나면서 마늘통닭은 차츰 경쟁력을 잃어갔다. '궁즉변 변즉통(窮則變 變則通)'이라고 했으렷다!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는 법. 서양식 치킨에 손님을 빼앗긴 재래시장의 통닭식당들은 갈비찜 양념에 채소와 당면을 넣어 새로운 맛을 내는 상품 개발에 나섰다. '남문통닭'의 대를 이은 황모(74) 할머니는 "돌아가신 우리 어머니(김옥희)가 1980년대 중반에 통닭을 소갈비찜처럼 만들어보자며 다섯 개의 시장식당들과 함께 나서 기존 닭볶음탕에 간장도 넣어보고 야채도 넣어보고 하다 보니 지금의 찜닭이 생겨나게 됐다"고 들려준다. 소갈비찜 양념을 찜닭에도 사용하되 청양고추를 넣어 느끼한 맛을 없애고 당면도 추가해 양을 푸짐하게 늘린 게 용케 먹혀들었다. 찜닭은 갈비찜 양념에 당면과 각종 채소를 넣어 조리한 이른바 퓨전음식이다. 종래의 닭요리는 주재료인 닭고기의 양과 별 차이가 나지 않지만 찜닭은 닭, 당면, 채소가 넉넉히 어우러져 한결 푸짐한 양을 자랑한다. 먹고 남은 국물로는 밥을 비벼 먹을 수 있어 술안주뿐만 아니라 밥반찬, 간식, 찌개 등 여러 용도로도 그만이다. "배고프던 그 시절엔 무엇보다 양이 많아야 했어요. 당면은 그래서 넣었던 거지요."황 할머니의 회고다.이렇게 태어난 안동찜닭은 199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각광을 받았다. KBS TV의 'VJ특공대' 등에 소개되면서 전국적 명성을 얻었다. 안동찜닭생산협회 윤양금(안동대가찜닭 대표) 회장은 "2002년 한일월드컵을 계기로 인기가 크게 높아졌는데 당시 15곳이던 찜닭전문식당이 지금은 구시장에만 34곳에 이를 만큼 많아졌다"고 말한다. 안동찜닭의 기초 재료인 신선한 닭고기 찜닭 요리에 들어가는 양배추, 양파 등 채소 재료◇ 닭과 채소, 당면의 환상적 어울림 안동찜닭은 닭고기에 당면과 채소, 간장과 물엿 등을 넣은 뒤 센 불로 국물을 졸이는 과정을 거쳐 탄생한다. 요리의 주역인 닭은 삼계탕용보다 더 큰 것이 좋은데 부화 후 40일가량 된 닭(무게 약 1.3kg)이 최적이라고 한다. 예전에는 식당에서 생닭을 직접 잘라 요리에 썼으나 요즘은 닭공장에서 배달받되 냉동하지 않은 채 신선한 상태 그대로 사용한다. 음식의 담백한 맛을 위해 불필요한 지방은 사전에 없앤다.요리용 야채도 다양하다. 양배추, 양파, 당근, 표고버섯, 감자, 마늘, 생강, 고추 등이 들어가고 물엿, 후추, 소금, 간장도 넣는다. 주로 쓰이는 고추는 청양고추나 영양고추. 찜닭이 달콤하면서도 매운 맛이 느껴지는 것은 물엿, 간장과 함께 이 고추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솥에 각종 재료를 넣고 끓일 때 중요한 것은 불의 강도다. 닭고기와 양념 등을 넣은 뒤 화력 300도 이상의 센 불로 바짝 끓여줘야 한다. 그래야 남은 기름기가 마저 제거돼 닭고기 특유의 비린내가 나지 않고 찜닭만의 맛깔스러움이 극대화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바특해진 국물에 당면과 야채, 매운 고추를 넣고 5분가량 더 끓여주면 찜닭요리가 완성된다. 단맛을 강화하고 색을 선명하게 하기 위해서 캐러멜 소스를 첨가하기도 한다.찜닭과 함께 밥상에 오르는 음식은 김치와 깍두기, 밥 정도로 간단하다. 그만큼 찜닭의 위상은 단연 돋보인다. 안동찜닭을 맛있게 먹으려면 먼저 당면부터 공략하는 게 좋다. 퍼지기 전에 양념과 국물을 적당히 묻혀가며 입에 넣어야 쫄깃쫄깃한 제맛을 즐길 수 있다. 이어 고기와 야채를 먹고 마지막으로 쫄아든 양념국물에 공기밥을 넣어 비벼 먹으면 배도 부르고 식감도 그만이다. 대개 4명이 푸짐하게 먹을 수 있는 중짜(한 마리 반) 찜닭 가격은 3만8천원, 5명이 넉넉히 즐길 수 있는 대짜(두 마리) 값은 4만8천원이다.한 식당에서 만난 손님 황영희(46·경북 예천) 씨는 "음식의 양이 풍성한 데다 간이 적당히 입에 맞아 먹는 맛이 그만이다"라면서 "음식은 역시 본고장에서 먹어야 제맛을 만끽할 수 있는 것 같다"고 만족감을 표시했다. 찜닭은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요리이지만 특히 20대 고객에게 인기가 높다. 따라서 이들 젊은층의 취향에 맞춰 찜닭도 조금씩 진화하고 있다. 당면이나 야채 없이 닭고기에 소스만 넣는 쪼림닭이 그 한 사례다. 치즈와 가래떡을 찜닭에 넣은 치즈가래떡찜닭도 등장해 젊은이들을 유혹한다. 한편에서 전통의 방식을 고수하며 맛의 깊이를 더하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선 각종 파생 음식을 만들어내고 있다.한편 안동에 가서는 찜닭 등 향토음식을 맛보고 전통의 문화유산을 둘러보는 것이 좋다. 퇴계 이황의 숨결이 느껴지는 도산서원, 안동김씨 가문의 얼이 스민 안동하회마을과 부용대, 안동호에 놓인 목책교인 월영교 등 볼거리가 많다. 국물 위에 둥둥 뜬 청양고추 끓고 있는 솥에 얹어진 당면※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7년 6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
'천년고도의 맛' 나주곰탕맑은 국물·부드러운 고기·깔끔한 맛의 삼박자 예부터 '모양은 전주요, 맛은 나주다'라는 말이 전해온다. 그만큼 천년고도 '목사고을' 나주는 맛이 풍부한 고장이다. 나주의 3대 별미라면 곰탕과 홍어, 장어가 꼽힌다. 그중 으뜸은 역시 곰탕. '젊은이 망령은 홍두깨로 고치고, 늙은이 망령은 곰국으로 고친다'고 할 만큼 영양 만점인 곰탕은 기력 증진에 그만이다. 나주와 곰탕의 결합인 나주곰탕은 지역을 넘어 이미 전국의 대표 음식으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상차림이 간단한 나주곰탕. 일반적으로 김치와 깍두기가 반찬의 전부다. [사진/임귀주 기자]먼저 나주가 곰탕의 본고장이 된 내력부터 살펴보자. 나주는 각종 물산이 풍부한 호남 지역의 오랜 중심지였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5일장이 선 고장 역시 나주다. 나주읍성에 장이 설 때마다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장꾼들은 값싸고 양 많은 곰탕을 즐겨 찾았다. 이 곰탕은 입소문을 타고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나주시 중심가에 있는 조선시대 관아 건물 금성관 앞에 가면 곰탕 전문식당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조선조 때까지만 해도 여유 있는 벼슬아치들이 곰탕을 즐겨 찾았다고 한다. 곡창지대인 나주에서는 곰탕 재료인 소가 그만큼 흔했다. 현재 이 일대에는 '나주곰탕 하얀집'을 비롯해 나주곰탕 노안집, 나주곰탕 남평할매집, 나주곰탕 한옥집, 나주곰탕 사매기, 탯자리 나주곰탕, 미향 나주곰탕 등 7개 식당이 반경 100여m 안에 몰려 있다.이중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식당은 하얀집. 1910년에 원판례 씨가 문을 열어 2대 임이순, 3대 길한수 씨에 이어 지금은 4대인 길형선 씨가 운영하고 있다. 하얀집은 1904년 문을 열어 113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서울의 '이문설농탕'에 이어 국내 식당 중 두 번째로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노안집도 1960년부터 3대째 운영 중이고, 남평할매집은 1975년 문을 열었다. 여기 말고도 나주시내에는 두 곳의 곰탕 전문식당이 더 있다.그렇다면 곰탕은 어떤 음식일까? 나주시의 설명에 따르면 곰탕은 장날에 소의 머리고기, 내장 등을 푹 고아 우려내어 팔던 장국밥에서 유래됐다. 곰탕의 '곰'이란 '고다'의 명사형으로 오랫동안 푹 고아서 국물을 낸다는 뜻이다. 일부에서는 중국어나 몽골어에서 고기 삶은 국물을 의미하는 '공탕(空湯)'이 그 어원이라고 보기도 한다.◇ 뼈 없이 고기만으로 고아낸 국물 커다란 솥이 부글부글 끓는다. 하얀 김이 모락모락 솟아나고, 노란 국물이 춤추듯 끓어 오른다. 그 사이 쇠고기는 시나브로 부드럽게 부드럽게 삶아져 간다. 곰탕의 육수를 만들고 고기를 삶아내는 무쇠솥의 모습이다. 식당마다 이런 대형 무쇠솥이 2개 이상씩 걸려 있어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곰탕은 소의 뼈를 고아서 육수를 만들기도 하고 뼈 없이 고기만으로 육수를 만들기도 한다. 나주곰탕의 가장 큰 특징은 뼈를 쓰지 않고 고기를 오랫동안 고아낸 국물을 바탕으로 요리한다는 점이다. 물론 원재료인 고기를 하루 정도 찬물에 담가 핏물을 충분히 빼준다. 그래서 나주곰탕은 다른 지역의 곰탕에 비해 국물이 맑고 개운하단다. 양지, 사태, 등심, 갈비살 등을 넣고 적어도 네 시간 이상 푹 고아줘야 한다는 것이다.곰탕 맛을 좌우하는 가장 큰 요소는 뭘까? 하얀집의 길형선(57) 대표는 단연 '재료'를 꼽는다. 다시 말해 얼마나 신선한 고기 재료를 구해 어떤 비율로 넣어 어떻게 삶아내느냐가 관건이라는 얘기다. 그중 맛있는 부위인 양지를 절반가량 무쇠솥에 넣어 충분히 고와 준단다. 남평할매집의 정다혜(35) 대표는 국산 쇠고기 중 최상급만을 사용한다고 말한다. 밥을 짓는 쌀을 비롯해 무, 배추, 고춧가루 역시 고집스러울 정도로 순수 국내산만을 쓴다.담백하면서도 구수하고 맑은 육수를 만들려면 기름기를 최대한 제거해줘야 한다. 원재료에서 지방을 잘라낸 뒤 충분히 삶아주고 이 과정에서 뜨는 기름기도 없애줘야 한다는 것. 삶은 고깃덩어리는 더 잘게 썰어서 다시 삶아준다. 이 과정에서 질긴 부위가 한껏 부드러워져 먹을 때 부담 없이 삼킬 수 있단다. 물론 고기양도 다른 곰탕보다 많다. 노란색, 푸른색, 연갈색, 빨간색이 미묘한 조화를 이루는 나주곰탕◇ 토렴으로 밥알 하나하나에 깊은 맛 나주곰탕의 비결 중 또 하나는 토렴이다. 토렴이란 밥에 뜨거운 국물을 부었다가 따라내는 일을 반복하는 것이다. 뚝배기에 밥과 고기를 담은 뒤 설설 끓는 가마솥 국물을 떠서 서너 차례 토렴을 한 뒤 손님상에 올려놓는다. 이렇게 하면 밥알 하나하나에 국물이 깊게 배어들어 영양 증진은 물론 먹는 느낌을 극대화해 준다. 손님이 먹을 때 가장 좋은 식감을 즐길 수 있는 밥의 온도는 75℃ 안팎이라고 한다. 나주곰탕의 상차림은 매우 간단하다. 김치와 깍두기가 반찬의 전부다. 나주곰탕이 연출하는 간명한 맛의 삼박자라고나 할까. 물론 지단, 파, 고춧가루, 참깨가 고명으로 살짝 얹어진다. 뚝배기 안의 곰탕을 찬찬히 바라보노라면 노란색(지단), 푸른색(파), 연갈색(고기), 빨간색(고춧가루)이 미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김치와 깍두기의 속 깊은 맛이 더해지기에 곰탕은 더욱 식객을 매료한다. 이 김치와 깍두기는 입맛에 따라 먹는 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 별도의 맛을 깔끔하게 즐기려면 탕과 반찬을 차례로 먹고, 맛의 어울림을 동시에 향유코자 한다면 김치나 깍두기를 탕에 넣어 먹으면 된다. 김치를 곰탕에 넣으면 얼큰하고 구수한 맛을, 깍두기 국물을 곰탕에 넣어 먹으면 새콤달콤한 맛을 즐길 수 있다. 물론 고춧가루, 후춧가루, 소금 등의 양념도 취향에 따라 자유로이 선택해 넣을 수 있겠다. 보통의 곰탕에 아롱사태 등 고기를 더 넣는 수육 곰탕의 경우 마늘과 고추, 기름장, 초고추장이 추가된다.식당에서 만난 손님들은 나주곰탕의 맛이 기대 이상으로 좋다며 대체로 만족스러운 반응을 나타냈다. 부산에서 왔다는 안영하(72) 씨는 "국물이 참 맑고 구수하다"면서 "반찬의 깊은 맛도 식감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군 복무 중인 김병주(24) 씨는 "잡냄새가 안 나고 개운해 젊은이 입맛에도 잘 맞는다"면서 "외출할 때면 곰탕식당을 즐겨 찾는다"고 웃음 지었다. 서울에서 온 정일윤(54) 씨도 "좋은 고기를 잘 삶아서 그런지 씹는 느낌이 좋다"며 "음식은 역시 본고장에서 먹어야 제맛인 것 같다"고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값은 나주곰탕이 한 그릇에 9천원이고 수육곰탕은 1만2천원선이다. 부드럽게 잘 삶아진 쇠고기 수육은 한 접시에 3만5천원으로 넉넉한 식감을 맘껏 즐길 수 있다. 가격은 나주 시내 식당이 동일하다고. 나주목사 내아(관저)인 금학헌 전경 ◇ 곰탕 먹고 역사 명소도 둘러보자 나주곰탕의 전국적 명성 덕분인지 특히 주말이면 이곳 식당들은 넘쳐나는 손님들로 눈코 뜰새 없이 바쁘다. 인근 지역에서 축제가 많이 열리는 4월과 5월, 9월과 10월, 그리고 여름방학과 겨울방학 때면 이곳에 들러 나주곰탕의 진미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식당은 더욱 붐빈다. 하얀집의 길 대표는 "주말에는 하루 2천500여 명, 평일에는 하루 1천500명가량이 우리 식당을 찾아 직원들이 식사도 제대로 할 수 없을 지경"이라며 즐거운 비명을 감추지 않았다.한 번 가서 두 개를 얻어 오는 '일거양득(一去兩得)'이랄까? 나주에 가서 곰탕 맛을 즐긴 뒤에는 주변의 역사적 명소를 둘러보는 것도 좋다. 음식의 맛도 즐기고 역사의 멋도 즐기는 것이다. 조선조의 지방궁궐인 금성관, 나주목사 내아(관저)인 금학헌, 보물 제394호인 나주향교 대성전 등을 찾으면 역사의 깊은 숨결을 느낄 수 있다. 서기 903년에 지금의 지명을 얻은 옛 도읍지 나주는 982년 나주목이 됐고 1895년 나주관찰부가 설치됨으로써 약 1천 년 동안 남도의 명실상부한 중심지 구실을 해왔다.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7년 5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
[연합이매진] "수원王갈비 납시오"해방 후 '수원갈비' 요리 등장…푸짐해서 王 자 붙어 그냥 '갈비'가 아니라 '왕갈비'다. 혹시 왕과 무슨 관계가 있는 건 아닐까? 일견 그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보다 고기가 크고 푸짐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란다. 실제로 같은 1인분이라도 다른 지역의 갈비보다 훨씬 많아 보인다. 이름하여 '수원왕갈비'다. 그럼 왕갈비의 행차를 한번 살펴보자. 풍성한 수원 왕갈비 상차림. 갈비를 중앙에 두고 갖가지 반찬이 빙 둘러 있다. [사진/임귀주 기자]검은 숯에서 붉은 불꽃이 이글이글 피어오른다. 보기만 해도 마음이 뜨끈뜨끈해지는 잉걸불이다. 화로 위의 석쇠에 고기를 조심스레 얹어놓는다. 참숯불과 소갈비의 뜨거운 만남! 빨간색의 고기는 서서히 누런색으로 변해간다. 젓가락으로 고기를 굽는 식객의 입에선 금세 침이 꿀꺽 넘어간다. 꼭 식전이어서만은 아니리라.경기도의 대표 음식인 수원갈비. 상차림을 보면 "역시!"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그 넓은 상을 빼곡히 채운 반찬도 반찬이려니와 메뉴의 주인공인 소갈비의 크기와 생김새에 압도돼서다. 갈비가 화로와 함께 밥상의 정중앙을 당당히 차지한 가운데 12가지의 밑반찬들은 궁중 하인처럼 시립하듯 그 주변을 빙 둘러 에워싸고 있다. 밥상 위에 재현된 궁궐의 모습이랄까.◇ 일본 강점기 수원에 전국 최대 우시장 경기도 수원이 언제 어떤 연유로 갈비의 본고장이 됐는지 되짚어보자. 수원은 남쪽 지방에서 서울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다. 사람은 물론 물산이 전국 곳곳에서 집합하고 통과하는 지역인 것이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 소들이 모이는 건 당연한 일. 일본강점기에는 전국 3대 우시장이 바로 이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수원이 소의 대표적 본향이 된 데는 조선시대 정조의 화성 축성과 관계가 깊단다. 새 도시인 화성을 축성하고 난 뒤 수원을 자립기반의 도시로 육성하기 위해 둔전(屯田)을 경영했다. 그리고 그 둔전에서 농사를 잘 짓도록 농민들에게 종자와 소를 나눠줬다. 이후 점차 늘어난 소는 수원의 대표상품으로 팔리기 시작했고, 그 우시장이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됐다.1940년대까지 전국 최대 규모를 자랑한 우시장 덕분에 관련 음식이 탄생해 식객들의 사랑을 받는 것은 당연지사다. 음식 재료로 쓰이는 한우갈비를 구하기가 쉬워서다. 지금의 수원갈비 요리는 해방 직후에 등장했다는 게 정설로 받아들여진다. 수원화성의 팔달문 밖 영동시장에서 화춘제과점을 운영하던 이귀성 씨가 광복 후 업종을 바꿔 '화춘옥(華春屋)'이라는 음식점을 차리면서라는 것. 소갈비에 양념을 넣고 무쳐 만든 양념갈비를 숯불에 구워 팔기 시작했는데 그 맛이 일품이어서 인기가 삽시간에 치솟았다. 수원시민은 물론 전국에서 그 맛을 보려고 몰려들었다. 1970년대에는 고위관리들은 물론 당시 대통령도 이 화춘옥에 와서 갈비를 먹고 갈 정도였다고 한다. 화춘옥 방식의 수원갈비는 1985년 4월 수원시 향토음식으로 공식 지정됐다. 수원왕갈비는 야채에 싸서 먹어야 제맛이 난다.◇ '생갈비' 담백…'양념갈비' 달콤 그렇다면 갈비 음식의 세계로 좀 더 깊이 들어가 본다. 먼저 재료다. 싱싱하고 질 좋은 소갈비를 중심으로 도라지삼채, 단호박 범벅, 연근 샐러드, 야채 겉절이, 가오리찜, 꽃게무침, 잡채, 궁채나물, 호박전, 열무김치, 나박김치, 양상추 샐러드 등 무려 12가지의 깔끔한 밑반찬이 밥상 위에 넉넉하게 펼쳐진다. 쌈장, 마늘 등 부재료들도 보인다.이들 재료 중 갈비는 크기가 무척 커서 식객을 놀라게 한다. 갈비 1인분(수입산 기준)은 보통 450g. 얇게 펼쳐진 규모가 10×15cm가량 된다. 그중 절반 가까이가 갈비이고 나머지 절반 정도는 고기다. 다른 지역의 갈비는 이보다 크게 적어 1인분이 통상 250g이라고 한다. 수원갈비는 예전의 명칭 그대로 푸짐한 '왕갈비'인 것이다. 갈비음식은 양념갈비와 생갈비로 크게 나뉜다. 1인분 갈비 가격은 수원 최대의 갈비 전문식당인 가보정의 경우 국내산이 생갈비(250g 기준) 5만3천원, 양념갈비 4만2천원이다. 미국산은 생갈비(450g 기준) 4만원, 양념갈비 3만4천원이다. 국내산을 마음껏 먹기엔 보통사람으로서는 아무래도 가격 부담이 좀 크다고 하겠다. 이 때문에 식당들은 점심시간에 저렴한 메뉴를 만들어 내놓고 있다.같은 재료라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지기 마련이다. 생갈비와 양념갈비는 화로의 숯불 상태를 어느 정도로 유지하는가에 따라 맛이 천양지차다. 물론 숯불은 가스불보다 깊고 은근한 구이맛을 선사한다.먼저 생갈비는 센 불에 올리되 살짝 구워 얼른 꺼내 먹어야 제맛을 만끽할 수 있단다. 겉모습이 누렇게 익은 반면에 속살은 여전히 붉은 상태로 남아 있을 때 먹는 게 고기 맛을 즐기기에 최적이라는 얘기다. 불 위에 너무 오래 두면 육질이 질겨지고 파삭파삭해진다. 그냥 먹어야 고기 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지만 취향에 따라 소금을 살짝 찍어 먹기도 한다. 생갈비가 담백하고 고소한 맛이라면 양념갈비는 연하면서도 달콤한 게 특징이다. 양념갈비 맛을 제대로 즐기려면 생갈비 조리 때보다 불을 약하게 한 채 천천히, 그리고 은근하게 익혀야 한다. 센 불로 구울 경우 살이 금방 타 버리기 십상이다. 생강, 마늘, 소금 등 양념이 살에 발라진 상태라서 그렇단다. 다 익은 고기는 석쇠 위의 갈비뼈에 올려놓고 따끈한 상태에서 하나씩 먹으면 된다. 식은 고기는 맛이 그만큼 떨어지기 때문이다.◇ 후식으로 노란 잣 동동 뜬 수정과 나와 식당에서 만난 손님들은 한결같이 만족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수원 거주자인 이효주(57)ㆍ경희(55) 씨 자매는 "고기가 신선하고 많은 데다 반찬도 정갈하게 많이 나와 종종 이곳 갈비 음식집을 찾는다"면서 "점심때는 저렴하게 선택할 수 있는 메뉴가 있어 가격대비 만족도가 높다"고 말했다. 아내, 딸과 함께 대구에서 왔다는 박규홍(80) 씨는 "관광을 하고 수원갈비도 먹으러 일부러 왔다. 고소하고 부드러운 갈비를 풍성한 반찬과 함께 맘껏 즐길 수 있어 좋다"고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갈비를 먹고 난 후의 식사로는 보통 공깃밥에 된장찌개나 냉면이 올려지고, 후식으로는 노란 잣이 동동 뜬 달콤한 수정과가 제공돼 개운하게 입가심할 수 있다. 식당 종업원 김모(46) 씨는 "고기 양이 외지의 갈비음식보다 많지만 손님들은 남김없이 잘 드신다"고 귀띔한다. 수원의 대표적 갈비식당으로는 가보정과 본수원갈비를 꼽을 수 있다. 1992년 생긴 가보정의 경우 수원시 팔달구 인계동에만 모두 3곳의 식당을 1천450석 규모로 운영한다. 이 식당의 김외순 대표는 "손님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내놓는 것이 제 사명이다. 자식들의 입에 맛있는 음식이 들어가면 엄마들은 먹지 않아도 저절로 배부른 것처럼 손님들이 맛있게 음식을 드시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한편 수원에서는 해마다 갈비축제가 열려 그 맛과 명성을 더욱 높이고 있다. 1995년 시작된 수원양념갈비축제는 근래 들어 가을에 개최되는 수원화성문화제 기간에 함께 펼쳐진다. 수원시는 중국과 일본의 자매도시와 손잡고 한ㆍ중ㆍ일 음식문화축제도 열고 있다. 수원에 온 김에 갈비도 즐기고 관광명소도 들러본다면 일거양득이 될 수 있다. 대표적 관광지는 총연장 5.744km인 수원화성(水原華城).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에 대한 효심 선양과 왕권 강화 목적으로 1794년 축성 공사를 시작해 2년 뒤인 1796년 완공했다. 실학자 유형원과 정약용이 설계한 화성은 20년 전인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 화성은 벚꽃이 화사하게 피어나는 4월이면 더욱 화려한 아름다움으로 치장한다. 개나리꽃이 만발한 수원 화성 전경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7년 4월호 [음식기행] 코너에 실린 글입니다.
-
도톰하고 부드러운 ‘명품 조개’의 별미‘육수·새조개·데치기’삼박자가 어우러진 샤부샤부 차가운 바닷물을 헤치며 당차게 나아가는 귀족 조개가 있다. 이 조개는 새의 부리를 닮은 도톰한 조갯살로 겅중겅중 걷듯이 물속을 헤엄쳐 간다. 한겨울과 초봄의 별미인 ‘새조개’ 이야기다. 껍데기를 까서 놓고 보면 얼추 새가 앉아 있는 모양 같기도 하다. 새조개가 대체 뭐길래 겨울과 봄날이면 식객들의 발길이 줄줄이 이어지는 걸까? 싱싱한 모습의 새조개 [사진/임귀주]◇ 겨울과 초봄이 입맛의 절정기 서해안의 새조개 1번지인 충남 홍성군 천수만의 남당항. 철썩철썩 파도 소리가 들리고 끼룩끼룩 갈매기 소리가 정겨운 바닷가 항구를 따라 80여 곳의 새조개 식당들이 주욱 늘어서 있다. 이곳 수산물 중 한겨울과 초봄에 손님을 유혹하는 최고의 주인공은 바로 새조개. 근래 들어 샤부샤부 요리가 새롭게 등장하면서 평범한 조개류의 하나 정도로 여겨졌던 새조개의 성가는 일거에 높아졌다. 남당항이 새조개의 명소가 된 것은 1984년 이후라고 한다. 그해에 천수만 방조제 공사가 끝나 모래와 진흙이 쌓이면서 새조개가 살 수 있는 천혜의 환경이 만들어졌다는 것. 적절한 수온과 청정한 수질이 새조개들에 편안한 삶의 여건을 제공해주고 있다. 참고로, 새조개의 최대 생산지는 남해안의 여수 가막만이다.자웅동체의 연체동물인 새조개는 5~30m 깊이의 진흙 바닥에서 주로 산다. 다닐 때는 부리로 점프하듯 뛰면서 걷되 초콜릿색의 조개껍데기를 날개처럼 활짝 펴서 슬쩍슬쩍 날기도 한다는 것. 이를테면 바다 물속을 날아다니는 새라고나 할까? 아무튼 이래저래 새조개라는 명칭과 잘 어울린다. 성장은 다른 조개보다 두 배가량 빠른 편. 생애 전 과정을 인공양식하기가 어려워 판매되는 새조개는 대부분 자연산이라고 보면 된다.새조개는 첫눈이 내리는 12월 말부터 진달래꽃이 피는 5월 하순까지 속이 오동통하게 꽉 차고 맛도 그만이다. 그중에서도 맛의 절정기는 1월부터 3월까지. 대개 5월 말부터 10월까지를 산란기로 보는데 이후에는 살이 빠지고 맛도 떨어진다. 새조개는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구이로 먹는 정도의 평이한 식재료였다. 그러다 식탁 위의 명품 귀족으로 거듭난 것은 1990년대 후반. 구이는 국물 없이는 먹기가 좀 그랬고, 삶아 먹자고 해도 식감이 질겨 고민하던 중 샤부샤부라는 요리법을 새롭게 적용한 뒤 기대 이상으로 빅히트를 쳤다. 남당항 항구수산의 김진희(37) 대표는 “새조개 샤부샤부는 이제 겨울의 별미로 확실히 정착했어요. 탱탱한 느낌의 새조개와 부드러운 맛의 야채 육수가 어울려 식객들의 미감을 자극하는 데 성공한 거죠”라고 말했다. 새조개 샤부샤부 상 차림 ◇ 육수, 새조개, 데치기의 삼박자 가스레인지 위에서 보글보글 끓는 샤부샤부 육수는 보기만 해도 침이 꿀꺽 넘어간다. 바다와 땅이 연출하는 감미로운 음식 이중주랄까. 샤부샤부는 맑으면서도 은은한 깊이가 느껴지는 육수, 바다의 기운을 흠뻑 머금은 새조개, 그리고 이 맛을 극대화하는 데치기 요리법이 삼박자로 잘 어우러졌을 때 식감이 최고조에 이른다.먼저 해야 할 일은 육수 마련이다. 커다란 솥에 다시마, 황태, 멸치, 미더덕, 무, 양파 등의 재료를 넉넉히 넣고 푹 끓여낸다. 맑고 개운한 새조개 샤부샤부 맛의 본바탕이라고 하겠다. 손님의 밥상에는 이 육수가 담긴 냄비를 얹고 다시 펄펄 끓이는데 여기에는 배추, 무, 팽이버섯, 냉이, 대파, 당근, 바지락 등 야채 중심의 식재료들이 푸짐하게 담긴다. 이 육수와 야채의 끓는 모습은 미각도 미각이려니와 시각적 만족도 역시 한껏 높여준다. 노란색, 하얀색, 붉은색, 초록색 등 선명한 색감의 야채들 덕분이다.밑반찬으로는 가오리 회무침, 배추김치, 고추김치, 산고추, 락교, 동치미, 옥수수 샐러드 등이 밥상에 줄줄이 놓이고 피조개, 석화찜, 석화회, 멍게, 해삼, 가리비 등 이른바 ‘스키다시(반찬을 의미하는 일본어)’들도 푸짐하게 올려진다.자! 이제는 요리의 주인공인 새조개 차례다. 앞에서 언급한 육수와 야채, 밑반찬이 조연급이라면 새조개는 오늘의 주연배우라고 할 수 있다. 딱딱한 껍데기를 벗기고 탱탱한 느낌의 조갯살을 꺼낸 뒤 칼로 거무스름한 내장을 도려내어 버린다. 이윽고 밥상에 놓인 진갈색과 흰색의 조갯살들. 이제부터 그 맛을 극대화하는 비결은 어떻게 데치느냐다.새조개는 센 불에 팔팔 끓는 육수에 10초에서 15초가량 담갔을 때 맛과 부드러움이 가장 좋다. 살짝살짝 데친다는 뜻의 일본어 ‘샤부샤부’처럼 너무 얼른 꺼내도, 너무 늦게 꺼내도 최고의 본맛을 놓치기 쉬운 것. 특히 오래 데치면 조갯살이 질겨져 본래의 부드러움이 떨어진다.데친 뒤에 먹는 방법은 식객의 취향대로다. 초장이나 간장에 찍어 먹을 수도 있고, 양념 없이 그냥 조갯살만 담백하게 먹을 수도 있다. 보통 두 사람이 한 상에서 먹는 양은 새조개 20마리 안팎. 식당에서는 이를 1kg 분량이라고 하는데, 껍데기와 내장을 제거하면 600g 정도로 줄어든다. 가격은 2인분에 5만원가량. 예년에는 6~7만원선이었는데 새조개 풍년인 올해에는 가격이 상당히 내렸다고 한다.계절의 별미답게 새조개는 손님들에게 높은 만족감을 선사한다. 한 식당에서 만난 강장선(66ㆍ대전) 씨는 “새조개철마다 이곳 남당항을 찾는다. 담백하면서도 달착지근한 식감이 술안주로도 그만이다”면서 마주앉은 친구들에게 “자, 이 대목에서 한 잔!” 하며 호기롭게 외쳤다. 친구 부부와 함께 온 윤혜신(61ㆍ화성) 씨 부부도 “부드럽고 달큼한 맛에 이끌려 해마다 이맘때면 이곳의 샤부샤부를 찾게 된다. 같은 새조개 샤부샤부라도 본고장에서 바다를 느껴가며 먹었을 때 제맛이 더 깊게 느껴지는 것 같다”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샤부샤부를 먹은 뒤에는 그 국물에 라면이나 떡국, 칼국수, 수제비를 넣으면 또 다른 별미를 뒷맛으로 즐길 수 있다. 이와 함께 새조개는 샤부샤부뿐만 아니라 전, 무침, 죽, 된장국 등으로 그 영역을 날로 넓혀가고 있기도 하다. 콜레스테롤과 지방 함량이 낮으면서도 단백질, 철분, 타우린, 필수 아미노산 등은 풍부해 다소 비싼 식비를 상쇄하고도 남는다는 것.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올해는 김영란법(부정청탁금지법) 시행, ‘최순실 게이트’ 등의 여파로 소비시장이 위축되면서 손님이 예년보다 상당히 줄었다는 사실이다.◇ 낙조 등 바다 풍경 감상은 ‘덤’남당항에서 새조개 샤부샤부를 먹으면 멋진 서해의 풍경도 감상할 수 있어 일거양득이다. 저 멀리 안면도가 기다랗게 이어지는 가운데 천수만의 죽도는 신비의 섬처럼 둥실 떠 있다. 구름 사이로 햇살이 내리비쳐 은빛으로 출렁이는 바다도 일대 장관이다. 항구에는 식당에서 내다 버린 새조개 내장을 주워 먹으려는 갈매기들이 수백 마리씩 떼 지어 몰려들어 또 다른 볼거리가 된다.새조개가 한창 잡히는 연초마다 남당항에서 열리는 새조개축제는 전국의 식객들을 불러 모은다. 14회째를 맞은 올해 축제는 1월 6일부터 20일까지 개최돼 새조개 까기 체험, 남당항 불꽃놀이, 관광객 노래자랑 등의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김용태 남당항축제추진위원회장은 “새조개 한 알이 계란 한 판보다 낫다고 할 만큼 새조개에는 영양분이 매우 풍부하다”면서 “축제의 본행사는 1월로 끝났지만 먹거리 축제는 새조개의 산란기가 시작되는 5월 7일까지 계속된다”고 말했다. 갈매기 날아다니는 남당항
-
<맛난 음식> 서민의 삶과 함께해 온 설렁탕원형으로 된 대형 압력솥. 그 안에서 하얀 듯 맑은 국물이 뽀얗게 우러난다. 안개처럼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 설렁탕 국물은 장시간의 인고 끝에 이렇게 태어나 사람들의 허기를 달래고 위안을 준다. 우리의 일상과 함께해 온 친근한 음식 설렁탕에 깃든 역사와 맛의 비밀을 알아봤다. 사진/임귀주 기자 설렁탕 음식을 들여다보기에 앞서 1920년대에 발표된 현진건의 단편소설 ‘운수 좋은 날’부터 살펴보자. 사회 밑바닥 인생의 팍팍한 삶에 얽힌 애환이 뭉클하게 느껴져서다. 설렁탕은 서민의 대표 음식이 아니던가.가난에 찌든 채 겨우겨우 살아가는 인력거꾼 김 첨지. 그에겐 병약한 아내가 있었다. 설렁탕 국물을 먹고 싶다는 아내였지만 열흘 동안 단 한 푼도 벌지 못한 김 첨지는 이날도 비참한 신세를 한탄하며 병석의 아내에게 ‘오라질 년'이라는 욕설을 퍼붓고서 집을 나섰다.그런데 이게 웬일? 아침부터 손님들이 줄을 잇는다. 저녁에 세어보니 당시로는 거금인 30원이 손에 쥐어져 있다. 횡재했다 싶어 기분 좋게 술 한 잔 걸친 김 첨지는 설렁탕을 사서 들입다 집으로 내달린다. 그런데 이게 또 웬일이란 말인가! 기다리고 있는 건 이미 세상을 떠나버린 아내였다. 김 첨지에게 어쩐지 ‘운수 좋은 날’이다 싶던 이날은 억세게 ‘운수 나쁜 날’이었던 것이다.서울 지역을 대표하는 전통음식인 설렁탕. 현진건의 소설에서 보듯이 가난하고 배고프던 시절에 설렁탕은 서민들의 삶과 소망을 함축한 탕반의 대명사였다. 일상에서 고기 음식을 접하기 쉽지 않았던 터라 뜨끈한 설렁탕 한 그릇은 고달픈 마음을 일거에 따뜻이 다독여주는 위안의 힘을 담고 있었다. 물론 지금은 누구라도 별 부담 없이 먹을 수 있을 만큼 친근한 대중 음식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사진/임귀주 기자 ◇ 설렁탕의 백미는 뼈다귀 국물, 불 조절이 맛 좌우 설렁탕은 소뼈와 소고기가 중심이 된 탕류 음식이다. 검은 그릇에 담긴 하얀 국물. 여기에는 역시 하얀 색깔의 쌀밥과 소면이 담겨 있어 그릇과 절묘한 흑백 대비 효과를 낳는다. 이와 함께 머릿살과 양지, 만하바탕 등의 고기가 얹히고 대파와 후추, 소금 등의 재료와 양념이 추가되면 특유의 맛깔스러움을 더욱 깊게 한다. 기본 반찬은 깍두기와 배추김치로 비교적 소박·단순한 편.설렁탕의 백미는 역시 맑은 듯 깊은 맛이 느껴지는 뼈다귀 국물이다. 커다란 압력솥에 머리 부위에서 다리 부위까지 소뼈를 담고 물을 넉넉히 부은 뒤 가스 불로 14시간가량 정성껏 끓인다. 무쇠솥에 장작불이나 연탄불을 지폈던 시절에는 이보다 10시간이나 더 긴 꼬박 하루 24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서울의 설렁탕 식당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곳은 종로구 견지동에 있는 ‘이문설농탕’. 이 식당의 조리실장인 김학주(61) 씨는 “설렁탕 맛을 좌우하는 것은 바로 불이에요, 불! 어떻게 끓이느냐가 핵심이지요”라고 비결을 살짝 귀띔한다. 싱글싱글 웃는 얼굴로 탕을 끓이고 재료를 넣는 모습에서 장인의 깊은 연륜과 여유가 느껴진다. 김 씨가 설렁탕 조리에 뛰어든 것은 1971년께로, 무려 45년 동안 설렁탕과 함께해왔단다.◇ 임금이 농사의 신에 제사 지낸 선농단이 유래 서양식 퓨전 음식이 날로 각광 받는 시류 속에서도 설렁탕의 입지는 여전히 탄탄하다. 나이 많은 기성세대는 물론 젊은 세대에게서도 변함없는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다. 한 식당에서 만난 70대 중반의 손님은 “일주일에 다섯 번 정도는 설렁탕집에 와요. 오늘도 친구들과 함께 찾았고요. 그만큼 입맛이 깊게 배어서겠지요”라고 말한다. 30대 후반의 김 모 씨도 “고기가 들어 있는 음식인데도 담백합니다. 한 그릇 먹었을 때의 만족감은 참 커요. 어렸을 때부터 먹어봐서 그럴까요?”라며 웃는다.친숙한 맛과 부담 없는 가격 덕분인지 설렁탕은 정치인들의 서민 행보에서도 하나의 상징이자 단골로 곧잘 등장하곤 한다. 특히 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이 시행되자 여의도 국회의사당 맞은편의 설렁탕 식당 앞에는 끼니때마다 줄이 길게 이어지고 있다고 보도된다. 한 야당 대표는 새 수장이 된 뒤 나선 첫 민생 행보 때 재래시장의 식당에서 설렁탕으로 식사했다. 그만큼 소탈한 서민음식의 상징인 것이다.그렇다면 설렁탕은 언제 어떤 연유로 생겨났을까? 용어도 ‘설렁탕’, ‘설농탕’ 등으로 다양해 그 역사와 배경이 궁금해진다.먼저 표기부터 살펴보자. 설렁탕은 한때 ‘셜넝탕’, ‘셜렁탕’, ‘설넝탕’, ‘설녕탕’, ‘설농탕’(雪濃湯) 등으로 다양하게 쓰이다가 요즘은 ‘설렁탕’, ‘설농탕’이 대세를 이룬다. 이 가운데 ‘설렁탕’이 더 일반적이지만 ‘이문설농탕’에서 보듯이 음식점에 따라 전통의 명칭을 고수하는 곳도 많다.설렁탕의 유래에 대해선 크게 두 가지 설이 있다. 그중 하나는 조선시대에 임금이 선농신에게 제사를 지낸 뒤 직접 농사짓는 시범을 보인 장소인 선농단(先農檀)에서 비롯했다는 것. 경칩 때인 양력 3월 5일이나 6일에 제사를 지냈는데 이때 수고한 조정대신과 백성들에게 소를 잡아 만든 국밥을 내렸다. 선농단에서 내린 국밥이라고 해 ‘선농탕’에 이어 ‘설농탕’이라고 불렀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해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에 있는 선농단에서는 매년 봄에 선농대제(先農大祭)가 열리고 참가자들에게 설렁탕을 나눠주는 행사도 진행된다. 지명인 ‘제기동’(祭基洞)’은 ‘제사를 지낸 터’라는 뜻이다.이보다는 조금 약하지만 설렁탕이 몽골시대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는 설도 있다. 몽골에서 고깃국을 ‘슐루’라고 했는데 이 말이 한반도에 들어와 ‘슐루탕’에서 ‘설렁탕’으로 음운 변화를 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이와 함께 ‘어떤 일을 대충대충한다’는 뜻의 의태어인 ‘설렁’과 한자어인 ‘탕’(湯)이 결합해 이뤄진 말이라는 설도 있다. ‘설렁설렁 끓인 탕’이라는 뜻이랄까. 제기동 선농단의 선농대제. 사진/임귀주 기자 아무튼 설렁탕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서울은 물론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거듭난다. 특히 서울에는 ‘이문옥’, ‘대성관’, ‘사동옥’, ‘이남옥’ 등 유명 식당들이 번성해 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이 중 가장 오래된 식당은 ‘이문설농탕’의 전신인 ‘이문옥’. 1904년 종로구 공평동에서 영업을 시작한 이 음식점에는 초대 부통령인 이시영을 비롯해 마라톤 선수 손기정, ‘장군의 아들’인 김두한 등 유명인들이 단골로 드나들었다. ‘이문’이라는 이름은 마을을 드나드는 작은 문이자 초소였던 ‘이문’(里門)에서 연유했다. 현재는 1960년에 이 식당을 인수한 유원석(2002년 작고) 여사의 아들 전성근(68) 씨가 1980년에 물려받아 운영하고 있다. 식당이 지금의 견지동 자리로 이전한 것은 2011년. 그로부터 2년 뒤인 2013년에는 서울시에 의해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됐다. 설렁탕은 뼈, 곰탕은 고기 고아 만들어 시대 흐름과 함께 설렁탕의 조리 기구와 재료도 조금씩 변화를 보여 왔다. 조리 기구의 경우 무쇠 가마는 압력솥으로, 연탄불은 가스 불로 바뀌었고, 해방 후에 추가된 국수사리에서 보듯이 일부 음식 재료도 새롭게 넣곤 한다. 물론 과거의 목조 건물 또한 대부분 사라지고 현대식 건물에서 음식이 조리된다. 하지만 기본 재료와 조리 방법은 대동소이해 구수하면서도 깊은 맛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다.설렁탕과 비슷한 음식으로 곰탕이 있다. 두 음식은 어떻게 다를까? 설렁탕은 솥에 사골, 소머리 등 주로 뼈를 넣고 끓여 먹는 탕이라면, 곰탕은 뼈보다는 소꼬리, 양지, 내장 등의 고기를 넣고 오랫동안 푹 고아서 만드는 탕을 말한다. 설렁탕 국물이 가볍고 담백하다면 곰탕 국물은 무겁고 진하다.
-
<맛난 음식> 스태미나와 피부 미용에 좋은 주꾸미사진 / 전수영 기자 (보령=연합뉴스) 임형두 기자 = 면후심흑(面厚心黑). 낯짝은 두껍고 속은 시커멓다? 정치인의 속성을 질타하는 ‘후흑학’(厚黑學)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바로 이 계절의 진객이자 별미인 주꾸미 이야기다. 주꾸미로 유명한 충남 보령 무창포를 찾았다.문어과의 주꾸미는 오동통한 머리 부분과 여덟 개의 다리 부분으로 이뤄져 있는 바다의 연체동물이다. 머리에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 시커먼 먹물을 안전판처럼 품고 다닌다. 적이 나타나 자신을 위협할 경우 이 먹물을 순식간에 내뿜고 줄행랑을 친다. 일종의 호신용 연막작전인 셈이다.주꾸미는 포란기이자 산란기인 봄철에 맛이 가장 좋다. 3월과 4월에 알을 몸속 가득 품고 있다가 5월 중순 몸 밖으로 내보낸다. 봄날 주꾸미 맛의 정수는 바로 이 알에 있는 셈이다. 그래서 ‘봄에는 주꾸미, 가을에는 낙지’라는 말이 나온 것 같다.주꾸미와 낙지는 생김새가 비슷하다. 다만 모두 여덟 개인 다리의 길이에서 뚜렷한 차이가 난다. 낙지가 주꾸미보다 두 배가량 길다. 어부들은 주로 소라 껍데기를 이용해 주꾸미를 잡는다. 주꾸미는 은신하거나 산란하기 위해 소라 껍데기에 숨어드는데 이런 생존ㆍ번식 본능을 이용해 포획하는 것이다. 연어처럼 주꾸미 암컷도 알을 낳은 뒤 곧바로 숨을 거둔다. 주꾸미의 수명은 1년에 불과하다.우리나라에서 주꾸미의 주산지는 서해안이다. 보령, 서천, 군산 등이 그곳이다. 얕은 바다에 모래자갈 또는 진흙이 드넓게 깔려 있어 생존과 번식에 안성맞춤이다. 주꾸미는 조개류와 물고기류를 주식으로 살아간다.◇ 끓일수록 깊고 시원한 맛 더해 주꾸미 요리에는 무엇이 있을까? 크게 샤부샤부 요리와 볶음 요리를 들 수 있다. 샤부샤부의 경우 다시다 물에 조개, 파, 쑥갓, 팽이버섯과 함께 주꾸미를 넣고 끓인다. 시원한 국물 맛이 그만이다. 같은 식재료라도 어떻게 요리해 먹느냐에 따라 맛이 크게 달라진다. 샤부샤부 요리에서는 주꾸미 머리를 가위로 잘라 먼저 냄비에 넣는다. 머리 부분은 다리에 비해 끓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릴 뿐 아니라 끓일수록 진국이 푹푹 우러나기 때문이다.머리 부분은 익어가면서 색깔이 차츰 달라진다. 붉은색으로 변하면 고기가 익었다는 신호나 다름없다. 끓이면 끓일수록 머릿속 시커먼 먹물이 우러나와 깊고 시원한 맛을 더한다. 다리 부분은 머리보다 나중에 넣되 익었다 싶으면 얼른 꺼내 먹는 게 좋다. 함께 넣는 조개도 마찬가지다.볶음 요리의 특징은 매콤한 맛이다. 대파, 당근, 고추장, 물엿, 양파, 참기름과 함께 주꾸미를 볶아 먹으면 샤부샤부와는 또 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고기를 거의 다 먹은 뒤에는 밥을 넣어 볶으면 색다르면서도 푸짐한 식사가 된다. 주꾸미는 샤부샤부나 볶음 요리 외에도 회로도 먹을 수 있다. 낙지보다 연해서 씹기에도 좋다.충남 보령 무창포의 한 식당에서 만난 강희석(62)ㆍ이명옥(59)씨 부부는 “담백하고 쫄깃한 주꾸미의 맛에 이끌려 해마다 주꾸미 철이면 대전에서 이곳으로 자주 놀러 온다”며 “남자에게는 스태미나에, 여자에게는 피부 미용에 좋다고 하는데 정말 그런 것 같아요. 제 얼굴 좀 보세요. 좋잖아요!”라며 활짝 웃는다. 타우린 성분이 풍부한 주꾸미에는 스태미나와 피부 미용 외에 간의 해독, 빈혈 예방, 콜레스테롤 수치 감소, 기억력 향상 등에도 특유의 효능이 있다고 한다. 기억력 향상과 관련된 성분은 불포화지방산 DHA. 어린이들이 먹으면 두뇌 발달에 좋고, 어른들이 먹으면 치매 예방에 효험이 있다. 특히 주꾸미의 먹물에는 항암 효과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바닷가에서 파도 소리 들으며 먹으면 더욱 진미 주꾸미도 인공양식을 할까? 무창포 수산시장상인회의 김병화(47) 회장은 “우리 지역에서 팔리는 주꾸미의 대부분이 서해 앞바다에서 소라 껍데기를 이용해 잡거나 낚시로 포획한 것으로 인공양식은 본래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자연산이 주류를 이루다 보니 공급이 소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어로기술의 발달로 남획이 이뤄지고 있는 데다 가뭄까지 겹쳐 주꾸미는 근래 들어 ‘귀하신 몸’이 돼 버렸다. 육지가 가물면 바다도 가물기 마련인데 지난해 가뭄 여파로 올해에는 예년보다 주꾸미가 귀해졌다.어획량 감소로 값이 많이 올라 생산자나 판매자, 소비자 모두를 난처하게 한다. 4월 초를 기준으로 할 때, 지난해까지만 해도 1㎏에 4만원가량이던 현지 수산시장의 주꾸미값이 올해는 4만5천원으로 껑충 뛰었다. 주꾸미값과 쇠고깃값이 같아진 셈이다. 두 명이 주꾸미 샤부샤부를 먹으려면 주꾸미값 4만5천원에 식당 요리비 1만원을 추가해 최소 5만5천원이 든다. 물론 밥값이나 면값, 술값 등은 별도다.주꾸미처럼 다리에 빨판이 있는 연체동물을 날로 먹을 때는 조심해야 있다. 성급히 먹다가는 빨판이 입안의 기도나 식도에 달라붙을 수 있어서다. 주꾸미를 무심코 삼키다 목숨을 잃는 경우가 간혹 발생한다. 날로 먹을 때는 잘게 잘라서 천천히 씹어 먹어야 한다. 흔히 주꾸미는 바다에서 나오는 봄의 전령사로 일컬어진다. 봄철이 되면 서해안 곳곳에서 주꾸미를 소재로 한 축제가 열린다. ‘보령 신비의 바닷길 주꾸미ㆍ도다리 축제’가 대표적이다. 올해의 경우 3월 18일부터 4월 10일까지 무창포항 일원에서 맨손고기잡기, 주꾸미 디스코 경연대회 등 프로그램으로 다채롭게 열렸다. 인근 서천군 서면 마량리에서는 3월 26일부터 4월 8일까지 ‘서천 동백꽃·주꾸미축제’가 열려 동백꽃도 보고 주꾸미 맛도 느껴보는 일거양득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었다. 같은 주꾸미를 먹더라도 갈매기들이 훨훨 날아가는 바닷가에서 철썩철썩 치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먹노라면 더욱 진미가 아닐 수 없다. 음식 맛도 반쯤은 분위기로 즐기기 때문이다. 사진 / 전수영 기자
-
"신비의 생명수로 원기 회복을"…곳곳서 고로쇠 축제(서울=연합뉴스) 임형두 기자 = 해마다 3월이 되면 신비로운 생명수를 선사하곤 하는 고로쇠나무. 꽃이 아닌 약수로 새봄이 왔음을 알리는 봄의 조용한 전령사다. 고로쇠나무는 전국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낙엽활엽교목. 잎은 물갈퀴 달린 개구리의 발처럼 갈라져 있고 5월이면 연한 황록색의 꽃을 피운다. 나무 이름인 고로쇠는 한자어 골리수(骨利樹) 또는 골리목(骨利木)에서 유래됐디고 한다. 말 그대로 '뼈에 좋은 나무'다.이 신비의 생명수로 원기를 되찾으려는 발길이 고로쇠 산지로 이어진다. 나무줄기에 구멍을 뚫어 플라스틱 파이프로 얻어낸 수액은 칼슘과 마그네슘 등 미네랄 성분이 풍부하다.고로쇠 채취의 계절이 되면 그 축제도 함께 열려 몸과 마음의 건강을 동시에 얻고자 한다. 지리산, 조계산, 백운산, 덕유산, 운장산 등 유명산을 중심으로 이달 초순부터 중순까지 속속 축제가 개최되는 것. 먼저 남원시 산내면의 지리산 뱀사골에서 3월 5일 열리는 '지리산 뱀사골 고로쇠 약수제'를 보자. 올해로 28회를 맞을 만큼 그 역사가 깊다.뱀사골 고로쇠는 바닷바람이 미치지 않고 일교차가 큰 해발 500m 안팎의 고지대에 있는 수령 50~60년 된 나무에서만 채취한다. 당도가 높고 칼슘과 망간 등 무기성분이 많은 게 특징. 약수제는 고로쇠 먹고 고함지르기, 길놀이, 약수제례, 지리산골 노래자랑 등의 행사로 진행된다. 행사장에서 와운마을 천년송(천연기념물 제424호)까지 왕복 5km 구간을 걸으며 소원을 비는 '뱀사골 천년송 소원빌기 걷기대회'에도 참여할 수 있다.이번에는 경남 양산의 원동면 배내골에서 열리는 '배내골 고로쇠 축제'. 올해로 11회째인 배내골 축제는 5일과 6일 이틀 동안 배내골 홍보관 일원에서 펼쳐진다. 준비된 프로그램은 고로쇠 수액 빨리 마시기 대회, 떡메치기, 두부 만들기 등. 이어 12일과 13일에는 전북 진안의 운장산에서 고로쇠의 맛을 만끽할 수 있다. '운장산 고로쇠 축제'는 진안군 주천면 대불리의 운일암 광장에서 '100세 인생, 진안고원 고로쇠 먹고 건강하게'를 주제로 마련된다. 증산기원제와 풍물놀이를 시작으로 건강걷기대회, 등반대회, 송어잡이, 윷놀이 대회, 고로쇠 비빔밥 만들기, 수액 빨리 마시기, 가수왕 선발대회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꾸며질 예정. '덕유산 고로쇠축제'는 인근의 무주군 구천동 덕유산 국립공원에서 14일과 15일 열리게 된다. 고로쇠 맛보기와 고로쇠 채취 체험, 노래자랑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관람하거나 참여할 수 있고 봄철 미각을 돋우는 향토색 나는 음식들도 맛볼 수 있다고.주최측은 일교차가 크고 일조량이 풍부한 해발 600∼1천m의 고지대에서 채취하기 때문에 칼륨과 마그네슘, 나트륨, 망간 등의 영양성분이 더욱 풍부하다고 자랑한다. 이밖에 전남 광양의 백운산 고로쇠약수제(5일)와 경기도 양평단월 고로쇠축제(12~13일), 포항의 죽장고로쇠축제(12일) 등도 가볼 수 있다.
-
희망은 들불타고 세계로…봄날에 제주들불축제 '활활'(서울=연합뉴스) 임형두 기자 = 먼저 가정부터 해보자. 불이 없다면 어찌 될까?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불의 사용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인류 생존과 번영이 가능할까? 인류문명의 역사는 불과 함께 본격적으로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불의 새로운 발견! 그저 두려움의 대상이기만 했던 불을 손에 넣어 사용함으로써 인류는 번창과 문명의 길로 새롭게 접어들었다.태초부터 불은 신성 그 자체였다. 이는 동서를 망라한다. 프로메테우스가 제우스의 불을 훔쳐 인간에게 건넸다는 고대 그리스신화에서 보듯이 불에 얽힌 신화는 곳곳에서 선명한 불빛을 드러낸다. 불이 두려움이 아닌 생명과 희망으로 인간의 손에 들어온 것은 약 50만년 전이라고 한다.우리 조상들도 정월대보름 등 겨울철이면 다양한 불놀이를 즐겼다. 쥐불놀이가 그 대표적인 사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논둑과 벌판, 산언덕에 불을 놓음으로써 무사안녕과 풍년을 기원했다. 오름불놓기 조상들의 불놀이가 현대적 축제로 계승되고 있는 제주들불축제. 대대로 내려오던 목축문화를 시대에 맞게 복원해 매년 장엄한 희망의 불꽃잔치를 벌인다. 제주도에서 개최되는 축제 중 유일한 문화관광축제로 이미 '우수축제'의 반열에 올라 있다.올해로 19회째를 맞은 제주들불축제는 '들불의 희망, 세계로 번지다'라는 주제로 이달 3일부터 6일까지 제주시 애월읍 봉성리의 새별오름 일대에서 다채롭게 펼쳐진다. 횃불대행진, 달집태우기, 오름불놓기, 마상마예공연 등이 나흘 동안 쉴새없이 이어지는 것.모두 68개의 프로그램 중 단연 돋보이는 하이라이트는 셋째날 밤에 새별오름을 뜨겁게 불태우는 오름불놓기. 무려 52만여㎡에 이르는 드넓은 이 언덕은 '샛별처럼 빛난다'고 해 지금의 지명을 얻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제주들불축제는 전통의 목축문화에서 유래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제주의 농가들은 보통 두세 마리의 소를 기르며 밭을 일궜다. 농한기에는 이들 소를 중산간 지대에 주로 방목했는데 겨울이면 이 방목지와 논밭을 불태워 묵은 풀을 없애고 해충도 구제했던 것.이 불놓기를 이 고장에선 '방애'(화입·火入)라고 했다. 해마다 이맘때면 이들 산언덕과 들판에 불을 놓음으로써 마치 거대한 산불이 난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 정도였다. 소와 말들은 해충이 없이 부드럽고 신선한 목초를 먹고 근력도 키우고 살도 찌울 수 있었다.방애의 풍습이 현대적 의미의 축제로 승화해 정착하기 시작한 것은 1997년. 쥐불놀이 시기인 음력 정월대보름에 맞춰 '제주정월대보름들불축제'라는 이름으로 매년 개최돼오다 2013년부터는 경칩 무렵으로 옮겨 현재와 같은 명칭으로 바뀌어 열리고 있다.24절기 중 세 번째인 경칩은 개구리 등 땅속에서 동면하던 동물들이 깨어나서 꿈틀거리기 시작한다는 때. 이는 양력 3월 5일 무렵이 된다. 오름불놓기 등 행사를 감안할 때 강풍과 추위, 눈과 비가 많은 편인 정월대보름보다 경칩 무렵이 낫다는 판단에서 이처럼 시기를 옮기게 됐다고 한다. 횃불대행진 축제는 주제에 맞춰 날짜별로 고유 마당을 설정했다. 첫째날인 3일은 '들불 희망이 샘솟는 날'이고, 둘째날인 4일은 '들불 희망이 영그는 날'. 이어 5일과 6일은 '들불 희망이 번지는 날'과 '들불 희망을 나누는 날'로 각각 정해졌다.구체적으로 보면 3일에는 문화예술한마당과 샘샘샘 콘서트가 제주시청 일원에서 열려 분위기를 띄우고, 4일에는 들불 희망기원제에 이어 집줄놓기 경연, 희망 달집 만들기, 희망기원 전도 풍물대행진, 횃불대행진, 희망 달집태우기 등이 펼쳐진다.축제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5일 저녁에 진행되는 오름불놓기. 참가자들은 30만여㎡의 거대한 산언덕을 불태우는 오름불을 바라보며 한 해의 소망과 안녕을 기원하게 된다. 이밖에 마상마예공연과 도민대통합줄다리기, 희망 대동놀이, 제주농요공연 등이 질펀하게 이어진다.마지막날은 축제의 희망을 함께 나누는 때. 제주 푸드 페스티벌, 희망 나눔 횃불대행진, 넉둥베기('윷놀이'의 제주토속어) 경연 등과 함께 새봄 새희망을 상징하는 묘목도 나눠준다. 축제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달집태우기. 축제가 지난해까지만 해도 3일간 열렸으나 올해부터 하루가 더 늘었다. 축제기간에는 전국사진콘테스트, 오름트레킹 '새별아 놀자', 제주의 소릿길 체험, 승마 체험, 오름잔디 썰매타기, 쥐불놀이, 전통아궁이 체험, 돌하르방 만들기, 들불 연날리기 등 다양한 부대행사들도 마련된다. 이와 함께 제주의 맛을 만끽할 수 있는 전통음식 체험 등도 준비해 방문객들이 풍성함을 맘껏 즐기도록 한다. 마상마예 공연듬돌들기 경연 초창기에는 축제가 애월읍 납읍리와 구좌읍 덕천리의 중산간을 오가며 개최됐다. 지금의 새별오름으로 변경된 것은 지난 2000년. 이후 이곳으로 고정돼 열리고 있다. 새별오름은 제주도의 360여 개 오름 가운데 중간 정도 크기로 고려시대 최영 장군이 몽골의 잔존세력을 토벌한 전적지이기도 하다. 축제장은 해발높이가 519m 이상이며 둘레는 2.7km가량. 남쪽 봉우리를 정점으로 작은 봉우리들이 북서 방향으로 타원을 그리며 옹글게 솟아 있다. 제주공항에서 자동차로 35분 정도 소요돼 접근성도 비교적 좋은 편. 물론 무료셔틀버스도 노선별로 운행돼 방문객들에게 최대한의 편의를 제공한다.제주들불축제는 이 고장을 대표하는 국내 축제로 확고히 자리잡은 가운데 세계로 도약할 채비를 하고 있다. 정부의 문화관광축제로 선정된 것은 올해로 11번째. 2006년부터 2014년까지 9년 연속 유망축제 대열에 합류했으며 지난해와 올해는 한 단계 더 뛰어오른 우수축제로 선정됐다.축제가 인기를 끌면서 미국, 중국, 일본 등 외국의 공연단도 초청돼 국제적 도약에 힘을 실어준다. 들불축제는 해마다 증가하는 제주도 방문 외국관광객들에게 빠뜨릴 수 없는 볼거리가 되고 있는 것. 문화관광축제 우수축제에 오른 만큼 나라별 소원체험을 신설하고 달집 만들기, 듬돌들기, 줄다리기 경연 등 외국인 참여프로그램을 늘리기로 했다.제주시 관계자는 "시민이 주체가 돼 운영하되 안전과 편리를 최우선으로 할 것"이라며 "올해는 유료프로그램을 확대해 축제의 재정자립도 향상과 더불어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이 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 문의 : ☎ 064-728-2751~2756(제주시 관광진흥과). http://www.buriburi.go.kr 달집태우기